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의 미국 퍼블리셔로 유명한 ‘엔매스 엔터테인먼트’(En Masse Entertainment, 이하 엔매스)가 차이나조이 2014를 찾았다. 퍼블리셔인만큼 출전 이유는 간단하다. 더 좋은 온라인게임을 찾아 미국에 소개하기 위해서.
하지만 회사를 둘러싼 상황을 생각해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미국 온라인게임 시장은 이제는 더 이상 서구권에서 투자자를 찾기 힘들 정도로 위축된 상황. 실제로 2013년 미국 온라인게임 투자규모 톱 10 중 9개 사례가 미국이 아닌 동양권에서 나타났다. 그만큼 서구권에서는 온라인게임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일개(?) 중견 개발사가 새로운 온라인게임을 구하러 차이나조이에 출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엔매스의 개발이사 브라이언 녹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상하이(중국)=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엔매스의 브라이언 녹스 개발이사
엔매스가 미국 온라인게임 퍼블리싱에 뛰어든 것은 5년 전이었다. 엔메스는 <테라>의 북미 진출을 위해 블루홀 스튜디오가 세운 현지 법인. 그런 만큼 첫 업무는 <테라>의 북미 서비스였다.
시작은 녹녹하지 않았다. <테라> 북미 진출이 시작된 2011년은 현지에서도 정액제 게임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하던 시절. 이런 시장에서 <테라>는 정액제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앞세우며 도전장을 던졌다. 언어뿐만 아니라, 콘텐츠와 시스템 모든 측면에서 현지화를 시도했지만, 대세로 거듭난 부분유료화 게임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해, 엔매스는 북미 <테라>의 부분유료화를 결정했다. 이전까지 개발한 비즈니스 모델을 다 뒤엎었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맞춰 콘텐츠 밸런스를 전부 뜯어고치는 대공사였다. 엔매스와 블루홀스튜디오 담당자들은 이 때문에 몇 달 동안 밤낮이 없어질 정도였다.
다행히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유저 수는 10배로 늘었고, 매출 규모도 5배나 증가했다. 이제 <테라>는 북미에서 300만 유저를 거느린, 전 세계 MMORPG 매출 3위를 기록하는 중량급 타이틀로 성장했다.
“답 없는 북미 온라인게임 시장? 개성과 소통이 답이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엔매스의 온라인게임 철학은 간단하다. 게임의 장단점이 뚜렷하고, 그리고 그 게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언젠가 성공한다는 것이다. 매년 지스타와 차이나조이 같은 게임쇼에 참가하는 것도, 이러한 믿음에 부합하는 게임을 찾기 위함이다.
“정액제 시장이 저물어도 <테라>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게임만이 가진 ‘논타겟팅 액션’이라는 강점 덕분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무기로 긴 시간을 버텨왔고 지금의 위치까지 성장했다. 아무리 시장이 어렵고 환경이 변해도 게임이 좋으면 유저들은 기다려준다. 단순히 다른 게임의 장점을 따온 ‘카피캣’ 게임은 북미 유저들에게 절대 인정받지 못한다. 오히려 조금 어설프더라도 자신만의 개성이 확실한 게임만이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엔매스의 주력 타이틀 <테라>
브라이언 녹스는 이러한 철학을 이야기하며 얼마 전부터 북미 게임시장에 불기 시작한 ‘인디게임 얼리액세스’ 열풍을 예로 들었다. <마인크래프트>부터 <테라리아> <데이즈> 등 많은 게임들이 좋지 않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강점을 내세우며 유저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그리고 이런 모델은 인디 개발자를 넘어 대형 게임사에게도 퍼지고 있다. 실제로 소니의 <에버퀘스트 넥스트>는 정식 서비스에 앞서 일종의 월드 시뮬레이터라고 할 수 있는 <에버퀘스트 넥스트 랜드마크>를 먼저 선보여 피드백을 받고 있고, 블리자드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테크니컬 테스트 단계부터 유저들의 의견을 받아 업데이트에 반영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게임은 게임성이 뛰어난 게임일 뿐만 아니라, 개발사가 소통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앞서 설명한 사례들이 그랬듯 개성이 확실한 게임은 자신의 약점을 내놓으면서도 유저들과 함께 성장한다. 이는 '원칙'이다. 우리는 온라인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믿고, 온라인게임 유저들의 눈을 믿는다. 물론 우리는 퍼블리셔라 이 전략을 그대로 취할 순 없다. 하지만 개성 있는 게임과 소통하는 개발사만 있다면, 유저와 이들 사이의 가교를 해줄 수 있다.”
테크니컬 알파 테스트 단계부터 유저들에게 게임을 공개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개성 발휘할 수 없는 모바일게임 시장, 게이머와 소통으로 뚫겠다
최근 엔매스의 목표는 이러한 PC 온라인게임의 이상을 모바일게임에서도 이어가는 것이다. 엔매스는 5년의 경험을 가진 PC 온라인게임과 달리,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1년도 되지 않은 신생(?) 퍼블리셔다. 다년간의 부분유료화 노하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미 수많은 퍼블리셔가 난립하는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이러한 장점은 희귀하지 않다.
엔매스가 추구하는 ‘좋은 게임’의 가치도 모바일게임 시장을 도전하며 고민을 더하는 요소다. 그들이 추구하는 게임은 ‘개성 강하고 유저들과 함께 소통하는 게임’. 독특한 개성으로 유저들에게 눈도장 찍고, 이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성장해 간다는 일종의 ‘정공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북미, 아니 전세계 모바일게임 시장 흐름 상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세계에는 수많은 마켓이 존재하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게임을 노출하기 위한 공간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이는 북미에서도 많은 게임사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 퍼블리셔, 아니 모바일에선 신생 퍼블리셔인 엔매스가 이런 꿈을 잘 꿀 수 있을까?
7월 OBT를 시작한 엔매스의 TPS 게임 <ZMR>
엔매스도 이를 위해 수개월을 고민했지만, 결국 다시 한번 ‘개성’이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이 답을 내리게 된 계기는 이번 달 OBT를 시작한 <좀비 몬스터 로봇>(이하 ZMR)이라는 슈팅게임이었다.
<ZMR>은 전통적인 RPG를 지향했던 <테라>와 달리, 각양각색의 몬스터를 쏘고 부수는 ‘마초적인 슈팅게임’을 표방한다. 전혀 유저층이 겹칠 것 같지 않은 두 게임이지만 엔매스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게임에 관심을 보였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적지 않은 수의 유저들이 두 게임을 함께 즐기고 있다. 이들을 묶은 것은 개성이라는 키워드였다.
“첫 작품부터 개성을 내세웠기 때문인지, 우리 유저들은 기본적으로 독특한 게임들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최근 OBT를 시작한 <ZMR>이 이런 케이스였고, 이후로도 다음엔 어떤 특이한(?) 게임을 선보일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PC 온라인이든, 모바일이든 게이머들이 선호하는 것은 결국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특징이 있다면 (적어도 우리) 유저들은 반응하고 즐겨준다. 그리고 소통이 있다면 이를 더욱 북돋을 수 있다.”
엔메스는 이러한 이상을 위해 ‘개성있는 게임, 그리고 열린 마음을 가진 개발사’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넣고 있는 상태. 과연 엔매스의 이상은 북미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그 첫 열매는 올해 안에 열릴 예정이다.
차이나조이 2014 엔매스 부스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