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존감'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진정 나 자신을 위한 것일까? 어쩌면, 지나치게 타인에게 의식한 나머지, 외부적인 요소에만 나를 맞추고 대입시키는 것은 아닐까.
겜브릿지 첫 퍼블리싱 타이틀 <시미(SIIMI)>는 이러한 생각을 발단으로, 진정 자신을 위한 자존감을 찾는 방법을 위해 서울여대의 '고인돌' 팀이 만든 게임이다. 게임학과가 아닌 콘텐츠 디자인학과생들의 작품으로, 졸업작품으로 시작해 겜브릿지와 연이 닿아 올해 1월 1일, 정식 출시됐다.
<시미>는 우리가 좇는 대부분이 사회 혹은 외부적인 요소로부터 오는 '가짜 자존감'임을 알고 이를 경계하고, '진짜 자존감'을 찾아 가장 중요한 '나'를 찾고 그 누구보다 사랑해야 하는 존재임을 알기를 바라고 있다.
출시 이후, 게임은 여러 스토어를 통해 유저로부터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위로와 공감이 됐다는 것부터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듯해 씁쓸하다는 반응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존감'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미>를 개발한 고인돌 팀을 만났다. / 디스이즈게임 정혁진 기자
디스이즈게임: 게임 <시미>에 대해 먼저 간단히 소개한다면. 어떻게 만들게 됐나?
김해인 기획담당(이하 김해인): <시미>는 어드벤처 장르의 모바일게임이다. 올해 1월 1일 애플, 구글에 출시돼 이제 1개월 조금 넘었다.
보통 게임은 진행할수록 성장 혹은 획득 등 추가적인 요소를 갖추기 마련인데, 이와 반대로 <시미>는 잃는다는 시스템으로 '자존감'이라는 주제를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유저는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진짜 자존감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겜브릿지의 첫 퍼블리싱 타이틀이기도 한데, 어떻게 함께 하게 됐나?
김지원UX/UI 디자이너(이하 김지원): 예전에 이야기와 관련한 콘텐츠를 다루는 곳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스토리 디자이너 워크샵을 갔었는데, 강사님이 겜브릿지 소속 PD분이셨다. 당시 졸업작품으로 <시미>를 준비 중이었는데, 워크샵을 계기로 연을 쌓으면서 그분에게 자문을 얻었다.
김해인: 사실, <시미>의 현재 출시 버전과 졸업전시회 당시 만든 버전은 다른 점이 많다. 큰 틀과 스토리는 거의 유사했지만, 챕터와 각종 즐길 거리 등 볼륨이 좀 늘어났다.
전시회 당시 게임을 좀 더 업그레이드 하고 싶었고 개발 인력을 추가로 찾던 상황이었다. 그때, 겜브릿지 도민석 대표가 "<시미>를 퍼블리싱하고 싶다"며 제안해줘서 함께 하게 됐다.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소재인 만큼, 전시회 당시 제법 인기를 얻었을것 같다.
조현아 그래픽 디자이너(이하 조현아): 그렇다. 당시 전시회에 체험형 콘텐츠가 많아서 사람이 꽤 많았다. 게다가 <시미>도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지금보다 완성도가 매우 낮았고, 별도 버전을 만든 것도 아니어서 한 번 하면 30분 정도 플레이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엔딩까지 모두 플레이 해주셨다. 전반적으로 후기가 좋았으며 많은 분들이 "게임이 꼭 출시 됐으면 좋겠다"며 격려도 해줬다. 기뻤다.
졸업 작품으로 게임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얘기를 들어 보니, 게임 관련 학과도 아니라고 들었다.
김해인: 그렇다. 콘텐츠 디자인학과로 게임 전문 학과는 아니다. 게다가, 팀원 모두 게임을 만들어 본 적도 없다. 주제를 어떤 방법으로 다룰까 하다가 이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게임이 적합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졸업전시회를 포함하면 2년 정도 걸린 것 같다. 기반 지식이나 틀이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학습하며 게임을 개발해야 했다.
개발 도중 팀원도 여럿 바뀌고, 졸업한 뒤에도 계속 개발하려 했을 때 전문 인력도 없었다. 졸업프로젝트 때도 이어 붙이기 식으로 만들었고 출시를 염두에 둔 게임도 아니어서 스펙도 낮았다. 여러모로 주변 분들의 도움이 컸다.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다.
얘기만 들어도 쉽지 않은 과정같다.
조현아: 그렇다(웃음). 나같은 경우는 <시미>를 위해 1년 더 학교생활을 했다. 4학년 때도 졸업할 수 있었는데 이 실력으로 졸업작품을 적당히 만들어 내기 싫었다. 조금 더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학교에 남기는 작품을 멋지게 남기고 싶었다. 쉽지 않았지만 후회 없는 작품이 된 것 같다.
김해인: 다들 대충, 가볍게 가기 싫어했다. 하다 보니 애정도 쌓였다. 단순 졸업만 하기위해 무의미하게 하는 것도 싫었다. 나아가, 졸업했다고 이것(시미)을 끝내기도 싫었고.
중간평가도 떨어졌다(웃음). 처음 스토리만 있었을 때에는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가지고 교수님께 발표를 하니 틀이 없어서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민해서 게임으로서 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살토끼' 만화처럼 포인트 & 클릭, 드래그 & 드롭을 통해 아이템을 적절히 사용해 시미의 몸에 붙은 나뭇잎을 떨구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아이디어도 이때 들어갔다.
이후 1주일뒤 재발표를 했고 교수님도 통과를 시켜주셨다. 겜브릿지 도민석 대표에게 자문을 얻은 것도 이 시점이다.
<시미>는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나? 전체적인 게임 구성도 얘기해주면 좋겠다.
김해인: 주인공 '시미'는 사막의 마을에 사는 미(MI)종족이다. 미(MI)들은 신성한 나무 위그드라미와 살아가는 생명체다. 이들은 위그드라미를 따라하며 외적으로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항상 꿈꾼다.
하지만 꾸밈 실력이 서투른 시미는 마을에서 따돌림을 받게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기준에 시미는 지치게 된다. 이후 시미는 더 이상 위그드라미처럼 보이는 데 애쓰지 않기로 결심하고,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마을을 떠나게 된다.
스토리는 총 5개다. 각각 발단부터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콘셉트가 나뉘어 있다. 스토리 대로 시미가 모험을 떠나게 되는 계기, 그리고 모험을 통해 여러 곳으로 모험을 떠나고 챕터마다 진짜 자존감을 찾는 메시지를 경험하게 된다. 각종 등장인물을 만나며 미니게임도 벌일 수 있다.
게임의 플레이 방식과 장르는 어떻게 선정했나?
김해인: 유저가 직접 나뭇잎을 제거한다고 느끼게 해야 하고, 무엇보다 스토리가 부각되는 플레이 방식이어야 했다. 너무 늘어지지 않는 개발 기간도 추구해야 했기에, 스토리 서사를 중심으로 하는 '포인트 & 클릭 어드벤처' 장르를 선택했다.
플랫폼은 모바일이다. 아무래도 주 타깃인 20대에게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게임 분량도 고려하면 모바일이 적합하겠다고 생각했다.
게임의 기획 의도, 그리고 과정을 보면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주려는 듯 했다. 왜 이런 게임을 만들게 되었는지,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궁금하다.
조현아: 졸업작품을 통해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담아 표현하고 싶었다. 당시 여러 아이템을 생각하던 가운데 흔히 우리 세대가 하는 얘기 주제이기도 한 '자존감'이 나왔고 이를 게임으로 풀어보기로 했다.
김지원: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 관심사의 목적을 보면 자존감과 관련되어 있다. 취업문제를 비롯해 학교 성적, 외모 등.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이기도 하다. 게임이라는 가볍게 접근할 방법으로 자존감을 높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해인: 자존감과 관련된 것에는 다양한 것이 해당되겠지만, 게임을 통해 모든 요소를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범위가 넓어진다. 비주얼 적으로 확실히 드러나는 주제로 좁혀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따라서 <시미>에서는 이중 외모로 인한 자존감의 하락을 다루고 있다. 게임이 콘텐츠 특성상 시각적 연출이 뛰어나기도 하고. 주제는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서 외모만을 기준으로 해 형성되는 ‘가짜 자존감’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플레이를 통해, 일종의 심리 치료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봐도 되나. 또, 그런 것을 위해 게임에서 마련한 장치들을 설명해준다면.
김해인: 게임 속에서 외모를 판단하는 기준이자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나뭇잎'을 제거하는 것을 게임의 주된 목표로 삼았다.
미술치료적 기법을 적용해 나뭇잎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게임에 노출해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유사한 방법으로 미술치료를 하기도 한다. 그 점에 아이디어에 착안해 게임을 진행하며 반복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게 된다.
또, 미(MI) 종족과 관련된 내용을 통해 자존감이 낮아지는 원인이 단순히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넣었다.
조현아: 앞서 얘기했듯 몸에 붙은 나뭇잎을 모두 없애는 것이 목표다. 스토리 내용 전달과 관련 있어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단순 반복을 피하기 위해 여러 미니게임을 넣었다.
게임을 통해 게임에서 '진짜 자존감'과 '가짜 자존감'을 가린다고 들었다. 어떤 기준에서인가.
김해인: 기획을 하면서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라는 서적을 참고했다. 여기에서는 돈이나 외모같이 변하는 가치를 우리가 추구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자존감을 세우는 주축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변하는 가치인 만큼 흔들리기 마련이며, 그에 따라 우리 역시 흔들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이 공감됐다.
가짜 자존감은 가변적인 요소라면, 진짜 자존감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이는 나 자신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유저에게 게임을 경험하며 진짜 자존감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마련하고 힐링하기를 의도했다. 게임에는 여러 캐릭터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자존감을 찾을 곳이 많지 않다는 것도 참 슬픈 현실이다. 많은 생각이 들었을것 같다.
김해인: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아닌데, 개그우먼 박나래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내 안에는 개그우먼 박나래도 있고, 한 가족의 딸로서 박나래 등 여러 모습이 있다. 어느 쪽에서 무너져도 박나래 자체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얘기했는데, 바로 이것이 <시미>에서 하고 싶은 말과 같다고 생각했다.
게임에서 주인공 '시미'를 포함해 많은 등장 인물들은 나무같아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고 그를 따른다. 그러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외형적인 것만 추구할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면 다양한 선택지가 있고 여기서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싶었다.
우리가 너무 자신의 자존감을 대변해주는 무언가를 따르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본인이 자존감을 위해 추구하고 신경쓰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게임에서 이끌어낸(혹은 제시한 자존감을 이끌어내는) 것을, 현실과 이어지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다. 마냥 희망적인 메시지만 주고 끝내는 것은 허무할 수도 있으니까.
김해인: 우리는 <시미>를 통해 무엇을 바꾸겠다는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보다 유저가 게임을 하면서 짧은 시간이라도 힐링하고 위안을 얻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는 부분에 집중했다.
그것이 좋아 여러번 곱씹다 보면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자존감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될테고. 일종의 길을 만들어 주는 '창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 얘기들을 들어 보면 출시 후 많은 유저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었을것 같다. 반응이 어땠나?
김해인: <시미>를 플레이한 유저의 리뷰 중 인상 깊은 얘기들이 여럿 있었다. "현실이 생각나 씁쓸했다"고 한 이도 있었다. "사랑스러웠다"거나 위로, 힐링이 됐다는 의견도 많았다. 뿌듯했다.
조현아: 의도하고 기획한 부분이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도 색을 입혀주신 점도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모두에게 똑같은 의미를 주기 보다는 개인마다 하고 난 감상이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일부러 중이적인 표현도 많이 썼다.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는것 같아 감사했다.
국내에만 출시되기 아깝지 않나. 다른 국가 출시도 계획하고 있나?
김해인: 물론이고 업데이트 일정에 포함되어 있다.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많은 국가에 선보일 수 있을것 같다. 다만, 아직 시기나 국가는 결정하지 않았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김해인: <시미>가 출시가 1개월이 조금 넘은 상황이라 아직 성과를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후 일정은 그에 따라 결정될것 같다. 혹 차기작까지 끌고 가게 된다면 상황은 더욱 달라지겠지만(웃음).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한 마디.
김지원, 조현아, 김해인: 생각보다 많은 힘을 들여서 "어떻게 이런 게임을 만들었지?" 싶을 정도였다. 많은 애정을 가지고 만들었다. 많이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시미>를 계기로, 이런 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게임이 또 나오기를 기대한다.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