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인재단이 설립된지 이제 100일째, 새로운 도전을 할 때입니다”
게임인재단 남궁훈 이사장은 이색적인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게임업계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3D 프린터’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3D 프린터로 게임 개발에 도움을 주고, 3D 프린터 사업으로 얻은 수익은 게임인재단에 기부해 게임 개발사를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함이다.
과연 3D 프린터는 게임과 어떤 관계일까? 또 그렇다면 남궁훈 이사장은 왜 3D 프린터가 게임업계에 도움이 된다고 봤을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게임인재단 3D랩'을 방문해 남궁훈 이사장과 구상권 랩장을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전승목 기자
왼쪽부터 게임인재단 남궁훈 이사장, 게임인재단 3D랩의 구상권 3D랩장.
3D 프린터는 게임 캐릭터를 실체화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계
구상권 3D랩장은 3D 프린터를 “도면을 입력하면 원하는 모양의 3차원 물체를 만들 수 있는 기계”라고 설명했다. 작동 원리 자체는 간단하다. 액체나 가루로 된 원료를 기계가 분사해 아래에서부터 위로 쌓아나가는 방식이다.
3D 도면을 어떻게 입력했는가에 따라서 다양한 물체를 만들 수 있다. 휴대폰 케이스와 같은 단순한 물체는 물론, 공룡이나 사람과 같은 캐릭터도 제작할 수 있다. 실제로 게임인재단 3D랩 사무실 안에는 구상권 3D랩장이 만든 결과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D 프린터 결과물. 왼쪽부터 액체 분사로 만든 샘플, 가루를 모아 만든 샘플, 색을 입힌 샘플.
그렇다면 다양한 형태의 물체를 만들 수 있는 3D 프린터를 게임업계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활용법은 게임 캐릭터를 직접 현실화시켜서 디자인을 검토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게임 그래픽만 검토해서는 찾을 수 없는 디자인 오류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조금 더 응용하면 상품화해야 할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데에 쓸 수 있다. 실체화 작업 없이 디자인할 경우, 상품으로 만들기 적절한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구상권 3D랩장은 사례를 들며 자세히 설명했다.
“픽사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상품화하기 위해 3D 프린터를 적극 활용합니다. 그냥 캐릭터를 디자인하면 상품을 만들 때도 예쁘게 나올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실체화 작업을 해야 하는데,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모형을 만드는 작업은 400만 원짜리 3D 프린터로도 할 수 있어요.”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자동차 모형.
3D 프린터를 이용해 이색적인 홍보도 할 수 있다. 남궁훈 이사장은 “게임쇼에 3D 프린터로 제작된 캐릭터 모델을 만들어 전시하면 게이머들의 시선을 좀 더 쉽게 끌고 공감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모니터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의 피규어를 제작할 때 별도의 조형을 만들고 샘플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큰 비용 없이 만들 수 있다. 더구나 캐릭터 하나가 아닌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전부를 선보이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남궁훈 이사장이 밝힌 예는 말 그대로 간단한 사례에 불과하다. 사용자에 따라 3D 프린터 활용법은 무궁무진해질 수 있다. 남궁훈 이사장은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3D 프린터가 더 가치 있는 사업을 창출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처음 3D 프린터를 보고 ‘물체를 전송하는 팩스’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실제 물체의 형태를 고스란히 본뜬 도면을 멀리 떨어진 사람의 3D 프린터에 전송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엄청난 혁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날로그 방식의 사진기가 디지털 사진기로 진화하는 것과 같고, 그만큼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남궁훈 이사장은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가장 먼저 3D 프린터 활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임 개발자들이 늘상 하는 일이 머릿속의 상상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니, 다른 사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들보다 먼저 가치 있는 사업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다.
다시 말해 ‘더 좋은 게임 개발, 더 효과적인 게임 홍보, 게임 캐릭터 상품 활성화,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미래 사업 선점’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3D 프린터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체험관과 학원 운영하겠다
3D 프린터 사업을 추진한 이유를 밝힌 남궁훈 이사장은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밝혔다. 1단계는 ‘3D 프린터 체험관 운영 및 학원 개설’이다. 체험관은 오는 24일 월요일 게임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먼저 공개할 예정이다.
게임업계 종사자는 게임인재단 3D랩에 방문해 자신의 명함만 제시하기만 하면 3D 프린터 결과물, 3D 프린팅 과정을 구경할 수 있다. 체험관 운영 시간은 추후 발표될 예정이다. 또한, 당장은 게임업계 종사자들만 입장할 수 있지만, 향후에는 일반인에게도 공개할 계획이다.
학원 운영은 구상권 3D랩장이 맡으며, 게임업계 종사자들을 모아 3D 프린터 강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초기에는 3D 프린터 개발 과정과 작동원리를, 이후에는 3D 프린터를 다루기 위한 소프트웨어 지식을 가르쳐주고, 마지막으로는 직접 3D 프린터로 물체를 만드는 실습수업을 계획하고 있다.
샘플 단면도. 원료를 절감하기 위해 벌집 구조로 속을 채워넣었다.
“사람에 따라 배우는 데에 필요한 시간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당장 문서를 프린트하려면 워드를 다룰 줄 알아야 하듯이, 3D 프린터를 사용하려면 3D 디자인하는 법을 알아야 하거든요. 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1주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한 달 내외로 3D 프린터를 쓰는 법을 알게 될 겁니다.”
물론 구상권 3D랩장은 학습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신이 3D 프린터를 사용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공유해주겠다고 밝혔다.
참고로 게임인재단 3D랩에는 400만 원짜리 3D 프린터와 6천만 원짜리 3D 프린터 2대가 놓여있다. 사람 모양의 샘플을 제작했을 때 400만 원짜리 제품으로 5시간, 6천만 원짜리 제품으로 2시간 정도 걸렸다. 샘플의 모양에 따라 작업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
왼쪽부터 일반 샘플 제작용 3D 프린터, 색칠된 샘플 제작용 3D 프린터.
학원비 및 사업 수익은 게임인재단에 전액 기부
남궁훈 이사장은 학원 개설 외에도 다른 사업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게임개발사에 필요한 3D 프린터를 추천·보급하고 물체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원료를 공급해 수익을 창출할 예정이다.
물론 불안요소는 존재한다. 당장 남궁훈 이사장의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게임 개발사들이 3D 프린터가 꼭 필요한 물건임을 인식해야 한다. 제조업에서는 3D 프린터가 널리 쓰이고 있지만, 아직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3D 프린터가 생소하기만 하다.
“새로운 문물은 늘 그랬잖아요. 옛날에는 잉크 프린터조차 집집마다 없었지만, 요즘은 레이저 프린터가 대중화됐죠. PC도 옛날에는 ‘저걸 누가 쓰냐, 크기만 한 오락기지’라는 말을 들었지만 요즘 사무실에 PC 없는 회사가 어디 있습니까? 취업을 위해서는 PC 활용 여부가 중요해졌죠. 3D 프린터도 언젠가는 당연하게 쓰일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잉크 프린터와 PC가 대중화됐듯이 3D 프린터도 널리 퍼질 날이 올 것"
남궁훈 이사장은 3D 프린터의 대중화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과 동시에 게임인재단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업을 잘 해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3D 프린터 학원 수업비, 기타 사업 수익들을 게임인재단에 전액 기부할 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게임인재단에 기부된 수익은 추후 게임업계를 위한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구체적인 기금 활용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게임인재단의 설립 목적을 추진하는 데에 쓰인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단순히 3D 프린터로 직접 게임 개발을 도울 뿐만 아니라, 모은 수익을 기부해 게임개발 환경을 개선하고 개발자들이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특히 개발자들이 좋은 신랑감으로 인정받고 장가 잘 가는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