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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퍼디'와 '원휴'의 성공비결?…화려함 대신 내실

살아남는 게 강한 것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4-08-02 19:19:17
넥슨 신작 <퍼스트 디센던트> 와 넷이즈 <원스 휴먼>의 이용자 수가 안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연일 두 게임의 최대 동시접속자 수는 10만 이상, 20만 이하를 유지 중이다.

두 게임의 장르는 각각 루터 슈터와 생존 크래프팅이다. 인기는 검증되었지만, 그만큼 도전자도 많고 실패 사례도 많다. 하지만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시장에 파고들어 비슷한 결과를 내고 있다.

또한 이 둘은 모두 ‘대기업’ 게임이지만, 압도적 규모의 기획과 완성도로 차별화하는 흔한 대기업식 흥행 전략을 취하지 않은 데 주목할 만하다. 그보다는 장르 팬덤의 니즈와 기대를 정확히 저격해 사랑받는 중소형 게임 스타일의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 화려하지만 위험한 ‘대작’ 도전

장르 내에서 아직 시도된 적 없는 무언가를 작품에 넣어 셀링포인트를 만드는 전략은 흔한 대기업식 접근으로 크게 나무랄 지점도 없다. 문제는 그런 거창한 시도가 반드시 유저들을 꾀는 데 유효하지만은 않다는 데에 있다.

자주 인용되는 EA의 <앤섬>과 WB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사례들을 보자. 먼저 <앤섬>은 빼어난 그래픽과 전에 없던 액션 메카닉, 수많은 컷씬, 오랜 개발기간 등 ‘대작 냄새’ 나는 만듦새로 승부를 걸었던 바 있다.

하지만 게임은 실망스러웠다 던전은 부족했고, 바이오웨어의 장기로 알려져 있던 캐릭터 묘사나 이야기는 피상적이었다. 광활한 오픈월드는 장대한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이면 지루해진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EA는 게임의 사후지원을 중단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역시 규모로 승부했던 게임이다. WB가 판권을 쥐고 있는 DC 코믹스 캐릭터들의 대거 등장은 물론 다양한 스토리 컷씬과 수준급 성우진 채용 등에서 투입된 자원 규모를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수어사이드 스쿼드> 역시 겉보기에만 화려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불성실하게 소비했고. 전작(아캄 시리즈)의 레거시를 낭비했다. 10시간가량의 플레이 중 7할 정도가 비슷한 미션의 반복이고, 적 유형은 두 손에 전부 꼽을 만큼 적다. DC 영웅들이 적으로 등장하는 보스전은 그나마 독창적이고 재밌지만 숫자가 적다.

두 작품 모두 장르의 핵심에 해당하는 요소를 결여했던 것이 패인이다. 유의미한 파밍과 유의미한 성장, 다양한 도전거리 제공, 궁극적으로는 중독 유발이 루터슈터 공통의 성공 공식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앤썸>의 미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각 스토리와 캐릭터, 독창적 액션 메카닉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이들은 루터슈터 외 장르에서 충분히 충족될 수 있는 게임성이다. 정작 게임의 필수 메커니즘인 반복과 파밍이 재미없다면 루터슈터로서의 존재가치는 떨어진다. 장르 팬들의 외면을 받는 건 필연적 결과.



# 조금은 소박한 <퍼스트 디센던트>

이번엔 <퍼스트 디센던트>를 보자. <퍼스트 디센던트>는 크게 육성, 액션, 스토리(연출)의 세 파트로 나눠서 볼 만한데, 그 순서대로 깊이감이 점차 줄어든다.

깊이가 가장 얕은 스토리 및 연출은 가끔 놀랄 정도로 축약이 심하다. 계승자 각각이 모두 외모와 액션 양쪽에서 특색이 강한데도, 튜토리얼에서의 버니를 제외하면 다른 계승자들이 화면 속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다. 계승자들은 그저 가만히 서서 대화를 나누는 일반 NPC처럼 등장할 뿐이다.

스토리 역시 안내자, 거신, 선각자, 벌거스 등 거대한 단위 요소들을 마련해 뒀지만 이들이 유기적으로 얽히는 웅장한 서사 전달까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각각을 소품적으로 활용하면서 가늘고 선형적인 내러티브로 수렴시킨 점은 아쉬움으로 꼽을 만하다.

캐릭터 '버니' 만큼 스토리도 매력적이었다면

한편 액션 측면에서의 미흡함은 ‘무적 구슬’ 메커니즘을 통해 압축적으로 설명된다. 무적 구슬은 엘리트(중간 보스급) 몬스터들이 가지고 있는 기믹이다. 체력이 일정비율 이상 줄어든 보스들은 구슬 세 개를 머리 위에 띄워 무적 상태에 돌입하며 구체를 먼저 파괴한 다음에야 본체 딜링이 가능해진다.

구체가 크지 않고 멋대로 떠다니기 때문에 나름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효과는 있지만, 이게 게임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온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 대상이 됐다. 넥슨게임즈가 게임의 첫 핫픽스에서 개선을 약속해야 했을 정도다.

무적 구슬이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듯, 적어도 출시 시점까지 개발진은 <퍼스트 디센던트>의 총기 액션에 있어  분명한 경쟁력을 부여하는데 고심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킬의 독창성, 총기 다양성, 건플레이의 완성도 등 액션의 핵심 측면들은 ‘무난히 기능하는’ 정도로 구현되어 있다.

이가 갈리는 무적 구슬 메커니즘


#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대신 <퍼스트 디센던트>는 확실한 성공모델을 자세히 살펴서 그 변형과 응용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시선을 끌고, 또 유저들을 잔류시켰다.

<퍼스트 디센던트>에 유저를 끌어들인 1등 공신은 단연 매력적 캐릭터들이다. 이건 두말할 나위 없이 <워프레임>을 벤치마킹한 지점이다. 캐릭터 수집은 <워프레임>의 핵심 게임플레이 동기로 통한다. 다만 <워프레임>의 캐릭터들이 전신 수트를 입은 사이버네틱한 디자인이어서 다소 매니악한  것과 달리 <퍼스트 디센던트>는 더 생동감있고 대다수 게이머들이 쉽게 애정을 쏟을 만한 인간적이고 미형인 캐릭터들이다. 대중성을 더 키운 셈.

여기에 프리투플레이(F2P) 타이틀이라는 점 역시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는 데 한몫을 했다. 모객 전략이 적중했다는 사실은 초기 최대동접자가 26만 명 기록으로 뒷받침된다. 앞서 언급된 두 작품을 포함, <아웃라이더스> 등 고배를 마신 루터슈터 선배들에 비해 눈에 띄는 유저 동원이다.

<퍼스트 디센던트>가 <워프레임>의 DNA를 잔뜩 가지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현시점에도 매일 최대 10만여 명 이상의 동시접속자가 잔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콘솔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유저가 계속 이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르 팬의 니즈를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중요한 건 끊임없는 성장 체감이다. <퍼스트 디센던트>는 이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뛰어나다는 평가. 비근한 예로 게임의 초기 리뷰에서 밋밋한 퀘스트 구성 등을 꼽아 게임을 혹평한 포브스의 폴 타시 기자는 이후 반전된 평가를 남기면서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중독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퍼스트 디센던트> 레딧 등 유저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를 살펴보더라도 넥슨게임즈가 게임적 엣지 마련과 장르적 니즈 충족에 모두 성공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유저들은 신규 캐릭터 및 캐릭터 스킨의 매력, 그리고 다양한 빌드에 대한 의견을 즐겁게 공유하고 있다.

12만 8,000명이 활동 중인 <퍼스트 디센던트> 레딧


# 다른 상황, 비슷한 전략

대작이 되려다 기본기를 저버린 사례들과 비교해 <퍼스트 디센던트>는 완성도와 독창성 측면에서 다소 비판받더라도 장르적 내실만큼은 갖춰 씬 안에서 확실한 파이를 차지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넥슨게임즈와 EA·스퀘어에닉스·WB 등 기업 간 규모 차이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똑똑한 결정이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생존 크래프팅 장르인 <원스 휴먼>은 어떨까? 씬의 상황만 따로 놓고 보면 사정이 많이 다른 편이다. 생존 크래프팅은 루터 슈터와 달리 -적어도 아직은-대기업들의 성과가 두드러지는 장르로 보기 힘들다. 같은 넷이즈 게임인 <라이프 애프터>나 레벨 인피니트의 <뉴던> 등 게임이 출시한 바 있지만 유저 독식이나 대흥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오히려 생존 크래프팅 씬의 강자들은 대부분 월등히 덩치가 작은 게임들이다. 올해 초 센세이션을 일으킨 <팰월드>, 그 외 <더 포레스트>, <서브노티카>, <프로젝트 좀보이드> 등 유명 작품들을 하나하나 돌이켜봐도 대부분 소규모 내지는 1인 개발사의 패키지 작품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스 휴먼>은 아직은 성공 사례가 뚜렷하지 않은 라이브게임 BM을 붙이는 대기업적 접근을 시도했다. 성공작을 벤치마킹한 <퍼스트 디센던트>와는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게임을 흥행시킨 결정적 성공 전략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면 의외로 상통하는 면을 찾게 된다.



# 장르 트렌드 섭렵한 <원스 휴먼>

<원스 휴먼>의 초기 리뷰를 보면 넷이즈의 기업 규모에 비해 다소 어설퍼 보인다는 평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탈것의 엉성한 조작감, 부정확한 히트박스, 곳곳에서 누락된 보이스 액팅이나 엉성한 모션 등이 이러한 평가의 원인이다. 정식 출시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서버별 캐릭터 수가 1명으로 제한되고 유료 스킨이 캐릭터 간에 공유되지 않는 등 보편적 기대에 못 미치는 단점들로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첫인상을 제하고 보면 <원스 휴먼> 역시 <퍼스트 디센던트>와 마찬가지로 장르 마니아들이 반갑게 빠져들 만한 요소를 풍성하고 본때 있게 마련해 유저 풀을 유지하고 있다.  <원스 휴먼>은 생존 크래프팅 장르의 트렌드를 다양하게 반영하고, 이를 짜임새를 갖춰 서로 연계한 것이 주된 장점이다.

<원스 휴먼>에서 유저는 <코난 엑자일>, <팰월드>의 NPC 노동 시스템, <세븐 데이즈 투 다이>의 매력적 POI(파밍지역) 레이아웃과 숨겨진 보상 탐색 요소, <발헤임>, <V 라이징>의 코어 콘텐츠인 보스전, 그 외 다양한 생존 크래프팅 게임들에 차용되고 있는 ARPG식 아이템·육성·퀘스트 시스템을 모두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없는 게 없는데 모두 그럴 듯하다?

이런 ‘종합선물세트’식 게임 디자인에서는 메카닉 중 일부, 때로는 상당수가 겉치레식으로 자리하는 사례가 잦다. 그러나 <원스 휴먼>은 각각을 최소한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마련해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여기서 ‘만족’의 기준이 게이머 일반이 아닌 장르 팬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가령 보스전의 공략 난이도나 깊이는 일반 싱글플레이 TPS 유저들에게까지 놀라움을 안길 정도로 고도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장르 내에서 보스전이 주로 주기적 난관 부여를 통한 육성 수준 확인, 그리고 적당한 긴장감과 보상 제공의 역할임을 생각하면, <원스 휴먼>의 보스전은 부족함이 없다.

보스전은 나쁘지 않은 감각으로 즐길 수 있다.


# 살아남는 게 강한 거야

비슷한 시기에 출시해 비슷한 규모의 팬덤몰이를 하고 있는 <퍼스트 디센던트>와 <원스 휴먼>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준다.

두 작품은 넥슨과 넷이즈라는 대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내놓은 F2P 게임이다. 쏟아지는 비판은 출시 전에 이미 정해져 있던 운명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두 게임을 향한 부정 평가 상당수는 대기업 F2P 게임을 향한 보편적 비판의식을 많은 부분 답습한다. 기업 규모에 비해 어딘지 실망스러운 완성도, 그럼에도 전면으로 내세워진 BM 등을 집중적으로 꼬집는다는 얘기다.

다만 양쪽 개발진들은 '모든 게이머’의 기대에 일일이 부응하기보다는 씬 안에서의 경쟁력을 갖추는 쪽에 훨씬 신경 쓴 듯하다. <퍼스트 디센던트>는 장르 안에 아직 없는 미형 캐릭터 수집 요소와 장르 기본기인 파밍/육성의 깊이에 집중했다. <원스 휴먼>은 장르에 수년간 축적되어 온 여러 트렌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마니아들에게 어필했다.

이런 맥락에서 <퍼스트 디센던트>, <원스 휴먼>을 향한 다소 엇갈린 평가 (각각 스팀 플랫폼 추천율 54%, 71%)는 개발진들에겐 그리 아프지 않을 공산이 크다. 취향 파편화의 시대, 일정 규모 팬덤만 단단히 확보하면 생존을 노려볼 만한 시대다. 두 게임은 놀라운 대작이 되려다 고꾸라지기보다는 잘 살아남아 사랑받는 쪽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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