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는 사명을 바꾸면서 자사 VR기기 ‘오큘러스 퀘스트’ 역시 ‘메타 퀘스트’로 다시 이름 붙였다. 국내 대표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에는 최근 VR 도입 계획이 선언됐다. 비록 메타버스 업계가 뚜렷한 외연 없이 방황 중이지만, 주요한 구성요소로서 VR이 주목받는 것만은 완연한 사실이다.
격변하는 상황 속 ‘VR 기업’들은 고민이 많다. 하던 대로 VR 콘텐츠를 만들면 되는지, 아니면 메타버스 유행에 맞춰 서둘러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VR 게임 개발사 룩슨은 두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 한다. LG 디스플레이 연구원 출신 황정섭 CEO, 그리고 아프리카 산하 미디어 기업 프리콩의 설립자 겸 대표이사 출신 박현우 CSO는 함께 UTA(유저 대 아바타), ATA(아바타 대 아바타)라는 두 가지 자체 모토를 중심으로 VR 게임 사업을 전개 중이다.
룩슨이 말하는 UTA란 유저가 아바타로 분하는 몰입 경험을 말하고, ATA는 VR 속 아바타와 아바타 간의 온라인 소통 경험을 말한다. 두 가지 개념에 기대어 ‘소셜한 VR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디스이즈게임: 만나서 반갑다. 룩슨은 어떤 규모의 기업인지 궁금하다.
A. 황정섭 CEO: 저를 포함한 프로그래머 2명, 그래픽 아티스트 1명, 기획 2명 등이 있다. 거의 다 개발 인력인 셈이다.
Q. 황정섭 CEO는 어떻게 VR 업계에 들어서게 됐나?
A. 황정섭 CEO: LG에 입사한 계기가 게임이다. 당시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 Wii U가 출시했다. 이때 개인적으로 디스플레이 변화를 필두로 한 게임계 혁신이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집안에 들일 대형 스크린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고 어필하면서 LG 면접에 합격할 수 있었다. 비록 Wii U는 내 예상과 달리 흥행에 실패했지만.
사실 LG에 개인적으로 바랐던 것이 따로 있다. 당시 나는 <소드 아트 온라인>에 표현된 것 같은, ‘다이브 인투’(dive into·게임에 뛰어드는) 게임 경험을 실현해줄 차세대의 혁신적 디스플레이 기술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이 분야를 제일 잘하는 기업을 찾아 LG에 입사한 것이고, 실제로 홀로그래피, AR 등 기술을 다루는 부서에 배정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 홀로그래피나 AR은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더라. 결론적으로 향후 10년 정도는 게이머가 직접 3D 세상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은 VR이 유일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후 VR 게임을 만들게 됐다.
Q. 박현우 CSO의 경우 과거 드라마를 기획, 제작하거나 할리우드 배우들과 협업하는 등, 조금은 다른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두 분의 접점은 무엇이었나?
A. 박현우 CSO: 계기는 심플하다. 아프리카TV 산하 프리콩에서 나온 뒤, 새로운 분야를 찾다가 메타버스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더 나아가 메타버스에 가장 어울리는 VR 콘텐츠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지인 소개로 황 대표를 만나 뵙게 됐다. 디바이스에 집중, 몰입 경험을 강화해서 유저를 콘텐츠에 ‘집어넣는다’는 황대표의 접근이 흥미로웠다. ‘메타버스 콘텐츠’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야 없겠지만, ‘가상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을 연결하는 콘텐츠’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니 그 접근이 말이 되는 것 같았다.
Q. 그간 많은 일을 하셨다. VR이 들어가는 공공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고, VR 게임을 런칭하기도 했다. 나아갈 길을 열심히 찾았다는 느낌도 든다. 현재 만들고 있는 양궁 VR 게임 <아처리 랜드>의 기본 방향성은 무엇인가?
A. 박현우 CSO: 메타 등 기업들이 내놓는 VR 콘텐츠는 점점 더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위한 콘텐츠보다는 보편적인 콘텐츠가 많더라. 일단 디바이스를 먼저 보편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우리도 이걸 참고해서, VR 게임을 만들더라도 너무 매니악하지 않은 일반 앱서비스처럼 만들자는 기획이다.
황정섭 CEO: 우리가 만드는 것은 게임이지만 동시에 유저들이 서로 인터랙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비디오게임이란 고전적 놀이의 ‘심판’ 역할을 컴퓨터에 맡겨 ‘혼자 노는’ 방법으로서 발전됐다고 본다. 그런데 갈수록 결국 사람이 몰리는 게임은 <리그 오브 레전드>같은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사람 대 사람이 만나는 방식이 제일 보편적인 재미를 준다는 얘기일 것 같다.
이 관점을 VR에 적용하면, 우리 게임 또한 사람 대 사람이 만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느끼게 됐다. 이런 만남의 즐거움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유저들이 완벽히 몰입할 수 있도록 VR 콘텐츠로서의 기술적, 시스템적 부분이 잘 갖춰져야 하는 것이고.
Q. 그런 철학을 <아처리 랜드>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나?
A. 황정섭 CEO: <아처리 랜드>를 처음 개발했을 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스테이지나 게임 모드가 많았다. 그런데 ‘놀거리’를 게임사가 명확히 정해주기 보다는 단순한 게임 모드만 제공해 유저끼리 소통하며 어떤 놀거리를 만들어내고 또 원하는지를 관찰하는 게 서비스적으로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드를 줄였다.
박현우 CSO: 그 외에 소셜 게임으로서의 확장성을 보자면, 게임 안에 활을 쏘는 실제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관전자 등 다양한 역할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이 한 경기에 모여 구경하고 떠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아처리 랜드>의 양궁 경기는 더 나아가 PC 등으로도 구경할 수 있게 작업 중이다. 이로써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흩어지는 거점이 됐으면 한다.
Q. 말한 대로 사람이 모이려면 접근성이 중요할 것 같은데, 신경 쓴 부분 있다면?
A. 황정섭 CEO: 개발 중 깨달은 실수가 하나 있다. 진짜 양궁은 과녁까지의 거리가 70m나 된다. 평면적 조작으로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는 모바일이나 키보드/마우스와 달리, VR은 조준선 정렬 및 겨냥을 제대로 해야 맞출 수 있는데, 이런 개념들로 인해 난이도가 상상 이상으로 올라가더라.
가볍게 들어온 유저들에게는 재미가 확 사라지는 경험이다. 그래서 사격 거리를 줄이고 과녁도 두 배로 키웠다. 조준 시스템도 편하게 만들고 나니까 비로소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었다.
Q. 그 외 <아처리 랜드>의 몰입 경험을 구현하는 데 있어 겪은 어려움 있다면
A. 황정섭 CEO: <아처리 랜드>는 룩슨이 말하는 ATA, UTA 개념 중 전자에 더 중점을 둔 콘텐츠다. 그래서 몰입 강화에서도 관건은 멀티플레이 경험 완성도였다. <아처리 랜드>와 같은 메타 퀘스트용 게임의 경우 와이파이 통신에 기반을 두다 보니 버퍼가 생기는 등 제약이 심한데, 이를 보완하는 데 가장 많이 신경을 썼다.
VR 게임에서 딜레이는 일반 게임에서보다 더 크게 몰입을 깬다. 기존 게임에서는 딜레이가 어느 정도 생겨도 상대방이 이를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VR 게임에서는 상대 아바타가 잠깐만 정지해도 바로 문제를 느낄 수 있다. 휴먼 인덱스가 날카롭게 들어온다. 그래서 딜레이 최소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또 하나 신경 쓴 것은 사격 감각 구현이다. 쏘는 대로 활이 날아가 꽂혀야 하는데, 3D 공간에 구현하려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에스티메이션을 거쳐 활이 제대로 된 포물선을 그리게 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마지막으로 멀미를 줄이기 위한 그래픽적 노력이 있었다. 화면의 대비비가 심하거나 색차가 심할수록 어지러움을 크게 느끼게 된다. 이런 아트 스타일을 피함으로써 멀미를 방지했다.
Q. 향후 콘텐츠 추가 및 정식 출시 계획은 어떻게 되나.
A. 황정섭 CEO: 유저들의 의견을 모아 게임 모드를 추가하는 한편, 소셜 기능 강화를 위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옵저버’ 역할을 추가해나갈 계획이다.
출시 계획을 얘기하자면, 현재 메타 퀘스트 유저 플랫폼인 ‘사이드 퀘스트’ 상에는 베타버전이 배포되어 있다. 다음 달에는 정식 검수를 거치지 않는 메타 VR 스토어 ‘앱 랩’에 게임을 제출할 계획이며 이 시점부터 마케팅에 들어갈 듯하다. 정식 오큘러스 스토어 입점은 관련 정책이 공개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시점을 특정해서 말씀드리기 힘들다.
Q. 마지막으로 포부 한 마디씩 부탁드린다.
박현우 CSO: VR 세상에 룩슨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겠다.
황정섭 CEO: 진짜 ‘차세대’를 위한 VR 게임을 만들어 최대한 많은 게이머분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