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아서>의 ‘어우동’ 일러스트로 게임 쪽에서 이름을 알린 일러스트레이터 흑요석이 서울 화양동의 갤러리 카페 ‘ZAKO’(자코)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기간은 6월 30일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는 ‘나눔의 집’을 돕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됐다. 수익금과 후원금은 전액 ‘나눔의 집’으로 전달될 예정이다. 지난 17일 디스이즈게임은 개인전 현장에 찾아가 흑요석 작가를 직접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인턴기자
‘앨리스, 한복을 입다’는 주제로 개인전을 연 일러스트레이터 흑요석.
■ 포토샵으로 한국화를 그리는 작가 ‘흑요석’
TIG>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흑요석: 일러스트 작가 흑요석이라고 한다. 알려진 작품으로는 <확산성 밀리언아서>의 ‘어우동’과 ‘설화형 장화’가 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TIG> 동양적 화풍으로 작품이 알려졌다. 전공이 동양화인가?
맞다. 원래 한국화를 전공했다. 이쪽을 전공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순수 동양화나 사군자 등을 떠올리는데 사실 대학생들은 그런 작품보다는 현대미술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한지에 먹을 엎지른다든지, 조소작품을 만들어 놓고 한지나 먹을 쓴다든지. 그리고 나처럼 포토샵과 같은 디지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웃음)
‘목단화의 여인’이 내 한국 여인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요즘 작품과 달리 완전히 붓으로 작업한 느낌은 안 난다.(웃음) 퍼즐을 위한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탄생한 작품인데 이 그림을 시작으로 ‘월하미인’, ‘화관무여인’과 같은 시리즈가 탄생했다.
TIG> 흑요석이라는 닉네임이 참 독특하다. 이런 동양적 화풍과 관련이 있나?
어… 안타깝게도 아니다. 오빠가 게임을 좋아했다. 그 덕에 <영웅전설>과 <울티마> 같은 웬만한 고전게임은 다 해봤다. 흑요석은 <울티마>에 나오는 재료 이름이다. 하하.
그때는 아마 영어로 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생소한 단어라 사전을 찾아봤는데 흑요석이라는 단어 자체가 발음도 선명하고 신비로운 느낌도 있어서 좋은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PC통신 시절 하이텔을 시작하면서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됐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번 전시회를 위한 새 작품 ‘목단화의 여인 두 번째’.
동양적 화풍이 돋보이는 흑요석 작가의 작품.
‘이름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주위에서 이미 너무 늦었다며 말리더라.(웃음) 게임 ‘덕후’로서 만든 이름이지만 동양적인 내 화풍과 잘 어울리지 않나? 주위에서도 그래서 만든 줄 알고 있기도 하고. 좋은 이름이다.
TIG> 게임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평소에도 많이 하나? 주로 어떤 게임을 즐기나?
좋아하기는 하는데 요즘은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아서 많이 하지는 못한다.(웃음) EA가 출시하는 게임은 스포츠 장르를 제외하고 다 좋아한다. 특히 <심즈>를 제일 좋아한다. 지금처럼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그냥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서 캐릭터들 먹이고, 화장실 보내고, 연애시키고, 애기 낳는 것도 보고 그러고 싶다.
그런데 한 번 잡기 시작하면 놓을 줄 모르고 게임만 해서 가급적이면 시작을 안 하려고 한다. 모바일게임 중에는 <확산성 밀리언아서>도 많이 했었다.
■ “<확밀아> 상처는 남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TIG> 어떻게 게임 일러스트를 그리게 되었나?
처음에는 <바람의나라>와 같은 도트나 2D 리소스 위주의 작업부터 시작했다. 도트 그래픽은 데이터 그 자체라서 어떻게 보면 내 작품이라는 티도 안 났다. 비록 일러스트처럼 내 화풍을 살린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지만, 내가 작업한 테마나 의상을 유저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내가 회사에 다니던 당시 운영자가 아이디를 만들어 줬었는데 투명 망토를 쓰고 유저들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새로운 맵이나 옷의 반응을 살펴보고 그랬다. <바람의나라>는 유저들의 연령층도 다양하지 않은가? 아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뭔가 뿌듯함도 느꼈었다.
그러다가 퍼즐과 모바일게임 쪽에 일러스트를 그리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지금과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TIG> <확산성 밀리언아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 말도 많았는데, 흑요석에게 <확밀아>란?
내 이름을 알린 게임?(웃음) 여러 게임에 참여하고 있던 와중에 ‘한복 캐릭터’를 그려달라는 액토즈의 연락을 받았다. ‘한복’이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당시 국내에는 TCG 장르가 활성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풍 일러스트가 처음인 만큼 부담감은 컸다. 원래도 예쁜 그림을 좋아하지만 더 예쁘게 잘 그리고 싶었다. 액토즈는 캐릭터에 대해서만 요청했는데 내가 욕심을 갖고 먼저 호랑이도 넣으며 적극적으로 작업했다. 당시 내부적으로는 반응이 뜨거웠다.
<확산성 밀리언아서>의 ‘어우동’ 일러스트.
그런데 유저들의 반응은 내부 같지만은 않더라.(웃음) 그림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캐릭터와 관련해서 나에 대한 인격적 모독이 정말 큰 상처였다. 내 스스로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무자비한 공격을 받으니까 무너지고 말더라. 지금은 많이 무뎌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 글들을 보면 화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연예인 사유리 씨가 트위터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에 대해 평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웃어 넘겨라.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다”고 남긴 글이 가슴에 남았다. 만약 내가 그림을 대충 그렸다면 양심에 찔려서 재기를 못했을 거다. 나는 그 그림에 최선을 다했고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일이 좀 수그러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준 분들이 많다. 그 욕설들을 보며 열심히 싸웠다는 글도 있었고.(웃음) 별것 아닌데 그냥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한마디씩 남겨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소한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 어쨌든 덕분에 ‘흑요석’이라는 이름이 알려졌다.
TIG> 피드백이 흑요석을 움직이는 원동력 같아 보인다.
맞다. 그냥 블로그에 달린 댓글 ‘그림 잘 보고 갑니다.’ 이 한마디만 봐도 너무 뿌듯하다.
그림은 혼자 그리고 혼자 보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자는 상호소통하기 위해 만들지 않았나. 한자의 기원은 상형문자 즉, 그림에서 보고 있다. 그림도 결국 문자와 마찬가지 아닐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고 누군가 봐주길 바란다. 글을 쓰든, 노래를 부르든, 그림을 그리든 결국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거다.
나는 내가 예쁜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내가 예쁘게 그린 그림을 본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너무 행복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이 보편화된 지금의 세상은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감사하다. 악플은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지만 그 이상으로 좋은 이야기도 듣는다. 인터넷 덕분에 이름도 알리고.(웃음)
■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개인전을 열다
TIG>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취지가 좀 특별하다.
맞다. 이번 프로젝트의 수익은 전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언젠가는 개인전을 열어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마침 유캔펀딩 측에서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며 손을 내밀어 줬다. 그냥 개인전을 여는 것보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바로 결정하게 됐다.
TIG> 모금액이 예상보다 많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봉사나 나눔을 평소에도 하고 있었나?
솔직히 말해서 그건 아니다.(쑥스러운 웃음) 유캔펀딩과 이야기하던 도중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그때 지난해 봤던 할머니들의 그림이 생각났다. 실제 있었던 자신들의 일을 직접 그리셨던 작품이었는데 그 절실함과 고통이 그대로 느껴져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었다.
사실 원래 여성이나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다. 그런데 막상 행동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가 그 첫 단추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수익금 전달도 온라인으로 입금해도 되지만, 나눔의 집 원장님과 이야기하고 난 후 직접 찾아 뵙기로 했다.
다른 분들 역시 마찬가지인가보다. 도와주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와 마찬가지로 생각은 많은데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 이번 전시회에서는 상품도 구매할 수 있고 기부도 할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주셨다. 전시회가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눔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
전시회에서 판매 중인 퍼즐과 휴대폰 케이스.
엽서 포장은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TIG> 전시된 작품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글쎄. 사실 그림마다 사연이 있어서 모두 소중하다.(웃음) 그래도 굳이 하나를 뽑자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애착이 더 간다. 작업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작품이다.
그림에 온전히 집중하며 그렸던 게 아니라 회사에 다니면서 조금씩 작업했다. 그러다 보니 완성하기까지 몇 달이나 걸렸다. 회사에서 했던 일이 불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충족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그리면서 많이 풀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가장 좋아해주시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
‘백조왕자’나 ‘미녀와 야수’는 초반에 작업했던 그림들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만 지금의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되게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한 시간은 생각나지 않는데, 적어도 외주작업을 그렇게 했다면 절대 돈은 못 번다는 건 알고 있다.(웃음)
이후로는 작업속도가 빨라졌다. ‘화관무녀’는 2000 피스짜리 퍼즐을 제작하면서 그렸던 일러스트라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고, ‘월하미인’도 회사를 다니면서 작업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개인작업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그게 아니다.
TIG>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작품들이 나올지 힌트 좀 달라.
이번 전시회에서 스케치만 공개된 ‘인어공주’와 ‘라푼젤’을 완성시킬 예정이다. ‘엄지공주’도 계획에 있다.
‘인어공주’와 ‘라푼젤’의 스케치도 전시돼 있다.
앞으로도 한복여인 시리즈와, 서양동화 동양판 시리즈 작업은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두 시리즈는 작업에 임하는 마음가짐에서 차이가 난다. 한복여인 시리즈는 상품으로 만들어져 면세점에도 들어가 있다. 뭔가 국위를 선양한다는 생각으로 힘이 잔뜩 들어가서 그리게 된다.
반면 서양동화 동양판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그린다. 비교하자면 한복여인 시리즈가 회사업무 같다면 이건 개인작업을 한다는 느낌이다. 애초부터 내가 그리고 싶어서 시작했고, 재미있게 흥미 위주로 그린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하다 보면 5년 정도 후에는 동화 하나의 전체 삽화를 완성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앞으로도 응원해 달라.
후원했던 사람들은 입구에서 소정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오픈 첫날(17일) 이른 오후 시간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 카페 ZAKO는 열린 공간으로 남녀노소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