모모렌과 함께 걷는 연구소의 복도. 긴 복도. Dr. HARU라는 명패가 붙은 연구실 앞에서 모모렌은 살짝 멈춰 미간을 찌푸리고 속삭이며 투덜거린다.
"하아. 이 언니도 참.. 아까 잠깐 나간다고 하더니.. 바쁜데도 참 부지런해."
저 멀리 바깥부터 즐겁게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소란스러워진 걸 보니, 닥터 하루가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 "대단해, 혼자인데도 온몸으로 흥이 돋아!" 그 소리와 함께 뭔지 모를 민트빛 컬러의 광채가 번뜩이더니 저 복도 멀리 민트빛 야광봉과 핸드폰을 든 그녀가 나타났다.
....잠깐만... 야광봉?....?? 병원에 야광봉?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전화를 하며, 왠지 모를, 이유 없는 민트색 야광봉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닥터 하루. 그러다 우리를 발견했는지 격하게 동공이 흔들리더니 뒤에 서둘러 야광봉을 감춘다.
불은 끄고 감추시던가...
이 분을 믿어도 되는 것인가 의구심이 max를 칠 무렵 닥터 하루가 입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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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HARU >
아, A양?...
어머, 기다리게 해서 너무 미안해요!!
일이 바쁜데 요 앞에 잠깐 이벤트가 있다 해서 짬 내서
잠깐, 아~~주 잠깐 응원하고 왔어요.
한참 기다리진 않았겠죠? 5분 정도인가.
금방 들어왔는데, 미안미안.
< Dr. MOMOREN >
5분 정도지만.....
뭐, 즐거웠어요?
< Dr. HARU >
역시 최고였어. 엉엉... 빛나는..
< Dr. MOMOREN >
스탑.. 거기까지. 한번 시작하시면 멈출 수 없으니까요 -_-
< Dr. HARU >
그러게요.. 너무 날 잘 알아. 닥터 모모렌.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A!! 정말 소문대로!!
어디 있다 이제 왔어요...
복도에 서 있지 말고 이리 들어와요. 미리 다 준비했어.
A양
당신이 오늘 만날 캐릭터는 바로
"허세의, 그리고 허영의 드미테르"입니다.
[Photo by 가람과 달 / Model 하루 / Artwork 아슈토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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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드미테르 Profile
* 세례명 : 허세의 / 허영의 드미테르
* 말버릇 : 오호호호호호호호
안녕 자기♡
===================================================================
[Photo by Fazz / Model 하루]
< Dr. HARU >
원래 계약자, 그러니까 본체라고나 할까요.
장난 같은 전단 광고를 보고 연락을 한 후
차일드와 계약을 맺게 되고...
속 안에 숨겨진 욕망을 대분출!!!!!
!!꽈과광!!
효과는 뛰어났다!!!
[Photo by Fazz / Model 하루]
< Dr. HARU >
사실 처음엔 왜일까? 의문도 들었어.
그 수상쩍은 전단지를 보고 바로 연락한 건.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말야.
다단계 사기도 많고, '도를 아십니까'도 많고
문구부터 상당히 수상쩍지 않아요?
<당신의 욕망을 해결해주겠다>
라는 그 글귀 말이에요.
그래요. 그런 말이 그 전단에 쓰여 있었다니까?
왜였을까? 그 말에 덜컥 연락을 하게 된 이유.
뭐어~ 어찌됐건, 홀리듯이
계약을 의뢰하게 되고.
그 결과 드미테르가 그녀와
차일드로 계약하게 돼요.
가여운 것, 언니에게 오렴♡
[Photo by 가람과 달 / Model 하루]
< Dr. MOMOREN >
음... 네. 첨언하자면
보시다시피 닥터 하루님이 코스프레 한 캐릭터에요.
정말 보자마자 이거!!!! 이건 내 거야!!!!!!!!!! 라며
얼마나 소리를 지르시던지. 어휴...
귀청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고요.
살짝 따끔!
[Photo by 가람과 달 / Model 하루]
< Dr. MOMOREN >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닥터 하루...
출장으로 인한 시차 적응의 고통에서 빈사의 상태
하지만 다 죽어가던 하루 언니를
발랄한 캐릭터 하나로
원기 충전!
하게 만들어 순식간에 훌훌 털고 일어섰...
아무렴. 내가 놓칠 수 있나
[Photo by 가람과 달 / Model 하루]
< Dr. MOMOREN >
하긴 그 캐릭터가 공개되는 순간..
닥터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루의 최애군. 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저건 하루가 찍겠군 이라던가
저건 하루가 당연히 하겠군 이라던가
뭐 다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어쨌든
너무 당신의 취향이잖아!
해바라기처럼 내내 곧던 취향이라
바로 알아봤죠..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페이버릿 포즈♡
[Photo by Amaranth / Model 하루]
< Dr. HARU >
부정할 수가 없군.
그래요.
맞아!!
내 덕질 1N년 동안 순수하고 올곧게
유사한 캐릭터들을 사랑하고 살았어!!!!!
저렇게 헤살하게 웃는 발랄 캐릭터 좋아한다구 ㅠㅠ
(어련히 그러셨을까)
< Dr. HARU >
흠흠.. 그건 그렇고
음 그럼, 차일드인 드미테르에 대해서 더 짚고 넘어갈까요?
코스프레라면 역시 캐릭터 분석이 중요!!!
그래야 그 캐릭터에 대한 표현을 잘 할 수 있으니까요.
자, 이름에도 많은 힌트가 숨어있는데..
원래 드미테르(데메테르) 라고 한다면
그리스 신화의 대지의 여신... 도 떠오르고
이래저래 다들 많이 쓰는 향수도 떠오르죠.
뭐 향수는 둘째로 치고.
풍요의 여신이자 지하 세계의 여신이기도 한 드미테르.
순수하다가도 한없이 우울해지는 성격이 본인을 닮았다 해서
그녀의 이름을 따왔다고 해요.
음.. 조울증이랄까. 어찌보면.
계약자는 참 어두운 애야.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Photo by Marc / Model 하루]
< Dr. HARU >
그런 거죠.
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거야.
욕망이 닿아 있는 곳에
그것을 해소할 수 있게 하는 차일드가 있죠.
아까 어떻게 보면 조울증과 같이
드라마틱하게 드미테르의 기분이
바뀐다고 했죠?
계약자도 마찬가지.
묘하게 비껴난 현실로 인해서
괴로워하던 인물이었죠.
[Photo by 가람과 달 / Model 하루]
< Dr. HARU >
사실 그러고 보면 그 의뭉스러운 전단을 보고도
연락할 수 있었던 것도
정신이 바닥을 치고
기어다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힐링 포인트가 없었던 거지.
자기도 찾을 수가 없었던 거야.
사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었을
현실과 꿈에서의 괴리랄까.
그래서 마음에서라도 만들어낸 거죠.
지루함에 지친 그녀가 만들어낸
당신의 여왕님을♡
[Photo by Fazz / Model 하루]
입에 모터가 달린 듯. 시종일관 행복한 얼굴의 닥터 하루는 정신없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닥터 모모렌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사진을 한장한장 넘겨다보던 "나"는 무엇인가 위화감을 발견했다. 뭔가 미묘하게. 뭔가 미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 위화감을 견디지 못한 "나"는 잠시 우물우물거리다 참지 못하고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물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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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소품의 방향이 다르네요/ 를 선택했습니다]
음....올 것이 왔구나..
[Photo by Amaranth / Model 하루]
< Dr. HARU >
와.
눈치챘구나.
과연♡ A양♡
< Dr. MOMOREN >
아니.. 이걸 모르는 사람이 둔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 Dr. HARU >
다른 점을 찾아보세요♡
네. 뭐 역시 사고가 터지지 않으면
코스프레가 아니랬다고
(당당)
어디 한번 찾아봐♡
[Photo by Fazz / Model 하루]
< Dr. HARU >
그러니까..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시원하게 이실직고 하죠♡
많은 인원이 모여 한꺼번에 촬영을 한 그 날이었죠.
그 날은 처음 방문하는 스튜디오에
하필이면
하필이면
하필이면
비가,
그것도 아주 굵직한 장대비가
종일 주륵주륵 내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습기가 가득가득 차서 바닥도 물로 젖어 있었고
다들 시간 내에 촬영을 마치느라 정신이 없었구요.
작품이 작품인지라 소품이며 의상도 정말 많았었거든요.
아휴. 김형태와 채지윤의 작품이라니까요?
소품!
의상!
...뭐 더 이상 말 할 게 있나요...
극상입니다, 난이도 극상.
이건 뭐 막 시작하려는 순간
최강 보스맵을 만나는 느낌
[Photo by Fazz / Model 하루]
< Dr. MOMOREN >
에휴...
함께 지옥의 그 기억을 살려보면..
다들 정신없고
소품 하나하나 챙기느라 바빠서
누구 하나 챙기기는커녕
자신의 한 몸 고사하기도 어려운 와중이었죠.
닥터 하루가 가장 먼저
자신만만하게 준비를 빨리 끝내더니
열심히 촬영을 하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소품이 간결한 편이었거든요.
[Photo by Fazz / Model 하루]
< Dr. MOMOREN >
다들 그 때에는
와.. 일찍 준비 마쳤구나, 부럽다..
하고만 지나갔는데.
나중에 사진 촬영을 완료하고
함께 둘러 모여 앉아
사진을 룰루랄라 즐겁게 보던 중,
언니가 갑작스런 기함을 지르더군요.
"아악!!!!!!!!!!!!!!"
뭐...뭐죠 이 단말마의 비명은..
닥터 하루였습니다.
"나 진짜 정신 없었나 봐 ㅠㅠ
목 아래 소품들을 죄다
반대로 착용했어!!!!!!!!!!!!!!!!"
......하루님........
.... 왜 그러셨어요......
< Dr. HARU >
닥터 모모렌은 화내는 모습도 귀엽구나 ♡
아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요
정말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흔치 않게 하는 실수 중 하나죠.
소품의 방향을 반대로 착용하는 것.
정면 그림을 보고 준비를 하다 보니
"거울 효과"라고
그림에 그려진 캐릭터의 위치를 고려하여 착용해야 하는데
가끔 그림 따라서 보다가 반대로 착용하는 일이죠.
어쩐지 나 치고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된다 했는데...
꺄르륵 꺅꺅 깨발랄...
[Photo by Amaranth / Model 하루]
긴장감 없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괜찮아 괜찮아"를 연달아 말하며 우리에게 손사레를 치는 닥터 하루. 진정한 깨발랄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의 태평한 얼굴을 넘어서 발랄 더 맥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닥터 모모렌의 표정은 점점 더 분노의 불길에 타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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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MOMOREN >
아니 언니!!
다들 자주 하는 실수지만
당연한 듯이 하면 안되지!!
그것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언니 머리 싸안고
엄청 풀죽어서 계속 고민했잖아욧!!
.....죄송합니다~♡
[Photo by Fazz / Model 하루]
아
지금은 저렇게 이야길 해도 당시엔 엄청 고민했구나...
하긴 예민하려면 얼마든지 예민할 수 있는 실수인 거 아닌가 요즘처럼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을 중시하는 때. 잘못 찍은 사진을 다 버려야 할 수도 있는 판국.
"내"가 괜한 말을 한 건가
순간적으로 굳어버린 순간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닥터 하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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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HARU >
아우 맞아맞아. 모모렌.
솔직히 좀 힘들었지 그때.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다 통째로 버려야 하나 싶더라고.
수정도 볼 수가 없고 말야.
아예 반대로 하려면 아예
모조리 반대로 하던가 했어야 했는데.
그래야 좌우 반전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으니까?
근데 완전 애매하게, 안대는 제대로 차고
나머지를 바꿔놔서 뭐 어떻게 수정을 볼 수도 없고..
요놈의 모가지 아래로만
어떻게 반전을 시키는가..
이 날 찍은 사진 모조리
갈아엎어야 하나
계속 고민했지.
인생, 그런거야
[Photo by Amaranth / Model 하루]
< Dr. HARU >
근데 생각해보니..
재밌잖아.
이것도 추억이고 실수도 기록이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틀린 그림 찾기로 만들어주면 재밌겠다♡
중요한 건
내가 했다!!!
하고 싶어서 했다!!
지금 이건 아주 작은 일
난 너무 즐겁고
만족스러워!
라서
이미 회복해버렸엉♡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아깝지
[Photo by Fazz / Model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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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
저 질릴 정도의 무한 긍정
닥터 모모렌의 표정을 보니 뭐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안심의 얼굴이다.
사실 어쩌면 걱정하고 고민하던 얼굴을 봐서 그랬겠지.
|
< Dr. HARU >
뭐 그래설라무네.
어떻게 보면 정말 드미테르와 같이
허세라고도 허영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사실 그런 거 필요하긴 하거든.
[Photo by Marc / Model 하루]
< Dr. HARU >
그래서 오늘은 우린 A에게 주는 두 번째 노트로
<허세와 자신감>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볼 거에요.
계약자 그녀가 필요로 했던 열정. 유희. 욕망
현실에서의 탈출
복잡한 고민으로부터의 해방
하고 싶었던 것의 시도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것.
동시에 당신에게도 꼭 필요한 그것.
나와도 잘 맞는 주제이고♡
진찰 시간이에용~
[Photo by 가람과 달 / Model 하루]
< Dr. HARU >
A양
허세와 자신감의 차이
알고 있어요?
그게 의외로 구분하기가 어려워.
의미로는 쉬워도.
뭐 대강 두루뭉실 얘기하자면
허세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고
자신감은 그야말로 자신감인 것?
사실 아무것도 없으면서 큰 소리만 내고
허황된 포장에 자신만만한 것을 허세라고 하고
자신감은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당당한 것을 말하는 거랄까?
하지만 말이에요.
자신감을 가지고 밀어 붙였는데 실패한다면?
만약 그 실제로 가지고 있다고 믿은 것 자체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거였잖아요.
사실 갖고 있었던 것이 실제론 아무것도 없었던 거라면.
그럼 이전에 가졌던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허세인가?
이렇게 되면 구분이 어렵죠.
[Photo by Fazz / Model 하루]
< Dr. HARU >
게다가 코스프레잖아.
아~ 이거 상당히 거창하게 말하는 거긴 한데
내가 재현해내는 하나의 세상이라구.
그런 와중에
내가 만들어 가는 건데
그게 허세면 어떻고 자신감이면 어떠하리.
걱정하거나 무서워하지 말고 일단 하면 되죠.
너무 병적으로 지나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끔 고난이 생기거나 어려운 장애물이 생겨도
그걸 넘을 수 있다면
그게 허세든 자신감이든
꼭 필요하다고 봐요.
그게 의외로 장애물을
부드럽게 넘어가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게 새로운 나를, 아니 사실은 숨겨진 나를
찾아주는 길잡이가 될지도♡
[Photo by 가람과 달 / Model 하루]
아, 그렇구나. 이제까지 정신없이 나열하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묶여지는 느낌이다.
닥터 모모렌도 닥터 하루도 그런 "나"를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작은 장애물에도 덜컥 겁이 나서 지나갈 수 없던 때가 있었지. 작은 허들에도 실망해서 그만두고 싶던 때도 분명 있었어.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허영의, 허세의 드미테르의 조각은 그런 이야기였을까.
잠시 생각하고 있던 내 앞에 닥터 하루는 빙긋 웃으며 빛나는 작은 민트빛 조각을 건네었다.
반짝 거리는 작은 보석 조각. 영롱한 민트빛. 손에 쥔 순간 자신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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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는 두번째 코스프레 소울의 조각을 얻었다!!!]
< Dr. MOMOREN >
아, 고마워요 언니.
자자. 닥터 하루는 도쿄돔 LIVE 블루레이를 보러 가야 해서
빨리 이동하라는 눈치를 주네요.
알았어요 알았어.
언니의 힐링의 시간을 위해
얼른 나갈게요.
A양.
시간이 얼마 없어요. 빨리 이동해야죠.
당신의 준비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한시가 바쁘답니다.
(이젠 이 고양이만 보면 이동해야 할 것 같다...)
[[모모렌의 지시에 따라 군말없이 이동한다]]
[Photo by Fazz / Model 하루]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