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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2013

치장? 기능성? 캐시 아이템의 딜레마

NDC 2013 강연: 에버플래닛 포스트모템

전승목(아퀼리페르) 2013-04-25 21:11:33

선택은 두 가지가 주어져 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든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진퇴양난, 혹은 딜레마라고 부르는 상황이다.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뭔가 일을 하다 보면 일어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는 <에버플래닛> 라이브 서비스를 맡고 있는 네스토릭이 겪어온 상황이기도 하다. 정교하게 만들어도 문제고 대충 만들어도 문제인 튜토리얼, 많이 줘도 적게 줘도 탈이 나는 이벤트 보상과 신규 던전 보상, 일장일단이 있는 캐시 아이템 중 어떤 것을 주로 만들 것이냐 등등, 게임을 서비스하는 동안 딜레마는 꼭 생겨났다.

 

이에 네스토릭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5년 동안 <에버플래닛> 개발에 참여한 명나리 디렉터의 ‘솔직한’ 강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적절한 타협안과 제 3의 아이디어로 돌파구를 열기도 하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낭패를 겪은 바도 있었다. /디스이즈게임 전승목 기자


 

넥스토릭 명나리 디렉터

 

 

■ 튜토리얼, 어디까지 만들어야 할까? 

 

첫 번째 고민은 ‘튜토리얼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구현하느냐’였다. 튜토리얼을 너무 상세하게 만들어도, 대충 만들어도 유저 이탈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튜토리얼을 대충 만들면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게임을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만둔다. 그렇다고 튜토리얼을 상세하게 만들면 기존 유저, 빨리 전투를 시작하고 싶은 유저들이 답답하게 여기고 그만둔다. 어느 한 유형의 유저를 만족시키면 다른 유형의 유저가 불만을 표시하는 딜레마가 나타난 것이다.

 

명나리 디렉터는 수많은 고민 끝에 ‘튜토리얼을 한없이 정교하게 만들 리소스로 다른 것을 개발하는 편이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포기하는 유저는 인연이 아닌 것이지 게임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제로 전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직 퀘스트를 하러 마을로 다시 돌아가기 귀찮다”면서 게임을 그만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직하기 전까지는 마을을 나갈 수 없도록 수정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을을 벗어나고 싶은데 전직하기는 귀찮다”는 이유로 게임을 접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임을 시작하자 마자 포기하는 사람들은 쉽사리 잡을 수가 없다.

 

 

■ 이벤트,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해야 하나?

 

이벤트를 준비할 때도 딜레마는 있었다. ‘보상을 얼마나 주는가’에 따라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가령 이벤트 보상이 너무 적으면 이벤트의 의미가 사라진다.

 

이벤트 보상이 너무 파격적이어도 문제다. 누구에게나 이벤트 혜택을 주면 유저들이 보상을 받아도 덜 기뻐한다. 몇 명에게만 파격적인 혜택을 주면 유저들이 “내가 못 받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불만을 나타낸다.

 

이런저런 이벤트를 시행해 본 결과, 명나리 디렉터는 ‘정해진 기한 동안 조금만 노력하면 아이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가 주로 호응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상 자체는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보상을 못 얻는다는 이유로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개발자가 생각하는 잘된 사례 1, 아이스맨 머리 모양 모자를 주는 이벤트.

 

보상보다 재미를 강조한 이벤트도 호평을 받았다. <에버플래닛>에서 OX 퀴즈 이벤트를 연 적이 있다. 정답을 맞힌 유저는 무대에서 계속 퀴즈를 풀고, 못 맞힌 유저는 무대 가장자리에서 구경만 하는 방식이었다.

 

흥미롭게도 탈락한 유저 상당수는 보상을 못 받는다는 이유로 접속을 끊지 않았다. 계속 퀴즈를 푸는 사람들이 O와 X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OX 퀴즈를 내는 스핑크스의 거침없는 입담(?) 또한 이벤트에 도움이 됐다. 당시 스핑크스는 “너따위가 7문제를 연속으로 풀 수 있을 리가 없어”, “이 문제를 풀다니 핵 쓴 거 아니냐? GM에게 신고하겠다”는 등의 대사를 읊었는데, 유저들은 이 NPC에게 ‘개핑크스’라는 별명을 붙이고 놀리면서도 퀴즈 이벤트에 호응해줬다.

 

결과적으로 파격적이지 않을 수는 있어도 의미가 있는 보상을 준비한 시도, 아예 보상을 떠나 재미를 추구하는 제 3의 시도가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개발자가 생각하는 잘된 사례 2, 스핑크스 이벤트.

 


■ 유저에게 득이 되는 이벤트, 항상 좋은 건가?

 

유저에게 득이 되는 이벤트 또한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칫하면 되려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명나리 디렉터는 먼저 잘된 사례를 소개했다. 추석 동안 접속자 수를 유지하기 위해 기획한 이벤트였다. 이 이벤트는 몬스터를 사냥해 모은 특별한 아이템 ‘코인’을 이벤트 아이템과 교환하는 형식으로 기획됐다. 코인 하나로는 송편과 교환할 수 있고, 많이 모으면 경험치 상승 아이템 ‘보름달의 기적’과 교환할 수 있는 식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보름달의 기적’이 평균 접속자 수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보름달의 기적은 사용 즉시 현재 자신의 레벨에서 레벨업까지 필요한 경험치 30%를 채워주는 아이템이다. 레벨을 올릴수록 필요로 하는 경험치값이 늘어나기 때문에 레벨 1에서 경험치 30%를 얻는 것보다 레벨 50에서 경험치 30%를 얻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이벤트 아이템의 효능 덕분에 평균 접속자 수가 10% 향상됐다.

 

이 때문에 유저들이 꾸준히 레벨을 올린 뒤 보름달의 기적이 만료되는 날짜에 아이템을 소모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당시 <에버플래닛>의 평균 접속자 수가 10% 향상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큰 실패를 남긴 이벤트도 있었다. 출석 이벤트 보상으로 무기 성능을 향상시키는 강화 +1 주문서를 걸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넥슨이 이메일로 게임 아이디를 만드는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라 한 유저가 여러 개의 계정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유저가 시스템을 악용해 여러 개의 계정으로 전설급 무기를 개조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고도로 강화된 전설급 무기들이 지나치게 많이 생겨났고, 유저들은 6개월 동안 이 사태를 들어 <에버플래닛>을 비판했다.

 

명나리 디렉터는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기획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 애써 만든 사냥터, 어떻게 해야 버림받지 않을까?

 

사냥터를 만들 때는 두 가지 딜레마가 있었다. 우선 너무 쉽게 만들면 콘텐츠 소모가 심해지고, 어렵게 만들면 일부 유저들만의 콘텐츠가 되기 십상이다.

 

다행히(?) 이 딜레마는 의외의 형태로 해결됐다. 어렵게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개발한 던전이 업데이트 후 40분 만에 공략당한 것이다. 콘텐츠 소모라는 문제가 터지긴 했지만 어쨌든 딜레마는 해결된 셈이다. ‘개발자가 무슨 짓을 하든 유저는 빠른 속도로 콘텐츠를 소모한다’는 결론이 나와서다.

 

콘텐츠 소모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안 될 일이었다.

 

두 번째 딜레마는 ‘새로 추가한 던전이 버림받는 현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였다. 이건 고민할 문제였다. 이미 공략한 던전에 유저들이 꾸준히 오도록 유도하려면 매력적인 보상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좋은 보상을 주면 게임 내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고 좋은 보상이 극악한 확률로 지급되는 시스템을 고집할 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내 캐릭터는 저주캐(전투를 해도 좋은 아이템을 얻지 못하는 캐릭터)야. 레어 아이템? 나와는 상관없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극도로 낮은 확률로 좋은 보상을 준다면 던전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게 뻔하다.

 

고민 끝에 내놓은 대책은 ‘확률만으로 보상을 주지 말고 노력한 사람도 보상을 얻게 하자’였다. 예를 들어 던전을 100번 돌면 레어 치장 아이템 A를, 던전을 200번 돌면 그보다 더 좋은 레어 치장 아이템 B를 주는 식이었다.

 

또한 보스 몬스터에게서 레어 아이템만 얻도록 기획하지 않고, 다른 레어 아이템 제작 재료를 얻도록 기획했다. 운 없는 유저도 재료를 판매하며 소소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다음 콘텐츠가 추가될 때까지 던전이 버림받는 현상을 줄일 수 있었다. 던전 보상으로 생기는 지나친 인플레이션도 어느 정도 억제하는 효과도 있었다.

 

운 없는 유저도 비교적 쉽게 모을 수 있는 ‘ 제작용 재료.

 

 

■ 캐시 아이템, 치장이냐 기능성이냐?

 

명나리 디렉터가 마지막으로 소개한 딜레마는 ‘어떤 유형의 캐시 아이템을 판매하냐’였다. 캐시 아이템은 크게 치장 아이템과 기능성 아이템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둘 다 일장일단이 있었다.

 

치장 아이템은 캐릭터를 꾸미는 아이템이다. 눈으로 보는 만족감은 주지만 따로 다른 혜택을 주지 않는다. 게임 밸런스 문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팔리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명나리 디렉터는 “보통 아티스트는 2주 동안 고민해서 치장 아이템을 개발한다. 만약 유저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동안 개발하느라 들인 노력과 인건비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셈이다”고 밝혔다.

 

기능성 아이템은 유저에게 특정한 효능을 준다. 캐릭터를 더 강하게 만드는 아이템, 경험치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아이템이 대표적인 예다. 이 아이템은 치장 아이템보다 사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재구매도 활발히 일어난다. 일부 기능성 아이템은 소모성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다만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준다는 게 문제. 또, 효능 설정에 따라 유저들의 심한 반발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 딜레마에 대해 명나리 디렉터는 적절한 타협안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본인 또한 취직하기 전에는 게이머였고, ‘넥슨이 코 묻은 돈을 빼앗아가는 회사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다’는 과거의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은 뒤, 다음과 같은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입사한 뒤에 보니까 정말 일부 유저들만 결제하는 거예요. 코 묻은 돈을 모은다는 말이 무색하게 보일 정도로요.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려면 수익을 내야 하는 현실도 보였고요. 그래서 캐시 아이템을 기획하는 데 시달리면 이 일이 힘들겠구나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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