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나인의 이야기는 ‘맨티스 FPS’에서 시작된다. 2017년, 열정만 가득했던 아마추어들은 맨티스 FPS를 창단했다. 이들은 2019년 <레인보우 식스 시즈>(이하 시즈)의 국제대회 ‘식스 인비테이셔널’ 참가자격을 얻으며 2년만에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경험과 실력이 아직 미천한 아마추어에게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이들은 최강팀으로 평가받던 ‘G2’와 같은 조에 배정됐다. 두 팀의 체급과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국과 아시아 지역은 프로팀도 몇 없었고 제대로 된 대회도 적었다. 반면 유럽에는 쟁쟁한 프로팀이 넘쳐났으며 대회도 풍족했다.
이변이 생겼다. 경기 자체는 0:2 완패였지만 최강의 G2에게 1세트를 뺏을 뻔한 상황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풍족했던 프로팀을 상대로 코치도, 감독도 게이밍 하우스도 없는 아마추어가 그들의 자존심을 구길 수 있었다.
‘한국 출신 최약체’가 보여준 패기가 기적을 만들어냈다. 프로게임단 클라우드 나인(이하 C9)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새로운 시작을 원했던 C9은 곧바로 맨티스 FPS와 계약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많은 일이 있었다. C9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지역 최강자로 거듭났다. 최약체 시절은 머나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이제 C9에게서 맨티스의 흔적을 찾아보기조차 힘들 정도다.
그렇다면 C9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C9이 걸어온 지난 1년간의 여정, C9의 노바(Nova) 이시헌 선수와 샤일(SyAIL) 송동선 선수에게 직접 물어봤다. 인터뷰는 체온 측정과 소독 절차를 거친 뒤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진행됐다. / 디스이즈게임 박성현 기자
디스이즈게임: 1~2년전보다 국내에서 시즈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확 늘어난 것 같아요. 인기가 체감 되시나요?
노바: 확실히 대회 시청자가 늘어났어요. 신규 유저도 많이 유입됐어요. 새로운 선수도 등장했어요. 원래는 판이 작다보니 선수끼리 다 아는 사이였거든요. 그런데 처음 보는 선수들이 대회에 나온 걸 보고 판이 커졌다는 게 체감이 되더라고요. 당연하지만 개인 방송에서도 절 알아보는 사람도 늘어났죠.
샤일: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식스 메이저 8월 대회(Six August 2020 Major: APAC)를 이기고 트위터 팔로워 수가 700명에서 3,600명 정도로 확 늘었어요. 그러고보니 하루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친한 동생이 저의 팬이라고, 다음에 고향에 놀러가면 사인 좀 부탁한다고 하더라구요.
노바: 샤일 선수가 팬이 많긴해요. 화끈하고 시원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포지션이라 주목도 많이 받아요. 게다가 실력까지 좋아서 더 그럴거에요. 대회 채팅이나 해외 스트리머들도 부러워할 정도예요.
이제는 게이밍 하우스도 생기셨어요. 숙소 분위기는 어떤가요?
노바: 샤일 선수가 제일 웃겨요. 스크림을 진행하면 보통 진지한 각오로 임하잖아요? 샤일 선수는 스크림을 즐겨요. 수류탄이 날아오면 전쟁 영화처럼 “수류탄!”이라고 외치거나, 죽을 때면 비명을 지르고 그래요. 샤일은 언제나 저래요. 게이밍 하우스에 모일 때나 아닐 때나 한결같아요.
물론 게이밍 하우스에 모이면 저희도 스크림을 즐기면서 하죠. 대회장처럼 일자로 앉아 진행하니깐 서로 의지하고 응원하는 일이 자연스레 많아요. 잘 될 때는 하이파이브도 하고 질 때는 서로 격려도 하고.
샤일: 서로 물리적으로 모일 수 있는 게 큰 거 같아요. 장난칠 수 있으니 분위기가 훨씬 좋아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멤버 모두가 똑같아요. 연습에 끼치는 영향도 커요. 집에 있을 때와 숙소에 있을 때 일정 자체가 달라져요. 자연스레 연습도 더 많이하고, 더 집중해서 하게 되더라구요.
C9의 승리 비결은 단순하다. 더 많은 연습과 철저한 연구다. 이는 C9이 아시아 최강팀이라 평가받은 자이언츠 게이밍(Giants Gaming)을 상대로 식스 메이저 8월 대회에서 완승을 따낼 수 있던 비결이다. 그야말로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인 셈이다.
C9 대 자이언츠 게이밍 하이라이트 출처: 시즈GG
C9의 경기를 볼 때마다 전략 연구를 많이 하는 팀인걸 느껴요.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노바: 전략 연구는 주로 코치님이 맡아요. 상대팀 플레이 영상을 보며 특징을 분석해요. 코치가 정리한 걸 다 같이 보면서 의견을 나누죠. 코치님이 머리가 진짜 좋아요. 저희가 생각하지 못하는 걸 잘 뽑아내거든요.
샤일: 코치님 도움이 확실히 많이 되죠. 식스 메이저 8월 우승도 코치님 덕이 커요. 특정 오퍼레이터 밴이라거나, 맵 픽 같은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어요.
노바: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상대가 선호하는 맵이에요. 그 맵에서 상대가 어떻게 플레이하는지를 생각하며 밴픽을 계획해요. 식스 메이저 8월 결승전 마지막 세트를 예로 들게요. 맵은 도스토예프스키 카페였어요. 저희는 자이언츠 게이밍의 히스테릭스 선수를 파악했어요. 그 선수가 카페 맵에서 애쉬를 선호하는 걸 알고 저격밴을 했어요. 저희가 3:1로 완승할 수 있는 쐐기를 꼽은 밴픽이였죠.
그럼 하루 연습 시간은 어느 정도 되시나요?
노바: 하루 총 9시간을 연습해요. 랭크만 따로 4시간, 스크림과 피드백이 5시간 정도네요. 일정은 유동적이에요. 스크림을 더 하기도 하고, 없는 날에는 랭크를 더 하죠. 대회가 다음 날이면 랭크 대신 상대팀 VOD를 시청하기도 하고요.
샤일: 오전은 자유시간으로 둬요. <오버워치>나 <롤>은 낮에 스크림이 될지 몰라도, 저흰 낮에 스크림을 하는 팀이 많이 없어요. 가령 가까운 일본 프로팀은 ‘준프로’에요. 실력이 아니라 여건이 문제에요. 일본 선수들은 프로게이머가 부업이에요. 낮에는 각자 직업에 종사하고 평일 밤에야 겨우 시간을 낼 수 있어요.
노바: 국내 팀들도 상황이 다르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리그 규모가 작아서 그런 것 같아요. 해외 프로팀과 스크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죠. 해외팀과 하다보면 시차도 고려해야 하니 일정도 더 늦어지죠. 보통 새벽 1시쯤에 끝났던 것 같네요. 일과가 끝나면 보통 2~3시까지 개인 연습을 진행하거나 피곤하다 싶으면 잠을 자고 그래요.
스크림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특히 핑(Ping)문제도 있을텐데.
노바: 스크림 일정은 코치랑 제가 잡아요. 웬만하면 스크림 상대로 식스 메이저 아시아 출전팀을 골라요. 그 팀들은 각 나라의 상위권 팀이에요. 상대가 안 구해질 때는 2티어 팀과 진행을 하구요. 2티어 팀은 1티어 팀에서 상대를 잘 안 해주려고 해요. 개인 연락으로 2티어 팀에서 스크림 요청이 올 때가 많아요.
핑 차이는 괜찮아요. 식스 메이저 아시아 대회는 홍콩 서버에서 따로 진행되거든요. 스크림을 진행할 때도 홍콩 서버에서 진행해요. 대신 북미나 유럽 팀과는 진행이 불가능해요. 아무래도 핑 차이가 십 단위도 아니고 백 단위씩 나오니깐요. (웃음)
다른 지역팀과는 국제 대회가 아니면 서로 붙어볼 일이 없는 거네요. 그럼 다른 지역팀을 분석하기 어렵지 않나요?
지난 식스 메이저 8월 우승을 평가한다면?
‘아시아 최강팀’ 평가가 붙은 자이언츠 게이밍을 이긴 게 대단했어요. 당시 결승전을 앞두고 팀 내 분위기는 어땠나요?
샤일: 그때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이 그거였어요. “지더라도 부끄럽게 지지 말자.” 저는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이 아니면 못한다. 우리가 이렇게 결승까지 올라올 기회가 없을 수 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