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에 따른 다양한 전략과 치열한 유저 간의 두뇌싸움, 이를 아우르는 짜임새 있는 규칙까지. 온라인게임 개발자에게 트레이딩카드게임(이하 TCG)은 매력적인 소재다.
하지만 TCG는 어렵다. 최소한 상황에 맞는 카드라도 내려면 게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규칙을 배워야 하고 자연스럽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카드와 전략을 공부해야 한다. TCG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래서 TCG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비주류 장르로 남아 있다.
엔코어의 이승기 대표 역시 TCG를 개발하면서 같은 고민에 빠졌다. 일단 규칙과 카드를 익히면 재미있지만 그 과정이 길고 어렵다. 그렇다고 당장의 재미를 찾아 온 유저들에게 ‘참고 즐기면 언젠가는 재미있어질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을 전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는 TCG에 온라인게임 유저들에게 친숙한 MORPG의 시스템을 섞었다. 자신의 캐릭터가 보이는 마을과 W·A·S·D 키로 움직이는 캐릭터를 만들고 유저 간의 대결만이 아닌 던전 탐험과 레이드 등의 PvE 콘텐츠를 내세웠다.
전투에서도 소환수의 전투 장면이나 스킬 사용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얼핏 봐서는 TCG보다는 전략이 가미된 MORPG로 보일 정도다. ‘룰북이 필요 없는 TCG’를 만들고 싶다는 엔코어의 이승기 대표를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기사 보는 순서
■ <고스트워치>는 룰북을 보지 않아도 되는 TCG
특이하게 MORPG와 TCG를 섞었다.
TCG를 즐길 때 가장 큰 문제가 ‘어렵다’는 거다. 룰북을 보지 않으면 게임을 시작하기조차 어렵다. 대부분의 유저에게는 너무 높은 진입장벽이다. 그래서 MORPG의 조작과 시스템을 도입해서 접근성을 낮추자고 생각했다. 기존의 온라인게임 경험만으로 플레이해도 막힘 없이 자연스럽게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는 퀘스트 등을 통해 PvE에서 게임 방식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다. 초반부에는 그냥 카드만 던져도 되지만 중반부터는 슬슬 전략을 고민하게 되고 사용하는 카드의 종류나 상황판단 능력도 조금씩 늘려 나가는 방식이다.
결국 ‘쉬운 카드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뜻인가?
카드를 주제로 삼을 때부터 사용성이 가장 큰 문제였다. 70대 이상의 노인이나 <유희왕>만 하던 친구들도 클릭만하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TCG를 선택한 이상 게임의 깊이를 바꿀 수는 없다. 무작정 단순해져 봐야 오히려 숙련된 유저들에게 ‘시시한 게임’으로 반감만 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략의 깊이는 그대로 두되 초반 접근성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전투에서도 자동공격이 기본 설정이기 때문에 카드 능력을 전혀 몰라도 그냥 손에서 반짝거리는 카드만 클릭하면 게임을 충분히 풀어 나갈 수 있다.
누군가는 반드시 져야 하는 PvP가 아닌, 누구나 이길 수 있는 PvE 콘텐츠를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초기의 진입부담도 적을 것이다.
MORPG 방식으로 제작하면서 고민도 많았을 듯하다.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전투에서 재미를 끌어내기 위한 과정만 3년이 걸렸다. 타이밍과 덱 세팅, 실시간 전투에 따른 전략 등 고려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걸 또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겪어만 봐도 재미있게 만들려다 보니 더 힘들었다.
이제야 기본적인 플레이의 재미는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떤 수준에 맞춰 어떻게 난이도를 정하느냐, 어떻게 더 보기 좋은 게임을 만드느냐를 고민하고 있다.
■ 보는 즐거움과 생산성의 경계
크리처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보는 재미를 강조했다. 눈으로 직접 보는 만큼 접근도 쉬울 거라는 생각이었다. 모든 카드를 3D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일종의 액션 피규어를 모으는 재미를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실 실시간 전투에서 크리처가 움직이다 보니 애매한 부분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공격 과정이다. 내 크리처 A가 상대 크리처를 공격하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크리처가 내 크리쳐 A를 공격한다면 판정이 애매해진다. 그래서 택한 게 크리처는 그대로 있고 크리처의 분신이 달려나가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카드를 모두 3D 그래픽으로 만들면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다.
보통 카드게임은 일러스트만 그리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일러스트에 애니메이션, 모델링 등 카드 한 장을 만드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그게 걱정이다. 분기마다 약 150장의 카드를 선보일 예정인데 3D 그래픽을 만드는 과정을 다지는 중이다. 현재 600장 정도의 카드가 준비됐고 서비스 1년 후에는 1,200장 정도를 목표로 삼고 있다. 생산성과의 싸움이다.
특히 크리처를 만드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현재 크리처의 비율을 20~30%로 잡고 있다. 이후에도 업데이트할 때마다 20~30장의 크리처가 나오고 거기에 장비와 랜드, 마법 등이 나올 예정이다. 크리처를 만드는 과정이 70~80%고 나머지는 일러스트와 이펙트만 만들면 되니 좀 편하다.
그럼 준비된 콘텐츠 분량이 어느 정도인가?
현재 에피소드4까지 업데이트했다. 준비는 많이 갖췄다. 제작된 크리처만 180종이 넘는다. 아트는 더 많이 쌓인 상황이다. 다만 직관적이고 편하면서도 전략성을 해치지 않는 전투를 만들려다 보니 기획에서 고민이 계속 쌓인다.
서비스 이후에도 유저들의 콘텐츠 요구를 우리가 얼마나 따라잡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듯하다. 그렇다고 만들기 쉬운 마법카드랑 랜드카드만 만드는 등 불성실한 일은 하지 않겠다(웃음).
■ 부담 없이 자유롭게 즐기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PvP가 아닌 PvE를 중심 콘텐츠로 내세웠다.
TCG에서는 PvP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반드시 지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고, 매번 지는 유저는 계속 지다가 게임을 떠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PvE 콘텐츠에 많은 신경을 썼다. 최종 콘텐츠는 물론 PvP지만 혼자서 즐기고 싶은 유저는 언제든 접속해서 부담 없이 레이드 보스도 처치하고, 던전도 깰 수 있는 시스템이다. 솔직히 TCG에서 강력한 카드를 쓰는 재미도 있지만 그 카드를 얻기까지의 과정도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고스트워치>는 피곤함을 없애고 모으는 과정에서의 재미를 추구했다. 던전을 돌거나 경매·제작·분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카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파티플레이도 가능한가?
물론이다. 레이드는 최대 4인까지 참가할 수 있고 4명이 동시에 전투를 진행하게 된다. 공용 소환공간과 개인용 소환공간이 따로 있어서 팀 단위 전략도 가능하다. 4명의 유저가 어떤 카드를 쓰는가에 따라 탱커·힐러·딜러 등으로 구분되는 역할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일반 레이드 보스처럼 다양한 패턴과 인공지능(AI)을 보여줄 것이다.
PvP에서도 4:4까지 전투가 구현돼 있다. 실시간 전투다 보니 가능한 시스템이다. 방어 턴과 공격 턴 없이 모든 유저가 실시간으로 모든 과정을 진행하다 보니 인원이 늘어나도 지루할 걱정은 없다.
따로 튜토리얼이 없다.
PvE를 통해 자연스럽게 게임을 배우고 PvP로 넘어가게 만드는 게 목표다. PvE 전부가 튜토리얼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솔직히 누군가가 가르쳐 줘야만 재미있는 게임, 누군가와 함께해야 재미있는 게임, 해보면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냥 아무런 기초지식 없이 즐겨도 재미있는 게임이 진짜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게임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어도 좋고, 가볍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좋다. 본인 스스로가 어떤 외부적인 조건도 없이 스스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버전도 개발 중이라고 들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소셜게임 쪽도 개발 중이다. 아직 개발 과정에 있지만 각각의 게임이 전부 다른 모습이다. 아이폰의 경우에는 아예 전투 방식이 다르고, 아이패드는 PC버전과 비슷하지만 카드 리스트나 크리처의 모습을 보는 데 집중했다.
소셜게임에서는 PvP 시뮬레이션 등을 추가할 예정이다. 스토리나 기타 시스템도 전혀 다르다.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봐도 될 것이다.
다만 <고스트워치>와 카드는 모두 연동된다. 아이폰에서 구입한 카드를 PC에서 쓰고 아이패드에서 구입한 카드를 웹에서 사용할 수 있다. 룰과 게임 방식은 달라도 다 같이 <고스트워치>의 카드를 갖고 노는 게임이 될 것이다.
마치 ‘트럼프’를 생각하는 것 같다.
맞다. 단순히 PC 기반의 TCG에서 벗어나서 ‘카드를 다양한 방법으로 갖고 노는 게임’이라는 게 핵심이다. PC 버전에서도 다양한 룰과 재미를 추가할 것이다. 이미 시간과 셔플 제한 등 다양한 부가 규칙을 추가하고 있다. 트럼프처럼 같은 카드로 원하는 플랫폼에서 다양한 방법의 게임을 즐기게 만드는 게 목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PC 버전이 떠야겠지만 말이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