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이미 익숙한 장르도 페이스북에서는 ‘새로운 것’이 됩니다.”
스튜디오EX(이엑스) 고승용 대표의 주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초기에 단순한 퍼즐과 소셜게임 위주로 채워졌던 페이스북 게임들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RPG와 슈팅, 시뮬레이션 등의 장르로 눈을 돌리고 있다. <버디러시>나 <건샤인>처럼 MORPG에 버금가는 콘텐츠와 시스템을 갖춘 게임도 등장했다.
고승용 대표는 온라인게임과 페이스북의 접점에 주목했다. 페이스북 게임이 발전할수록 온라인게임 수준의 게임성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소셜네트워크 기반의 게임인 이상 멀티플레이 요소가 필수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렇다면 온라인게임 시장에 익숙한 국내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전하면 승산이 있을 거란 계산이다.
“<플랜츠 VS 좀비> 같은 게임을 국내 개발자가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즐겨온 게임시장도, 게임을 만들어 온 경험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함께 즐길 수 있는 온라인게임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히어로즈 오브 판테온> <플루토어택> <네오사우르스>의 3개 신작으로 페이스북에 도전장을 내민 고승용 대표를 디스이즈게임에서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페이스북에 온라인게임이라는 양념을 가미하다
페이스북 게임을 개발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
계기라면 2007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강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강의에서는 그룹별로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과제를 냈는데 당시만 해도 페이스북에는 게임보다는 원활한 소셜네트워킹을 돕는 애플리케이션이 주류였다. 그런데 학생들 중에 두세 그룹은 게임을 개발하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과연 먹힐까’ 싶어서 그냥 관심만 가진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페이스북이 미국 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각종 ‘빌 시리즈’가 유행을 타면서 페이스북이 일종의 게임 플랫폼으로 넘어가버렸다. 관심까지 갖고 있던 새로운 시장을 놓치기가 아까워서 고민하던 중에 주변에 뜻이 맞는 사람이 여럿 있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어떤 게임을 개발하고 있나?
<히어로즈 오브 판테온> <플루토어택> <네오사우르스> 3개 게임을 주력으로 개발 중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히어로즈 오브 판테온>은 횡스크롤 액션 방식의 MORPG다. 던전을 고른 후 스테이지마다 등장하는 모든 몬스터를 처치하면 보상을 얻는다. 파티플레이와 몬스터의 끝없는 공격을 견디는 아레나 시스템도 제공한다.
<플루토어택>은 턴 방식 슈팅게임이다. 3가지 종족마다 각기 다른 탱크와 40개에 가까운 다양한 전투용 아이템이 있으며 싱글플레이(PvE)와 유저끼리 겨루는 전투(PvP) 모두를 지원한다. 전투나 친구와의 교류를 통해 경험치를 얻고 스킬과 아이템을 강화할 수 있다.
<네오사우르스>는 공룡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캐주얼 MMORPG다. 이름처럼 주인공은 공룡이고 퀘스트나 강화, 제작, 던전과 파티플레이 등 일반 캐주얼 MMORPG에서 등장했던 시스템은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보면 된다.
만들고 있는 게임이 전부 ‘친숙한 장르’들이다.
맞다. 스튜디오EX의 목표가 온라인게임의 속성을 페이스북에 도입하자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오래 전부터 콘솔과 패키지게임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그만큼 개발자들의 경험도 콘솔과 패키지게임에 치중돼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짜임새 있는 구성에 강하다.
반면 우리는 하드코어한 온라인게임을 섭취(?)하며 자랐다. 국내 개발자들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게임도 ‘여럿이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게임’이다.
일례로 국내 개발자가 <플랜츠 VS 좀비> 같은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잘만들 수 있는 콘텐츠로 승부를 보자고 판단했다. 다행히 페이스북 게임 중 소셜과 퍼즐 등을 제외하면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내에서 이미 재미를 인정받았고 어느 정도 검증도 끝난 장르를 들고 나가기 딱 좋은 시기다.
■ 페이스북 게임의 기본은 협동과 부담 낮추기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에 맞는 요소도 필요해 보인다.
현재 우리가 개발 중인 게임의 경우 조작은 문제가 없는데 플레이시간이 대부분 20~30분 단위로 상당히 긴 편이다. 그만큼 중독성은 있지만 부담이 커서 내부에서도 고민 중이다.
<플루토어택>의 경우에는 전투 중인 다른 유저가 빠지면 자동으로 인공지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거나, 인원에 따라 난이도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경쟁 대신 협동이 당연시된다는 점도 페이스북의 특징이다. 온라인게임은 기본적으로 경쟁 기반이다. 하지만 페이스북 게임은 소셜게임부터 시작해서 서로 도와주는 문화가 강하다. ‘내가 너보다 잘해’보다는 ‘내가 너 덕분에 이만큼 컸어’가 필요하다.
스튜디오EX에서는 그 부분을 어떻게 구현 중인가?
소셜게임의 일부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예를 들어 특정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때 친구 6명이 들어오면 업그레이드를 쉽게 할 수 있다거나, 친구의 선물을 통해 새로운 아이템을 얻는 방식이다. 3개 게임 모두 탱크나 캐릭터에 ‘성장’의 요소를 넣은 만큼 성장과정에서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페이스북 게임의 경우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편이다.
기본은 한 달 반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징가류 게임의 트래픽을 보면 매번 짧은 트래픽이 반복된다. 우리가 서비스하는 게임은 볼륨이 볼륨인 만큼 그 정도여서는 곤란하고, 한 3~6개월 정도로 늘려 가고 싶다.
페이스북과 함께 모바일로도 같은 게임을 서비스하는 곳도 많다.
우리도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사실 모바일게임 개발도 이미 시작했다. 우리가 가진 게임들을 기반으로 모바일버전을 따로 작업 중이다. 물론 페이스북 버전이 그대로 추가되지는 않을 거고, 리소스와 콘셉트 정도만 공유하고 내용은 완전히 새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페이스북과 연동 서비스를 할지는 게임마다 다를 듯하다.
<네오사우르스>에 나오는 공룡을 이용해 디펜스게임이나 스테이지 방식 게임을 만드는 등 지적재산권(IP)를 이용한 재활용도 생각 중이다. 개인적으로 모바일에서는 국내 안드로이드 시장이 이동통신사를 기준으로 성장 중인데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동통신사가 운영하는 만큼 결제 시스템이 굉장히 편하다.
■ 독립개발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화가 필수
현재 인력이 어느 정도 되나?
지금 한국 스튜디오에 49명이 있고 개발 중인 프로젝트가 3개다. 그 다음 신작도 준비 중이다. 그리고 미국 LA에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스튜디오EX USA라는 지사가 있다.
아직 서비스도 시작하지 않은 개발사인데 미국에 지사가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간단하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못 만나니까. 콘텐츠 개발 자체는 어디에서 해도 상관없는데, 업계 뒤편에서 벌어지는 일은 미국에서 직접 챙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서 직접 돈을 버는 개발사는 징가를 비롯해 몇 곳밖에 없는데, 최근에는 어려운 업체들이 모여서 게임 내 광고를 통한 수익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기에 서로를 밀어주는 크로스마케팅이 생기면서 살아남기 위한 협력구조가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다.
큰 업체를 기준으로 인수합병도 진행 중이며, 빨리 트래픽을 끌어올려서 큰 업체에 팔리기를 바라고 개발을 시작하는 곳도 있다. 만약 우리가 미국에 지사가 없고, 그들을 직접 만나지 않는다면 끼어들 수 없는 기회들이다.
페이스북 인-게임 광고 시장도 많이 큰가?
미국에서 인-게임 광고가 어색함이 없다. 실제로 매출이라는 말을 들으면 광고 매출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페이스북 게임에서는 아직 매출을 신경 쓸 규모는 아니지만, 페이스북 게임 개발사 중에 광고 매출 비중이 40%가 넘어서 자체 광고회사를 차린 곳도 있다.
페이스북은 대체시장이 없다는 리스크가 있다.
소위 말하는 소셜네트워크게임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맞다. 처음에는 마이스페이스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실상 페이스북이 독점한 상황이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에서 눈을 돌리면 기회는 많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는 페이스북보다는 조금 더 진지한 게임들을 고민 중인데, 독일의 빅포인트처럼 이런 게임들을 모아서 성과를 거두는 곳도 있다. 다른 플랫폼도 있다. 페이스북이 워낙 레드오션이 되어 가니까 멀티플랫폼 전략도 생각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나오는 게임의 수명이 짧다 보니 거기서 빠진 게임들이 그런 쪽으로 흘러들어가 다시 피크를 맞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백야드몬스터>는 페이스북에서 한창 흥행하다가 기세가 꺾인 후 콩그리게이트에 다시 성과를 거뒀다.
끝으로 페이스북 게임시장에 뛰어드는 업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간과 인력이 중요한 듯하다. 우리 같은 경우 온라인요소가 들어가다 보니 다른 게임보다 약간 많은 인력과 기간이 소요된다. 다른 페이스북 게임은 작게는 5명, 많게는 10명 정도가 만드는 데 비해 우리는 프로젝트 하나에 12명 정도가 구성됐다.
개발기간도 1년에서 1년 반 정도인데 솔직히 1년은 넘기면 안 될 것 같다. 우리도 초반에 시행착오를 겪은 걸 빼면 기간이 빠르게 줄어드는 중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 인력과 시간을 다루는 게 가장 중요하다.
<히어로즈 오브 판테온>은 CJ E&M 넷마블이 한국과 일본의 퍼블리셔로 결정됐다.
일본을 제외한 해외는 판권은 와이제이엠과 넷마블이 공동으로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