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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이지만 사신입니다", 강렬한 스핀오프 '스테퍼 리본'

추리게임 '스테퍼 케이스' 후속작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준(음주도치) 2024-04-30 09:17:23

여러분의 2023년 최고의 게임은 어떤 작품이었는가? <젤다: 왕눈>, <발더스 3> 등 수많은 게임들이 거론되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던 게임은 추리게임 <스테퍼 케이스>였다. 초능력이 있는 사회라는 설정 속에서도 촘촘했던 논리, 매력적인 캐릭터들,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진 국산 인디 게임이다.


2024년 4월 26일, 스핀오프 후속작 <스테퍼 리본>이 드디어 출시됐다. 본편 이후의 시간대를 다루고 있으며, 이번엔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활' 능력을 가진 '중위'는 자신의 초능력을 활용해 전쟁터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이제 수명이 다해 늙어 죽을 때가 왔으나,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15분마다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루프에 빠졌다. 플레이어는 '탐정'이 되어 중위의 죽음을 도와야 한다.


플레이 소감을 먼저 밝히자면, 전작에 전혀 뒤지지 않는 재미를 보여줬으며, 상호작용 측면에서는 자유도가 높아져 깨알 같은 재미 요소가 늘어난 게 특징이었다. 전작을 알면 더 흥미를 가질 요소도 존재하지만, <스테퍼 리본>의 자체적 완결성 또한 있어, 전작을 모르고 플레이해도 충분히 몰입 가능할 수 있다.


초기엔 <스테퍼 케이스>의 DLC로 기획된 게임이었기 때문에, 2시간 내외의 짧은 플레이타임을 가지고 있으나, 그 시간 안에 진하게 재미가 농축되어 있었다. 전작처럼 반전 요소도 많았고, 캐릭터들의 성격 또한 확실하게 부각됐으며, 몰입감을 높여준 음악, 위트 안에 녹아든 '죽음'에 대한 통찰 등 깊이 있는 주제 의식 또한 돋보였다.




게임명: <스테퍼 리본>
장르: 추리, 어드벤처, 비주얼노벨
출시일 및 플랫폼: 2024년 4월 26일
개발사/배급사: 팀 테트라포드
가격: 3,400원
한국어 지원:


# "저는 사신입니다"

진흙 속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군모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또 되살아난 것이다. '부활' 능력을 가진 제이슨 러들럼 중위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인물이었다. 그와 함께 죽어간 전우들의 숫자 이상으로, 수없이 많은 적을 죽였다. 피가 튀는 전쟁터 속에서 죽고 살기를 반복해왔던 그는 이제 늙어 죽을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죽지 못했다. '부활' 능력은 이런 순간에도 그를 되살린 것이다.


15분의 루프에 빠져 끝없이 되살아나는 그의 앞에 한 여성 '탐정'이 나타났다. 중위의 아들이 고용한 인물로, 고통스러운 죽음의 굴레를 끝내기 위해 왔다. 무려 3주 동안이나 지속된 15분의 짧은 죽음들. 그러나 중위의 '부활'에는 매번 '기억의 소실'이 뒤따랐기에, 중위는 루프에 빠지기 전의 기억에 머물러 있다. 그는 15분 뒤 다시 되살아날 때마다 묻는다. "그대는 누구인가? 사신인 건가?"


이곳에 당신의 죽음을 돕기 위해 고용된 탐정이라는 친절한 답변은, 몇 차례의 반복된 설명 앞에 "사신입니다"라는 간결한 소개로 바뀌고 만다. 그게 중위에게도 탐정에게도 가장 효율적인 문답이었던 것이다. 


플레이어는 중위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고, 중위가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 탐정이라니. 어째선지 옆 동네 <명탐정 코난>이 떠오른다.


미국에서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 적었으나, (전작의 배경이기도 한) 영국에서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적잖게 있었다. 물리 법칙을 초월한 이 능력들은 '스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위험 등급에 따라 분류되고 있다. 모든 능력은 각각 명확한 규칙을 가진 현상들로, 탐정은 중위의 부활 능력을 명확히 파악해 그를 루프에서 벗어나게 만들려 한다. 


탐정은 중위와 중위의 아들 그리고 간호인에게 정보를 수집하며, '부활' 능력의 규칙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낸다. 이를 위해 탐정이 요청한 물품은 크게 3가지였다. 잘 나오는 펜이나 연필, 그리고 칼과 총이었다. 


중위는 15분의 루프 안에서 계속 기억을 잃으며 되살아나고 있다.

과격한 방법을 쓰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탐정. 그녀가 요청한 물품은 칼과 총, 펜이었다.

# 재생인가 시간 회귀인가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후, 간호인에게 '연필'만 건내 받은 탐정. 그녀는 본격적인 추리를 시작하며 부활에도 '종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재생 계열의 부활과 시간 계열의 부활이 있다는 것이다. 플라나리아처럼 몸이 재생되는 재생 계열의 부활은 죽기 전과 부활한 후에 육체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반면, 시간 계열은 죽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 것 같은 능력이다. 


탐정은 중위의 얼굴에 연필로 X(엑스)를 그린다. 15분이 지나 중위가 다시 부활하자, 중위의 얼굴에 있던 낙서는 사라진다. 세포 분열의 복구라면 상처만 재생되겠지만, 지정된 시간으로 육체가 되돌아갔기 때문에 낙서도 함께 사라졌다는 추론을 한다.


재생이 아닌 시간 회귀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제 본격적인 추리의 시작이다.

# 중위의 삶을 되짚어 보며...

이제 전작처럼 현장에서 인물들의 증언을 듣고, 증거를 모아 이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추리가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제이슨 러들럼 중위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앨범을 보며, 중위의 가족사에 대해 묻는 탐정. 중위에겐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부인은 지병으로 오래 전에 사망한 상황. 딸은 중위를 잘 따랐고, 중위가 아픈 동안에도 병간호를 해왔던 효녀다. 하지만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중위가 평생을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고 있는 동안, 아들과의 사이는 멀어졌던 것이다. 중위는 아들에게 미안함과 원망의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는 15분마다 부활하는 중위의 옆에서 추리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한 번의 행동은 5분을 소모하며, 15분이 지나 중위가 다시 되살아나면, 중위는 신체가 회복되는 동시에 기억을 잃는다.


탐정은 그림 뒤에 숨겨진 금고의 존재를 눈치 채고, 중위에게 금고의 비밀번호를 묻는다. 사신이라는 소개는 쉽게 납득했던 중위지만, 금고의 비밀번호처럼 예민한 주제 앞에서는 마음의 문을 닫는 중위. 15분이 지나 리셋되기 전에 그의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중위의 방 안에는 그의 삶을 파악할 수 있는 증거들이 산재해 있다.

하나씩 차근차근 알아나가는 탐정


이런 추리 과정에는 전작에도 등장했던 '조합'이 등장한다. 해결해야 할 질문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매칭하는 방식이다. 실마리를 찾아내고 그 다음 추론으로 사고가 확장되는 <스테퍼 케이스> 특유의 재미는 이번 작품에서도 확실히 살아 있었다.


이 과정에서 탐정은 중위의 '유산'을 둘러싼 어떤 '조작'이 있었음을 눈치챈다. 중위의 기억에 없는 증거가 등장하고, 추리는 조금씩 사건의 진상을 향해 다가간다. 


흩어져 있던 정보가 조금씩 하나의 진실을 향해 모이기 시작한다.

# 시니컬한 위트 그리고 '죽음'의 가치

이번 <스테퍼 리본>은 전작 <스테퍼 케이스>와는 조금 다른 재미가 강조된 것이 특징이었다. 전작에서는 다양한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 감정선을 지켜보는 과정이 추리의 굴곡 안에 녹아들어 있었던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등장 인물이 줄어든 대신, 할 수 있는 행동과 선택지가 늘어나 능동적 탐색의 재미가 강해졌다. 


이미 사용된 도구와 대화에 대해서도, 캐릭터들의 성격과 사건의 실마리가 녹아든 대화가 동반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탐정이 총과 칼을 건내 받고, 중위의 아들까지 대화 상대로 들어온 시점에서, 인물과 도구를 선택하면 보이는 반응들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이제 불필요해진 연필을 중위의 아들에게 사용하면 짜증을 내는데, 이들의 대화는 그 성격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제 이 연필의 용도는 당신을 짜증나게 만드는 것밖에 안 남았습니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의미라... 일단, 제 기분이 좋아집니다.", "...짜증이 나는군.", "오, 기분이 좋네요" 같은 느낌의 대화다.


인물 뿐만 아니라 사물과 도구의 매칭에서도 마찬가지다. 총과 공책을 선택하면, 영화에서 볼 수 있던 공책이 총알을 막아주는 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칼과 금고를 선택하면 칼로 금고를 딸 수 있는지 없는지 따위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이 대화들 하나하나가 재치 있기 때문에, 상황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더욱 높아졌다. 


인물에게 총을 겨누는 행위도 가능하다.
"탄창이 비어있는 걸 알면서도 위협을 느끼고 있군요. 그렇게나 죽는 게 두려운가요?"라고 묻는 탐정.
끝없이 부활하는 중위의 곁에서 '죽음의 가치'는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번 게임의 핵심 소재다. 

'노화'에 의한 죽음이 아닌 다른 죽음으로, 중위의 부활 능력을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탐정은 이제 칼과 총까지 동원해 추리를 진행한다. 


"탕!!!"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중위는 되살아난다. 하지만, 탐정은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를 발견해냈다. 다시 칼로 중위의 목을 벤다. 한 번 더 총을 쏜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필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했다.
강렬한 순간이 많았던 <스테퍼 리본>이다.

<스테퍼 리본>은 102개의 스팀 리뷰 중 97%가 긍정적인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공통된 의견은 "팀 테트라포드다운 게임", "짧지만 재밌다", "2025년에 나올 긴 분량의 정식 후속작 <스테퍼 스테프>를 더욱 더 기대하게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당신이 <스테퍼 케이스>를 재밌게 즐긴 유저라면, 이 작품을 꼭 즐겨보시라 권하고 싶다. <스테퍼 리본> 후반부에는 전작의 팬이라면 누구나 반갑게 맞이할 연출 및 요소도 준비되어 있으니 말이다. 전작을 아직 해보지 않으셨다면, 두 게임 모두를 추천한다. <역전재판>, <단간론파>와는 또 다른 팀 테트라포드 게임만의 스토리와 재미가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두 게임을 모두 즐겨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부활 능력을 가진 중위를 15분의 루프에서 구하는 이야기 <스테퍼 리본>
이번 작품의 반전도 논리적인 동시에 충격을 주는 결말로 이어져 굉장히 재밌게 플레이했다.
짧고 굵게 즐길 수 있는 추리게임을 찾고 있다면 이 게임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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