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그리핀과 싸우던 도중 방패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한 파이터가 동료를 향해 외친다. ‘자, 나를 밟고 뛰어 올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레인저가 파이터의 방패를 디딤돌 삼아 높이 뛰어오른다. 레인저가 때마침 파티의 머리 위를 지나던 그리핀의 날개를 붙잡자 메이지가 재빠르게 그리핀의 날개를 불태워 추락시킨다.
캡콤의 첫 오픈월드 게임 <드래곤스 도그마>는 폰(용병)과의 뛰어난 상호작용으로 더 유명세를 탔다. 마치 영화에서나 봄직한 동료들 간의 잘 짜인 파티플레이는 유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놀라움은 자연스럽게 기대로 이어진다. ‘다른 유저들과 함께 저런 장면을 연출하면 얼마나 굉장할까?’
아쉽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드래곤스 도그마>를 개발 중인 캡콤의 코바야시 히로유키 프로듀서는 멀티플레이가 있냐는 질문에 단호히 대답했다. “<드래곤스 도그마>에는 멀티플레이가 없습니다. 액션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서죠.”
구현은 하고 싶지만 현재 콘솔 게임기의 네트워크로는 <드래곤스 도그마>의 파티플레이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는 게 코바야시 프로듀서의 솔직한 대답이다. 대신 그는 멀티플레이를 포기한 만큼 확실한 액션과 폰을 이용한 상호작용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데빌 메이 크라이 4>와 <바이오 하자드 4>의 개발자에서 이제는 캡콤의 새로운 도전을 진두 지휘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코바야시 히로유키 프로듀서를 도쿄게임쇼 2011 현장에서 만났다. /도쿄(일본)=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코바야시 프로듀서는 먼저 <드래곤스 도그마>의 개발 상황과 기본적인 설정에 대해 설명했다.
<드래곤스 도그마>는 캡콤에서 PS3와 Xbox360으로 개발 중인 신작이다. 내년 초 발매를 목표로 삼고 있으며 캡콤에서 처음으로 도전하는 오픈월드 방식의 게임이다. 그만큼 캡콤에서도 많은 힘을 쏟는 기대작이기도 하다.
<드래곤스 도그마>의 개발은 약 3년 전에 시작됐다. <데빌 메이 크라이 4>의 개발이 끝난 후 이츠노 히데아키 프로듀서는 지금까지 캡콤에서 만든 적이 없는 새로운 게임에 도전하자고 제안했고, <데빌 메이 크라이 4>의 중심 멤버들이 거기에 동의하면서 개발이 시작됐다. 오픈월드라는 목표를 세운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떤 유저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친숙한 설정을 위해 전통적인 판타지 세계관을 택했으며, 그리핀과 드래곤 등 친숙한 몬스터들이 등장한다.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되는 오픈월드 게임인 만큼 스토리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주인공이 살던 마을을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드래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인공의 심장을 가져간다. 드래곤의 이상한 능력에 의해 심장을 빼앗긴 주인공은 그 순간부터 드래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주인공에게 드래곤은 말을 건넨다. ‘심장을 돌려받고 싶으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어째서 드래곤은 몇 십 년 만에 그 마을에 들른 것일까? 왜 하필이면 주인공이 심장을 빼앗겼을까? 심장을 빼앗긴 이후 죽기는커녕 이상한 능력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주인공은 많은 의문을 품은 채 해답을 찾기 위해 긴 여정에 나선다.
코바야시 프로듀서는 “장대한 이야기야 말로 <드래곤스 도그마>의 매력 중 하나”라며 이야기에 많은 정성을 쏟았음을 거듭 강조했다.
<드래곤스도그마>는 멀티플레이가 불가능한 대신 용병을 이용한 상호작용을 도입했다. 주인공은 심장을 빼앗긴 이후 콘이라는 종족을 자신의 추종자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바로 이 콘 종족이 주인공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폰(용병)들이 된다는 설정이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를 제외하고 1명의 메인 폰과 2명의 서브 폰을 데리고 다닐 수 있다. 총 4인 파티다. 여기서 메인 폰은 게임을 시작할 때 플레이어가 직접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으며 온라인을 통해 다른 유저에게 빌려줄 수도 있다. <드래곤스 도그마>가 내세우는 폰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누구든 온라인 마켓을 통해 자신의 폰을 등록할 수 있고, 등록된 폰은 다른 유저가 언제든 빌려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자신보다 강력한 폰을 빌리기 위해서는 ‘림’이라는 게임 내의 마일리지 포인트가 필요하다. 반대로 폰을 빌려준 유저는 다른 유저가 자신의 폰을 다운로드할 때마다 림을 얻을 수 있다. 획득한 림은 폰 이외에도 희귀한 아이템을 구입하는 데 쓰인다.
결국 게임 도중 얻는 림을 이용해 강력한 용병을 빌릴지, 아니면 차곡차곡 모은 림으로 희귀 아이템을 구할지 정해야 하는 셈이다.
자신의, 혹은 대여한 폰은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장비로 갈아입힐 수 있으며 플레이어와 함께 성장한다. 참고로 <드래곤스 도그마>에는 파이터와 메이지, 스트라이더의 기본직업과 상위직업이 존재하며 각 직업을 혼합한 3개의 특수직업도 있다.
총 4명의 캐릭터가 함께 파티를 이루는 만큼 퀘스트에 따라 어떤 직업을 조합할지도 전략과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는 변수가 된다. “마을에서 NPC와 대화해서 다음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얻는 등 RPG적인 요소도 충분히 포함돼 있다”는 게 코바야시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전투 외에도 물건 나르기와 위기 상황의 NPC 돕기 등 다양한 퀘스트가 등장하며 스토리의 분기에 따른 멀티 엔딩도 지원된다. 캐릭터 에디팅 역시 근육과 연령대까지 조작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아래는 <드래곤스 도그마>에 대한 코바야시 프로듀서와의 일문일답이다.
방패를 밟고 뛰거나 동료가 붙잡은 적을 떨어트리는 등 전략이 다양하다. 뭔가 더 준비된 게 있나?
마법사가 마법으로 계단을 만들면 이를 밟고 높은 곳에 오르는 등 다양한 액션을 준비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 외에도 수많은 전략이 있을 것이다. 폰과의 연계동작들은 폰이 알아서 조언해 주는 만큼 새로운 액션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폰이 시키는대로만 하면 된다.
전략도 다양해서 적을 절벽 같은 곳에서 떨어트리는 등 지형을 이용한 전투도 있다. 물론 반대로 동료도 떨어질 수 있지만(웃음). 전투에 능숙한 폰이 있다면 어드바이스도 가능하다. 대형 몬스터와 어떻게 싸울까 하는 액션과 전략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멀티플레이가 없는 게 아쉽다.
<드래곤스 도그마>는 액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의 네트워크 기술로는 멀티플레이에서 딜레이가 생길 수밖에 없더라. 그래서 대신 생각한 게 폰을 이용한 일종의 소셜네트워크 같은 커뮤니케이션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굳이 함께 만나지 않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폰을 대여해 주거나 이야기를 남겨 두는 식이다. 폰이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대리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폰은 인공지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전투에서 연계전략을 펼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상호작용을 보여줄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유저에게 빌려준 폰이 A라는 동굴을 클리어했다면 그 폰은 이후 플레이어와 함께 A라는 던전을 들어갔을 때 던전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핀을 처치한 경험이 있는 폰이 있다면 그리핀을 본 적이 없는 플레이어도 폰의 조언에 따라 한층 쉽게 그리핀의 약점을 알아낼 수 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그리핀과 싸운 적이 있는 폰은 그리핀의 약점이 불이라고 언급해 줄 것이다.
몬스터나 사람 외형, 인터페이스 등이 서양 게임 느낌이 굉장히 강하다.
맞다. 상당히 서양식이다. 유럽의 2개국 정도를 취재를 갔고 이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
오픈월드 게임 개발은 처음인데, 어려운 부분이나 중점을 둔 부분이라도 있나?
아직 개발이 안 끝났지만(웃음) 오픈월드이기 때문에 게임의 볼륨이 커지고 그래픽이나 각종 처리도 늘어난다. 덕분에 넣고 싶지만 넣을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이게 제일 힘들더라.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역시 먼 곳에 있는 몬스터나 성 등을 직접 확인하고 그곳으로 달려가 싸우거나 탐험하는 재미다. 오픈월드에서만 가능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로딩이 없다는 것도 엄청 중요하다.
참고로 지금까지의 <드래곤스 도그마>는 액션 부분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는데 사실 RPG 요소도 매우 많다. 앞으로는 RPG에도 초점을 맞춰 내용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결코 액션만 있는 게임이 아니라는 걸 알아 줬으면 한다.
<몬스터 헌터>의 몬스터도 나오면 재미있을 듯하다.
안 나온다. 그건 정말 가공의 몬스터고 그리핀 같은 판타지 몬스터와는 다르니까(웃음). 친숙한 세계관을 택한 만큼 판타지에서 유명한 몬스터들이 주로 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