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새롭게 질병으로 규정한 '게임이용장애'를 국내 질병코드 분류 체계에 도입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첫 공청회가 열렸다.
12일 더불어민주당 강유정·서영석·임광현·전진숙 의원실은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공청회'를 열었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 문제에 관련, 찬반 양측의 의견을 듣고 상호 이해와 생산적 논의를 도모하는 것이 공청회 취지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2년 5월 WHO는 ‘게임이용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국제질병분류체계(ICD) 11차 개정안을 발표했다. ICD를 근간으로 하는 KCD체계 역시 내후년 개정에서 제11차 ICD 개정판(ICD-11)을 반영할 예정이다.
개회사에서 강 의원은 “게임업계와 게임인은 반대하고, 정신의학계는 찬성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부처별 찬반이 갈린다. 그러는 사이 곧 KCD 초안은 곧 나올 예정이다.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지 않으면 상황에 이끌려 갈 형편”이라며 성숙한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이 문제를 방치하면 안 된다는 여러 의원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몇몇 소수 게임 이용자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미래가 달린 진지한 문제다. 오늘을 시작으로 토론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패널 토론에 앞서 정부 부처 및 기관 발표가 이뤄졌다. 가장 먼저 발표에 나선 이영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게임콘텐츠 산업과장은 “게임이용장애의 실재(實在)를 두고 찬반이 나뉘는 상황에서 문체부는 이를 질병으로 분류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영미 과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학계 전문가를 통해 이용자 패널 조사, 임상의학 코호트 연구를 진행한 바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에 의한 뇌 구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고, 게임 이용량과 게임 과몰입 간 상관관계 낮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전했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시 사회적 파장도 고려 대상이다. 전 국민의 60%가 게임을 즐기고 청소년 이용자가 특히 많은 상황에서 게임 과몰입이 정신질환으로 인식될 경우 게임 유저들에게 부정적 낙인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파급 효과 연구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시 2년간 게임산업에 총 8.8조 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총생산 감소 효과는 12조 원, 취업 기회는 8만 명이 감소할 수 있다. 이영미 과장은 “문체부는 민관협의체 구성 혹은 공론화의 장을 통해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라고 밝혔다.
다음으로 보건복지부 김연숙 정신건강관리과장 발표가 이어졌다. 김연숙 과장은 앞서 문체부 의견과 마찬가지로 “민관협의체를 중심으로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국내 여건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정에 맞는 분류체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건강관리과장으로서 질병코드 도입여부와는 별개로, 게임이용 과다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다면 정책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 영국 등 여러 국가도 과다이용 관련 진단 개발과 활성화를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연숙 과장은 “뜨거운 논의 속 찬반이 대립하기보다는 게임계의 우려를 최소화하면서 건전한 게임 이용 문화를 정착시킬 방안 강구에 다 같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통계청 박현정 통계기준과장이 KCD 개정 절차와 ICD-11 도입 현안에 대해 발표했다.
ICD-11의 최초 공개는 2019년, 정식 공표는 2022년 이뤄졌다. 이는 약 30년 만에 이뤄진 대대적 ICD 개정으로, 전산화와 분류체계 변화 뿐만 아니라 질병 코드 대거 추가도 이뤄져 기존 1만 4,000여 개에서 5만 5,000개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이를 반영한 KCD 10차 개정은 2026년에 이뤄질 예정이다. 2025년 있을 9차 개정안까지는 ICD-10을 기준으로 한다. ICD-11은 코딩체계, 시스템 구축 등에 있어 도입 시 의료 현장의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KCD 활용기관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신설된 게임이용장애에 대해서는 국조실 주도 민관협의체 논의가 진행 중인 점을 감안, 협의체 논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를 존중하여 KCD 10차 개정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박현정 과장은 설명했다.
▲ 찬성 - 이상규 교수
이어 찬반 양측 패널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먼저 질병코드 도입 찬성 의견의 이상규 한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발표에 나섰다.
이 교수는 “게임을 병적으로 많이 이용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ICD-11 공표 이후로 질병이 맞는지에 찬반을 나눠 연구하기보다는 그 해결법, 서로 다른 질병 유형에 대한 접근과 치료, 환자별 취약성 등에 대한 연구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간 진행된 17개국 53개 연구를 통해 게임이용장애 유병률을 살펴보면, 이전까지의 연구에서 격차가 컸던 것에 비해 일관되게 2~3%의 유병률을 가진 질병으로 확실시된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또한 뇌신경학적 연구도 다수 진행되었다. 이에 따르면 병적 도박뿐만 아니라 약물중독 등 다른 중독 질환들과 유사한 병리 현상이 드러났다.
게임 이용 시간에 따른 이용장애 발생 확률 연구에서도 일관성이 나타난다. 게임 이용 시간이 직접 게임이용장애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지는 않지만, 하루 4시간 이상 게임을 이용하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비교해 문제 발생 확률이 더 높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게임 이용 장애가 발생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게임 자체를 많이 즐겨서 발생하기도 하며, 다른 충동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각각에 맞는 치료나 개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연구 또한 지속되어야 한다.
이 교수는 “게임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게이밍 행동이 과한 것이 문제다. 문제 있는 음주 습관이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즐겁고 재미있는 게임 문화를 만들려면 진짜 문제를 겪는 사람에 대한 안전한 조처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진단명이 한 번 만들어졌다고 해서 끝까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추후 수정될 수 있다. 여러 이용 장애 스펙트럼에 따라 어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고민할 때”라고 전했다.
▲ 반대 - 박건우 교수
다음으로 질병코드 반대 측의 고려대 안암병원 뇌신경센터 박건우 교수가 발표를 이어갔다.
박 교수는 “나는 게이밍 중독의 실제 판별보다는 진단에 있어 신중하자는 입장”이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박 교수는 게임으로 치매 노년 환자의 인지기능을 향상하는 시리어스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박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반대의 주된 논리는 게임 산업이 위축을 걱정한다는 것이지만, 정말 그렇게 될 것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낙인효과 때문에 나오는 염려다. 실제로 건강한 게임 이용자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상황은 초래될 수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게임이용장애가 도박과 같은 행동 중독 장애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걸 보면 도박과 게임이 비슷한 수준으로 나쁜 행동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게임이용장애의 정의적 모호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게임 과다 이용이 동반질환에 의한 증상인지, 아니면 질병으로 정의 내려져야 할 행동인지 분명치 않다.
또한 게임 이용에 따라 나타나는 뇌신경학적 변화가 과연 질병을 드러내는 증거인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어볼 만하다. 박 교수는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면 쾌락 중추가 활성화된다. 그런데 쾌락 중추는 행복한 생활을 많이 해도 활성화된다. 이것을 바이오마커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정신과 진단의 필연적 주관성을 지적하며 질병코드 등재에 신중이 기해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밝혔다.
박 교수는 “(우울증 환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가장 애매한 곳이 정신건강의학과다. 그래서 질병마다 진단기준이 만들어지는데, 보면 알겠지만, 주관적 판단이 안 들어갈 수 없다. 즉 의사의 태도 등에 따라 진단 결과가 달라지는 영역이 있다. 그래서 병명 등재를 신중히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전했다.
이어 “ICD-11에 제시된 진단 기준을 봐도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12개월 동안 동반질환을 먼저 치료하는 배제진단이 필요하다. 다른 질병을 모두 치료하고 나서도 증상이 지속할 때 게임이용장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이용장애라는 진단명이 오남용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 반대 - 조문석 교수
뒤이어 조문석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는 정책적인 관점에서 신중론을 제시했다.
조 교수는 “게임이 문제적 행동의 직접적 원인이고, 이로 인한 사회 경제적 피해가 크다면 당연히 질병코드가 등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피해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고 말했다.
반대로 등재가 이뤄졌을 때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의학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교육의 현장,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미칠 검토가 충분히 이뤄져야 하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또한 게임이용장애는 아직 ‘가설’ 수준의 명제라고 조 교수는 주장했다. 평가 척도 등에 따른 게임이용장애 유병률의 편차, 제3의 요인(공존질환 등)에 의해 게임이용장애가 발생할 가능성 등, 그 실재나 명확성을 의심할 만한 근거가 여러 연구로 제시되고 있다.
이렇듯 충분히 입증되지 못한 가설을 근거로 정책을 도입하면,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2011년 도입된 셧다운제가 대표적 선례다. 학생의 수면권 보장을 이유로 도입되었지만, 실제 학생들의 수면 박탈은 학습시간 때문이라는 것이 이후의 중론이었다. 결국 셧다운제도는 실효성 부족을 지적 받으며 2022년 폐지됐다.
질병코드 등재는 셧다운제와는 차원이 다른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게임이용장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더라도 ICD-11을 따라 질병코드를 기계적으로 등재하기 보다는, 논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 교수는 전했다.
▲ 찬성 - 이해국 교수
마지막은 이해국 카톨릭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가 발표에 나섰다.
이전부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찬성의 목소리를 내온 이 교수는 이번에 ‘질병코드 등재 우려에 대한 우려’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현재 게임이용장애 연구 중 90%는 게임이용장애의 질병화 근거가 충분하다는 쪽이다. 나머지 10%만이 모호하고 불확실한 일부 영역에 대한 추가 연구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전부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찬성의 목소리를 내온 이 교수는 이번에 ‘질병코드 등재 우려에 대한 우려’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현재 게임이용장애 연구 중 90%는 게임이용장애의 질병화 근거가 충분하다는 쪽이다. 나머지 10%만이 모호하고 불확실한 일부 영역에 대한 추가 연구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교수는 “게임은 일반적 상품이 아니다. 좋은 상품이지만 약간의 위험성이 있어 공공과 시민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중독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기쁨의 매개, 사용자의 특성, 사회가 제공하는 기쁨의 종류 등에 따라 중독 문제가 나타난다. 게임 그 자체가 게임이용장애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재미 추구 성향이 강하고, 사회가 제공하는 다른 유희적 대안이 없다면 중독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다만 이걸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여기서 왜 다른 중독적 매개는 제외한 채 게임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관련 연구의 수에 비롯한 것이다. SNS 중독에 대한 연구도 현재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경향이 3~4년간 지속한다면, SNS 중독의 질병화 역시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질병코드 등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게임 과몰입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실제로 우리나라도 과몰입힐링센터를 운영하며 교육과 예방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때로는 공중보건체계가 나서야만 할 때가 있다. 질병코드 등재가 이뤄지지 않은 현재 상황으로는 이런 개입은 어렵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과몰입힐링센터를 운영하며 교육과 예방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때로는 공중보건체계가 나서야만 할 때가 있다. 질병코드 등재가 이뤄지지 않은 현재 상황으로는 이런 개입은 어렵다.
이 교수는 질병코드 등재에 관한 논의가 파편화되어 있어 논의의 효율이 낮다고 지적했다. 질병코드 반대 주장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라는 근본적 주장에서부터, 질병화는 과도한 대처라는 주장까지 여러 가지 논점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것을 한꺼번에 다루느라 생산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현시점 공중보건체계의 게임 과몰입 문제 대응이 충분한지는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게임 업계와 게임 이용자들은 공중보건 대응을 비판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건전하고 안전한 게임 이용을 위한 노력은 모두 함께 나서야 하는 문제다.
등재까지는 2년이 남은 상태다. 따라서 도입 찬반을 논하는 대신 게임 이용자들이 병들지 않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 그리고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질병에 이르는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생산적으로 논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이 교수는 “게임은 일반적 상품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물론 문화적 가치, 산업적 가치 측면에서도 게임은 일반 상품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독의 위험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문제를 겪는 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앞으로 이뤄지길 바란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