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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키운 몰입감?…반지하게임즈의 '리얼한 가짜' SNS 게임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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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언(톤톤) 2024-06-17 18:07:42
“AI가 사용된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목받는 시기는 이미 지난 것 같다. ”

콘텐츠진흥원 주관 콘텐츠산업포럼 2024 둘째 날 강연에 나선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의 말이다. 이날 이 대표는 ‘게임 기획과 수단으로서의 AI’라는 주제로 신작 <페이크북>의 개발 현황과 기획 의도, 그리고 그 안에서의 AI 활용 방식에 대해 논했다.

이 대표를 포함, 이번 포럼에서 강연한 전문가들은 모두 생성형 AI의 전례 없는 유용성을 설파하면서도 그것이 당분간은 ‘보조적 수단’에 다름 아니라는 견해를 함께 내놨다. 인간 대체불가능성에 대한 낭만적 믿음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생성형 AI의 도구적 가능성을 앞서서 탐구해 본 현업자들의 이야기인 만큼 오히려 냉철한 ‘사용 후기’에 가깝다.

생성형 AI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어야 한다는 이 대표의 제언에는 그래서 힘이 실린다. AI 활용 게임이란 이유로 이목을 끌어볼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AI만으로 완성도 높은 게임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걸로 무얼 어떻게 만드느냐의 진지한 논의로 넘어갈 때다. <페이크북>으로 생성형 AI 활용 게임 창작의 지평을 탐사 중인 이 대표를 만나 이야기 나눠 봤다.



# <페이크북>이 실사풍을 지향하는 이유

<페이크북>은 친언니의 억울한 죽음을 널리 알리고 싶은 주인공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른바 ‘사이버 렉카’ SNS 계정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담은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이다.

랩톱 UI 상에서 전개되는 실험적 영화 <서칭> 등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페이크북> 역시 가상의 SNS ‘페이크북’ 인터페이스상에서만 전개된다. 언니의 복수를 도모하는 메인 퀘스트, 그리고 페이크북 유저들의 자질구레한 의뢰를 해결해 ‘렉카’ 계정을 성장시키는 사이드 퀘스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이드 퀘스트는 ‘모 카페 알바생의 신상을 알고 싶다’, ‘아무개가 연애 중인지 알고 싶다’ 따위의, 온라인에서 실제로 마주칠 수 있는 자질구레하거나 음험하거나 유쾌하거나 미스터리한 내용들이다. 플레이어는 이용자들의 계정을 넘나들고, 여러 인물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모르는 이의 행적을 재구성하는 등의 방법을 총동원해 답을 찾아내면 된다.

게임 콘텐츠의 확장 방식은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정 구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다음 지역(콘텐츠)이 해금되는 방식을 따른다.

한편 개별 문제 해결은 비선형적 루트로 이뤄질 수 있게 했다. 사건과 관련 없어 보이던 의외의 링크, 글귀, 이미지로부터 실낱같은 단서를 찾아 사실을 간파하는 쾌감을 얻을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새로운 퀘스트가 촉발되기도 한다. 계정 팔로워가 충분히 늘어남에 따라 새 퀘스트가 들어올 수도 있다.

친언니의 죽음에 복수하려는 주인공이 그 수단으로서 '사이버 렉카' 계정을 성장시키는 내용을 담았다 (출처: 반지하게임즈)

게임의 플레이방식에 관해 이 대표는 “엄밀하게 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비유적으로 ‘오픈월드’라고 말하고 있다. 메인 스토리만 진행해도 좋겠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NPC를 찾아 조사하다 보면 새롭고 다양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유저가 이렇듯 자기 의지대로 움직여 답을 찾는 기획이 실현되려면, 광대하면서도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힌 SNS 세계를 되도록 사실적으로 모사할 필요가 있다. 어떤 오브젝트를 클릭했을 때 그 안에 아무 내용물이 없거나 아예 방문할 수 없다면, 즉 유저가 페이크북 세계의 영역적 한계를 자주 느낀다면 '오픈월드 텍스트 어드벤처' 경험의 몰입은 깨진다.

따라서 인게임 게시물은 물론 DM, 댓글, 광고 배너 등 객체들을 최대한 인터랙티브하게 구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통해 페이크북이 '가짜 SNS'라는 사실이 잊히게끔 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이 대표는 "실제로 어떤 스트리머 분께 테스트를 요청했을 때, 콘텐츠를 모두 감상하고도 마치 진짜 SNS를 사용할 때의 습관처럼 계속 피드를 새로고침 하더라. 그때 '의도가 통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고 전했다.

현실적인 UI로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출처: 반지하게임즈)


# 생성형 AI로 가능해진 '텍스트 오픈월드'

방대한 인게임 월드를 현실적 상호작용으로 채워 넣어 몰입을 유도하는 <페이크북>의 게임 디자인은 어쩐지 익숙한 느낌을 준다. ‘GTA’ 등 ‘오픈월드 샌드박스’ 장르와 상통하는 설계다.

그런데 잘 알려진바 오픈월드를 밀도 있게 채워 넣는 작업은 많은 리소스를 요한다. 소규모인 반지하게임즈가 <페이크북>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묵혀둘’ 수밖에 없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임 디테일을 장식할 여러 NPC 계정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 인물들의 이미지를 사용하기에는 콘텐츠 수급도 어려웠고, 당사자에게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 또한 컸다.

현실적 텍스트와 이미지를 손쉽게 생성해 내는 생성형 AI들의 등장 이후 <페이크북> 프로젝트는 비로소 현실성을 지니게 됐다. 생성형 AI를 전면에 내세우는 다른 대다수 게임과 달리 기술보다 기획이 앞서 있었던 셈이다.

실제 같은 SNS 시스템은 현실의 다양한 딜레마를 상기시키고자 하는 게임 전반의 기획 의도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이 대표는 “비슷한 기획의 <오웰>(Orwell)이라는 게임이 있다. 정부 요원이 되어 민간을 감시하는 내용인데, 일러스트 아트풍이어서 개인적으로 몰입이 깨졌다. 우리 게임은 현실에서 유사하게 발생하는, 여러 회색지대의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런 사건들에 몰입한 유저들이 현실 세계의 딜레마를 한 번 곱씹어 보길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실사풍의 아트 표현은 중요했다”고 설명한다.

(출처: 반지하게임즈)

한편 생성형 AI로 만들어진 <페이크북>의 NPC 계정들은 게임의 점증적 월드 구조를 감추는 수단이기도 하다.

오픈월드 게임의 장점은 유저가 자신의 마음대로 모험 루트를 정하면서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양날의 검이어서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았거나 예상치 못했던 순서대로 콘텐츠를 접하게 되는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몰입이 깨지는 것은 물론 중대한 버그로 이어질 수도 있는 지점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적잖은 오픈월드 게임이 월드를 처음부터 모두 열어두는 대신, 조금씩 개방해 나가는 방식으로 콘텐츠 호흡을 통제한다. 이러한 단계적 구조는 '월드 해금'과 같은 시스템으로 전면에 드러나는 경우도 많지만, 은밀히 숨겨지는 경우도 많다. 가령 유저들이 초반부터 접근해서 안 되는 지역이 있다면, 해당 지역에 어려운 적을 집중 배치해 자연스럽게 동선을 유도하는 방식이 자주 사용된다.

<페이크북>의 월드 역시 단계적 구성을 띈다. 새로운 퀘스트를 완수하거나 주요 인물과 접촉하는 등의 트리거를 통해 새로운 ‘영역’이 해금되고 거기서부터 새 이야기가 펼쳐진다.

문제는 이런 월드 구조에서는 유저가 아직 덜 열린 월드의 경계에 접근했다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것은 가상 세계에 갇혔다는 자각을 강하게 선사하는 요소로, <페이크북>과 같이 몰입감을 중시하는 게임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이때 생성형 AI로 만든 여러 NPC 계정들이 일종의 연막이 되어준다. 아무 NPC 계정이나 클릭해도 그 내용물이 나름 알차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유저는 '콘텐츠의 끝'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없다.

(출처: 반지하게임즈)


# 아직 ‘디렉팅’이 필요한 AI

이처럼 <페이크북>은 생성형 AI의 등장에 힘입어 현실화한 프로젝트다. 그러나 생성형AI가 개발진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준 것은 아니라고 이 대표는 말한다.

AI는 아직 원하는 결과물을 완벽하게 내놓는 마법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콘텐츠 선별, 수정 작업이 꼭 필요하다. 높은 완성도를 요하는 콘텐츠일 수록 그렇다. 이 대표는 “기획 의도가 반영되어야 하는 스토리라인 등은 AI에 맡기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대신 ‘자연스럽기만 하면 되는’ 엑스트라 NPC 관련 짤막한 콘텐츠에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도 생성물을 원하는 대로 유도하는 'AI 디렉팅'과정은 여전히 필요했다.

최신 기술인 만큼, 업계 전반적으로 연구가 충분히 선행되지 않은 분야다. 개발팀도 유튜브 등을 뒤져가며 독학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이른바 '강의'를 만들어 올리는 유저들 스스로도 그 원리나 작동방식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경험적 팁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당한 퀄리티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뽑아내는 데에는 문제없는 수준이지만, 상업적 활용이 필요한 반지하게임즈의 사정에는 맞지 않았다. 

AI 방면의 현업자들을 만나도 문제는 여전했다. AI 엔지니어는 많아도, 프롬프트 전문가는 아직 많지 않아서다. 이 대표는 “여러 전문가를 만나 자문했다. 그러면서 느낀 점인데, 기술 자체는 복잡하고 세련된 반면, (프롬프트를 이용해) AI를 디렉팅하는 방식은 저평가되어 있거나, 아직 다들 잘 모르는 단계 같다. 현재는 모두가 초보인 셈이다. 그래서 (비전문가로서) 오히려 힘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반지하게임즈가 찾아낸 '파인튜닝' 방법은 그래서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이 대표는 "솔직히 말해 고도화된 프롬프트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관련 연구소에 계신 분들과 얘기를 해 봐도 놀랄 때가 많다. 개념적으로는 파인튜닝이 어럽게 보이지만 그런 분들도 실무에 적용할 때는 틀린 결과를 재학습시켜 새 결론을 내는 등, 당연해 보이는 방법을 많이 쓰더라"고 설명했다.

텍스트 작성엔 클로바X가 사용됐다.

텍스트 생성 작업에는 한국어 데이터를 학습한 네이버의 LLM 클로바X를 썼다. 영어 위주로 학습한 챗 GPT 등 유명 LLM들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한국어 텍스트 작성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개발진은 경험적 한계를 뛰어넘은 게시글을 작성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접하기 힘든 연령층이나 관심사의 사람들이 쓰는 어투를 리얼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원하는 말투를 프롬프트로 직접 입력해 요청하기도 했고, 해당 인물 유형의 전형을 보여줄 수 있는 실제 SNS 게시물을 학습시켜 말투를 구현하는 방식 등을 썼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엄청난 효율화, 자동화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 대표는 "이상한 결과도 많이 나온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고. 그런 결과는 어차피 사람이 일일이 검수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원하는 작업물이 나올 때까지 프롬프트를 이리저리 고치기도 하고, 내용 자체를 직접 손대서 완성시키기도 한다.

이미지 생성에서도 적절한 인간 개입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인게임 사건의 주요 단서로 사용될 핵심 이미지에 있어서는 이미지 생성 AI가 어려워하는 ‘일관성 유지’가 걸림돌이 된다. 이를 극복할 방편으로는 참고할 이미지를 인풋으로 입력해 가공하는 방식의 ‘이미지 투 이미지’ 기술을 자주 사용했다.




# 정립되지 않은 생성형 AI 활용의 컨센서스

지난 28일 반지하게임은 <페이크북>의 크라우드펀딩 페이지를 오픈했다. 이 대표는 소개 페이지에서 게임에 생성형 AI를 활용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특히 많은 공을 들였다. 아직 민감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뚜렷한 이유가 있다. 실사 이미지를 직접 사용할 경우 실제 사람에 대한 권리 침해 소지가 크다. 실사풍이지만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창조해 다루는 편이 더 안전하며, 여기엔 생성형 AI가 적합하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현재 대중과 시장 모두 생성형 AI의 수단적 장래성은 중요하게 논하지 않는다. 사용의 당위성 혹은 효용성을 따져 성토하거나 품평하는 데만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성형 AI 활용을 허하거나 권장할 영역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 마련의 움직임이 없다.

따라서 생성형 AI를 사용한 창작은 현재로서는 살얼음판이다. 이 대표는 “창작자 입장에서 AI를 사용해 다양한 걸 시도해 보고 싶은 의향이 있는데, 그러한 환경이나 여론이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사회적으로 배격되어서) 기회가 없어지면 어떻게 할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향후에도 '적합한' 기획이라면 생성형 AI를 사용할 의향이 있다. 이 대표는 "노하우를 얻었다는 이유로 이미지나 글을 모두 AI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텍스트에 일부 공백을 남겨서, 유저의 행적에 따라 해당 텍스트가 AI로 생성되게끔 한다던가, 비용 및 현실성의 절충안으로서 AI를 적용하는 방향성을 생각 중이다. 일단은 기획이나 아이디어가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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