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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스타 2021]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 강연…원화가에서 디렉터까지의 여정

"그 '뻥'을 반드시 현실로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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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언(톤톤) 2021-11-18 23:38:57

“진짜로 이룰 때까지 이룬 척을 하라”(fake it till you make it)는 영어 표현이 있다. 아직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더라도, 이미 성취한 사람인 것마냥 스스로 최면을 걸고, 대외적으로도 자신감을 내비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디렉터까지'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의 2021 지스타 기조 강연을 듣고 나니 이 표현이 생각났다. 김형태 대표는 원화가로 시작해 게임사 대표에 이르기까지의 지난 날을 돌아 보며, ‘뻥을 치고’ 수습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내를 대표하는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해 아트 디렉터를 거쳐 게임사 대표이자 게임 디렉터가 되기까지, 그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지평을 넓혀 왔을까? 전체 강연을 정리해봤다.

 


 

# ‘그림쟁이’에서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누구나 그렇듯 김형태 대표 역시 그 시작은 아마추어였다. 97년 개인 포트폴리오를 꾸미면서 게임사 문을 두드릴 준비를 했고 같은 해 포트폴리오의 퀄리티를 인정받아 지금은 사라진 게임사 ‘만트라’에 입사한다.

 

입사 후 처음으로 김 대표는 자신이 디자인한 것이 아닌 그림을 그리게 됐다. 단순한 디테일만 정해진 캐릭터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발전시키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웠다.

 

당시 작업하던 게임은 끝내 출시하지 못했고, 게임사도 문을 닫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업계에 진입하는 첫 발자국이었다. 이때의 경력을 계기로 그는 자기 커리어에 중요한 한 획이 되어준 기업, 소프트맥스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김형태 대표의 아마추어 시절 일러스트

 

 

소프트맥스에서 처음 맡은 외주 작업은 <창세기전> 시리즈 외전 <템페스트>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제멋대로’ 디자인을 했다. 김형태 대표는 “그림 그리는 분들이 흔히 ‘나를 찾아줬으니 내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신다”며 당시의 태도를 설명했다.

 

이런 태도는 99년 <창세기전 3> 작업에 처음 ‘정직원’으로 참여하면서 비로소 바뀌었다. 김 대표는 ‘프로’로서 모종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는 “굉장히 하찮은 깨달음이었다.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그려주면 좋아하지 않을까’하는 인식이었다. 사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아웃풋을 내놓는 것은 프로의 기본이고 상식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때는 이것이 ‘당연’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업계가 생긴 지도 얼마 안됐고 기업 소속 일러스트레이터도 없을 때여서, 회사에 가서 자기 그림을 그리다가 (프로젝트와) 핀트가 맞으면 그 그림이 쓰이고 그러던 시절이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요구 조건을 맞추며 그리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까’를 생각하며 그리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김형태 대표의 <창세기전 3 파트 1> 원화

 

김 대표는 <창세기전>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최연규 당시 디렉터의 구체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인공 살라딘을 그릴 때는 100번에 가까이 리테이크를 했다. 물론 힘들었지만, 요구에 도달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결국 도달했다. 캐릭터의 이미지, 의상, 심지어 자세에 이르는 디테일한 요구를 들으며 그대로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러자 정말 상황이 변했다. <창세기전 파트 2>에서 그는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는 자유를 획득했다.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획득한 덕분이다. 다른 사람의 요청을 만족했더니 외려 내 것을 펼쳐 보일 기회가 생긴 것이다. <파트 1>과는 다른 강렬한 형광과 대비를 활용해 SF 테이스트의 스타일을 마음껏 뽑아낼 수 있었다.

 

이때 김 대표는 가장 많은 성장을 이룩했다. 그는 “그림쟁이로 출발해 이때 조금은 게임 아티스트 겸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당시 발매한 화보가 여러분께 많은 사랑을 받은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창세기전 2 파트 1>

 

 

# 2D에서 3D로

 

다음으로 제작한 <마그나카르타>는 김형태 대표에게 복잡한 심경을 느끼게 하는 타이틀이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성공적이었지만 게임 개발자로서는 실패에 가까운 작품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힘든 프로젝트이긴 했다. 캐주얼 게임도 아닌 RPG 계열 타이틀을 1년에 하나씩 내놓던 스케줄이니 그렇다. 다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빠른 발전이 가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부터는 ‘자유’를 넘어서 ‘자기 색깔’을 찾기 시작했다. 프로의 자세와 아이덴티티를 아는 계기도 됐다.

 

리얼타임 3D에 관심을 품었던 것도 이때부터다. 언리얼2 엔진으로 콘솔 개발을 처음 경험했고 리얼타임 캐릭터 CG를 만들었다. <창세기전>까지만 해도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게임에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은 좁았다. <마그나카르타>를 겪으며 리얼타임 CG가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하게 됐다.

 

<마그나카르타>

 

이 시기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발전은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3D를 고려하면서 캐릭터를 만들게 된 시기다. 자신의 2D 캐릭터가 3D로 구현될 수 있을지, 혹은 그 매력이 다 표현될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며 3D 표현상에 문제가 없도록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2005년 언리얼 엔진3의 등장은 김 대표에게도 획기적이었다. 폴리곤으로 구현한 ‘얄팍한’ 표현에서 벗어나 노말 매핑을 이용해 하이폴리곤 이미지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현재까지 함께 하고 있는 디자인 스텝들과 함께 당시에 언리얼 엔진 3을 이용해 샘플 캐릭터 영상을 만들어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김형태 대표의 언리얼 3 엔진 3D 습작

 

# 엔씨소프트, <블레이드 앤 소울>, 그리고 '게임 개발하는 사람’

 

김형태 대표는 이후 2005년 엔씨소프트에 입사해 ‘황금기’를 맞이했다고 회상한다. <블레이드 앤 소울>은 그가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타이틀이다. 이때 그는 자신이 그동안 축적해온 노하우, 즉, 일러스트레이션, 렌더드 CG 제작, 클라이언트와의 협업, 리얼타임 3D의 이해와 제작 등 지식을 활용해 ‘아트 디렉터’로 일했다.

 

그런데 사실 김형태 대표는 이때 첫 번째 ‘뻥’을 쳤다. 무슨 말일까? 김 대표는  “엔씨에 아트 디렉팅을 할 줄 안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 해본 적 없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할 줄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뻥’을 수습하는 기간이 곧 <블레이드 앤 소울>의 개발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아트 디렉터는 단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트가 게임의 기획과 어우러지도록 해야 하며, 어떤 이미지를 유저에 전달할지,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수립할지, 심지어는 게임의 프레임 레이트와 전투 시의 기믹 및 레인지까지도 기획해야 하는, 프로그래밍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직함이었다. 김 대표 역시 완벽하게 소화할 수 없었지만, 그만큼 열심히 임했다.

 

<블레이드 앤 소울>

 

 

당시에 아트 디렉터로서 그는 한 가지 일관된 목표를 추구했는데, 바로 3D 캐릭터가 자신의 일러스트를 닮은 형태로 게임 내에 구현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라이팅에 특히 신경을 썼고, 현재 <프로젝트: 이브>를 함께하는 스텝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일러스트에 표현된 빛 표현을 게임에 구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별도의 광원을 사용하는 것이다. 기본 라이팅이 아니라, 각도나 구도에 따라 달라지는 라이팅을 도입해 일러스트에서 표현된 역광 등의 광원 표현을 3D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트 디렉터는 그에게도 ‘역량보다 거대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도전인 만큼 가장 극적인 성장을 했다. 비로소 ‘나는 게임 개발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된 첫 도전이었다.

 

<블레이드 앤 소울>

 

 

# 다시 2D가 하고 싶어 만든 게임사

 

2015년 지금의 시프트업을 창업했다. 창업에 대한 ‘거창하고 구체적인 정보’가 있었다면 아마 회사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창업 계기는 단순했다. 3D 게임을 7~8년 만들고 라이브 서비스를 했더니, 3D 게임은 한동안 쳐다보기 싫었다. 자신의 그림이 쓰이는 2D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본업’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간 고향에는 여러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데스티니 차일드>를 처음 만들 때,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게임 개발자로서 발전을 이뤘다. ‘심볼릭’(상징적)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법을 배웠다.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더라도 이 캐릭터가 유저들에게 얼마나 인식, 인지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수많은 디자인을 폐기해가며 캐릭터를 완성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본질에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은 덤이었다.

 

UX와 UI 경험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모바일은 ‘유저의 손가락에 가장 가까운 게임 시스템’이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겼을 때, 눌렀을 때, 뗐을 때의 순간이 모두 UX다. 버튼이 있을 법한 위치에 있는지, 누르는 행동이 즐거운지, 버튼은 ‘누름직’한지, 게임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있는지 등등을 고민해나갔다. 이전까지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접점이 없었던 부분이었다.



전투화면 구성에서도 다양한 레이아웃을 시도하면서 유저 경험을 이해하고자 했다. 유저가 게임에 접근해 플레이하는 플로우를 배워나갔다. 당시 UX관련 서적이나 연구도 활발하던 시기다. 스큐어모피즘(질감을 실감 나게 표현하는 것)과 플랫 디자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놓이는 등 고민이 있었다. 결국 둘 중에서는 자신의 캐릭터에 어울리는 스큐어모피즘을 선택했다.

 

도감이나 캐릭터 목록 같은 시스템에서도 고민은 이어졌다. 아이콘만 나열되어 있으면 재미도 없고 정렬(sorting)도 어려우니 아이튠즈를 참고해 책갈피 형으로 만들어봤다. 적은 면적에 많은 수의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하나하나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었고, 스크롤링의 재미까지 줄 수 있었다.

 

이렇게 개발자로서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점차 자신감이 생기고, 게임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워나갔다. <데스티니 차일드>는 디렉터가 총 세 번 바뀌었는데, 마지막에는 결국 김형태 대표가 직접 맡았다. 따라서 반쪽짜리 게임 디렉터 경험이었지만, 기획적 측면에서 어떤 접근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첫 도전인 만큼 부족한 점이 많았다.

 

<데스티니 차일드>의 폐기된 캐릭터 디자인들

 

 

그 ‘부족함’을 보완해 만들고 있는 것이 <니케:승리의 여신>이다. 다른 하나는 <프로젝트: 이브>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기본기, 리얼타임 3D에 도전했던 경험, 렌더링 체계의 이해, 게임의 본질적 재미에 관해 배워 익힌 것들을 모두 녹여내 도전하고 있는 작품이다.

 

김형태 대표는 그간 국내에 레퍼런스 삼을 사람이 없는 일을 자주 해왔다. 그래서 홀로 <프로젝트 이브> 개발에서도 ‘삽질’을 열심히 해야만 했다. 다행히 그 삽질은 꽤 잘 먹히고 있다. <프로젝트 이브>는 재미란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재밌다고 말하는지에 답하는 게임이 될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리고 개발자로서 쌓아온 모든 것을 넣어 개발하는 중이다.

 

그런데, 사실 <프로젝트: 이브>는 그의 두 번째 ‘뻥’이기도 하다. 이번엔 '게임 디렉팅'을 할 줄 안다고 대외적으로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래서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뻥을 수습하는 중이다. 김형태 대표는 “반드시 좋은 게임을 만들어 뻥을 현실로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다짐을 전했다.

 


 

 

# 질의응답

 

Q.. 팬으로서, 항상 궁금했던 사실이 하나 있다. <창세기전 3 파트 1>을 플레이한 뒤 <파트 2>에서 모든 캐릭터 디자인이 다 바뀐 이유에 매우 궁금증을 느꼈다. 강연에서 얘기한 대로 이때부터 본인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혹은 다른 의도가 있었나?

 

A. 김형태 대표: 디렉터셨던 최연규 실장님의 의도가 당시에 가장 중요했다. 지금에 와서 그 의도를 다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 제가 잘하는 분야에 맞춰 어레인지하고 싶다는 의도가 있으셨던 것 같다. <창세기전 3>이 끝나고 나서 보여드린 개인적 그림을 보고는 그 스타일에 맞춰 방향성을 잡아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일러스트나 컨셉아트를 할 때, 시트로 정해진 컨셉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제안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 시킨 일을 왜 하지’라고 생각하면 시간 낭비나 손해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새 그림을 그리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림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어떻게 트렌드를 충족해 인기를 끌 수 있을지를 전달하며 주도적, 능동적으로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유도했다.

 

‘비주얼 주도’(visual-driven)의 게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 인상에 남는 캐릭터를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컨셉아트에 도전하는 여러분들에게 희망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능동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없던 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

 

전편과 다른 SF적 테이스트가 가미됐던 <창세기전 3 파트 2>

 

Q. <블레이드 앤 소울> 플레이 당시 2D 아트와 3D 모델의 괴리감이 적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보통은 원화를 3D로 바꾸면서 기술적 한계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괴리감을 줄인 방법을 설명해줄 수 있나? 아티스트 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도 발생했을 텐데,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A.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오브젝트 자체의 스타일이고 다른 하나는 라이팅이다. 오브젝트의 경우 모델링 스타일의 규격을 만들었다. 천 오브젝트의 마감, 머리 스타일의 구현방식, 물리표현의 범주 등을 모두 규약으로 정해 도큐멘테이션을 했다. 이 덕분에 새로 입사한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델링이 원화와 비슷하더라도, 막상 엔진에 넣으면 돔 라이트나 디렉셔널 라이트가 비치면서 때로 못생겨질 때도 있다. 이때 디렉셔널 라이팅 외에 캐릭터용 광원을 따로 준비해 일러스트에서의 광원과 비슷한 라이팅이 비치게 했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디렉셔널 라이트 강도를 바꾸거나, 일러스트에서의 역광을 재현하거나, 셰이딩에 페인팅 느낌을 나도록 해주는 라이팅 툴을 만들었는데, 이 덕분에 제가 없이 다른 사람이 제작한 모델링도 엔진에서 같은 퀄리티가 나올 수 있었다. 다른 기술적 비결도 많았는데, 다음 기회에 말씀 드리도록 하겠다.

 


 

Q.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게임사 대표로서, 게임 업계 지망생을 위해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나? 

 

A. 강연 전반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를 하자면 ‘내 시간을 소중히’ 쓰는 것이 좋다. 우리는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월급 받은 만큼, 보상만큼 일하고 그보다 더하면 손해라는 생각을 하면,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 내 인생이다.

 

나는 한 해를 마칠 때, 1년을 돌아보며 ‘이 한 해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해였다’고 생각하기 위해 최선을 당한다. 기업 대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다른 기업에 있을 때부터 마찬가지로 생각해왔다.

 

(일은) 스스로 납득이 될 때까지 해야 한다. 인생을 ‘능동적으로 소중히’ 여기자. 그러면 반드시 발전하고 발전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나 역시 회사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몰랐다. 매 순간을 소중히 보냈기 때문에 여기에 이를 수 있었다.

 

 

 

Q. <데스티니 차일드>와 <니케:승리의 여신> 일러스트에 관한 질문이다. 매력적 캐릭터로 인기가 많지만, 일부 비판도 있다. 이를테면 인체 과장이나 섹스어필 등이 비판받는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할 텐데, 대중적 위치를 지향해야 하는 게임이라는 미디어에 있어, 상업적 요소, 즉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일러스트레이터 겸 게임사 대표로서의 철학이 궁금하다.

 

A. 내가 그리는 것은 상업적 일러스트가 맞다. 모든 일러스트가 똑같다면 세상이 참 재미가 없을 것이다. 나는 섹슈얼한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세상에는 안 그런 일러스트레이터도 있고, 나보다 더 그러한 일러스트레이터도 많이 있다. 저는 그런 일러스트레이터 중 하나일 뿐이다.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표현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고, 싫은 사람에게, 혹은 보여줘선 안 되는 무언가를 함부로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소비자가) 선택을 하는 것이고, 선택한 사람이 마음이 안 든다면 선택을 취소하면 된다.

 

모든 것에 있어 평등하게, 완벽하게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면 문화 콘텐츠는 얼마나 재미없어질까? 나는 팔리기 위해서 그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섹스어필 표현을 좋아한다. 그걸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자기 작품에 표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는 그걸 표현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작품만을 만든다면 게임은 물론 영화에서도 예를 들어 범죄 표현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모두가 열심히 살고 착하게만 사는 작품이 나오겠지.

 

그러면 북한에서 만든 작품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문화가 정말 재미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다양성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너무 민감하게 문화 전체에서 표현의 자유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Q. 저는 아트가 주도하는 개발을 할 때 프로세스 고민을 항상 많이 하게 됐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셨고 각기 다른 프로세스마다 노하우와 경험을 가지고 계실 텐데 공유 부탁드린다.

 

A. 개발자로서 정말 중요한 것은 파이프라인을 설계하는 것이다. 프로세스에 있어 개발팀마다 사정은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저의 경우 <블레이드 앤 소울> 당시에는 도큐멘테이션을 확실히 해 이를 통한 외주 의뢰나 신입 교육이 가능한 형태로 파이프라인을 설계하고자 했다.

 

여기에서 폴리곤 수치 규약이라거나 맵 사이즈 미니멈 레벨이 정해져 있었다. 만약 문서로 적혀 있지 않다고 해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비대면으로들 많이 일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대면 작업 효율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작업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콘센서스가 자주 필요하다.

 

탄탄한 파이프라인 수립과 더불어 정보 공유가 정말 중요하다. 문제점을 인식했을 때 이를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나도 완벽하지 않다. 무엇보다 침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잘 안 되는 부분을 발견했을 때, 긁어 부스럼이 되거나 상대에게 ‘찍힐까 봐’ 말을 안 했다가는 문제가 영원한 문제로 남는다.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며, 이는 저에게도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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