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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게임 중독' 관련한 영국 칼럼을 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기자수첩] 그들만이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주(사랑해요4) 2024-07-10 17:30:00
"우리는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공간을 없애고 자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7월 9일, 영국 언론 가디언지에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 10대가 비디오 게임에 중독되는 진짜 이유"라는 칼럼이 게재됐다. 읽고 깜짝 놀랐다. 주어를 모두 한국으로 바꿔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칼럼에서 제시한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정말로 한국이 마주한 문제와 비슷했다.

해당 칼럼의 주제는 청소년들의 게임 사용 증가를 단순히 중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경제적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WHO가 게임 중독을 특정 장애로 분류했지만, 실제로 심각한 중독은 게임을 하는 청소년 중 1% 미만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2. 많은 청소년들이 게임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중독보다는 사회적 환경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3. Z세대는 가장 엄격하게 감시받는 세대로, 부모의 불안과 공공 공간의 감소로 인해 외부 활동이 제한되고 있다.


4. 온라인게임 세계는 청소년들에게 부모나 권위 등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 되고 있다.


5. 청소년들은 주택 소유의 어려움, 안정적인 직업의 부족, 기후 위기 등 현실 세계의 문제들로 인해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고 있다.


6. 게임은 이러한 현실 도피의 수단이 되고 있지만, 이는 게임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제공하는 환경의 문제일 수 있다.


7.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 위기는 게임이나 기술의 영향보다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더 큰 문제들의 결과일 수 있다.



# "우리는 모든 것을 탓하려고만 한다."


가디언지는 "많은 청소년이 스스로의 의지로 일주일에 10시간 또는 20시간씩 게임을 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병리학적 관점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살펴봐야 한다."라고 했다.

기사에 따르면 Z세대는 "지금까지 태어난 세대 중 가장 밀접하게 감시받는 세대"다. 부모는 자녀의 스마트폰을 추적 장치처럼 취급하고 있으며, 소셜 미디어 피드를 살피며 활동과 친구 리스트를 감시하고 있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실내에 가둔 것은 단순히 코로나로 인한 봉쇄의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와중 아이들이 설 곳은 줄어들고 있다. 영국 YMCA에 따르면 2010년 이래로 영국의 모든 지역에서 청소년 서비스와 관련한 자금은 60% 이상 삭감됐다. 4,500개 이상의 청소년 일자리가 사라졌고, 760개의 청소년 센터가 문을 닫았다. 풀뿌리 노래 공연장은 매주 두 곳이 문을 닫고 있고, 도시 광장과 스케이트 공원 같은 곳들은 '교묘히 사유화'되어 CCTV와 경비원이 단속하고 있다.

가디언지는 "그러니 청소년들이 온라인 비디오 게임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비디오 게임 세상은 부모나 다른 권위 있는 인물이 통제하지 않는 마지막 공간이다. <레드 데드 리뎀션 2>,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에서는 앉아 있기 위해 30분마다 5파운드(약 9천 원)의 라테를 살 필요가 없다.

<젤다의 전설>에서는 판타지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에서는 나이 든 친척이 갑자기 대륙으로의 접근을 제한하는 투표를 하지 않는다. (정황상 브렉시트를 비꼬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유로트럭 개발사는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이 게임에서 제외될 일은 없다고 밝혔다. - 기자 주)

서구권 청소년들에게 크게 유행했던 <포트나이트>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고 소외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디언지는 "이들이 불안하고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탓할 수 있을까?"라며 "이들은 최근 1년 넘게 집에 갇혀 지냈다. 내 집 마련은 환상이 됐고, 평생직장은 드물고, 젊은 사람들은 게으르며 현실에 안주한다고 비난하는 세상에 대한 절망과 환멸만 커지고 있다"라고 했다. 

가디언지는 "게임 외에도 미디어에는 젊은이를 연약한 존재로 조롱하는 동시에, 범죄자 취급하는 뉴스로 가득하다"라며 "선거를 앞두고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보수당의 마지막 시도는 병역 의무를 부활시켜 존중과 공공의식을 가르치겠다는 것 이었다"라고 했다. (2024년 5월 영국 리시 수낵 총리는 총선을 앞두고 영국에 의무복무제를 부활시키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7월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 기자 주)

이어 "이들은 조부모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 우정, 연애, 교육을 잠시 보류한 세대"라며 "이들이 가상 세계로 탈출하고 싶어하는 것, 우리가 만든 가상 세계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가디언지는 "오늘날 청소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이 게임을 한다. 또한 청소년 3명 중 1명이 불안, 우울증, 중독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라며 "이런 것들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해도, 인과관계는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비디오 게임 등 모든 것을 탓하려고만 한다. 우리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이라고 했다.


(출처: 픽사베이)



# 주어를 한국 청년으로 바꿔도 되겠는데요?


어느 정도 유사점이 보이지 않는가? 위 칼럼의 주어를 한국의 청소년 혹은 청년으로 바꿔도 전혀 잘못된 내용이 되지 않는다. 

청소년이 설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은 2011년 한국에 셧다운제가 도입될 때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많은 청소년은 게임을 하는 이유에 대해 "게임 말고 달리 놀거리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게임은 시간이나 비용,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콘크리트 건물과 매연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체육 과목은 뒷전으로 한 채 입시와 야간 자율 학습, 학원 생활을 반복하는 한국 청소년이 그나마 즐길 수 있는 여가는 게임이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통계 조사를 살펴보면 지금도 10대 혹은 청년의 주요 여가 활동은 스마트폰 사용과 게임이 차지하고 있다.

10대~20대로 갈수록 여가 활동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사진은 2022 국민여가활동조사 (출처: 문체부)

"이들은 조부모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 우정, 연애, 교육을 잠시 보류한 세대"라는 칼럼의 문장은 한국의 청년이 마주한 'N포 세대'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감당 불가능한 집값, 국민연금으로 인한 세대 갈등,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 등 여러 사회 문제 앞에서 많은 것을 포기한 젊은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것이 바로 게임이라는 칼럼의 말은 우리의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컴퓨터 관련 여가와 노동 공급' 조사를 통해 컴퓨터 관련 여가 시간이 증가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노동 공급이 각각 10.7%, 6.3% 감소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통계청의 '2024년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 취업자는 20개월 연속 감소했다.

최근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이 현실화된 시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게임을 하는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을 무시한 채, 적은 근거의 병리학적 관점만으로 일단 게임을 질병화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 충분한 담론과 논의, 학술적 분석 없이 낙인부터 무작정 찍는 것은 근본적인 원인을 무시한 채 결론에만 매달리는 것과 같다.

7월 진행된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서 해외 석학은 "충분한 연구와 논의가 먼저"라고 입을 모았다.
 마띠부오레 교수는 "WHO의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가에 대해 학계에서 많은 정보를 얻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최근 국내 게임 업계에서 청년 이용자와 개발사 간의 갈등이 심화된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현실의 벽에 지쳐 게임에 삶의 비중을 조금 더 크게 둔 청년들에게, 즐기기 위한 게임에서마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치명적일 수 있다. 갈등의 원인에는 확률형 아이템 문제 등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이런 사회적 배경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분노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현상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건물이 위태롭다면 지반부터 다시 살펴봐야 하는 것과 같다.

금 간 벽에 페인트를 칠해 가린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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