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월드컵 열풍으로 뜨거워지기 이전인 2000년, 온라인 게임시장에 범상치 않은 축구 게임이 등장했습니다. 방구로 상대를 마비시키고, 발차기로 태클을 거는 <강진축구>는 출시 후 100만 명의 이상의 회원을 모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죠.
지난 2007년 서비스를 종료했던 <강진축구>가 7년 만에 후속작 <미니일레븐>으로 돌아왔습니다. 코믹한 게임 콘셉트는 유지한 채, 풍부해진 콘텐츠와 개선된 조작감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게임으로 말이죠.
게이머에게 ‘웃음’을 안겨 주는 <미니일레븐>의 개발사 게임파라디소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스트레스와 짜증에서 나온 결과물은 게임 안에 그대로 묻어나기 마련이라는 게 게임파라디소의 철학이죠.
‘빵 터지는’ 게임을 만드는 게임파라디소는 즐거움 속에서 게임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또 그들이 말하는 <미니일레븐>은 어떤 게임일까요? 직원들의 행복한 업무 환경을 위해 직급 없애기부터 시작한 게임파라디소를 만났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왼쪽 상단부터 게임파라디소 미스터락, 오라클, 소미, 밀키스
개발자들의 파라다이스 게임파라디소
디렉터들의 포스가 남달라요. 어떻게 이강진
대표와 함께하게 된 건가요?
정재호 (오라클): 저는 좋게 포장해서 스카우트였어요.(웃음) 원래 전 직장이 싱가포르였거든요. 다국적 개발사에서 <아더랜드>라는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한 MMORPG를 오랫동안 만들고 있었는데, 10년을 호형호제하던 캡틴이(게임파라디소에서는 이강진 대표를 ‘캡틴’이라고 부른다) 회사를 차린다며 연락을 해 왔어요.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죠.
5년을 넘게 투자했던 <아더랜드> 프로젝트가 결국 엎어지면서 한국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선뜻 온라인게임에 다시 도전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모바일게임 붐이 한창 불고 있던 시기라서 모바일게임도 만들어 보고 이리저리 방황 많이 했어요. 그러다 캡틴의 설득에 넘어가서 지난해 <미니일레븐> 마지막 테스트 즈음 합류하게 됐어요.
신승현 (미스터락): 이 이야기는 다른 직원들한테도 처음 밝히는 사실인데, 제가 캡틴 미술 선생이었어요. 원래 저는 순수 미술을 전공했거든요.
작가란 직업이 참 배고픈 직업이잖아요. 생계를 위해서 미술 학원 강사로 투잡을 뛰고 있었는데, 당시 캡틴이 미술을 배우겠다며 저희 학원에 다녔죠. 오랜 시간 수업하면서 가까워지게 됐고, 배고픈 제가 캡틴에게 취직시켜 달라고 졸랐어요. 그랬더니 덜컥 회사를 차려 버리더라고요.
오라클: 미스터락이 외모는 이래 봬도 프랑스 유학파에요. 능력자이긴 한데, 게임 개발이 처음인 건 둘째치고,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도 입사하고 처음 시작했다는 게 문제였죠. (웃음) 그래도 일을 빨리 배워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지금은 사실상 디렉터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미스터락: 일을 처음 시작할 때 타블릿을 처음 잡아 본거죠. 유학파라고 해도 이쪽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인데 능력보다는 사람을 보고 사람을 뽑은 거에요. 절대적인 믿음을 주니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죽자고 배웠어요.
명함에는 디렉터라는 직함이 있지만 게임파라디소는 따로 직급을 두지 않았어요. 그냥 다 같은 팀이고 오히려 후배라는 마음가짐으로 팀원들에게 많이 배웠죠.
어떻게 보면 상사나
다름없는 디렉터가 본인들에게 배울
때도 있는 상황들이
어색했을 것 같은데.
지소미 (소미): 아마 대표님을 제외하고 직원들 나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만큼 회사 안에는 서열이 분명하지 않아요. 직급을 없애고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고,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에게 존대해요. 저도 다른 회사에 오래 있어 봤지만, 미스터락님이 전 직장처럼 ‘팀장’이라는 직급을 달고 있었다면 당연히 어려웠겠죠.
상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지시 받는다는 기분보다는 항상 함께 일한다는 생각이 더 들어요. 오히려 미스터락님이 더 힘들 거에요. 원화라도 하나 나왔을 때 “어때?”라고 물어 보면 솔직하게 답하거든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처음엔 상처 많이 받으셨죠. (웃음)
고승현 (밀키스): 저는 다른 대형 개발사에서 인턴으로 일해 본 경험은 있지만, 게임파라디소가 정식적인 첫 직장이거든요. 같이 게임 그래픽을 공부하고 큰 회사에 들어간 친구들도 오히려 저를 많이 부러워해요. 게임파라디소는 본인 일만 해결해 놓으면 휴가 같은 것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출퇴근도 시간도 자유롭기 때문에요.
무엇보다 소미님이 말한 것처럼 상하 관계가 없는 문화를 제일 부러워하죠. 업무 프로세스 자체가 수평적이다 보니 게임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요. 지시가 아닌 함께 의논하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에, 직원들 모두 누군가의 보조가 아닌 ‘내 게임’을 만드는 책임자가 되는 거죠.
“<미니일레븐>은 비주류 게임. 그렇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 ”
그렇게 모두에게 소중한 게임파라디소의
처녀작
<미니일레븐>은
캐주얼 게임이에요. 다만, 대작 MMORPG가 쏟아지는
요즘 온라인 게임 시장의
흐름을 보면 역행하는
느낌도 없지 않네요.
미스터락: 솔직히 표현하자면 ‘비주류 게임’이죠. (웃음) 일단은 캡틴의 신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저희는 아이와 아버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누구나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성이 필요했죠. 접근성이 높아야 남녀노소 시도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오라클: 또 캡틴의 대표작 <강진축구>를 즐겁게 플레이했던 유저들에게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 주고 싶은 것도 있어요. 말씀하셨다시피 최근 온라인 게임 시장은 대작 게임들로 쏠리면서 캐주얼 게임 시장이 완전히 죽었잖아요. 캐주얼 게임을 원하는 유저들이 있을 텐데 말이죠. 오히려 기회의 시장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개발자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꿈꾸지는 않았나요?
오라클: 5년을 투자한 프로젝트가 한 번 엎어지니까 욕심이 없어지더라고요. 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그런 기분? (웃음)
밀키스: 게임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성공하는 모바일 게임을 보면 캐주얼 게임이 많은데, 그 게임들이 별로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단순히 콘텐츠가 많고, 규모가 큰 게임보다는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든 게 중요하죠.
<강진축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캡틴의 대표작이다 보니 비교를
안 할 수는
없겠지만, 막상 “<강진축구>랑
뭐가 달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할 것 같은데 어때요?
오라클: 재미있는 게 기존 <강진축구>의 팬들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고 평가해 주시는 반면, <강진축구>의 그래픽만 봤거나 잠깐 플레이했던 분들은 “<강진축구>랑 뭐가 다른 거야?”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꼭 틀린 말은 아니에요. 두 게임이 게임을 통해 주고자 하는 추구하는 바가 비슷하다 보니 모양새는 그렇게 됐네요. (웃음) 캡틴은 '강진축구 2.0'으로 보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직접 플레이를 해보면 차이가 있어요.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이 조작이에요. 10년 전보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모두 사양이 좋아지다 보니 조작의 감도 조절 할 수 있게 됐어요. 또 <강진축구>가 때리고 던지고 맞추는 정도로 직관성이 강했다면, <미니일레븐>은 플레이어의 조작을 더욱 강조해 정교한 패스가 더 중요해졌죠.
미스터락: 변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래픽 디자인 때문일 거예요. 캐릭터가 주는 인상이 유사하니까요. 그런데 사실은 콘셉트 자체에도 많은 변화를 줬어요. <강진축구>의 캐릭터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예를 들면 ‘아줌마’라든지 ‘조교’나 ‘예쁜이’ 같이요.
<미니일레븐>은 글로벌 서비스까지 노리고 있기 때문에 각 캐릭터가 국가가 달라요. 즉, 캐릭터 하나하나가 사실은 특정 국가의 대표 선수인 거죠. 캐릭터마다 외형부터 차별성을 확실하게 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게임에 대해 지적이 많다는 건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관심만큼 많이 즐겨 주셨으면 좋겠네요. (웃음)
<미니일레븐> 속 캐릭터는 모두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뱀파이어 '래빗마리'는 루마니아 출신.
최근에는 과거 인기
게임이 모바일 시장에 진출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강진축구> 모바일이었으면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오라클: 시장 상황을 보면 모바일 게임이 성공을 위한 좋은 해법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만드는 게임성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미니일레븐>은 캐릭터의 이동부터 다양한 스킬 사용까지 키보드를 활용한 조작이 게임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에요. 가상 패드나 터치로 조작한다면 게임이 가진 고유한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거예요.
게임이 오픈된 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 가네요. 지금
시점에서 가장 큰
고민은 뭘까요?
오라클: 게임파라디소 식구들이 전부 순수 개발자들이에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게임을 개발하는 것 자체도 도전이지만, 서비스나 운영하는 과정은 더 큰 도전인 거죠. 대형 회사들만 성공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반항심에 모든 걸 직접 하겠다며 시작했는데, 솔직히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예를 들면 마케팅도 그 부분 중 하나죠.
자본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마케팅에 대한 경험도 없어서 어디에 어떻게 광고를 해야 효과적일지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포털 사이트에 배너 광고를 올리는 게 나을까, 아니면 차라리 초등학교 앞에서 탈 쓰고 쿠폰을 나눠 주는 게 나을까 모든 게 확신이 없는 거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분명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실패를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잘못된 건 질책 받아야 마땅하지만, 아직은 도전하는 단계라는 점을 알아주시고 격려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게임파라디소가 꿈꾸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미스터락: ‘게임파라디소’라는 이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게임 파라다이스를 의미해요.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게임 개발자의 천국을 말하는 거죠.
게임이라는 게 결국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즐겁 하도록 만드는 거로 생각해요. 하지만 정작 만드는 사람들이 매일 고통스러워 한다면 안 되는 거잖아요. 비록 제가 평생 배운 건 순수 미술이었고, 얼떨결에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저는 제 개인 작품을 그리는 것 이상으로 지금 일이 즐거워요.
게임파라디소는 아직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 여느 대형 회사처럼 연봉이 높은 것도 내로라하는 복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행복할 수 있는 문화를 추구하고 있어요. 행복한 개발자로서 만든 게임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