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저의 행동이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고, 유저들이 모여 세운 마을이 주변환경을 바꾼다. 어떤 악당이 등장할지, 또 어떤 아군이 등장할지, 모든 것은 유저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블리자드의 리드 시스템 디자이너 ‘그렉 스트리트’가 꿈꾸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의 미래다.
<판다리아의 안개>의 발매를 앞두고 그렉 스트리트가 차이나조이를 찾았다. <WoW>와 함께하며 네 번째 확장팩 발매를 앞둔 그는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을까? 중국 현지에서 그렉 스트리트를 만나 <WoW>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들었다. /상하이(중국)=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블리자드 리드 시스템 디자이너 그렉 스트리트.
■ “<판다리아의 안개>는 ‘외전’이 아니다”
블리자드는 매번 <WoW>의 확장팩을 내면서 새로운 기술을 통해 게임의 성격을 바꿨다. <불타는 성전>에서 레이드의 기초를 쌓았고, <리치왕의 분노>에서 위상변화와 컷신으로 스토리에 집중했다. <대격변>에서는 파티찾기 시스템과 이지모드(파티찾기 난이도)를 통해 라이트 유저들도 레이드에 참가하도록 유도했다. 확장팩마다 목적과 주제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기술을 만들어 나간 셈이다.
<판다리아의 안개>의 주제는 ‘다양함’이다. <WoW>의 유저들은 이미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다. 전문적으로 레이드를 뛰는 유저가 있는가 하면, PvP 콘텐츠만을 즐기는 유저, 쉬운 플레이를 좋아하는 유저까지 다양하다. 극단적으로는 전투 자체를 싫어하는 유저도 있다.
그래서 블리자드는 <판다리아의 안개>에서 이 모든 유저층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동시에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하드코어 유저들을 위해 도전모드가 추가되고 전투를 싫어하는 유저들을 위해 대리전투인 펫배틀이 등장한다. 즐길거리를 유저에 따라 세분화함으로써 유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만을 골라서 즐길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판다리아의 안개>가 내세우는 다양함이다.
그렉 스트리트는 <판다리아의 안개>가 <WoW>의 오리지널 스토리와 동떨어진 외전 수준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부정했다. “다양한 즐길거리가 늘어나고 무대를 전혀 새로운 판다리아로 옮긴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판다리아의 안개>가 일종의 ‘쉬어가는 코너’가 되는 건 아니다”는 이야기다.
<판다리아의 안개>를 진행하다 보면 대륙에 등장하는 모그나 맨티스 등이 사실은 <WoW>의 오랜 이야기인 고대신이나 타이탄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다. 판다리아 대륙을 <WoW>의 이야기 속에 녹일 수 있는 장치도 이미 준비했다. 다양함을 확보하면서 원래의 이야기도 지켜 나가기 위해서다.
■ “무조건 새로워지는 게 답은 아니더라”
<판다리아의 안개>는 <WoW>의 네 번째 확장팩이다. 시간으로 따져도 8년이 지났다. 그만큼 유저들은 혁신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렉 스트리트는 “무조건 혁신적인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겉으로 볼 때 유저들은 누구나 혁신적인 변화를 원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원하는 만큼이나 게임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유저들이 있다. 새롭게 바뀐 게임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불평도 이어졌다.
그렉 스트리트 역시 처음에는 많은 부분을 바꾸며 게임이 언제나 신선해 보일 수 있도록 고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어떤 부분을 유지해야 할지를 냉정하게 바라보게 됐다”고 한다. 그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저들에게 배운 점이다.
<대격변>에서 본격적으로 도입한 파티찾기와 공격대찾기가 대표적인 변화다. 파티를 찾는 수고를 줄였고 라이트 유저도 레이드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었지만, 새로운 파티찾기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은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일찍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다(웃음).” 그렉 스트리트의 넉살 좋은 아쉬움이다.
그래서 요즘 그렉 스트리트의 고민은 두 가지다. <판다리아의 안개>에서 추가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얼마나 친절히 알려줄 수 있는지, 그리고 기존의 규칙을 해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지다.
예를 들어 지금의 레이드는 던전에 보스가 서 있고 전투 중 공격을 피하다가 불이 나오면 이를 다시 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판다리아의 안개>에서는 여기에 다양한 상황과 움직임이 들어간다. 친숙하면서도 더 재미있는 전투를 위해서다.
“<판다리아의 안개>에서 리뉴얼되는 특성 시스템 역시 별다른 설명 없이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고민 중이다.”
■ “유저가 모든 것을 이끄는 <WoW>를 만들고 싶다”
그가 꿈꾸는 <WoW>의 궁극적인 모습은 “유저들의 손에 의해 세상이 바뀌는 게임”이다. 유저의 선택이 스토리를 바꾸고, 유저들이 모여서 마을과 도시를 만들며 환경을 바꾼다. 반대로 멀쩡한 도시가 유저들에 의해 사라지거나 새로운 악당이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유저와 게임 사이의 상호작용을 대폭 끌어올리고 싶다는 뜻이다.
물론 이에 앞서 해결할 과제가 많다. 최근의 연이은 그래픽 개편에 맞추기 위해 드워프를 시작으로 오래된 종족들의 그래픽을 바꾸는 중이며, 일부 유저들만의 콘텐츠로 자리 잡은 PvP의 대중화도 준비 중이다. 현재 PvE에서 얻은 아이템을 PvP에서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도 생각 중이다.
여기에 PvP 및 레이드 다시보기 기능과 AOS 방식의 전장, 최근 도입한 서버 공통지역의 안정화 등 할 일이 투성이다. 다만 어느 것이든 서두르지는 않을 생각이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시기에 가장 잘 만들어진 콘텐츠를 내놓자”는 게 블리자드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게임을 개발한 만큼 그에게 유저들의 피드백은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한국 유저들의 피드백 역시 마찬가지다. 그렉 스트리트는 “한국 게이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하드코어하면서 헌신적인 유저들이다”. 언제나 고마움을 느끼고 있고, <판다리아의 안개> 이후에도 다양한 기록들을 세워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