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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게임에서 사기가 바닥나면 발생하는 일

'모랄빵'이 난 군대는 결코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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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4-06-11 18:19:32
전략게임에서 사기(士氣, Morale)는 유닛을 운용할 때 핵심적으로 관리해 줘야 하는 바로미터로 등장한다. '모랄빵'(Morale 0)은 전투 중 사기가 바닥이 나서 플레이어의 유닛을 제대로 통솔하기 어려워진 상태를 뜻한다.

그러므로 사기라는 기능이 있는 모든 게임에서 상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모랄빵'이 나지 않도록 사기를 잘 유지해야 한다. 1980년대부터 나왔던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는 전쟁에서 '사기' 시스템을 선도적으로 도입한 사례로 꼽힌다. 

역사와 전통의 코에이 <삼국지>부터 시작해 여러 전략게임에서는 병사들의 사기를 대체로 3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한다. 군량미, 전과(戰果), 그리고 통솔력이다.

코에이 <삼국지>는 1980년대부터 '사기' 개념을 도입했다.



#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세상에 어떤 군인도, 아니 인간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잘 먹이는 것은 사기와 직결된다. 병사들이 식품을 소비하는 것 자체로 설정붕괴를 운운하는 게이머는 드물다. 다만, 음식을 최대한 아끼면서 인벤토리를 관리하려는 것뿐이다.

코에이 <삼국지>에서도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 <토탈 워> 시리즈에서도 식량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기가 떨어지고, 병사들이 탈영한다. 코에이는 <삼국지 14>에서는 헥스타일 연결선 위에 존재하는 유닛에게만 보급이 이루어지도록 설정했고, 비옥한 나일강 유역을 놓고 펼쳐지는 <토탈 워: 파라오>에서는 식량이 부족한 때에 무리하게 군사를 일으키면 나라 꼴이 망가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토탈 워> 시리즈는 전투에서 사기의 오르내림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게임이다.

식량은 부대의 행복과도 연결된다. 간단하다. 맛있는 것을 골고루 먹이면 전투력이 올라간다. 매일 딱딱한 빵과 물만 먹는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선원들에게 특식을 베풀면 때아닌 만찬에 즐거워하는 대사가 등장하며, 충성도가 크게 오른다. 음식은 상태 이상에도 사용돼서 괴혈병이 걸리면 라임주스를 먹여야 한다. 괴혈병이 걸렸는데 라임주스가 없으면 배가 죽음의 공간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에서는 빵과 물이 아닌 다양한 음식의 섭취를 강조한다. 이 게임에는 '식량 다양성'이라는 바로미터가 있다. 병사들에게 다양한 음식을 먹일 수 있도록 설정하면 사기가 올라가도록 설정됐다. 인벤토리에 치즈, 고기, 와인, 맥주, 기름, 포도 등 다양한 식품을 넣어서 다니면 높은 사기가 유지된다. 술은 일종의 기호품이라는 설정으로 버프 효과를 준다.

<마운틴 앤 블레이드 2: 배너 로드>에는 다양한 식료품이 있다. 이런 식료품을 골고루 갖춰두면 사기 관리에 도움이 된다.

# 그냥 이기면 되는데?

높은 전과를 유지하는 것은 간단하다. (잘 먹이면서) 이기는 싸움만 하면 된다.

어려운 말을 쉽게 했지만, 다행히 전략게임은 게임이다. 이들 게임은 대체로 플레이어에게 성취감을 주기 위해 설계되었으므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여러 정보와 옵션, 가이드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탑뷰 전략게임은 시야가 가려지는 '전장의 안개' 개념을 채택하고 있고, 그 안개를 뚫으면 적의 규모를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간혹 첩보전 등을 실시해야 그 규모를 자세히 알 수 있지만, 적의 규모를 정량화된 수치로 제공된다는 것 자체가 실제 전쟁과는 다른 부분이다.

많은 전략게임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사기가 올라가는 기능을 넣었다. '밥을 먹으면 힘이 나요'처럼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한 원리다. 반대로 아군을 잃으면, 사기가 떨어지게 된다. 과거 미니어처게임 <워해머 40,000>에서는 분대원을 잃으면 주사위를 던져서 '모랄 테스트'를 하는 룰이 있었다.

이 테스트 결과가 지휘관의 리더십이 감당하는 수준을 넘어간다면, 분대원은 전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반대로 <삼국지>나 <토탈워> 같은 게임에서 원군이 도달하면 사기가 샘솟는다.

<워해머: 40,000>의 모랄 시스템에 대한 해설 (출처: RULESHAMMER)

이러한 게임들에서 승승장구한 부대는 유지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쉽게 해체시키기 어렵다. 잘 싸운 부대이기 때문에,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사기가 높은 부대는 살림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유지하는 편이 좋다. 경험치를 바탕으로 한 성장 바로미터는 놔두더라도, 많이 싸워서 많이 이긴 부대는 대체로 높은 사기를 보유하고 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 이를 뒤집어 보면, 사기가 높은 부대는 잠깐 굶기거나 '빡세게' 이동시켜도 괜찮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굴려도 사기가 높은 부대는 잘 싸운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에게는 '모랄빵'이 나지 않도록 다양한 바로미터를 살펴야 하고, 그것들을 올리기 위해 내정을 세심하게 돌보는 플레이가 요구된다. 사기가 바닥이 난 부대는 적과 하염없는 '비벼대기'를 하다가 궤멸되기 쉽다. 그런 부대가 가까스로 퇴각해서 병력을 일부 보존한다고 하더라도 바닥난 사기로 다음 턴을 맞이해야 한다.

한편, 몇몇 게임에서는 북을 치거나 깃발을 드는 유닛을 배치해서 전장의 텐션을 올리는 기믹을 넣기도 한다. <코사크>와 (지휘관 위치의 게임은 아니지만) <배틀 크라이 포 프리덤>이 대표적이다. 

<토탈 워: 로마 2>

# 능력 있는 장군 밑에서는...

전쟁게임에서 훌륭한 장군이나 지휘관은 '통솔력' 같은 능력치가 높은 캐릭터다. 무력이 개인의 능력치라면 통솔력은 부대를 이끌 수 있는 능력치다. <삼국지>의 엄백호나 하후무 같은 장군 밑에서 목숨을 건 전투에 나서고 싶은 병사는 없을 것이다.

훌륭한 지휘관은 낮은 사기의 부대를 끌어 올릴 수 있다. 지휘관의 통솔력만 높다면 사기가 떨어져도 쉽게 도망가지 않는 버프가 부여되기도 한다. 또 실제 전쟁사에서 대단히 많은 사례가 있었듯이 좋은 지휘관이 이끄는 부대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도 한다. 게임에서는 '스킬' 같은 기능으로 극복에 다이나믹을 부여한다.

이러한 통솔 요소가 인게임 능력치가 아닌 유저의 플레이로 결정되는 부분도 있다. <토탈 워>에서 통솔력이 높은 장군의 부대라고 하더라도 플레이어가 궁병을 중갑기병에 갖다 박는 플레이를 하다가는 부대가 쉽사리 와해될 수 있다. 지휘관이 소속된 본대가 근처에서 싸우지 않거나 멀리 도망가는 경우, 군대는 궤멸적 손실을 입게 된다. 반대로 통솔력이 조금 모자란 장수라 하더라도 적재적소에 알맞은 룰을 부여하면 '1인분'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사기가 높은 부대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1명이 수백 명씩 베는 일은 보기 어렵다. 그래도 <진삼국무쌍> 같은 독특한 시리즈의 케이스가 있는데,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100명씩 배면 '모랄' 수치가 오르며, 1,000명을 베면 모랄이 최대치로 솟는다. 아군의 모랄이 높으면 상대의 모랄은 낮아지고 이에 비례해서 HP가 줄어드는 구조다. 사기가 바닥나면 적들은 월드 밖으로 줄행랑치며, 그나마도 HP는 거의 흰색으로 말로 가볍게(?) 치기만 해도 제거된다.

<진삼국무쌍>의 기획은 다분히 과장된 것으로, 플레이어가 '무쌍'을 찍는 것을 염두에 둔 설정이다. 만약에 실제 전투에서 지휘관이 끓는 피로 선봉에 섰다가 피해를 입으면 병력의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진삼국무쌍 5>. 우상단의 바가 '모랄' 게이지다. 모랄이 낮아지면 소속 부대의 HP가 떨어진다.

# 모랄빵이 난 군대는 결코 이길 수 없다

몇 가지 간단한 사례를 통해서 사기가 전략게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봤다. 

치트키라도 입력하지 않는 한, 이미 '모랄빵'이 나버린 군대는 적과의 대결에서 이길 수 없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에서 '모랄빵'이 나면 부대원들은 탈영하거나, 전투를 거부하거나,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모랄빵이 나기 전에 잘 구슬려야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주말 새벽에 불러놓고는 대뜸 밥을 사먹으라고 하고, 평시에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고 말하는 군대에서는 모랄빵이 나버리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배너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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