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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세이브 더 게임, 한국 게임이 지나온 '낭만의 시대'를 돌아보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박윤진 감독 신작 다큐멘터리... 넥슨재단 제공

김재석(우티) 2024-10-07 18:27:35

요즘 '낭만의 시대'라는 말이 부쩍 자주 쓰인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nn년대'와 더불어 인터넷에서 유행 중인 '밈'이다. 오늘날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을 보여주면서 '그땐 그랬지' 하거나 살았던 적 없는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다. 난투극을 벌이는 청소년들, 주소와 이름이 전부 공개된 범죄자들, TV에 담배를 물고 나오는 할머니, 올림픽대로를 무단횡단하거나 홍수에 뗏목을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을 보며 우리는 '낭만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낭만의 시대'의 한 장면. 짤방의 이름은 '천호동 비틀즈'다. (출처: MBC)


하지만 정작 '그 시절로 돌아가겠느냐'라고 물으면, 좋다고 할 사람은 생각만큼 많지 않을 것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처럼 미래를 예측하고, 뜰 것 같은 주식만 골라 쓸어 담으면서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는 여기서 말하는 '낭만'이라기 보다는 판타지에(장르문학이 아니라 '공상'이라는 의미에서) 가깝다. 우리가 말하는 '낭만의 시대' 속 장면들은 대체로 멀리서 바라보아야 아름다운 것들이다.


박윤진 감독에게도 낭만이 있다. 감독의 전작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1999년에 출시된 MMORPG <일랜시아>를 아직껏 플레이하는 유저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박 감독은 자신의 카메라에 아직도 <일랜시아>의 세계를 떠날 수 없는 자신과 자신의 길드원들을 소개한다. 이어 버그투성이인 게임을 지키기 위해 판교 넥슨 사옥을 찾아가고, 게임의 기획자 '아레스'를 만나는 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감독은 절대다수의 게이머가 모르거나 추억 속에만 간직했던 게임에 다시 불을 밝혔다.


내언니전지현 캐릭터의 주인 박윤진 감독은 게임 안에서 "일랜시아 왜 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다닌다. (출처: 호우주의보)


그의 신작 <SAVE THE GAME>(이하 세이브 더 게임) 또한 낭만으로 가득하다. 


전작에서 감독은 자신의 길드원을 취재원으로 삼았다면, 이번에는 ​넥슨재단의 지원을 받아 1세대 게임업계인들에 포커스를 비춘다. 세운상가 키즈들로부터 시작해 <신검의 전설>의 탄생을 소개하면서, 80년대까지 이어지던 일본 문화의 (공식적인) 차단으로 콘솔이 아닌 컴퓨터를 통해 디지털게임에 처음 접근했던 시대 배경이 설명된다.


이어서 다큐멘터리는 프로그래머의 소개대로 "한국 게임 산업의 산증인인 그들의 소개"하고 "자막 내용에 변화를 주며 역사적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그 시절의 사료였던 잡지의 기사, 광고, 그리고 인게임 화면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그리고 패키지게임의 연표와 온라인게임의 연표가 나란히 전개된다.


알려진 사실과 같이, 패키지게임의 쇠락 뒤에는 온라인게임이 떠올랐다. 패키지게임의 시대는 불법복제, 번들 CD 배포, 온라인게임의 태동으로 막을 내리고, 그 사이를 채워 넣은 카이스트와 서울대의 컴퓨터 천재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는 <바람의나라>와 <리니지>, 그리고 IMF와 PC방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를 당시 업계인들의 입을 빌려 다시 보여준다.


IMF 이후, 정부의 초고속 통신망 사업과 PC방의 태동으로 게임 산업의 전환기가 도래했다. (출처: 사이드미러)


<세이브 더 게임>의 강점은 한국 게임의 역사를 단순 나열하거나 '폭풍우로부터 서버를 지키려 밤을 새웠다' 등의 무용담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화는 곳곳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일례로 영화는 패키지게임의 쇠락 이후 독창적 시도를 거듭하던 개발자들이 온라인게임 개발로 넘어와 새로운 자양분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그렇게 <화이트데이>의 '파파랑' 이은석은 넥슨에서 '나크' 김동건과 함께 <마비노기>를 만들었다.


영화 마지막에 감독은 1세대 개발자들의 근황을 자막을 통해 소개하면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바로 "<울티마>를 디스켓 100장으로 플레이한다면(설치한다면) 할 것인가?"라고. 정상원 전 넥슨 개발총괄을 비롯한 그 시절의 주역들들은 "디스켓을 넣고 기다리는 시간이 "내가 원하는 소망의 사이즈랑 비교하는 것 같다"며 '낭만의 시대'를 추억한다. 그러면서도 오늘날에 들어서까지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듯 대답한다.


낭만은 멀리서 바라볼 때 아름답다. 많은 이들이 디지털 다운로드(DL) 이전 패키지게임의 시대를 추억하면서, DLC 장사 없는 순결한 시절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손노리와 소프트맥스 출신 개발자들에게 당대 횡행했던 불법 다운로드는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큐멘터리가 훈훈한 옛날 이야기만 소개하면서 끝났다면, 주목하지 않았을 대목이다.


김지호, 장인경, 송재경, 정상원, 김동건, 이은석 등 온라인게임의 첫걸음을 내딛던 이들이 여럿 등장한다 (출처: 사이드미러)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공개된 <세이브 더 게임>은 하나의 거대한 예고편이라고 볼 수 있다.​ 넥슨재단과 제작사 사이드미러는 온라인게임의 탄생과 성장을 다룬 2편과, 한국 온라인게임 유저들의 문화를 다룬 3편을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다. 온라인게임에서 유저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이 넥슨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곤경에 처한 것 또한 넥슨인 만큼 30살 넥슨이 3편을 어떻게 다룰지 기대된다.


최근 대세는 모바일 MMORPG에서 방치형게임과 스탠드얼론 게임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그 모든 '낭만의 시대'가 그러하듯이,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의 교훈은 분명 남아있다. 그렇다면 1990년대 후반의 전환기를 겪었던 사람들의 증언은 다음 세대 창작자들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프와 연표 등의 사용은 재미를 더한다 (출처: 사이드미러)


패스맨은 이원술 손노리 대표의 오너캐릭터다. 당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나 <포가튼 사가>에서 패스맨이 제시하는 코드를 틀리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었다. (출처: 사이드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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