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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FC25, 혁신은 없었다

매년 출시되는 축구게임에 대한 불평

김재석(우티) 2024-09-25 14:08:14


# '혁신은 없었다'에 대하여

'혁신은 없었다'는 일종의 밈이다. 새로운 물건이 발표되면 '혁신은 없었다'라는 제목으로 이목을 끌어당기는 세태를 비꼬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혁신은 없었다'는 2024년의 언론인로서 피하는 게 좋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자는 지금 '혁신은 없었다'에 꽂혔다. 아무래도 신형 아이폰이 나올 때가 되어서 그런가?


기왕 꽂힌 김에 '혁신은 없었다'를 뜯어보자. '없었다'는 형용사 '없다'의 과거형이다. 굳이 이 글에서 없었다의 뜻까지는 알아볼 필요 '없을' 텐데, 그러면 '혁신'이 남는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혁신'을 두고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함'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혁신은 없었다'라는 말은, 들여다 보니 새로울 게 별로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혁신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혁신이 없는 현상(現狀)은 자연스러운 상태다. 요컨대 우리는 밥먹듯이 혁신을 할 수 없다. '혁신적 제육볶음'이나 '혁신적 계란말이' 같은 음식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물론 우리 주변에는 <흑백요리사>의 비빔대왕 같은 혁신가들이 존재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혁신적으로 살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스티브 잡스도 검은색 터틀넥을 수백 장 뽑아서 죽기 전까지 돌려 입었다고 하지 않나?

비비비비비 비빔 비빔… (출처: 넷플릭스)

# FC 25, '혁신은 없었다'?


지난 월요일부터 짬짬이 <FC 25>를 플레이하고 있다. 이 게임은 정확히 혁신의 반대 극단에 있다. EA는 '피파' 시절부터 매년 축구게임 시리즈를 내고 있고, 브라질 축구선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가 "싱가"를 외치면 주변에 불꽃이 피어오르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는다.​ 축구의 룰은 변하지 않았고, 얼티메이트 팀 부분유료화 모델 또한 건재하다.


물론 매년 그렇듯이 몇몇 중요한 업데이트는 발표됐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두 가지. 먼저 <피파 07> 이후 18년 만에 한국어 해설이 돌아왔다. 배성재 캐스터와 임형철 해설위원의 한국어 해설은 반가웠다. 경기 중 농담이나 선수나 구단에 대한 트리비아가 별로 나오지 않는 듯했지만, 추가 자체만으로 반길 일이다.


경기 중 주요 장면에 1인칭 시점이 추가됐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골문 앞에서 슛을 차는데 공과 발을 안 보여준다던가, 옐로우카드를 준 심판이 이상한 곳을 보는 듯한 장면이 있었다. 코너킥이나 프리킥을 찰 때 긴장감이 더해지는 효과는 있었기 때문에 앵글만 손을 본다면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은 기능이다.


18년 만의 한국어 해설 부활.


1인칭 시점이 생동감을 더한다. 가끔 이상한 데를 쳐다봐서 몰입도가 깨지긴 하지만, 일단은 긍정적인 업데이트라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의 포지션을 더 세부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FC IQ'의 도입이다. 이제 선수별로 세부 포지션과 개인 전술을 부여할 수 있다. 선수들이 선호하는 역할에는 녹색으로 +가 붙고, 그렇지 않은 역할에는 노란색으로 경고가 붙는다. 혁신적인 시도로 보이지만, 실은 EA가 처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기능적 해답이라고 본다.


'피파' 시절부터 지금까지,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선수는 1명이고 나머지는 플레이어의 조작을 기다리는 AI다. 나머지 필드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고도화할 것인지는 EA가 매년 신작 발표 때마다 공들여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간의 플레이 데이터를 활용하고, 최신 기술과의 결합 등등이 함께 소개된다.


굴리트의 재능은 수비형 홀딩 미드필더로 다 담을 수 없다


AI 모델이 더 나은 전술을 추천하고, 선수들이 선호하는 포지션으로 채워진 스쿼드를 구성하면 추가 버프를 받을 수 있는 방식인데, 이것이 그간 EA 축구게임 프랜차이즈에서 시도되지 않았느냐면 그렇지 않다. 프로스트바이트 엔진로 교체된 <FIFA 17>부터 봐도 공격, 수비, 패스 등등에 대한 세부전술 설정이 존재했고, 이후부터는 그 속도나 정도를 수치화해서 세부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했다. 한 판의 경기에서 여러 전술을 실험하는 요소도 이미 도입이 됐던 부분이다.


더구나 이미 <FM>에서는 몇 년 전부터 세분화해 제공하고 있었으니 이번에 선수별 개인 전술 부분의 추가를 두고 '혁신'이라면 그것은 과장에 가까울 것이다. 시뮬레이션 기능도 존재했지만, 유저의 플레이를 통해서 만들어나가는 장르의 게임이기 때문에 컴까기 수준에서는 엘링 홀란드를 폴스나인(가짜 공격수)으로 갖다 놓아도 포쳐처럼 득점포를 뿜어낼 수 있다.



이강인의 모델링이 정말 잘 뽑혔다

황희찬도 꽤 준수한 편

김민재는...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 비어있지는 않지만 어딘가 요란한 수레


EA는 스탠다드 버전 정가 8만 원의 <FC 25>가 새로운 게임이라는 듯 여러 추가요소를 담아냈다. 비어있지는 않지만, 어딘가 요란한 인상이다.


먼저 스트리트 축구 모드였던 볼타는 5:5 '러시'로 대체됐다. 길거리 감성을 지우고 조금 더 풋살 같은 느낌을 살린 게임인데, 레드카드가 블루카드로 대체되어 퇴장된 선수는 특정 시간 동안 경기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농구의 경고 누적 퇴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경기의 끝은 최종 득점인 '골든 볼'로 결정된다.


새로운 미니게임 '러시'. 볼타가 러시로 바뀐 이유가 특별히 납득이 되지는 않았지만, 즐기기에는 좋았다


커리어 모드에는 시작 전 몇 가지 설정을 부여할 수 있게 업데이트됐다. 전성기를 되찾으려는 20대 후반의 선수를 플레이할 수도 있고, 축구 명문가의 자제로 게임을 시작할 수도 있다. 아울러 여성 축구 선수를 커리어 모드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혼성 얼티메이트 팀은 올해도 유지된다. 기자는 EA가 확률형 아이템의 모수를 비약적으로 늘리기 위해 이 방법을 채택했다는 입장이다. 여성 축구는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남성 축구와는 큰 차이가 있다.


결국 매년 나오는 구 '피파' 현 'FC'의 엔드 콘텐츠는 얼티메이트 팀이다. 1년 만에 <FC 24>에서 <FC 25>로 판은 추가됐고, 플레이어들은 새 팀을 위한 루트박스(랜덤박스)를 새로 뽑아야 한다. 1년 짜리 경쟁에 피로를 느끼는 게이머들은 얼티메이트 팀을 플레이하는 대신 출시 3개월 뒤에 게임을 사거나, 아마 100% 출시될 'FC 26'이 발매되기 직전에 할인가로 <FC 25>를 즐길 것이다. 그때 가격은 분명 지금의 가격보다 저렴할 것이다.


<FC 25>의 시즌패스. 근데 시즌패스의 유효기간이 1년이다.

케인에게 무관의 치욕을 씻겨주고 싶었다


여성 축구선수를 커리어모드에서 고를 수 있다. 


음바페의 빈자리를 이강인 가짜 공격수 전술로...


# 혁신 없는 독점과 오래된 미래


<FC 25>는 견제받지 않는 독점 게임이다. 'FM'은 같은 축구게임이지만 세부적인 장르가 다르고, 한때 축구게임을 양분했던 코나미의 '위닝일레븐'(PES) 프랜차이즈는 힘을 못 쓰고 있다. <FC 25>을 겨냥해 스트라이커즈(Strikerz)라는 스타트업이 최근 <UFL>을 출시했으나​ 큰 반향을 얻는 데에는 실패한 인상이다. 그나마 FIFA의 새로운 파트너가 된 2K가 개발 중인 신작이 가장 유력한 경쟁자로 꼽힌다.


하지만 독점이 오래되면서 혁신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볼타 같은 모드를 '혁신'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축구 팬 중에 '혼성 얼티메이트 팀' 같은 것을 혁신적 요소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결국 얼티메이트 팀이 엔드콘텐츠라면, 매년 풀 프라이스 게임을 발매하고 구매하는 지금의 방식이 아니라 예전에는 '피파 온라인'이라고 불리던 <FC 온라인>의 모델이 건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기자는 4년 전에도 "윤리적, 상업적 문제를 떠나 순전히 플레이어로서 이 게임은 너무 힘들다"라며 <피파 21>에 불평을 늘어놓았다. EA는 바뀌지 않았고, 비슷한 불평은 계속되고 있다.  혹자는 '그럼 하지 마!' 등의 일갈을 꺼내겠지만, 그렇게 순순히 그만두기에는 기자에게 축구는 각별한 존재다. 이제는 경쟁자들이 힘을 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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