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 소울>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캐릭터다. 김형태 아트디렉터(AD)의 화풍을 그대로 담은 게임 그래픽은 처음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유저들의 화두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김형태 AD혼자 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1차 CBT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캐릭터인 절세미녀 남소유, 그녀를 만든 사람이 바로 이왕수 캐릭터 원화 팀장이다. 그 역시 김형태 AD와 10년 지기로 지난 2006년부터 <블레이드 & 소울>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개발 초기에 종족과 배경 등 세계관에 맞는 캐릭터를 만드는 콘셉트 이미지를 작업했고, 지금은 캐릭터와 아이템, 의상 등 디자인 가이드를 담당하고 있다. 3차 CBT를 앞둔 <블레이드 & 소울>에 생명을 불어넣는 남자, 이왕수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제가 남소유를 만들었습니다.” 엔씨소프트 이왕수 캐릭터 원화 팀장.
■ “시나리오에 맞춰 개성 있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블레이드 & 소울>만의 캐릭터 특징과 디자인 콘셉트는 무엇인가?
이왕수 팀장: 기존의 무협게임은 중국을 기반으로 대부분의 세계관이 비슷했다. <블레이드 & 소울>은 중국식 외형의 판타지에서 벗어나 한국을 비롯해 동양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콘셉트로 만들어 가고자 했다. 따라서 캐릭터 디자인도 배경보다 시나리오에 맞춰 개성 있는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블레이드 & 소울>의 다양한 캐릭터를 디자인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사실 캐릭터 원화를 그리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김형태 AD의 타협하지 않는 눈높이였다. 시나리오 기반의 캐릭터는 워낙 좋아서 각자의 성격을 부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디자인에 있어서 전통적 무협을 벗어나 새로운 의복을 만드는 작업이 어려웠다.
예를 들어 무협에 어울리면서도 개성 있는 캐릭터 디자인과 의상의 밸런스 등을 잡는 게 힘들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고민도 많이 했다.
김형태 AD의 화풍은 호불호가 강하다는 의견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남는 캐릭터와 아쉬운 캐릭터가 있다면?
맞는 말이다. 사실 김형태 AD의 캐릭터 코드는 분명히 취향이 나뉠 것이다. 하지만 상업 미술로 본다면 상당히 훌륭한 부분이 있다. 이런 점은 나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도 <블레이드 & 소울>의 캐릭터 디자인을 ‘김형태 스타일’에 맞추는 것이었다.
지금은 김형태의 스타일을 코드적으로 분석해 팀원의 개성을 지키면서 통일해야 하는 부분을 가이드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새로운 팀원이 들어와도 가이드를 보고 작업이 가능하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역시 ‘남소유’다.
남소유는 CBT에서 화제가 됐는데. 의미와 에피소드가 있다면? 참고한 인물이 있나?
남소유를 그릴 때 난해한 부분이 많았다. 남소유는 실존하지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라는 캐릭터를 모티브로 삼았다(외형이 아닌 특성). 남소유도 구은재 못지않은 활약을 하게 될 것이다.
캐릭터의 특징도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남의 소유’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처음 기획 의도를 받았을 때 이름에서 주는 의도를 보고 평범한 여자를 그렸었는데 김형태 AD와 같이 컨펌하는 과정에서 ‘이건 아니다’는 판단을 했고 다시 작업했다.
두 번째 작업에서도 너무 구속된 부분을 강조하면서 내면의 악랄함을 숨기고 보니 양가집 규수가 나오더라. 그래서 세 번째로 그린 것이 지금의 남소유다. 이때 김형태 AD와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 팜므파탈 등을 모두 써먹어 보자고 했고 이를 모두 반영했다.
■ “캐릭터 디자인, 명품 콘셉트로 접근했다”
김형태 AD와 같이 작업하는데, 업무는 어떻게 구분되어 있나?
김형태는 아트디렉터로 <블레이드 & 소울> 캐릭터의 근원을 만들었다. 원화팀은 캐릭터, 몬스터, 무기의 원화를 그리고 있다. 원화는 기획팀에서 시나리오가 오면 김형태 AD를 포함해 회의를 하고 콘셉트 러프 스케치를 다수 제작한다.
캐릭터마다 3~8개의 스케치가 나오고, 여기서 디자인이 좋거나 성격에 맞는 것을 선별해 마무리 작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메인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NPC는 김형태 AD가 감수하고 있다. 캐릭터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8~10일 정도다. 남소유 같은 경우 길게는 한 달 정도 걸린다.
<블레이드 & 소울>이 기존 무협과 달리 범아시아를 추구한다는데, 기존 무협게임과의 차이를 캐릭터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
캐릭터를 디자인하면서 가장 많이 신경 쓴 부분은 ‘명품’이라는 콘셉트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의복을 제외한 모든 것은 통짜로 만들고 있다. 파츠 분할 방식이 아니다 보니 의복에 따른 기본 스펙이 없다. MMORPG에서 없는 옷을 디자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외형적으로 그레이드를 나눠서 보상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 중요한 포인트였다. 디테일이 복잡한 어려운 디자인이 고급스러운 게 아니라 심플하더라도 고급스러운 소재와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다면 더 좋아 보이도록 만드는 게 목표였다.
동양풍의 디자인을 하는데 있어 개발 초기부터 있었던 난관은 ‘어떻게 고급스러운 무협을 만들까’였다. 아무리 전통적인 무협의 외형인 도포를 멋있게 그려도 도저히 멋있게 그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결과 기존 디자인을 90%, 완전 새로운 것을 10%의 비율로 정했다.
외형적으로 동양에 집착하지 않고 10%의 세련됨에 동양적인 콘셉트를 넣자고 했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캐릭터들이다.
홍문파 도복은 무협스럽기 보다는 세련된 디자인을 따르고 있다.
원화와 실제 게임 내 그래픽이 거의 비슷하다. 원화 작업에서 3D화를 어느 정도까지 염두에 두고 진행하나?
개발 초기에 김형태 AD의 원화를 3D화하고 게임에 적용하는 것을 보고 원화를 어느 수준까지 그려야 하는지 논의했다. 처음에 원화를 거의 그대로 3D로 구현할 수 있게 되자 원화의 퀄리티를 가능한 끌어올려야 3D의 퀄리티도 보장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의상의 질감이나 가장자리 묘사, 색상 등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원화에서 신경을 쓰고 그려내고 있다. 이렇다 보니 원화가 그대로 일러스트레이션이 되는 비효율적인 과정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게임의 퀄리티는 높아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직접 디자인한 캐릭터는 무엇인가? 캐릭터에서 가장 많이 봐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직접 디자인한 NPC는 그리 많지 않다. 팔부기재 중 간묘월 독초거사, 홍석근 거대화 버전을 디자인했다. 이외에도 보상 의상으로 나오는 염화대성이 있다. 여성 캐릭터의 경우 인체의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을지에 많이 치중했다. 폴리곤도 그런 부분에 많이 배분돼 있다(웃음).
염화대성은 몬스터가 먼저 디자인됐고, 이를 어떻게 의상으로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다. 이 부분에서 변형된 부분도 있지만 유저들이 가치 있게 입어 줘서 좋았다.
팔부기재 간묘월 원화(왼쪽)에서 가능한 자세히 묘사하고 3D 모델링(오른쪽)에서 구현했다.
여성 캐릭터가 부각되다 보니 남성 캐릭터는 애매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메인 캐릭터의 90%가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웃음). 내부에서도 남성 캐릭터를 보강하고 있고, 실제 NPC 남녀비율을 맞춰 가고 있는 단계다. 이번 3차 CBT에서는 분명히 개선된 버전을 선보일 테니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성 있는 남성 캐릭터가 얼마나 등장할지는 3차 CBT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남소유,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끌고 간다”
원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콘셉트가 바뀐 경우도 있나?
대표적으로 남소유가 있다. 그녀의 초기 콘셉트는 도천풍의 며느리이자 도단하의 아내로 한 개의 에피소드에서만 등장하고 끝나는 캐릭터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 번에 걸친 재작업 끝에 나온 남소유의 결과물이 사내에 공개됐을 때 큰 화제를 모았다. 덕분에 시나리오 라이터와 배재현 PD의 합의 끝에 <블레이드 & 소울>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끌고 가는 캐릭터로 바뀌었다. 아마도 모든 시나리오에 남소유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캐릭터를 디자인하면서 연예인을 기반으로 했거나, 불교나 도교 같은 종교적인 부분도 참고하고 있나?
연예인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외에 개발자를 중심으로 한 주요 NPC도 있다. 스태프롤을 보면 개발자와 NPC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다. 얼굴도 가능한 비슷하게 만들고자 한다. 시나리오에서도 무~한도전 등의 개그맨 패러디가 많이 나와 있다.
종교적인 부분은 접근하지 않고 있다. 다만, 초기에 태극의 패로 종족을 나눈 부분은 있다. 지금은 건곤감리 중에서 건과 곤만 남아 있다.
종족마다 콘셉트가 다르고 외형의 차이가 크다. 가장 쉬웠던 종족과 어려웠던 종족은?
사실 각 종족의 특성은 입사하기 전부터 김형태 AD와 배재현 PD가 어느 정도 설정해 두었다. 개발 초기에는 린족의 귀와 꼬리가 특징인데 다른 종족도 외형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진은 기획적으로 날개, 곤은 피부에 튀어나온 뿔, 건은 화경이라는 것이 있었다.
기획적 요소와 결부돼 만들어졌는데 결국 종족 특성이 빠지게 되면서 디자인에서도 희석된 부분이다. 그래도 역사의 스킬 중에 등에서 뿔이 나와 방어하는 철벽 같은 걸 보면 조금씩 흔적은 남아 있다.
가장 쉬운 종족은 인간과 같은 디자인이었던 진이었다. 가장 어려운 종족은 역시 건이다. 초기의 건족은 무성, 즉 성별이 없는 종족이었다. 그래서 남자로 그려야 할지 여자로 그려야 할지 디자이너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결국 많은 원화가들이 건족은 늘씬한 미녀로 그려내자고 합의했고, 동유럽의 모델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고생한 만큼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 듯하다.
게임 내 의상 중에서 시스루 같이 섹시함을 강조하는 것도 다수 보인다.
너무 선정적이거나 노골적인 디자인은 자제하고 있다. 물론 디자이너의 역량에 맡기고 있지만 시장에서 파급효과를 줄 수 있는 디자인은 피하고자 한다. 시스루나 일반 의복보다 속옷에 가까운 디자인은 외형적인 부분이 아닌 속옷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일부 그래픽 강연회에서 선보였던 시스루 의상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끝으로 캐릭터 원화가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때만 해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혼자만의 싸움이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기관과 방법이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이 읽고 그려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비전을 갖고 작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장 앞에 있는 사람보다 잘 그려야 한다는 비전을 가진다면, 한 단계 넘어서면서 역량을 키울 수 있다. 당장 나도 김형태 AD를 라이벌로 앞에 두고 노력하고 있다.
진부한 말이지만 원화가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것은 노력밖에 없다. 자신을 돌아보고, 오늘 그린 그림이 어제와 어떻게 다른지 보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