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해외 개발사 대표가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자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통과된 '인앱 결제 강제 금지법'(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향해 무한한 찬사를 보내는가 하면 16일 한국서 개최된 공정한 앱 생태계를 위한 세미나에 직접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죠.
짐작하셨겠지만, 이는 에픽게임즈 팀 스위니 대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팀 스위니는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앱 생태계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글과 애플이 지위를 남용하는 것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은 물론, '<포트나이트>에 자유를(FreeFortnite)'이라는 영상을 뿌리기도 했죠. 팀 스위니의 발언에 많은 이목이 쏠린 이유입니다.
그렇게 여의도 모처에서 팀 스위니를 만났습니다. 바쁜 일정 중 잠시 짬을 낸 그는 인터뷰 내내 단호한 어조로 앱 생태계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토해냈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모두가 죽는 '치킨 게임'이 될 거라고 말이죠. 에픽게임즈 팀 스위니 대표가 말하는 앱 생태계와 공정 경쟁의 중요성을 전해드립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 팀 스위니 "구글과 애플은 모두를 속이려 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Q. 디스이즈게임: 대표님께서는 앱 생태계를 위한 세미나에서 "수수료를 없애라는 게 아니라 구글과 애플이 독점 지위를 남용해선 안 된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아울러 "구글과 애플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수수료를 부과해선 안 된다"라고 덧붙이셨고요.
그렇다면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앱 생태계의 궁극적인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앱 내에서 발생하는 트랜잭션(transaction)에 수수료를 매기는 대신, 앱을 등록하고 서비스하는 비용만 지불하는 형태를 바라고 계신 건지 궁금합니다.
A. 팀 스위니: 핵심은 자유 경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시장에 존재하는 하드웨어나 스토어 플랫폼은 물론 그 속에 존재하는 결제 시스템에 대한 경쟁도 필요해요. 모든 서비스가 공평한 환경에서 경쟁하는 구도가 펼쳐져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에픽게임즈는 개발자들에게 절대로 특정 서비스 사용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언리얼 엔진은 어떤 개발자도 사용할 수 있으며 스토어에 관한 제약도 없죠. 또한, 개발자들이 자체적인 결제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엔 수수료를 부과하지도 않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원칙'을 꾸준히 고수하는 중입니다.
Q. 그렇다면 대표님께서 연신 강조하신 '독점 지위의 남용'이란 정확히 어떤 개념인가요?
A. 반독점 규제법은 철도산업으로 인해 생긴 법입니다. 처음에는 운송 쪽에 국한됐지만, 이후 정유와 제조사까지 독점 지위가 남용됐죠. 즉, 독점지위 남용은 한 가지 산업만 독점하는 걸 넘어 이를 기반으로 다른 산업까지 차지한다는 개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구글과 애플이 하고 있는 게 바로 '독점 지위 남용'입니다. 그들은 OS를 통해 이미 많은 걸 독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스토어와 결제까지 차지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죠. 이에 대한 해결책은 그들이 강제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을 해제하거나 완화하는 겁니다.
계속해서 말씀드리지만, 구글과 애플은 다른 시스템과 공정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기업 경쟁을 촉진시켜야만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고 봐요.
팀 스위니는 구글과 애플이 공정하게 경쟁할 것을 촉구했다 (로고 출처; 애플, 구글)
Q. 구글 코리아는 현 상황에 대해 “개발자가 앱을 개발할 때 개발비가 소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글도 운영체제와 앱마켓을 구축, 유지하는 비용이 발생한다”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구글과 애플이 앱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만큼, 수수료는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리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구글은 상당히 수익성 높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구글 서치나 맵은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죠. 따라서 안드로이드에 관한 부분까지 불필요한 수수료를 부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자신들이 개입하지 않는 요소에 대한 수수료를 요구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구글의 주장이 진실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용을 구분하지 않고 전체 비용으로 묶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죠. 만약 그들이 운영에 필요한 비용이나 관련 내용을 상세히 공개했다면 저희 역시 앱 생태계에 대한 판단을 재정립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애플과의 소송에서 드러난 내용은 정반대였어요. 당시 공개된 iOS 관련 비용과 수익 정보에 따르면, 앱스토어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총거래의 6%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애플은 무려 30%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했죠. 대중에게 진실을 공개하는 걸 꺼리고 있는 겁니다.
관련 기사: [해설] 에픽vs애플 1차전 마무리, 어떻게 볼 것인가?
구글 코리아는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일정 수준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출처: 구글)
Q. '수수료 30%'라는 암묵적 기준을 만들었던 애플은 최근 수수료를 낮추겠다고 밝혔고, 구글 코리아 역시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단, 애플은 '일부 조건'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며 구글 코리아는 개발자가 자체 결제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26%의 수수료를 가져갈 거라는 정책을 밝힌 상황입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향후 구글과 애플이 직접 서비스하지 않는 요소에 대한 수수료를 '완전히' 없애기보다 규정을 조금 우회하는 식으로 움직일 거라는 예상도 있는데...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A. 구글은 한국 법을 존중하지 않고 가짜 해결책(Fake Solution)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구글은 1km만 뛰어도 완주 판정을 받지만, 다른 기업은 그 이상을 해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달리기 시합이 펼쳐지고 있죠.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결제 시스템을 만드는 행위 자체를 막고 있는 겁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현 상황이 공정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개발자에 부과되는 수수료가 27% 인하됐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경우 개발자들은 조금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이를 재투자해서 더 나은 게임이나 제품을 출시할 수 있어요. 가격을 낮추는 옵션도 있겠죠.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구글이 수익을 가져간다는 건 개발자는 물론 소비자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Q. 이대로 가다간 자칫 모두가 피해를 보는 '치킨게임'이 펼쳐질 수도 있겠네요.
A. 그렇죠. 현재 구글과 애플이 사용 중인 전략은 '지연'입니다. 여기서 확실한 건 그들이 진실하지 않을뿐더러 모두를 속이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행위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겁니다.
팀 스위니 대표는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피해를 볼 거라고 우려했다
# "NFT, 기술적으론 가치 있지만... 투자 수단이 아님을 명심해야"
Q. 조금 분위기를 바꿔보죠. 결제 수수료 외에도 최근 모바일 시장을 강타한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NFT인데요, 이에 따라 앱 생태계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NFT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십니까. 일각에서는 다소 불안정한 사업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던데요.
A. 구성요소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NFT는 디지털 소유권을 기록하는 방식에 해당하죠. 모든 기업과 산업이 데이터베이스에 자료를 입력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기술적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단, NFT가 소비자들에게도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효용성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게임에서 옷을 산다면 이걸 입고 재미를 느껴야만 가치가 있겠죠. 단순히 소유권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투기성으로 NFT 아이템을 구매한 뒤 보관만 하는 건 게임에서의 가치나 효용성은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Q. 그렇다면 퍼블리셔로써 느끼는 NFT의 리스크는 무엇인가요?
A. 글쎄요... NFT가 투자가 아닌 소비 수단이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실생활에서 옷을 구매할 때처럼 NFT를 통해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투기성으로 NFT 아이템을 매수 또는 매도하다 보면 실제 가치보다 가격이 훨씬 높아질 거고, 결국 시장 전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NFT가 기술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Q. 지난 세미나 말미 언급하신 '메타버스'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도 궁금해집니다. 메타버스가 모바일 생태계를 완전히 바꿀 거라는 전망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실체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는 상황인데...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메타버스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A. 메타버스는 한마디로 '3D 실시간 소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멀티플레이 게임도 메타버스에 포함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사회적 경험이 강조된 형태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메타버스는 별도의 학습 과정 없이도 컨트롤, 아바타 꾸미기, 그룹 찾기, 장소 이동 등 다양한 요소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일반 앱과는 꽤 차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메시지를 남겨주신다면요?
A. 앱 생태계에 관한 이슈는 모두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디지털 자유'(Digital Freedom)과 연결돼있기 때문이죠. 앱은 우리 일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대기업이 모든 걸 제어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건 정말 위험하다고 봐요. 따라서 소수 기업이 독점하는 것보다는 모든 기업이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제품과 가격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의 자유가 증진될 수 있을 겁니다.
(출처: 에픽게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