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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을 떠난 플래시... "기술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남는다"

[인터뷰] R.I.P. 플래시 프로젝트의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미술 큐레이터 권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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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1-06-24 22:29:03

2017년 어도비는 일찌감치 플래시 플레이어의 지원 중단을 발표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31일, 플래시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나 게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플래시는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키워드다. 특히 플래시게임은 디지털 세계에서 유년기를 보낸 많은 이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과 미술 큐레이터 권태현 두 사람은 '코옵'이라는 기획팀을 만들고 2019년부터 플래시 추모 프로젝트 'R.I.P. 플래시'를 진행하고 있다. 코옵은 장례식 콘셉트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기고문을 싣고, 방명록을 열어두는 한편, 플래시게임과 아카이브를 주제로 두 차례의 토크를 진행했다.

 

이들은 ​그간의 결과물을 책으로 엮기로 했다. 아울러 간단한 웹게임과 몇 가지 굿즈를 만들어 플래시를 조금 더 유쾌하게 보내주기로 했다. 두 사람은 왜 플래시라는 일개 기술의 장례식을 열기로 한 걸까? 박이선과 권태현은 플래시에는 추억을 넘는 의미가 있고, 오늘날 게임 생태계에 플래시가 미친 영향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했다.

 

왼쪽부터 권태현 큐레이터, 박이선 연구자

 


 

Q. 디스이즈게임: R.I.P. 플래시는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A. 박이선 (이하 박): 2019년 플래시의 죽음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게임문화연구자인 나와 큐레이터인 권태현 님이 함께 플래시의 자취를 살펴봐야겠다고 뜻을 모았다. 같이 장례식을 해보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있는 플래시이니만큼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기록을 공유하고, 방명록에 플래시라는 문화에 대해 함께 추모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A. 권태현 (이하 권): R.I.P. 플래시 프로젝트는 꾸준히 외연을 넓혀왔다. 처음에는 기술문화의 사라짐에 대한 비평적 접근이었는데 추모 프로젝트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우리 연구 이상으로 플래시를 기억하고 그 추억을 함께 나누자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Q. 어떤 플래시게임을 즐겨 했는지?

 

A. 박:​ 한국에서 보이는 특별한 경우인데, 네이버는 주니어네이버, 야후는 야후꾸러기를 가지고 있었다. 포털사이트에서 플래시게임들을 서비스한 건데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거기에 실린 게임들은 거의 다 해본 거 같다. CD를 살 돈도 없고, 컨트롤도 안 되는데, 플래시 포털에 접속하면 나의 눈높이에 많은 게임이 수백 가지 있었다. 요리하기, 옷입히기 이런 것들도 있었고. 무슨 무슨 '쏭' 시리즈들도 있었고.

 

연구를 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이 세대는 같았지만 성별과 지역이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즐긴 플래시 콘텐츠가 조금씩 달랐단 것이다. 플래시가 사라진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화적 사건인데, 플래시를 가지고 논 사람들의 기억은 전부 달랐던 것이다. 나는 '슈게임'이나, '고향만두'를 즐겼는데 태현 님은 해본 적이 없다더라. 

 

A. 권​: 지금도 기억나는 게 '후레쉬맨'(원명은 무개성전대 ○○레인저)이다.

 

 

Q. 게임 로고를 클릭하면 히든 캐릭터를 플레이할 수 있는?

 

A. 권: 맞다 (웃음). '성지키기'로 알려진 디펜스 게임도 재밌게 했다. 연구를 하면서 플래시게임이 따로 인스톨하지 않고 인터넷에 주소만 치면 어디서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문화적 파급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권태현 큐레이터

 

# 유저 창작, 인터랙티브 웹의 문을 연 플래시

Q. 당시에도 CD 게임이나 TV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퀄리티는 떨어졌는데도 플래시를 거의 집중적으로 즐긴 세대군이 있는 것 같다.

 

A. 박: 당시 플래시 콘텐츠를 보면 그때 말로 '엽기'스러운 것들이 많았다. 대충 그려서 막 움직이는 것들. 그런 요소들이 플래시게임에 많았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조악하고 웃긴 것들.

 

A. 권: 옛날에는 UCC라고 부르던 것들도 웰메이드라기보다, '엽기' 느낌의 콘텐츠가 많았다. TV에 방영되는, 유명 스튜디오에서 나온 애니메이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끄적끄적 만든 유저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었던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A. 박: 요즘 유튜브에서처럼, 플래시도 마찬가지로 자기 레벨에서 만들고 싶은 것 만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주전자닷컴도 그렇고. 솔직한 자기 표현이 담겨있는, 정제되지 않는 것들이 바로 플래시의 창작 문화가 아니었나 싶다.

 

 

Q. 플래시가 인터랙티브 웹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부연하자면?

 

A. 권: 당대 웹사이트의 UX를 생각해보자면, 하이퍼링크가 작동하긴 해도 대체로 텍스트 중심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플래시 기반의 홈페이지 제작은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플래시 기술로 인해 인터넷의 모양 자체가 바뀌어갔던 것이다.

 

요즘은 촌스럽다고 잘 안 쓰지만,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 대면 화려한 애니메이션이 나타난다던가, 날개 메뉴가 등장한다던가... 그러한 인터랙티브 디자인이 플래시를 통해 보편화됐다. 

 

A. 박: 또 플래시를 통해서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측면도 있다. 다운로드 속도가 1초에 56KB였던 시절이었는데, 플래시는 벡터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불러오기가 굉장히 빨라서 웹에서 호환성이 좋았다. 

 

메뉴를 누르면 소리가 나고, 웹사이트 자체에 스토리를 구성하기도 하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플래시에서 액션스크립트를 써서 코딩을 할 수도 있었는데, 이걸 통해서 게임 같은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만들었던 것이다. 

 

 

Q. 반응이 좋았던 플래시게임들은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은 반일, 반미 감정이 굉장히 컸던 것으로 기억하는 축구선수 유상철이 조지 부시의 오노군단과 대적하거나, 사극에 나온 허준이나 이순신이 미국과 일본을 응징한다는 내용의 콘텐츠들이 인기였다.

 

A. 권: 당시로서는 참신했던 시도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게임의 방식을 채택한 것도 흥미롭다. <불멸의 이순신> 게임에는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것에 대한 역사적 문제들이 나오고 그랬는데, 문제가 어려워서 인터넷에 족보 같은 것도 공유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족주의적이긴 하지만, 게임을 통해서 역사 공부도 됐다.

 

 

Q. 동국여지승람! 네이버 붐에서 족보를 봤던 기억이 난다.

 

A. 권: 맞다. (웃음)

 

지금은 작고한 유상철 전 감독은 과거 '홈런왕' 밈(meme)을 가지고 있었다.
<불멸의 이순신> 게임의 문제 코너. 상당한 호응을 얻었던 두 게임의 개발자는 같은 사람이다.

 

 

# 우리는 어쩌다가 플래시를 '추모'하게 되었나?

 

Q. 이렇게 인기를 끌었다가, '곡괭이 시리즈'의 2010년대 중반까지 매니아층을 보유하던 플래시가 왜 지원을 중단한 건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A. 권: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분야 말고도, 예전엔 플래시로 안 만든 게 없었다. 네이버 지도에도 유튜브에도, 구글 안에도 플래시가 많았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내놓으면서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굴러가기엔 플래시가 너무 무겁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 플래시는 해킹당하기 너무 좋았다. 잡스를 중심으로 업계에서 플래시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랜섬웨어 사건도 끊이지 않으면서 플래시보다는 HTML5로 대체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2017년 들어서 어도비에서도 문제를 인정했고, 플래시 업데이트를 종료하기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기업이 자기 기술의 사망을 선고한 것이다. 그렇게 2020년 12월 31일부터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의 플러그인 지원이 종료됐다. 발표가 2017년에 있었으니 유예기간이 굉장히 길었던 셈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둔 것은 세계적으로 플래시가 많이 쓰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시간 동안 정부 프로그램도 바뀌고, 대학교 사이트도 바뀌었다. 플래시 개발자들도 다른 쪽으로 직업을 바꾸게 됐다.

 

이제 일반적인 방법으로 플래시 콘텐츠를 웹에서 이용할 수 없다.

 

Q. "기술이 죽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활자 인쇄에서 기술이 발전하고, 개선되면서 디지털 프린팅이 일반화된 것처럼 구 기술의 소멸은 당연한 것 아닌가? 플래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이 있다면?

 

A. 권: 플래시가 조금 더 특별했던 이유는 인터넷 플랫폼에서 그야말로 다방면에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정 브라우저들이 수년 동안 이 기술적 변화에 대한 공지를 했다. 보통 기술적 변화가 생기면 패치노트 같은 곳에 기록만 해두는 방식으로 하지 않나?

 

근데 플래시 지원 중단은 인터넷 브라우저에 접속하는 순간부터 경고창처럼 나타났다. 플러그인이 없어지는데, 이렇게 장기간 동안 준비하고, 대대적으로 알려야 한다니 유례없는 일이다. 다른 회사의 프로그램 서비스가 종료되는 건데 말이다.

 

플로피 디스켓에서 CD로 넘어올 때 '몇년 몇월 몇일부터 디스켓 안 씁니다' 하지 않았다. 플래시는기술이 없어지고, 그에 따른 빈자리가 생기는 것을 모두가 준비하고 감각해야 했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이 국면을 인터넷을 쓰는 모두가 느껴야 했다는 것 자체를 탐구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A. 박: 기술이 죽는데 하필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창조했던 문화 기술이었던 것이다. 카세트테이프가 사라졌지만 라디오로 방송을 녹음하던 것이나, 테이프를 뒤집어서 꽂았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도 기술은 소멸됐지만, 그것을 향유했던 사람들이나 기억은 남아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Q. 과거 플래시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

 

A. 박: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 당시를 기억해줄 만한 분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제는 대부분 나이가 들었던 분들이다. 2000년대 현업 플래시 개발자라면 지금 40~50대라서 직업을 바꾸신 분들이 많았다. 유니티로 전직하셨거나, 웹 개발자로 가셨거나. 실제로 유니티 커뮤니티에서 플래시 개발자를 만날 수 있었다. 책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Q. 플래시 개발자들이 유니티로 많이 건너간 건가?

 

A. 박: 유니티 엔진이 플래시 이후에 나온 거고, 애니메이션 코딩과 이어붙이는 작업 등, 에디터에서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어느 정도 유니티가 플래시를 계승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데, 유니티가 또 자바스크립트를 지원하기 때문에 플래시 하셨던 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해보면 '플래시가 죽은 건가' 생각도 든다. 제작 툴에 있었던 기능들이 현세대에도 너무나도 잘 남아있지 않은가? 플래시라는 이름만 없어졌을 뿐이지 기술적인 측면은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Q. 마이그레이션을 통해 플래시를 보존하려는 시도도 있다. 

 

A. 권: 마이그레이션(Migration)은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존재했다. 플로피디스크에서 CD로 넘어간다든지, 브라운관에서 디지털로 간다든지. 데이터 마이그레이션은 콘텐츠는 같지만 다른 포맷에서 재생하기 위해서 다른 기술 표준을 사용해 번역하는 작업이다. 말 그대로 이주를 시키는 거다. 

 

플래시의 경우, 사실 오랜 시간 플래시가 없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분들이 있다. 인터넷 서버비만 내면 유지되기 때문에 몇몇 플래시게임들이 웹사이트에 마이그레이션되어 보존되어있다. 이걸 체계적으로 진행한 외국 커뮤니티 있는데, 플래시를 HTML 포맷으로 맞춰 옮겨놓았더라. 웹 환경에서 예전 플래시 콘텐츠를 구동할 수 있게 일종의 에뮬레이터를 만드는 분들이 있다.

 

A. 박: 해외에서는 러플이라는 단체가 HTML5에서 플래시가 작동할 수 있도록 변환하는 플러그인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와플래시라는 독립 개발자 분이 플래시를 웹에 옮겨서 아카이브했다. 플래시포인트라는 외국 커뮤니티에서는 swf 확장자 파일 자체를 보존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몇 테라 단위로 보유하고 있다. 각자가 각자의 아카이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이선 연구자

 

 

# R.I.P. 플래시, 책으로 나온다... 크라우드 펀딩 진행 중

 

Q. 그렇다면 R.I.P. 플래시는 어떤 아카이브인가?

 

A. 박: 실제 플래시를 아카이브한다기 보다는 문화에 대한 기억을 찾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발굴하는 쪽에 가깝다. 나중에 누군가 '플래시가 뭐였어?'라고 물었을 때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A. 권: 어떤 기술이 없어졌을 때 어떻게 아카이브하는지에 대한 담론 차원의 접근이다. 기술적 포맷이 사라졌을 때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기억하는 아카이브라고 볼 수 있다. 기술이 사용되지 않을 때 그 콘텐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떤 연구적 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담론장을 만들기 위한 시도다.

 

기술이라는 게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를 쓰는지, 비트맵인지 벡터인지 등등... 그 방식에 따라서 어떤 형태의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지가 거꾸로 결정된다. 플래시 콘텐츠는 기술 기반의 콘텐츠기 때문에 최종 이미지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ripflash.net에 접속하면 이들의 웹 아카이브를 볼 수 있다.


Q. 최근 R.I.P. 플래시의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다. 무엇을 제작하나? 왜 펀딩을 받는지 궁금하다.

 

A. 권: 글쓰고 연구하는 분들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과 플래시의 추모라는 주제를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연구 콘텐츠라는 틀에서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A. 박: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것이 물건을 사기 위해서 돈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하고 응원한다는 측면도 있다. 대중 담론에서 프로젝트를 공감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프로젝트 면면을 담은 책을 만들기로 했다. 

 

단순히 책만 만들면 재미 없다는 생각에 기존에 만든 웹사이트와 연계되는 굿즈를 만들고, 재밌는 방식으로 플래시를 떠나보내려고 했다. 플래시게임과 비슷한 웹게임을 만들어서 공개해두기도 했다. (바로가기)

 

"플래시야, 고마웠어! R.I.P. FLASH" 텀블벅 페이지 (바로가기)

 

 

Q. 어떤 이들의 글이 실리나?

 

A. 박: 2000년대 한게임에 재직했던 분들의 인터뷰가 있다. 지금은 네이버나 카카오에 포진해 계신데, 당시에 플래시가 얼마나 핫했는지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이야기를 하면서 플래시가 지금의 IT 산업과 어떤 연결점을 가지는지 말해주었다. 

 

한게임 <고군분투> 개발자를 만나서 당시 캐주얼게임 생태계 이야기를 들었다. 플래시의 후속작인 애니메이트를 통해 인기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만든 디자이너 사례도 있다. 다른 분에서는 지금 모바일게임 문화가 플래시를 참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A. 권: 그밖에 만화평론가 성상민, 미술비평가 이민주, 시각문화연구자 이하림 등이 각자 분야의 관점에서 플래시를 비평한 글들이 담겨있다. 플래시의 지원이 종료된 2020년 12월 31일과 서비스가 완전 종료된 지난 1월 12일 플래시를 주제로 두 차례의 온라인 토크를 진행했는데 그 내용도 실려있다.

 

비석을 형상화한 R.I.P. 플래시 책



Q. 만들어 둔 방명록에 여러 추모 메시지가 올라왔는데 개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A. 박: "엑스를 눌러 조의를 표해주세요" 이야기. 많은 분들이 X를 남기고 가셨다. (웃음)

 

A. 권: 놀라울 정도로 외국인들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구글 번역을 돌려보면 '플래시야 너무 슬프다', '어린 시절 어떤 게임을 재밌게 했는데', '잘 쉬어' 이런 이야기였다. 그런 점에서 플래시에 대한 기억이 글로벌하다, 인터넷 문화에 국경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A. 박: 영화 티저 사이트를 플래시로 만들어 인터랙티브 기능을 도입했던 설은아 선생님이 "너로 인해 이 세상을 완전 새롭게 경험하게 되었어"라며 직접 방명록을 남기고 가셨다. 그 분 인터뷰도 책에 담겨있다.

 

R.I.P. 플래시 사이트의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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