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수출의 희망은 정말 중동에 있을까?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제2의 중동 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K-컬처로 중동 시장을 사로잡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보였다. 작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 빈 살만 왕세자 방한 때 맺은 40조 원 규모의 협약과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을 계기로 문화 협력을 확대하는 양해 각서를 체결한 것 등이 그 배경이다.
제1차 중동 붐은 1970~80년대에 건설 시공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우리나라의 많은 건설 근로자가 중동에서 땀 흘려 일하며 높은 급여를 받아, 외화벌이와 가계에 큰 보탬이 됐다. 당시의 영광을 기억하며 이병박 정부 등 과거 정권들에서도 대통령 중동 순방이 있을 때 "중동은 기회의 땅"이라거나 "제2의 중동 붐은 온다"와 같은 표현을 종종 사용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문화 산업은 어떨까? K-컬처 안에는 영화, 음악과 같은 콘텐츠, 문화유산과 공예와 같은 전통문화, 문학과 도서관 같은 분야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국산 게임 또한 주요 콘텐츠로 포함되어 있다. 콘진원과 문체부가 어떤 자료를 토대로 중동 시장을 게임 수출의 주요 대상으로 설정했는지, 중동 시장은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정리해보았다.
한국게임산업협회와 콘진원은 2월 27일 '글로벌 게임 정책·법제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중동과 동남아 11개국의 게임 규제, 법률, 정책에 대한 내용을 다룬 479페이지 분량의 문서다. 2022년 법령을 기준으로 작년 9월부터 작성된 내용이며 게임 퍼블리셔 입장에서 유용할만한 정보가 많이 있었다.
보고서는 "게임 산업은 수출 비중이 매우 높은 콘텐츠 산업"이라며 "한국 게임이 전세계로 시장을 넓히고 있는 중"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데 결제, 환불, 미성년 이용자, 등급분류, 본인인증, 약관, 개인정보보호 등 다양한 법률 쟁점이 있다"며 "최근 메타버스, NFT 등 신기술이 게임에 접목되는데 나라별로 법률, 규제, 정책에 차이가 있어 이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 게임 수출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11개국에 모두 동일한 질문들을 했는데,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실수로 결제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가 있는지", "이용자의 월 결제 한도 또는 연령별 결제 한도 관련 규정 또는 법률이 있는지", "등급 심의 기간 및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셧다운제 등이 있는지" 등 국내 게임 관련 법령 및 실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들을 국가별로 비교할 수 있게 만든 자료다.
디테일하게는 관련 법 조항이 따로 없더라도 유사 사례에 적용되는 법들을 명시하고, 예외적인 상황 및 사례도 병기됐다.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 중인 국내 기업 간 논의를 통해 도출한 조사 항목들이며, 해외 비즈니스를 위한 실무 지침으로 활용될 전망이라고 한다. "국내 게임사의 해외 진출을 돕겠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를 만든 콘진원과 한국게임산업협회의 의지다.
조사 대상 국가
동남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동: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 카타르, 쿠웨이트, UAE, 튀르키예, 파키스탄
주요 조사 내용
청약철회 환불 관련
규정 없음(당사자끼리 계약 사항으로 정함)/ 환불 불가/ 환불 권리 허용으로 분류됐다.
성년 기준 및 법정 대리인 동의
성년 기준은 18세/21세로 분류됨
조사 대상 국가 모두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등급분류
게임 서비스 등급 분류 없음/ 실물 패키지만 등급 분류하고 온라인·모바일은 제외/ 외국 사업자의
온라인·모바일 게임은 제외/ 모든 게임이 등급분류를 받음으로 분류됐다.조사 대상 국가 중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서비스한다고 형사 처벌되는 국가는 없었다.
▲ 참고로 국내에선 등급을 받지 않은 게임물을 유통하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개인정보보호
정보 주체로부터 명시적 동의를 예외 없이 받아야 한다.
개인정보처리와 관련해 국내 대리인 지정이 필요한 국가는 일부 있었다.
암호화폐 규제
결제 시 암호화폐 사용 금지/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규제/ 규제 없음으로 분류됐다.
현지 서버 설치 의무화
게임 서비스를 위해 현지에 서버를 설치해야 할 의무가 있는 나라는 없었다.
다만, 상업 활동에 대한 현지 사무소 설립 의무는 있는 경우도 있었다.
문체부와 콘진원은 '2022 해외 시장의 한국 게임 이용자 조사'라는 보고서를 지난 1월 20일에 공개했다. 북미, 유럽, 동아시아, 서남아시아(인도, 파키스탄), 중동(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5개 권역 16개국에 거주하는 만 15세 이상의 한국 게임 이용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다. 이 보고서에도 꽤나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있다.
1) 서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은 2022년에 새로 추가된 신규 조사 대상 국가다.
2) 한국 게임 평균 이용 시간은 서남아시아, 중동 순으로 높았다.
1위 서남아시아(주중 168분/ 주말 225분)
2위 중동(주중 159분/ 주말 218분)
▲ 16개국 전체의 한국 게임 평균 이용 시간은 주중 146.16분/ 주말 192.43분이다.
3) 한국 게임 월 평균 이용 비용은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1위 카타르 76.21달러(약 10만 원)
2위 아랍에미리트 68.98달러(약 9만 1천 원)
▲ 16개국 전체의 한국 게임 월 평균 이용 비용은 38.51달러(5만 1천 원)다. 중동과 서남아시아는 평균을 크게 웃돈다.
4) 아랍 문화권은 라마단 기간에 게임 이용 시간과 비용이 모두 증가했다.
게임 이용 시간 증가: 응답자 중 54.1%
게임 이용 비용 증가: 응답자 중 56.1%
해외 게임 이용자들이 K-게임을 재밌게 즐긴 이유는 "흥미롭고 재밌어서", "같은 게임을 즐길 사람이 주변에 많아서" 등이 제시됐다. 그러나 한국 게임 이용 시 불편한 점은 국가마다 조금 달랐다. 카타르는 "타 국가 대비 장르가 편향적이고 일률적"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이집트에서는 "게임을 하는데 아이템 구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아무리 한국 게임을 즐기는 해외 유저를 대상으로 한 조사라고 하지만, 한국 게임 평균 이용 시간과 비용이 중동에서 이렇게 높은 것은 다소 의외였다. 문체부와 콘진원의 전망처럼 적극적인 투자와 잘 수립된 진출 전략이 뒷받침된다면 성장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는 지역이다.
조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신흥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서남아시아와 중동이 해외 진출 대상으로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시장 진출 전 개별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며, 장르 편향성과 아이템 구매 비용 부담 등 지적 받은 문제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 심도 있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문체부는 1월 30일 '제2의 중동 붐 TF'까지 출범했다. 문체부 박보균 장관은 "문체부 직원 모두가 K-컬처, K-콘텐츠의 영업사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중동의 문화중심지인 아랍에미리트에 우리 문화 콘텐츠를 과감하고 밀도 있게 선보여 중동 지역에 한류 확산을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2월 23일 "UAE,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미래 아젠다를 석유에서 첨단기술과 문화 콘텐츠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런 변화를 기회로 포착해, 중동 지역 비즈니스센터를 활용, 바이어를 확보해 핵심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아랍서 서비스, 아랍 배경 활용 등 현지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콘텐츠 제작 및 컨설팅 지원 계획도 함께 전했다.
콘진원과 문체부가 바라는 "제2의 중동 붐"의 방향성은 한결같다. 플랜트 건설 등 인력과 기술에 치우쳐 있던 중동 시장에 대한 기존 접근 방식에서 문화 콘텐츠 사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오겠다는 것이다. 게임 수출에 관해서도 다양한 노력을 지속해온 만큼 콘진원의 전망처럼 제2의 중동 붐이 올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