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에서 언리얼 엔진 5를 사용해서 이 정도의 그래픽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발할라 서바이벌> 개발자 인터뷰 당시 고영준 PD가 했던 말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확실히 <발할라 서바이벌>의 비주얼은 꽤 준수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먹기 좋은 떡은 아니었다. 조금 독하게 말하자면 다른 게임들 중엔 떡이 되다 만 무언가에 그치는 경우도 적잖게 있는데, <발할라 서바이벌>은 떡의 형체는 유지하고 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니 먹기 좋은 떡이 꼭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기대가 있다.
"불편하신 부분이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 전달해주시면 빠르게 반영하고 수정해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다."
같은 인터뷰 당시 박용혁 팀장이 했던 말이다. 라이온하트 스튜디오 또한 공식 라운지 등에 올라오는 원성이 가득한 민심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난이도 관련 지적이 오픈 첫날부터 끊임 없이 쏟아졌고, 개발진은 두 차례에 걸쳐 스테이지 난도를 하향하는 패치를 진행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유저들이 쓴소리일지언정 게임에 필요한 피드백을 적극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할라 서바이벌>을 직접 플레이하며 기자가 느낀 바와 함께, 장르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심도 있게 해보고자 한다. 현재는 '난이도'에 대한 유저들의 목소리가 가장 많지만, 게임의 구조 자체가 가진 아쉬움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이온하트 스튜디오가 충분한 각오가 되어 있다면, 단추를 처음부터 다시 채울 마음으로 쇄신을 보여줬으면 한다.
디테일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발할라 서바이벌>이 대략 어떤 게임인지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딘: 발할라 라이징>으로 MMORPG 판에 큰 족적을 남긴 라이온하트 스튜디오는, <발할라 서바이벌>을 포함해 각기 다른 장르의 신작 4종을 '언리얼 엔진 5'를 활용해 만들고 있다. 출시 전부터 언급되던 핵심 키워드는 역시 '비주얼'과 '장르에 대한 도전'이었다.
라이온하트 스튜디오 측에서는 '핵앤슬래시'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파밍과 육성, 방치형이 더해진 뱀서류 세로형 모바일게임'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뱀파이어 서바이버즈> 자체도 그랬고, 뱀서류라고 불리던 게임들은 인디, 중소 업체에서 제작한 경우가 많아, 확실히 <발할라 서바이벌> 수준의 비주얼을 가진 게임은 전무하긴 했다.
스킬 이펙트도 화려하고, 캐릭터 모델링도 전통적인 의미에서 나쁘지 않은 편이다. 몬스터 디자인도 북유럽 신화 속 괴물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진지한 톤 앤 매너를 유지하고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플레이에 잘 녹아들지 못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일단, 로그라이크 장르답게 게임 한 판의 진행 과정에서 여러 스킬을 동시에 활용하는데, 화려한 스킬 이펙트가 시야를 가려서 몰려오는 적의 위치와 공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몬스터의 수가 적을 땐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으나, 몬스터가 늘어나고 원거리 공격을 활용하는 적들이 등장하면서 시야를 반쯤 가린 채 게임을 진행하는 건 굉장히 불편한 경험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보스전에서는 이 상황이 더욱 도드라진다. 보스의 공격은 지면의 장판 및 사전 모션, 반복되는 타이밍 등으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정지된 상태에서 보고 바로 피하기엔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이동속도가 이에 맞게 따라와 주질 않는다. 이에 대한 플레이어의 대응 방법은 크게 3가지다.
▲ 로그라이크 스킬 선지로 이동속도를 업그레이드한다.
▲ 패턴 전조 이전에 미리 계속 이동하는 상태를 유지한다.(이러면 상대적으로 쉽게 장판 공격을 피할 수 있다)
▲ 스테이지 진입 이전에 좋은 장비를 세팅하고, 캐릭터와 무기 레벨을 높여, 맞아도 덜 아프게, 덜 맞고 더 빠른 시간 안에 클리어할 수 있게 성장시킨다.
스킬을 강화하는 데 사용하기에도 아까운 선택지를, 패턴 파훼 하나 때문에 이동속도를 올리는 데 사용하는 건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공격 스킬 중 2/3 정도는 꽤 넓은 범위를 커버해주지만, 1/3 정도는 '캐릭터가 바라보는 방향'을 향해 발사하는 지향성 공격이기 때문에, 적 패턴을 피한다고 계속 이동만 반복하다간 딜을 제대로 넣을 수 없다. 패턴 사이에 보스를 바라보고 있을 정도의 여유로운 타이밍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쉽고 합리적인 방법은 장비 세팅, 무기, 캐릭터 성장을 통해, '더 단단한 몸으로 더 세게 때리는' 수치적이고 수직적인 성장에 의존하는 게 된다. 전통적인 RPG 문법으로 귀결된 셈이다. 그런데, 이 성장 과정이 재밌느냐-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잠시, 이 장르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22년에 출시된 <뱀파이어 서바이버즈>가 인지도가 더 있는 탓에 뱀서류라는 이름이 고착화됐지만, 사실 2019년에 출시된 1인 개발 국산 인디게임 <매직 서바이벌>이 그 이전에 이미 있었다.
<매직 서바이벌>은 <발할라 서바이벌>과 동일한 세로형 모바일게임이다. <매직 서바이벌>의 캐릭터 표현 자체는 '졸라맨'에서 조금 진화한 정도에 그치는 매우 간결한 그래픽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직 서바이벌>은 간결한 화면 안에서도 피격, 타격에 대한 식별, 스킬의 화려함에 대한 표현,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적의 다양성 등을 모두 잘 표현했던 수작이었다.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는 어떠한가. 스팀 리뷰 23만 개 중 98%가 긍정적인 '압긍' 평가를 받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속도감부터 시원함까지 모두 챙기는 데 성공했다. <매직 서바이벌>과 <뱀서>가 화려해서 사랑받았을까.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반문이 나올 수 있다. 화려한 뱀서류는 빈 자리가 아니겠느냐고.
<매직 서바이벌>과 <뱀서>의 화면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화면 전체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이는 그래픽을 화려하게 만들지 못하는 한계 때문이 아니라, 의도된 설계다. 그래야 화면 안에 더 많은 적을 담을 수 있고, 작은 캐릭터가 수많은 적을 한 번에 공격하는 시원한 순간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뱀서류' 게임에서 유일하게 남긴 조작은 '이동'이다. 어느 방향에서 적이 어느 정도 몰려오는지, 어느 바닥에 경험치와 아이템이 떨어져 있는지 한 눈에 들어와야, 그 '이동'의 선택이 원활해진다. 그러나 <발할라 서바이벌>은 어떠한가. 화면을 채운 방식만 다른 게 아니라, 맵 또한 가로 또는 세로로 좁게 설계된 때가 많다. 결국 좁은 틈을 비집는 과정에서, 소위 '몸빵'을 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수치적 성장을 다시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수치적 성장을 위한 반복적인 도전, 즉 전투가 재밌어야 한다. 그런데, 이 부분 또한 미묘하다. 로그라이크에서 가장 핵심인 '스킬'에 대한 자유도가 매우 아쉬웠기 때문이다.
<발할라 서바이벌>에도 스킬이 여럿 존재하긴 한다. 가격은 높지만 인게임 재화로 스킬을 순차적으로 해금할 수 있고, 총 8개의 스킬을 등록해두면 전투 진행 중 로그라이크 선지에 등록된 스킬 중 3가지 선택지가 뜨는 방식이다.(물론, 선택지에는 다른 패시브 스킬도 함께 제시된다) 전투 중 액티브 스킬을 장착할 수 있는 슬롯은 총 5칸이다. 다시 말해, 8개 스킬 중 5개 스킬을 골라 쓰게 되는 셈이다.
8개 중 5개를 고르는 구조는, 의도한 스킬셋을 만나기엔 좋은 방식일 수 있겠으나, 전투 횟수가 조금만 늘어도 금세 같은 양상이 반복되기 쉬운 구성이다. 그렇다면 다른 로그라이크 게임에서 흔히 그렇듯 스킬의 시너지나 합성에서 나오는 다양성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발할라 서바이벌>은 스킬의 '조합'을 통해 스킬을 '초월'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A라는 스킬을 5레벨까지 키우고, 초월 조합에 맞는 다른 스킬을 습득해두는 조건을 만족한 상태라면, A' 스킬로 초월하게 만든다. 왜 기자가 굳이 A와 A'라고 표현했을까. 초월 전후의 차이가 드라마틱하진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게임에선 너무나도 친절하게 모든 '초월 조합식'을 다 보여주고 시작한다. 조합식을 보면 알 수 있듯, 하나의 스킬엔 하나의 초월(조합)만 존재한다. 구조 자체가 이러하니 <발할라 서바이벌>에서 플레이어는 '조합'의 다양성이 아니라, '조합'의 성공 여부에만 집중하게 된다.
<매직 서바이벌>이나 <뱀서>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다음 도전을 이어가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동력 중 하나는 A스킬과 B스킬이 조합됐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C의 결과물이 튀어 나와줬기 때문이다. 이미 하나의 스킬셋으로 목표에 도달했어도, 숨겨진 조합식을 찾아내기 위해 굳이 다른 스킬셋으로 또 도전하지 않았던가.
'예측 불가능함'이 재미가 된다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공식은 뱀서류 같은 로그라이크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크래프팅 게임에서도 나뭇가지와 철을 조합했을 때, 개수와 순서 등에 따라 어떤 때는 도끼가 어떤 때는 칼이나 총이 나오는 등 변주를 주지 않는가. 나뭇가지 더하기 나뭇가지가 그냥 나뭇가지 2개로 표현될 거라면 '조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이유도 없다.
수치적, 수직적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기자는 이 자체로는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바일게임 씬에서 셀 수 없이 많이 나왔던 방치형 RPG들을 기억해 보시라. '성장감' 하나만 잘 내세워도 많은 유저들에게 충분히 사랑 받을 수 있었다.
<발할라 서바이벌>에도 방치 보상이 존재한다. 방치형 RPG의 문법을 일부 따라간 것이다. 그러나 레벨 디자인이 적절치 못했다.
흔히 모바일게임의 유저 이탈을 논할 때, D7(7일 차)까지의 플레이 동향을 분석해 지표를 만들곤 한다. 왜 유저들이 "게임을 진행할 수 있어야 말이라도 더 할 텐데", "내부 플레이 테스트 충분히 거치고 출시한 거 맞죠?"라는 반응을 보였을까.
24일 패치 이전 기준, 기자의 플레이 경험은 이러했다. 출시 첫날, 1-10 스테이지의 보스에서 조작을 잘 하는 것만으론 클리어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겪었다. 이전 스테이지에 비해 보스가 너무 강력했던 것이다. 허무하게도, 다음 날 방치 보상으로 얻은 재화와 우편함을 통해 받은 보상 등으로 무기와 캐릭터 성장을 하니 쉽게 클리어가 됐다. 그러나 이런 계단식의 벽은 몇 개의 스테이지만 지나도 다시 반복됐다. 실력보다 성장이 강조됐다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게임에서 파밍하는 장비, 유료 재화인 다이아를 소모해 확률적으로 뽑는 무기와 보석은, 여타 방치형 RPG와 달리 '빠른 성장감'을 주기엔 너무 적게 주어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낮은 등급의 장비는 계속해서 주어지고, 이를 분해해 누적 성장을 할 수는 있는데, 이 누적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고, 필요한 높은 등급의 장비는 매우 낮은 확률로 등장한다.)
여기에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수많은 과금 패스 상품, 패키지 상품, 심지어 릴레이 과금 상품(앞 단계의 상품을 구매해야 다음 단계의 보상을 얻고, 또 다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방식)까지 있으니, 유저들의 원성이 극에 달한 것이다. 이 정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뱀서류 게임이 이미 시중에 많이 있지 않았던가.
▲ 확실하지만 빠른 성장감 ▲ 분해한 재료도 알뜰하게 누적되는 감각을 제대로 줄 장비 분해 시스템 ▲ 도전할 때마다 다른 상황과 스킬을 만난다는 감각을 제대로 줄 다양성 ▲ 좋은 '운'으로 더 좋은 상황, 장비, 스킬을 만났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어줄 감각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문에서 인용한 것처럼 <발할라 서바이벌> 개발진은 피드백 수용을 이미 약속했다. 그리고 실제로 빠른 패치도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평가는 언제든지 다시 뒤집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급한 문제인 레벨 디자인부터 차츰 차츰 하나씩 개선해나가면 된다. 기자가 제목에서부터 '단추'에 빗대어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옷을 다시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토대에서 매무새만 다듬어도 좋은 게임으로 거듭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첫 단추부터 다시 채우는 작업은 거울을 마주 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만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