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1일 오픈 베타테스트를 시작한 <테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전을 면치 못했다. ‘콘텐츠가 부족하다’, ‘파티를 너무 강요한다’, ‘퀘스트 동선이 답답하다’ 등 많은 지적이 이어졌고 개발사인 블루홀은 많은 부분을 고쳤다. 라이브팀까지 만들며 빠른 대응을 위해 노력했지만 수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 유저는 많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 2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 <테라>가 두 번째 기회를 맞았다. 2주년을 맞아 시도한 과감한 부분유료 전환이 ‘대박’을 쳤다. 동시접속자가 순식간에 5배로 뻥튀기됐고 신규 가입자도 10배 넘게 늘었다. 작년 말 서버를 무료로 개방하기 시작한 일본의 성적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명실상부한 ‘기회’다.
“힘겹게 얻은 두 번째 기회인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싶습니다.” <테라>의 라이브팀을 맡고 있는 블루홀 김낙형 팀장의 이야기다. 블루홀스튜디오는 이미 단꿈에 젖어 있다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 유저를 모으기는 어려워도 빠지는 건 순식간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신중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 속에서 2년 동안 쌓은 경험을 풀어 나가겠다는 블루홀스튜디오 김낙형 라이브 팀장을 디스이즈게임에서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블루홀스튜디오 김낙형 라이브팀장
■ 동시접속자 5배, 신규 유저 10배 증가
정액제에서 부분유료로 전환한 후 반응이 좋다. 성적 이야기부터 해보자.
김낙형: 지난해 12월부터 사실상 모든 서버를 무료로 공개했다. 이후 유저가 계속 늘더니 1월 4일에는 동시접속자가 부분유료화 이전의 3배가 넘었고, 지금은 5배에 가까울 만큼 또 늘었다. 신규 유저 숫자도 부분유료화 이전에 비해 평균 10배 이상, 주말에는 20배가 넘는다.
인원도 서버당 1,000 명 정도의 대기자가 있다. 새로 추가될 포포리의 친구 서버 말고는 바로 접속하기 어려울 정도다. 복귀 유저, 신규 유저 가릴 것 없이 많이 몰려와서 복귀 유저는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나의 서버에 다 몰았고, 다른 서버는 신규 유저로 채우는 중이다.
소감은 어떤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한국은 1월 10일 정식으로 부분유료화를 했고 일본도 조만간 부분유료화를 할 예정이라 할 일이 많다. 부분유료화 이전에도 할 일이 많았는데 부분유료화 이후에는 여기에 사고도 터지고, 일감도 늘다 보니 집에 가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제2의 OBT를 하는 느낌이랄까?
근데 사실 OBT는 그 이전까지는 조금 쉬면서 만들 수나 있지, 지금은 서비스하면서 부분유료화도 같이 준비하려니까 두 배로 힘들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나?
안 좋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테라>에게는 이미 유저 숫자가 쭉 올라갔다가 쭉 내려가는 아픔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유저들에게 잘못한 부분도 많은 것 같고, 실책을 하면 그만큼 유저들이 떠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게 됐으니까. 그만큼 신중하고 열심히 일하게 되는 듯하다.
그만큼 조심스럽다는 이야기인가?
맞다. 예를 들어 신규 서버만 해도 유저들은 대기자가 수 천 명에 이르는데 왜 새로운 서버를 열지 않느냐 성화였다. 그래도 우리는 ‘일단 두고봐야 한다, 단순히 서버를 막 늘리는 것보다 지금 있는 유저들의 만족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서버를 늘리기보다는 동시접속자 최대치는 늘리는 방식으로 업데이트했다. 결국 그래도 대기 인원이 뜨니까 그 때 서버를 더 늘리자고 결정했다.
■ “부분유료화 계기? 시대가 달라졌더라”
부분유료화를 택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
이전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부분유료화임에도 퀄리티가 좋은 게임이 많다면 정액제 게임들이 과연 얼마나 합리적으로 서비스될 수 있을까? 부분유료화를 발표한 건 한순간이지만 전환하기 전부터 내부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5년 전 <테라>를 개발할 때만해도 퀄리티가 좋으면 월정액을 받고 서비스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좋은 게임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작년 여름 열린 여명의 정원 서버를 통해 부분유료화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인상적인 상황이 많이 나오더라.
예를 들면 본서버에서 정액제 요금을 꼬박꼬박 내는 건 아까웠는데 여명의 정원 서버에서 그 돈으로 캐시아이템을 사는 건 아깝지 않았다거나 정액제에서는 1분 1초를 아까워하던 유저들이 여명의 정원 서버에서는 유독 한가해지더라는 것 등이다. 그때 생각했다. ‘아, 세상이 바뀌었구나.’ 이게 부분유료화의 결정적인 계기다.
부분유료화를 통해 유저가 한가해졌다는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된다
이런 식이다. 정액제 유저들은 돈을 내야 하는 만큼 이용시간을 아까워한다. 같은 던전을 돌아도 플레이가 어설프거나 자기 시간을 잡아 먹는 유저들에게 굉장히 각박해진다. <테라>에서도 덕분에 유저의 아이템이나 실력 등을 확인하는 ‘면접’이라는 게 생겼을 정도다.
현재 <테라>에서는 복장, 패키지 등 총 28개 아이템이 판매 중이다.
그래도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맞다. 결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 일단 해외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한국이 부분유료화면 당연히 해외에서도 그렇게 되기 십상인데 부분유료화 이후에도 <테라>가 잘될 거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데이터’라고 판단했고, 여명의 정원 서버를 통해 몇 달에 걸쳐 원하던 데이터를 얻었다. 그 결과 지금은 거의 모든 지역이 부분유료화 선언을 한 상황이다.
여명의 정원 서버를 연 이후에도 반년이나 지났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은 안 했나?
준비가 그만큼 오래 걸렸다. 여명의 정원 서버를 서비스하면서 계속 무언가 배우면서 하게 된 것 같다. 그 결과를 게임에도 많이 녹여냈는데, 예를 들어 여명의 정원 서버를 열고 보니 신규 유저를 빠르게 최고 레벨까지 끌어올려 줄 방법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레벨업 과정에서의 아이템 강화 확률을 대폭 상승시켰다. 불편하다던 동선도 개선했고, 유저들이 건의한 부분도 하나씩 다 수정했다. 이왕 부분유료로 바꾸는 건데 달라진 점 없이 정액제만 포기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여명의 정원 서버가 열리고 한참 지난 후에 유저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봤고 마침 2주년이 다가오길래 상징적인 의미로 1월 10일에 맞춰 부분유료화를 발표했다.
■ “조심스러운 부분유료화, 현실적인 업데이트”
아쉬워하는 개발자는 없었나?
아쉬워하는 개발자보다는 걱정하는 개발자가 많다. 과연 우리 개발팀이 부분유료화에 잘 맞출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다. 지금도 제일 많이 걱정하는 게 ‘솔직히 우리가 N모사처럼 부분유료화를 많이 겪어본 것도 아닌데 유저들이 정말 어이없어 하는 부분을 건드리게 되지 않을까?’ 이거다.
그만큼 부분유료화 모델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내부적으로 보면서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가야 할까를 많이 고민했다. 사실 <테라>는 부분유료화 이전에도 일부 아이템을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거기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아까 말했듯 부분유료화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만큼 일단 남들이 팔던 안정적인 아이템 위주로 판매하고, 여기에 조금씩 새로운 시도를 섞어 보려고 준비 중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펫 판매를 시작했고, 새로운 꾸미기 파츠 도입을 고민 중이다. 적극적이지만 무리하지는 않는 방면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매번 업데이트 일정을 지키지 못했다.
내부적으로는 꿈을 너무 크게 잡았다고 판단했다. 기술적인 문제를 간과했다. 당장 서버 vs 서버의 전투만 하더라도 유저들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일지, 서버별 인원관리가 가능할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결국 비현실적인 기획이 많다는 비판이 나왔고 대륙 vs 대륙의 구도로 축소했다.
요즘 대형 MMORPG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하나의 콘텐츠가 나왔을 때 예상치 못한 버그와 어뷰징 방법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무언가 실수를 해도 유저들이 용인해주는 분위기도 아니고, 결국 가능한 기획부분을 확실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니 연맹도 비슷한 상태에서 계속 고치는 중이다.
콘텐츠 이슈로 <테라>의 인기가 시들해졌다는 유저도 많았다.
맞다. 콘텐츠 개발속도가 유저들을 따라잡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유저 의견 반영은 계속해왔다. 그런 걸 게을리한 건 아닌데 유저들이 원하는 만큼 속도가 나진 않았다. 개발팀 구성원이 굉장히 많다 보니까 규모가 큰 개발팀에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인 것 같다.
결국 빠른 의사결정과 빠른 대응을 하는 것. 이게 어려웠던 셈이다. 그렇게 진행하다가 지난해부터는 라이브팀을 따로 만들고 개선작업과 업데이트를 동시에 진행해왔다.
결국 지금은 콘텐츠가 부족하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내 입으로 많다고는 못하겠다.(웃음) 다만 할 건 충분히 있다. 2년 전 OBT 시점과 비교하자면 시간이 흐른 걸 감안하더라도 훨씬 뛰어난 만족도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반응도 좋은 편이고.
■ “두 번째 기회. 조심스럽게 다가가겠다”
돌아온 유저들의 이야기 중 어떤 반응이 제일 반갑던가?
‘그래도 <테라> 만한 게 없다’는 이야기가 제일 기분 좋다. 예전에는 우리만 객관적인 곳에 서서 비판을 듣던 분위기였다. 그래픽 때문에 콘텐츠 개발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고, 이전의 MMORPG처럼 무작정 콘텐츠를 늘리기도 쉽지 않은 구조였지만 당시에는 이해를 바라기 어려웠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대작 MMORPG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다 보니 ‘다른 게임과 비교해 보니까 그래도 <테라>가 나쁜 건 아니었구나’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조금 늦었을지 몰라도 큰 위로가 된다.
그만큼 부담도 크겠다.
맞다. 아이템을 하나하나 낼 때마다 조심스럽다. 유저들이 얼마나 원하는 걸 넣어줄 수 있느냐, 그러면서도 얼마나 밸런스를 무너트리지 않을 수 있느냐. 이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일본 서버 한정으로 엘린의 메이드복을 판매했는데 국내에서도 유저들이 ‘왜 한국에는 팔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이 남겨서 판매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왜 엘린 이외에는 메이드복이 없냐’는 의견이 빗발쳐서 다른 종족 메이드복도 만드는 중이다.
진짜 여담인데 남자 캐릭터 메이드복도 만들 건가?
안 만들 거다.(웃음)
일단 유저를 다시 모으는 건 성공한 셈인데,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계속 말하지만 우리는 부분유료화 초보니까 얼마나 유저들의 멘탈과 밸런스를 잘 지키면서 수익을 만들어 나가느냐가 1차 과제다. 게임의 재미가 캐시아이템이나 개발사의 욕심 때문에 날아가지 않도록, 즐겁게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그 다음으로는 꾸준히 놀 거리다. 이건 연맹 업데이트가 시발점이다. 새로운 던전, 전장, 대규모 업데이트 등을 준비하고 있다.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빨리’ 잘 만들어서 부분유료화를 통해 모인 유저들이 지치기 전에 서비스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는 커뮤니티다. <테라>에서 제일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연맹 업데이트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어느 정도 들어 있지만 이거 하나로 없던 커뮤니티가 확 살아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사람 사이의 재미를 어떻게 챙길 것인가, 그 흔한 아지트 하나 없는 게임에서 길드에 관련된 어떤 시스템을 개발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본다.
기본 플레이는 무료니까 들어와서 친한 사람들과 채팅만 하는 그런 게임이 되더라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