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하다’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을 갖는다. 답답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가 하면, 굳이 쉬운 길을 버리고 자신이 가던 길을 꿋꿋이 가는 사람도 뜻한다.
그런 면에서 폴리곤게임즈는 고지식하다. 폴리곤게임즈에서 개발 중인 <아스타>는 게임 초반부터 많은 정성을 들였다. 2개 진영 6개 종족의 시작지점을 모두 달리하고, 각 종족 고유의 스토리와 세계관, 배경도 넣었다. 지스타에 4개의 지역협동임무 퀘스트를 들고 나온 것 역시 <아스타>의 풍부한 세계관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덕분에 3년이 넘게 게임을 개발하고도 정식 클로즈 베타테스트 한 번 못했고,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한 그래픽도 포기했다. 일견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폴리곤게임즈의 방식’이라는 게 김도훈 부사장의 설명이다. 효율 대신 세계관을, 빠른 레벨업 대신 모험을 택한 고지식한 MMORPG, <아스타>의 개발자를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폴리곤게임즈 김도훈 부사장.
“요즘 온라인게임에서는 새로운 지역을 찾아가도 더 이상 두근거리지가 않아요.” 김도훈 부사장의 푸념이다.
요즘 온라인게임은 빠르고 가볍다. 온라인게임 개발비가 치솟으면서 많은 개발사가 레벨업 과정에서 한 번 보고 지나칠 콘텐츠 대신 최고 레벨 이후의 ‘엔드 콘텐츠’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복잡한 세계관이나 설정, 시스템 대신 단순 명료한 세계관과 이야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몰입감을 위해 레벨업 속도는 경쟁하듯 빨라지고, 몬스터나 퀘스트, 아이템은 최고 레벨 달성을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캐릭터 성장도 아예 일자다. 아무런 생각 없이 길을 따라가면 금세 최고 레벨에 도착한다. 그가 요즘 온라인게임에서 ‘두근거림이 사라졌다’고 말한 이유다.
<아스타>는 반기를 들었다. 이 게임에는 아수의 인간·용족·호족, 황천의 인간·도깨비·야요, 2개 진영에 6개 종족이 등장한다. 종족마다 시작지점이 다르고 배경이나 스토리도 다르다. 서로 만나려면 느긋하게 하루, 이틀 정도는 플레이해야 한다.
어둡고 으스스한 황천부터 밝고 초록이 가득한 아수 지역까지. 분위기가 비슷한 지역도 없고 몬스터와 구조물 하나하나도 달리했다. 보다 자연스러운 세계관을 보여주고, 몇 번씩 플레이하더라도 새로움을 주기 위해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보면 부럽더라고요. 최고 레벨 달성 후에 다른 종족을 경험하면 완전 다른 게임을 하는 것 같잖아요.” 덕분에 마음은 든든하다. 초반부터 많은 콘텐츠를 갖추고 있다 보니 마치 만화책을 쌓아 두고 읽는 느긋한 기분이란다. 3년 반의 고생이 만든 값진 결과다.
■ 무난해 보인다는 고민, CBT 이후 달라질 것
<아스타>는 겉보기에 무난하다. <아스타>란 이름을 들었을 때 마땅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고 실제로 게임을 해봐도 다른 게임과 크게 다른 점을 알기 어렵다. 김 부사장도 이를 인정했다. 확연히 다른 게임성보다는 다양한 유저의 성향에 맞춘 콘텐츠와 완성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다만 ‘확연히 다르지’ 않을 뿐 다른 게임과 같다는 건 아니다. <아스타>에서는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은 모두 구현하고 있다. 필드에서는 모든 몬스터를 꼬드겨서 활용할 수 있고, 해당 지역에서 굳이 파티를 맺지 않아도 진행되는 지역협동임무, 몬스터나 사물로의 변신 등 갖가지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FGT에서 선보인 지역협동임무의 일부. 이번 지스타에서도 지역협동임무를 중점적으로 공개한다.
1차 CBT부터는 격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도 도입할 예정으로 대규모 필드전투도 갖추고 있다. 유저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던전별 난이도 설정이나 서버별 매칭, 즉석 파티 등의 시스템도 마련했다. 여기서도 특유의 고지식함이 발휘됐다.
“다른 게임들이 어떤 시스템을 내세울 때마다 ‘아, 저거 우리도 있는 건데’하고 아쉬워했던 적이 많아요. 그래도 어떤 시스템 하나를 특징으로 내세우는 건 부끄러워서 못 할 것 같아요.”
실제로 게임의 진행을 갈아엎을 수준의 콘텐츠도 아닌데, 소소한 시스템 한두 개를 특징으로 과대 포장하는 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바보 같아 보이지만 게임을 해 본 유저들은 알아줄 것이라는 게 폴리곤게임즈 개발자들의 믿음이다.
지스타 체험버전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아스타>는 지스타 버전에서 4종류의 지역협동임무를 공개한다. 다양한 지역의 장면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민 끝에 내놓은 해답이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아스타>의 재미를 알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느긋하게 게임을 즐겨야 한다.
그래서 김 부사장은 1차 CBT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미 한 차례 포커스 테스트를 거쳤지만 정작 중요한 전쟁을 보여주지 못한 반 쪽짜리 테스트였다. 지스타 버전에서도 전쟁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대신 유저들에게 오랜만에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그동안 바뀐 전투와 그래픽, 사운드 등 기본적인 콘텐츠를 점검 받겠다는 목표다.
“오랫동안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게임만 만들다 보니 많이 답답했는데, 이렇게 공개하고 나니 감회가 새롭네요.”
<아스타>는 지스타에서 유저 반응을 확인한 후 내년 1월 CBT를 시작한다. 지스타에서 게임을 체험한 유저들에게 CBT 초대권과 탈것도 지급할 예정이다. 지스타 버전에서 그치지 않고 CBT의 본격적인 <아스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고지식한 개발사에서 만드는 고지식한 MMORPG. 4년에 걸친 <아스타>의 고지식한 도전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지켜보자.
‘실패한 승천’ 지역. 용이 되려다 실패한 이무기들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