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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3 2010 뉴스

[국내 단독 인터뷰] ‘핏빛 투혼’ 커트 실링

180명과 MMORPG를 만드는 야구 전설을 만나다

임상훈(시몬) 2010-06-30 17:38:36

커트 실링(Curt Schilling)을 아시나요?

 

야구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왠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워낙 대단한 저주였으니까요.

 

- 1920

보스턴 레드삭스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저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큰 삽질을 합니다. 데뷔 첫해 1.75의 방어율을 기록한 대단한 왼손 투수이자, 홈런 타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판 거죠. 보스턴 팬들의 노여움은 대단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노여움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약체 양키스는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 덕분에 최고의 명문구단이 된 반면, 1912년 이후 네 차례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던 강팀 레드삭스는 베이브 루스를 트레이드한 후 80년 이상 우승 문턱에서 계속 미끄러졌으까요. 이런 사연 덕분에 밤비노의 저주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강력한 저주가 됐습니다. ‘밤비노’(이탈리아어로 아기’)는 베이브 루스의 애칭이었죠.

 

- 2004

85년 만에 기적처럼 이 저주가 풀렸습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뉴욕 양키스에 먼저 세 판을 내줬다가 극적으로 네 판을 내리 따냈던 보스턴이 월드시리즈까지 4:0으로 간단히 끝내버린 거죠.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먼저 세 판을 졌다가 역스윕한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중 하나가 연출됩니다. 발목 수술을 받은 보스턴의 커트 실링이 챔피언 결정전 6차전에서 엄청난 호투를 펼쳤는데, 그의 하얀 양말에 핏자국이 번져 있었던 거죠(오른쪽 사진). 그야말로, 진짜 레드 삭스였습니다. 일부에서 조작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85년이나 묵은 저주를 풀려면 그 정도 레어아이템이 필요했을 법합니다. 커트 실링은 그 해 초 보스턴에 입단했는데, 그는 입단식에서 밤비노의 저주를 풀겠다고 맹세를 한 적이 있습니다.

 

- 2006년

커트 실링이 보스턴 홈구장의 명물인 왼쪽에 높게 솟은 펜스와 같은 이름의 게임 회사를 세웠습니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게임회사를 차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에버퀘스트> 마니아로 알려진 그는 직접 MMORPG를 만들겠다고 나섰습니다. 야구장에서 밤비노의 저주를 풀었듯, 베이브 루스급 온라인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를 뛰어넘는 게임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로 말이죠. 그러니 야구를 좋아하는 TIG에서 얼른 만나 볼 수밖에요. 오래 걸렸습니다. 지난해 GDC에서 인사만 나눴지만, 올해 E3에서는 기어코 인터뷰를 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 코드명 ‘코페르니쿠스’는 여전히 비밀

 

그가 만들고 있는 게임에 관해서는 세 가지 정보가 전부였습니다. MMORPG라는 것. 코드명이 지동설을 주장했던 15~16세기 신부이자 천문학자의 이름을 딴 코페르니쿠스라는 것. 회사 공식 홈페이지(www.38studios.com)5장의 원화(아래 이미지)를 공개했다는 것.

 

 

그래서 이번 참에 좀더 많은 것을 물어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TIG> 제작 중인 게임은 역사 속의 인물인 코페르니쿠스의 세계관과 관련이 있는가?

 

Maybe~.

 

TIG> 코페르니쿠스가 활동했던 15~16세기 유럽, 혹은 과학이나 천문학과 관련이 있는가?

 

Maybe~.

 

TIG> 혹시 게임 내용과 코드명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는 것 아닌가?

 

Maybe~.

 

TIG> 게임은 대략 언제쯤 나올 것인가?

 

Not Today.

 

TIG> 게임에 대한 정보는 언제쯤 공개할 것인가?

 

Not Today.

 

 

OTL. 이쯤 되면, 게임 이야기 대신 김병현과 함께 뛰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이야기나 물어봐야 할까요? 마운드에서 타자를 봉쇄했듯, 게임에 대한 질문을 꽁꽁 막아 버리더군요. 메이저리그 선수 시절에도 말솜씨로 유명했다는데, 직접 대면해 보니, 확실히 얼추 이해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직구 대신, 유인구를 택했습니다.

 

E3 2010가 열린 미국 LA 컨벤션 센터 근처의 한 식당에서 진행된 인터뷰. 지난해 만났을 때도 그랬듯,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는 2004년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반지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TIG> 당신은 <에버퀘스트> <WoW>의 열혈 유저로 알려져 있다. 이 게임들이 <코르페니쿠스>와 연관되는 점이나, 비슷한 점이 있는가?

 

물론 있다. 어떤 점에서는 특히 그렇고, 아닌 점도 있다. 둘 다 게임을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WoW>는 게임 시작해서 20분 지나서 쉽게 적응해서 플레이할 수 있었다. <에버퀘스트> 12분 정도 걸렸던 것 같고. 둘 모두 PVE 요소가 잘 갖춰져 있었다. <울티마 온라인>과 달리, <WoW>는 콘텐츠가 정말 대단했다. 또한 플레이를 하는 데 여러 사람이 필요하거나, 대형 길드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TIG> <코페르니쿠스>의 차별적인 특징은 어떤 게 있나?

 

, 확실히 스토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잠깐 디즈니를 생각해 봐라. 디즈니의 스토리에는 엄청난 추종자()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스토리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 게임도 스토리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스토리는 우리가 차별화하고 매우 노력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다. 특히 스토리가 게임에서 하는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이 정도까지만 이야기하겠다. (편집자 주: 스토리를 강화하기 위해 커트 실링은 뉴욕타임즈 판타지소설 베스트셀러 작가인 R.A. 살바토레와 유명 만화 <스폰>의 작가 토드 멕파렌 등을 영입한 바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명도 높은 인물들로, 살바토레는 기획에, 멕파렌은 그래픽을 담당하고 있답니다.)

 

 

TIG> <코페르니쿠스>가 어떤 게임이 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가?

 

기존 게임들과 다른 게임, 엔터테인먼트 영역의 아웃라인을 보여주는 게임들 중에서 하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한때 정치인처럼 말을 잘 한다고 알려졌던 커트 실링입니다. (참고로, 그는 조지 W. 부시의 열렬한 지지자였죠. 결국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지난해에는 메사추세츠주 상원의원에 도전할 뜻을 비치기도 했고요.) 유인구에도 쉽게 게임 내용을 풀지 않았습니다. 게임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보다 개괄적인 수준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쯤 되면 회사로 주제를 옮겨보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었습니다.

 

 

■ <에버퀘스트> 길드에서 시작된 38 스튜디오 

 

TIG> 38 스튜디오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

 

원래 이름은 그린몬스터게임즈였다. 그런데 약간 문제가 생겼다. 그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스턴 홈구장인 펜웨이파크의 그린몬스터와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내 등번호를 따서 회사 이름을 바꾸었다.

 

 

TIG> 어떻게 게임회사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됐나?

 

1989~1999년 무렵, 야구를 그만두면 하고 싶은 게 무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야구 말고 아는 것들 중에 하나가 게임이었다.

 

2004~2006년 사이, 게임 회사를 여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에버퀘스트 2>를 즐기던 시절 10~11명 정도의 멤버가 있는 길드에 속해 있었다. 그 때 그 길드에서 진지하게 게임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 길드가 게임회사가 시작된 곳이다. 길드원들은 그 아이디어가 좋다고 했고, 6개월 지난 뒤 보스턴에서 게임회사를 만들었다.

 

 

TIG> 게임 제작 과정에서 당신이 맡고 있는 구체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회사의 문화와 사명을 지키는 것, 그리고 개발진들이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더불어 개발진들이 자기 자신을 챙기는 것처럼 다른 개발진들을 배려하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삶은 팀 환경에서 플레이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개인보다 팀으로서 함께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개발진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TIG> 당신은 야구선수로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게임을 만드는 데 장단점이 있다면?

 

확실한 장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신생 회사로서 미디어의 관심을 받을 수 있고, 덕분에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있을 것이다. 단점으로는, 큰 문제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나를 여전히 야구선수로 본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냐는 것이다. 어쨌든, 내 지명도가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활용한다.

 

지난해 커트 실링과 함께 만났던 스티브 차오(Steve Tsao). 두바이 온라인게임 퍼블리셔 타하디 게임즈(Tahadi Games)의 CEO인 그는 커트 실링의 <에버퀘스트> 길드 멤버였습니다.

 

 

TIG> 야구와 게임 개발의 공통점이 있나?

 

매우 많다. 둘 다 팀 정신(Team Spirit)이 무척 중요하다. 야구선수일 때와 지금이 똑 같은 점은 팀으로서 다른 경쟁자보다 낫기를 갈구한다는 점이다. 지난 5년 간 우리가 하는 일에 최고이기를 희망해 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가고 있다.

 

리더십 관점에서 보면, 좋은 야구팀 감독은 각 포지션에 적합한 선수를 배치한다. 좋은 감독은 매일 충실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선수를 배치한다. 일주일에 이틀을 플레이할 수 있는 벤치 플레이어를 넣는 라인업을 짜면, 해당 선수도 최선을 발휘할 수 없고, 팀도 마찬가지다. 매일 꾸준히 플레이할 수 있는 라인업을 짜야 한다. 게임회사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각 영역에 적절한 인물을 배치하고, 그들이 매일 베스트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TIG> 38 스튜디오의 최대 강점은 무엇인가?

 

사람이다. 현재 180 명의 인력이 있는데, 그들은 <울티마 온라인> 이래 미국 MMO를 만든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인재들이다. MMORPG를 만드는 모든 과정의 인재들이 모여 있다.

 

 

TIG> 그나저나 38 스튜디오에서 야구는 하나?

 

안 한다. 대신 소프트볼 팀이 있다. 꽤 잘한다. 내가 투수는 아니다. 하하.

 

 

커트 실링은 야구선수 시절 상당수 기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선수들과 불화도 이슈가 되곤 했죠. 그 이유 중 하나는 직설적인 언행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같은 이유 때문에 기자들을 몰고 다니기도 했죠. 자신의 지명도를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편하게 이야기하는 게임회사 사장은 처음이었습니다. 인터뷰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게이머 커트 실링에 대해 짧게 물어봤습니다.

 

 

■ “MLB 선수들은 야구 게임을 하지 않는다.”

 

TIG> 최초로 플레이한 게임은 무엇인가?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팀 동료 중에 한 명이 <울티마 온라인>을 즐겼. 나도 따라서 하게 됐다. 그리고 나서 <에버퀘스트>를 플레이하게 됐다. <에버퀘스트>가 내가 처음으로 푹 빠졌던 게임이다.

 

 

TIG> 그 동안 해본 온라인 게임은 몇 개나 되나?

 

글쎄, 잘 모르겠다. 30~40개 정도.

 

 

TIG> 그중에서 당신의 베스트는?

 

<에버퀘스트>.

 

 

TIG> 쉬지 않고 쭉 게임을 해 본 시간은 어느 정도 되는가?

 

, 48시간 정도.

 

 

TIG> 한국 게임에 대해서는 좀 아는가?

 

<길드워>를 매우 즐겁게 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매우 많이 있었다. 최근에는 <아이온>의 론칭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그 이후 유저들의 MMORPG에 대한 높은 요구수준에 놀랐다.

 

 

TIG> 혹시 야구 게임 만들 생각은 없는가?

 

당신이 제대로 된 야구 게임을 만들려면 실제 야구처럼 어려워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내가 도와주겠다(웃음).

 

 

TIG>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에서 MMORPG를 즐기는 이들이 또 있나?

 

작년 아메리카 리그에서 사이언상을 탄 잭 그레인키(Zach Greinke, 캔자스시티)를 아는가? 그는 <WoW> 길드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메이저리그 선수가 40명 정도 속해 있다. 지난 2008년 올스타 MVP JD 드류(David Jonathan Drew, 보스턴)도 그 길드 소속이다.

 

 

TIG>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야구 게임을 안 하나?

 

대부분 선수들은 안 한다. 대신 Xbox360이나 PS3NFL 풋볼 게임을 한다. 반면, 풋볼 선수들은 대부분 야구 게임을 한다. NBA 선수들은 야구나 풋볼을 하고. 자기가 하는 스포츠를 게임으로 하지는 않는다.

 

TIG 로고를 그리고 있는 저 오른손이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3,116 개의 스트라이크 아웃을 잡았던 그 손입니다.

 

 

커트 실링은 한국과 중국 등 해외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약했지만, 미국과 매우 다르다는 것은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샨다, 더나인, 텐센트 등 중국 퍼블리셔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아마도, <WoW>가 중국에서 크게 흥행했기 때문인 듯했습니다.

 

38 스튜디오에서 개발 중인 게임의 론칭 시기가 가까운 게 아닌 만큼, 해외 시장과 관련된 논의를 깊이 있게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아시아 시장의 특징이나 유저들의 성향에 대한 이해를 넓혀 줄 좋은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해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지 시장과 유저를 알고 있는 파트너의 조언이 필수적이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럼에도 약간 다른 비즈니스 애로사항을 밝히기도 하더군요. 아시아 쪽 회사들은 알파 버전을 플레이해 보기 전까지는 진도를 많이 나가지 않는 것 같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커트 실링에게 한국 게이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한국에서 게임 서비스를 하게 된다면우리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한국 게이머가 실제로 느낄 경험이라는 것을 한국 게이머들이 알아 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 게임이 어떻게 더 나아질 것인지, 한국 게이머들로부터 듣고 싶을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 그런 관계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생길 수 있다. 우리는 게이머와 파트너의 목소리를 듣기를 매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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