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미래의 흥행 대박 장르'로 여겨지던 익스트랙션의 이미지는 뒤집어진지 오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도 원조격 게임인 <타르코프>를 하고, 그 <타르코프>마저 전성기의 인기를 유지하기 버거워하고 있다. 게임에서 사망하면 획득했던 아이템을 모두 잃지만 반대로 내가 살아남으면 남의 것까지 빼앗을 수 있는 익스트랙션 장르의 특징은 이제는 게이머에게 피곤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새다. "성공하면 떡상, 실패하면 떡락 아닙니까!"라고 하지만, 이 '떡상'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고달프다.
가장 큰 문제는 게임 내에서 대부분의 아이템을 직접 얻어야 한다는 특성상 시간을 엄청나게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짧고 굵은 게임'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트렌드와는 다르다. 새로운 장르인 만큼 어떤 부분에서 차별화를 이루고 재미를 줘야 하는지도 어려운 숙제다. 텐센트, 액티비전, EA와 같은 유명한 개발사가 별도의 게임을 만들거나, 기존 게임에 익스트랙션 모드를 넣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기도 했다.
<타르코프> 외에 확실히 흥행한 게임은 중세 다크 판타지로 차별화를 꾀한 <다크 앤 다커>나 모바일 플랫폼을 선점한 <아레나 브레이크아웃>정도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다크 앤 다커>의 아류작도 무수히 많이 만들어졌다가 대부분이 실패했다.
대형 게임사는 이제 익스트랙션 장르에 관심이 줄어든 느낌이다. <엑소본>, <아크 레이더스>, <마라톤>과 같은 AAA급 게임이 출시를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만들던 거 출시는 해 봐야지..."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기자의 삐딱한 관점일 뿐 위의 게임이 장르의 새로운 발전을 이뤄내며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사실 그랬으면 좋겠다.)
이런 업계 트렌드 속, 일본에서 개발되던 익스트랙션 게임 중 하나가 드디어 세상 바깥으로 선보여졌다. 반다이 남코에서 개발한 <신듀얼리티: 에코 오브 에이다>는 반다이 남코가 힘을 주고 있는 신규 IP <신듀얼리티>를 활용해 개발된 게임이다.
<신듀얼리티: 에코 오브 에이다>(이하 신듀얼리티)와 다른 게임과의 차별점은 '메카'가 주역이 되며, 혼자서 외롭지 않도록 플레이어를 보조하는 휴머노이드 AI '메이거스'가 함께 동행한다는 것에 있다. <타르코프>가 크게 유행하지 않은 일본에서 개발된 만큼 익스트랙션 장르에 새롭게 유입될 플레이어를 위한 여러 완충 장치를 마련해 두기도 했다.
본 리뷰는 PC 버전 플레이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게임의 차별화 포인트로 전면 등장하는 것은, 크레이들 코핀 후면에 장착돼 주인공을 돕는 휴머노이드 AI '메이거스'다.
메이거스는 지정된 시스템 타입 중 하나를 선택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커스터마이징하고 특성을 정해 사용할 수 있다. 가령 날씨형 메이거스는 비가 내리는 날씨를 예측할 수 있고 AO 결정 탐지 범위가 넓다. 대크레이들형 메이거스는 다른 크레이들 코핀을 만났을 때 분석을 완료하면 체력과 무장 수준을 알려 준다. 정비형은 회복 아이템의 사용 속도가 빠르다.
메이거스의 특성별로 '궁극기'와 같은 스킬을 사용할 수도 있다. 정비형 메이거스는 체력을 회복하는 필드를 전개해 주고, 대크레이들형 메이거스는 상대방의 이동 속도를 낮추는 필드를 형성할 수 있다. 스킬은 게임에 진입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야 사용할 수 있다.
이 메이거스는 게임플레이에 상당히 개입하는 편이다. 일단, 게임에 진입하면 화면의 절반이 메이거스다. 메이거스는 기체 후면 안쪽에 장착되어 있지만, 게임을 하는 내내 기체 위에 홀로그램을 투사해 모습이 나오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큼지막하게 화면 좌측 상단에 얼굴이 등장한다. 타인의 크레이들 코핀 근처에 가도 메이거스의 외형이 보이기에, 게임 내에서 일종의 아바타로도 활용된다고 볼 수 있다.
게임플레이에도 영향을 미친다. 말이 없는 주인공을 대신해 다른 플레이어와의 소통을 대신해 주고, 게임플레이를 학습해 플레이어가 많이 사망한 지역에 진입하면 별도로 경고해 준다. 원하는 물건을 위시리스트에 올려 두면, 해당 재료가 많이 나오는 지역에 대한 데이터가 있을 경우 지도에 표기해 준다. 한 게임이 마무리됐을 때 리플레이를 진행하며 게임을 분석해 주는 것도 메이거스다.
문제는, 메이거스가 차별화 포인트지만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일단, 게임의 전체적인 그래픽에 맞춰 메이거스의 모델링은 카툰이 아닌 실사풍으로 구현되어 있다. 게임 표지에 등장하는 메이거스의 모습을 상상했다면, 인 게임에서 실망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서브컬처 게임이 발전하며 등장 캐릭터의 모델링이 상당히 정교해지고 있는데, 높은 업계 평균을 감안하면 조금 아쉽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커스터마이징이나 메이거스의 시스템 설정을 절대로 대충 하면 안 된다. 메이거스의 화장 등은 계속해서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지만, 나머지 부분을 수정하려면 돈을 내고 아이템을 사야 한다. 에디션을 구매하면 하나가 주어지긴 하지만 소모성 아이템이기에 또 사용하고 싶으면 결국 돈을 써야 한다.
피해자가 되면 "노잼!"을 외치겠지만, 가해자가 되면 "당한 놈이 잘못"이라며 말이 바뀌는 것이 사람 심리 아니겠는가. 현상범 수배의 리스크는 잃어도 아쉽지 않은, 성능이 나쁜 기체를 타고 나가면 그만이다. 죽어도 아쉬울 게 없으니 말이다.
애초에 작정하면 PvP를 피하기 힘들기도 하다. 사람이 아닌 로봇을 플레이하는 게임의 특성 상, 기체의 속도가 크게 차이나는 것이 아니라면 숨거나 도망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의심스러운 상대를 만났다면 사전에 거리를 잘 둬야 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묘한 시스템이 있다. 신듀얼리티에서는 기체의 내구도를 모두 잃을 경우 파손 상태가 되며 약 3초의 탈출 시간이 주어진다. 1, 2, 3번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탈출하는데, 탈출하면 기체가 그대로 필드에 남지만 탈출하지 않으면 그대로 전소된다.
탈출을 안 하면 나를 처치한 상대도 기체 부품을 획득하지 못하게 된다. 익스트랙션 장르는 고가치 아이템을 장비한 상대를 처치했을 경우 장비를 빼앗아 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인데,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러 탈출을 안 해서 상대를 골탕먹일 수 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초심자에게 하나의 진입 장벽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탈출을 못 하면 메이거스 또한 같이 탈출하지 못해 외관이 처참해진다. 폭탄 머리가 되는데, 외형을 되돌리려면 클리닝 룸이라는 장소에서 메이거스를 씻겨야 하고, 이 클리닝 룸을 개방하기까지의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클리닝 룸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기지의 '리빙 스페이스' 분야를 계속해서 개발해 욕조를 설치하고, 메이거스를 씻기기 위해 별도의 아이템을 투입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메이거스의 폭탄머리 외형을 봐야 한다.
사실, 클리닝 룸까지 도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몇 시간 정도는 투입해야 하며, 파밍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라면 더욱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기체를 로스트하고 탈출까지 못했다는 이유로 게임의 핵심인 메이거스까지 이렇게 되어버린다는 것은 상당히 자비가 없다. 예쁜 메이거스 보려고 게임했는데, 실수로 탈출을 못 했다고 특정한 기간까지 폭탄머리 외형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심지어 '안전 주머니'도 기지 증축을 해야 해금된다. <신듀얼리티>에서는 <타르코프>의 '안전 컨테이너'와 같은 시스템이 시작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게임이 PvP를 지양하도록 해 생존률을 높여 줬다고는 하지만, 안전 컨테이너가 없어 실수로 사망할 경우에는 정말로 해당 게임에서 파밍했던 모든 것을 잃는다.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로봇은 '크레이들 코핀'이라고 한다. <신듀얼리티>가 반다이 남코가 전개하는 신규 IP라는 점을 감안하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과 같은 미디어 믹스를 통한 목적 중 하나가 '완구 사업'을 위한 것임을 눈치챘으리라.
크레이들의 외형에 대한 평가는 밀어 두고, 게임의 문제 중 하나는 크레이들 코핀의 커스터마이징 요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엠블렘이나 메카 도색, 파츠마다의 외관 차이 등이 게임에 그다지 없다. 크레이들 코핀이 장착하는 무기 종류도 그다지 많지는 않다.
무기는 대미지가 강하지만 반동이 심한 '실탄 계열'과 반동이 약하지만 대미지도 실탄보다 약한 '에너지' 두 종류가 있는데, 무기별로 ▲기관단총 ▲기관총 ▲샷건 ▲저격소총의 4가지 종류만 존재한다. 그리고 같은 무기별로 '등급'에 따라 성능이 강화되는 식이다. 보통 SF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수많은 군수 기업과 여러 디자인으로 나뉘는 무기들은 이 게임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쏘는 맛도 딱히 없다.
<신듀얼리티>는 여러 번의 현지 인터뷰에서 업데이트를 통해 시즌제로 계속해서 신규 지역과 장비, 기체를 선보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기자가 체험한 얼리 액세스 분량에서 적은 콘텐츠와 장비가 선보여진 것은 위와 같은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추측의 영역이라 하더라도, 출시 연기까지 했던 게임이 정식 출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7일 간의 얼리 액세스에서 이 정도만의 콘텐츠와 장비만을 선보였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위에서 설명하는 것을 잊었는데, 사전 플레이 기준 <신듀얼리티>에는 남부와 북부 단 두 맵만이 존재한다. 정식 출시 후 많이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다면 조금 위험한 분량이다. 현지 인터뷰에 따르면 추후의 업데이트에서 더욱 큰 규모와 많은 플레이어가 참가하는 동부 맵이 개방될 예정이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신듀얼리티>는 콘셉트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이미 시장의 수많은 경쟁작을 생각하면 플레이할 메리트가 부족한 게임이다. 게임의 첫인상에 큰 영향을 주는 그래픽, UI, 연출, 타격감의 질도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퀘스트는 반복적이고 부분부분 나오는 스토리도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게임이 소규모 개발사에서 만들어진 인디 수준도 아닌, 대형 게임사가 돈 받고 파는 게임이기에 기대되는 퀄리티의 허들은 더욱 높음에도 말이다.
차라리 가능성이 없었다면 리뷰마저 안 썼겠지만, 또 나름 재미있는 구석이 있기는 하다. 게임이 처음 공개됐을 때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을 만큼 콘셉트도 괜찮고, 잘 다듬었으면 메카로 황폐한 지상을 탐사하며 메이거스와 상호작용하는 재미가 제법 있다. 파밍하는 맛은 확실히 있다며 호평을 날린 얼리 액세스 유저도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상기한 단점들로 인해 부정적인 반응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신듀얼리티>의 스팀 평가는 23일 기준 696개로 복합적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참고로 선행 7일 플레이는 디럭스 에디션과 얼티밋 에디션을 구매해야 가능하다. 게임에 상당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돈을 투자한 사람들의 평가가 반으로 갈린다는 것은 정식 출시 이후의 평가를 어둡게 한다.
가장 어려운 지점은 이 게임의 가격이 풀 프라이스에 가깝다는 점이다. 익스트랙션 장르는 높은 진입 장벽을 고려해 보통 게임의 부가 콘텐츠 정도로 더해지거나 무료 플레이를 통해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선호한다.
<타르코프>는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긴 하나, 대체할 수 없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는 점, 밀리터리 마니아를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라이센스비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나름 그럴 만한 이유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편이다. (그래도 늘 엄청나게 욕을 먹는다. '환불 불가'라는 베짱 장사를 하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신듀얼리티>는 적지 않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고, 차별점을 줄 수 있는 게임의 메이거스라는 요소도 파고들기 위해서는 추가 과금이 요구되는 편이다. 그만큼 애정을 쏟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냐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기자는 추가 과금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장르에 새롭게 도전하는 신인이 이 정도의 BM을 시작부터 선보인다는 것은 당황스럽다.
차리리 메인 콘텐츠가 패키지 수준의 분량을 뽑아낸다면 모르겠으나, 스토리와 퀘스트는 단순한 반복과 결과에 따라 일정 수준의 텍스트가 부여되는 수준에 그친다.
물론,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장기화를 위해 어느 정도의 추가 과금 모델은 필수적이다. 이미 수많은 익스트랙션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 추가 과금 모델을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추가 과금이 기체의 성능이나 게임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P2W(Pay to win)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가격에 판매되는 게임이 이처럼 시작부터 많은 추가 과금을 선보이는 것은 좋은 인상을 주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 장점
- 미소녀+메카+포스트 아포칼립스가 혼합된 콘셉트
- 메이거스의 존재
- 라이트한 익스트랙션을 지향
- 아이템을 파밍하고 돈을 모으는 재미는 있다
▲ 단점
- 메카물이란 점을 제외하면 많은 부분에서 경쟁작 대비 장점이 적다
- 부족한 최적화와 콘텐츠
- 호불호 갈릴 수 있는 메이거스의 모델링
- 적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 게임 내 과금 요소 일부 존재
- 반복적인 스토리와 퀘스트
평점: 6.8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