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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과대광고 논란 '노 맨즈 스카이'가 우수 서비스상을 받기까지

[연재] 김승주의 방구석 게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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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사랑해요4) 2021-01-05 11:36:59

​과대광고라는 말이 있다. 과대광고란 상품을 많이 팔기 위해 내용을 부풀리거나, 없는 내용을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 과대광고는 게임계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있는데, 출시 직전 개발사가 약속했던 요소가 실제 게임엔 전혀 없거나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얼마전 뉴욕타임스는 "<사이버펑크 2077>를 10년짜리 과대광고"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2016년 8월 9일 출시된 오픈월드 샌드박스 게임 <노 맨즈 스카이>(No Man's Sky)는 이런 과장 광고의 대표 주자로 여겨지는 게임이었다. 2013년 첫 공개된 <노 맨즈 스카이>는 맵을 무작위로 생성하는 '절차적 생성 시스템'을 통해 구현된 대규모의 우주를 탐사하며, 외계인과 교류하는 컨셉으로 많은 주목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게임이 발매되자 개발사가 약속한 요소들은 게임 내에 전혀 구현되지 않았고, 게임은 툭하면 버그를 뿜어내며 플레이어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당시 디스이즈게임의 평가도 "사지 마세요" 였을 정도였다.

 

그런데 2020년 <노 맨즈 스카이>는 권위 있는 게임 시상식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에서 무려 '우수 서비스상'을 수상했다. 출시 초창기만 하더라도 "압도적으로 부정적"이었던 스팀 평가도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2019년에는 유저들이 직접 돈을 모아 헬로 게임즈 근처에 감사의 이미지를 담은 광고판을 개재하기도 했다. 허위 광고로 인해 각종 소송과 살해 위협까지 시달렸던 게임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과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노 맨즈 스카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노 맨즈 스카이>가 4년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 시작은 작은 인디 개발사였다

 

2008년 2월, 레이싱 게임 <번아웃 시리즈>로 유명한 EA 산하 스튜디오 '크라이테리온 게임즈'의 수석 프로그래머로 근무하던 숀 머레이는 퇴사를 결심했다. 반복적인 후속작 제작에 싫증을 느끼고, 자신이 진정으로 개발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EA를 나온 숀 머레이는 의기투합한 3명의 개발자와 '헬로 게임즈'를 설립했고, 2년간의 개발 끝에 레이싱과 플랫포머 요소를 결합한 게임 <조 데인저>(Joe Danger)를 출시했다.

 

자신의 집까지 팔아 가며 세운 개발사인 만큼 개발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했지만, 기나긴 노력 끝에 출시된 게임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PS3로 발매된 <조 데인저>는 발매 첫날 만에 개발비를 전액 회수했으며, 약 3개월간 1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비평가들의 평가도 좋았다. 2010년에는 영국 유명 일간지인 '더 가디언' 이 선정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100대 기업에 선정될 정도였다.

 

헬로 게임즈의 공동창업자 '숀 머레이' (출처 : 가디언)

<조 데인저>의 스크린샷 (출처 : 스팀)

이런 성공에 고무된 헬로 게임즈는 2012년에는 후속작인 <조 데인저 2: 더 무비>를 발매했지만 전작만큼 신통치 않았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숀 머레이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그가 EA를 퇴사한 이유도 반복적인 후속작 개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곧 그는 6명이 채 넘지 않는 팀원들과 무작위로 맵을 생성하는 '절차적 생성 시스템'을 우주 탐사에 접목한 게임 <노 맨즈 스카이>의 프로토타입 개발에 착수했다.

<노 맨즈 스카이>의 최초 공개는 2013 VGX(스파이크 게임 어워드)에서 이루어졌다. 해당 시상식에서 숀 머레이는 게이머들에게 절차적 생성 시스템을 이용한 방대한 SF 게임을 만들 것이라 약속했다. 정교한 시스템을 통한 무한한 우주의 구현, 행성 탐사를 통한 다양한 외계인과의 교류, 팩션 간 이루어지는 대규모 함선 전투까지 구현할 것을 약속한 노 맨즈 스카이를 보고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이는 SF(공상 과학) 게임에 대한 서양 게이머들의 선호도를 생각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나 <스타 트렉 시리즈> 등 서양권에선 우주 탐사를 다룬 SF물을 선호하는 마니아들이 많은데, 이는 게임계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부터 <엘리트>(1984) 등 광활한 우주 탐사를 구현하려 노력한 게임은 많았고, <노 맨즈 스카이>가 공개될 당시에도 <X3 시리즈>나 <스타 시티즌>등 많은 게임들이 넓은 우주를 현세대 기술력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개발 중인 베데스다의 <스타필드>도 그러한 시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압도적인 스케일'의 우주를 약속한 <노 맨즈 스카이>가 많은 기대를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미 컴퓨터 게임 초창기부터 제대로 된 '우주 탐사'는 게이머들의 염원 중 하나였다. 사진은 1984년에 발매된 게임 <엘리트>.

 

헬로 게임즈에게 선뜻 손을 내민 유통사는 바로 소니였다. 당시 소니는 PS4에 적극적으로 인디 임을 유통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눈에 <노 맨즈 스카이>가 매력적으로 비쳤음은 당연하다. 헬로 게임즈가 개발했던 <조 데인저>가 PS3로 선행 발매되어 높은 수익을 거뒀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조 데인저>는 PS3로 발매된 이후 1년 뒤에 Xbox 라이브로 발매되었는데, Xbox에서의 판매량은 높지 않았다. 소니는 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자금이 넉넉지 않았던 헬로 게임즈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실제로 소니는 헬로 게임즈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노 맨즈 스카이>는 인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2014년 E3 메인 무대에 올라 청중들에게 게임을 소개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 인디 게임이 E3 메인 무대에 오르는 사례는 극히 적었다. 게이머들과 웹진은 이와 같은 유례없는 현상에 주목했고, 몇몇 매체에서는 <노 맨즈 스카이>를 최고의 PS4 게임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제는 SF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게이머가 <노 맨즈 스카이>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기대감은 헬로 게임즈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 높아지는 기대감, 꼬여만 가는 개발환경

높아지는 기대감과 정반대로 노 맨즈 스카이의 개발은 여러모로 꼬여만 갔다.

첫 시작은 자연재해였다. VGX 2013에서 게임을 공개한 지 약 6개월이 지난 2013년 12월 24일, 영국 남부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강둑이 무너졌다. 강둑 근처에 있었던 헬로 게임즈의 본사는 그대로 홍수를 뒤집어썼다.

 

크리스마스 휴가도 반납하고 황급히 돌아온 직원들은 자신들의 맥북이 사무실에 둥둥 떠다니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백업한 데이터는 정상 작동했지만, 이들은 몇 날 며칠을 꼬박 사무실 청소에 매달려야 했다.

 

홍수 피해를 입은 헬로 게임즈의 모습 (출처 : 헬로 게임즈 트위터)

엉뚱한 곳에서 터진 지적 재산권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영국 방송회사 스카이(SKY)가 <노 맨즈 '스카이'>라는 제목이 자신들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건 것이다. 축구 팬들에게는 스카이 스포츠로 유명한 ​그 곳이다.

 

이미 스카이는 2013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스카이드라이브'에 지적 재산권 소송을 걸어 이름을 '원드라이브'로 개명시킨 전례가 있었다. 이 소송은 게임이 발매되기 두 달 전인 2016년 6월에야 마무리되었는데, 헬로 게임즈는 스카이와 어떤 협상을 했는지 지금까지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소니와 같은 거대 유통사와의 협업도 게임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을 부풀리는 데 일조했다. 헬로 게임즈가 <노 맨즈 스카이>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할 때만 하더라도 개발 인력은 겨우 6명이 채 되지 않았다. 게임이 발매될 때쯤에야 개발자가 15명으로 늘어났을 뿐이었다. 거대 개발사의 AAA게임이 보통 수백명이 넘는 인적 자원을 투자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적은 인원이다.

하지만 형성된 기대는 AAA급이었다. 소니라는 대형 유통사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데다가, E3 메인 무대에서 게임을 홍보했다.​ 가격도 다른 AAA 게임과 다르지 않은 60달러로 책정되었고, 값비싼 한정판까지 판매했다.​ 뒤에 쓰겠지만, 이 스포트라이트는 헬로 게임즈에게 독으로 돌아왔다.

 

대중 앞에 선 숀 머레이도 문제였다. 그는 달변가나 마케터라기보다는 개발자 캐릭터였다. 조명을 받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하게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조절하거나, 각종 매체의 자극적인 질문을 유연하게 흘려내지도 못했다.


<노 맨즈 스카이>는 막 개발 단계에 접어든 게임이었음에도 불구, 매체나 게이머들은 게임에 이미 어떤 기능이 '구현되었는지' 집요하게 물었고, 숀 머레이가 아직 구상 단계에 있는 요소를 언급할 때마다 이미 이런 요소들이 '구현되었다고' 생각한 게이머들이 가진 기대감은 끝없이 올라갔다.

유명 방송인 스티븐 콜베어와 인터뷰중인 숀 머레이 (출처 : 유튜브)

출시일이 다가오자 헬로 게임즈도 게임에 산적한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버그는 너무나 많았고, 콘텐츠는 빈약했다. 개발 기간이 더 필요했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끝없이 올라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게임이 발매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소니와의 계약 때문에 출시일을 유연하게 조정하기가 힘들었다. 이미 출시일이 못 박힌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게임을 연기하면 유통사 입장에서도 적잖은 타격이 오기 때문이다.

헬로 게임즈는 사정 끝에 겨우 <노 맨즈 스카이>의 발매일을 6월 말에서 8월로 미룰 수 있었지만, 게임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6주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개발진들은 골드행이 확정되자 드디어 게임이 완성되었다며 트위터에 자랑했지만 이는 앞으로 벌어질 끔찍한 참사에 대한 전초전이었을 뿐이었다. 아래 사진은 두고 두고 비판을 받았다.

게이머라면 한 번쯤 봤을 법 한 <노 맨즈 스카이>의 골드행 사진 (출처 : 트위터)


# '과장 광고'의 표본이 되다

 

발매 직전부터 <노 맨즈 스카이>는 지독하게 꼬인 게임이었다.

 

높은 기대감 때문에 <노 맨즈 스카이>는 발매 2주 전부터 게임이 유출되는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몇몇 유저가 불법적으로 <노 맨즈 스카이>의 미리 패키지를 입수해 게임을 플레이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유출한 플레이 동영상은 게이머들이 기대하던 <노 맨즈 스카이>의 이미지와는 딴판이었다. 게임은 심심하면 버그를 뿜어냈고, 숀 머레이가 약속했던 것들은 전혀 구현되어 있지 않았다. 소니는 긴급히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유출 동영상을 삭제했지만, 게이머들의 불안감은 멈출 줄 모르고 올라갔고, 이윽고 그 불안은 현실로 다가왔다.

먼저 <노 맨즈 스카이>는 '절차적 생성 시스템'을 통한 거대한 우주를 구현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를 활용할 요소가 극히 없었다. 우주는 분명 광활했지만, 행성 풍경은 대부분 비슷비슷했고 외계인도 비슷한 얼굴에 아주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다양한 행성을 탐사하는 재미가 없진 않았지만, 곧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만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자 게이머들은 지루함을 토로했다.


UI나 인터페이스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가령 우주 전투에서 플레이어가 탑승한 비행기의 쉴드가 소모되면 아이템을 사용해 이를 충전해야 하는데, 핫키가 따로 존재하지 않아 일일이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사용해야 했다. 채집해야 할 아이템은 많은데 인벤토리가 너무나 작기도 했다. UI도 직관성이 매우 떨어졌고, 제대로 된 튜토리얼도 없어 플레이어가 수고를 들이며 게임 시스템을 공부해야 했다.

인터뷰를 통해 약속했던 시스템도 대부분 구현되지 않았다. 2014년 E3에서 보여줬던 함대 간 대규모 전투나, 팩션 시스템은 게임에 전혀 없었다. 게다가 콘솔판은 버그가 너무나 많아 심심하면 게임이 튕기는 등 제대로 된 플레이가 불가능할 수준이었다.

멀티플레이어의 부재도 큰 비판을 받았다. 본래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숀 머레이는 "다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느냐"에 대한 대답에 "확실히 그렇다"라고 답변한 바가 있다. 하지만 발매 직전 숀 머레이는 "<노 맨즈 스카이>에는 멀티플레이어가 없다", "광대한 우주에서 플레이어가 서로 만날 확률은 0%에 가깝다"라며 말을 바꿨다. 

실제로 발매 이후 유저들의 실험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노 맨즈 스카이>에는 멀티플레이가 없었다. 자신들이 가까운 항성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두 플레이어는 서로 소통하며 동일한 좌표에서 마주 섰지만, 끝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우주가 너무나 넓어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예 멀티플레이 기능이 구현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유저들은 속았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 광고표준위원회가 허위/과장 광고가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들어가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는 "혐의 없음"이었다. 가령 멀티플레이 같은 경우는 게임 패키지에 "멀티플레이가 가능함"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는 식이었다. 게이머들은 황당함을 토로했지만, 일단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분노한 게이머들은 인터뷰에서 약속했던 것들이 실제로 게임에 구현되었는지 표를 만들어 비교하기 시작했고, 숀 머레이가 약속했던 수많은 요소들이 실제 게임에선 전혀 적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울화통이 터진 게이머들은 너도나도 유통사에 달려가 환불을 요청했다. 커뮤니티에선 유통사들이 <노 맨즈 스카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불을 수용했다는 근거없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밸브가 이례적으로 “<노 맨즈 스카이>는 기존 스팀 환불 정책이 적용됩니다. 특별 면제는 없습니다”라는 공지를 스팀에 올리고 나서야 루머는 사그라들었다.

오죽하면 이런 공지가 나왔을 정도

그래도 스팀은 구매 후 14일 이내 플레이 시간이 2시간을 넘지 않을 경우엔 손쉽게 게임을 환불할 수 있었지만, 소니의 환불 정책은 전혀 달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소니는 다운로드 혹은 스트리밍을 시작하는 순간 콘텐츠에 결함이 있지 않은 이상 환불이 불가하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게임을 다운로드한 즉시 환불이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이 덕분에 소니의 환불 정책이 게이머들의 비판대 위에 오르기도 했다.

헬로 게임즈가 처한 상황은 더 심각했다. 숀 머레이가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수많은 악성 메일과 살해 협박을 받았으며, 개발사에 대한 폭탄 테러 협박을 받아 지역 법 집행기관과 접촉해야 했을 정도였다. 협박이 아니더라도 웹진과 게이머들은 날마다 <노 맨즈 스카이>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헬로 게임즈의 이미지는 끝을 모르고 떨어져만 갔다.

그렇게 게임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노 맨즈 스카이>는 과대광고의 표본이 된 게임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듯했다.

 

 

# 업데이트, 오로지 업데이트

 

<노 맨즈 스카이>는 분명 끔찍한 실패였다. 유저들의 혹평, 개발진을 통한 끝없는 협박 덕분에 헬로 게임즈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 직면할 경우 개발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지 않다. 아예 게임업계를 떠나거나, 뻔뻔하게 입을 씻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전념하기도 한다. 일단 <노 맨즈 스카이>의 판매량은 괜찮았던 만큼, 금전적으로 큰 문제는 없는 상황이었다.

 

유저들의 혹평 덕분에 둘째 주 판매량이 약 81% 감소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지만, 일단 전체적인 판매량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숀 머레이와 헬로 게임즈는 힘든 선택을 내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범한 실수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를 처음부터 고쳐나가리라 다짐한 것이다.

개발 전 이루어진 수많은 인터뷰가 과장광고가 되었음을 고려해 <노 맨즈 스카이>의 트위터 업데이트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웹진과의 인터뷰도 거절했다. 그리고 수많은 부정적 리뷰를 분석해 최우선으로 고쳐야 할 문제와 업데이트해야 할 요소들을 하나하나 정리한 후 오로지 개발에만 전념했다. 

실제로 8월 16일 이후 첫 업데이트인 '파운데이션'이 공개되기 전까지 숀 머레이의 트위터는 한 번도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런 업데이트가 모두 '무료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8월부터 11월까지 트윗이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트위터)

개발진들이 잠적한 줄만 알았던 게이머들은 업데이트 소식을 듣고 놀랐지만, 초기 반응은 마냥 긍정적이진 않았다. 이미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은 들 달라지는 게 있겠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헬로 게임즈는 비난에 굴하지 않았다.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텅 비어버린 우주에 하나하나 콘텐츠를 채워 나갔다. 2017년 3월엔 '패스 파인더' 업데이트가 이루어졌고, 부분적 멀티플레이를 구현한 '아틀라스 라이즈'가 2017년 8월에 업데이트되자 게임에 대한 평가도 차차 긍정적으로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업데이트는 2018년 7월에 이루어진 'NEXT' 업데이트다. 해당 업데이트를 통해 노 맨즈 스카이에는 드디어 제대로 된 멀티플레이가 구현되었다. 3인칭 기능 추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추가, 다양한 탐험 요소도 추가되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게임이 달라졌다. 

게임이 정상적인 수준까지 올라오자 <노 맨즈 스카이>를 혹평하며 떠나갔던 게이머도 소식을 듣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틀라스 라이즈 업데이트 당시 2만 명에 그쳤던 동시 접속자 수는 NEXT 업데이트 이후엔 약 10만 명까지 증가할 정도였다.

 

16년 10월부터 20년 8월까지의 유저수 그래프

2020년까지 노 맨즈 스카이의 대규모 업데이트 모음(위)과 노 맨즈 스카이가 발매 전 약속했던 요소를 구현했는지 비교한 표(아래). 이제는 꽤 많은 것들이 구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Imgur)

이미 혹평을 받은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서 업데이트하는 모습을 보며 헬로 게임즈와 숀 머레이에 대한 게이머들의 평가도 바뀌어 나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9년 8월에 한 유저가 시작한 모금활동이다. 개발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시작된 모금은 목표치인 1,750달러를 웃도는 6,000달러를 모았고, 감사 광고판 설치와 개발자들을 위한 간식 전달 이후 남은 금액은 근처 어린이 병원에서 아이들을 위한 게임을 구매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는 게임의 순기능으로 각종 언론에 소개될 정도였고, 개발자들도 트위터를 통해 유저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남겼다. 몇 년 전만 해도 살해 협박까지 받았던 개발사가 이제는 유저들에게 자발적인 격려를 받는 위치까지 오른 것이다.

 

유저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남긴 트윗 (출처 : 트위터)

 

# 용서하되, 잊지 않는다

<노 맨즈 스카이>는 분명 최악의 게임 중 하나로 역사에 남을 게임이었다. 하지만 헬로 게임즈와 숀 머레이는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게임 업데이트에 전념했고, 결국 2020년 더 게임 어워드에서 다른 쟁쟁한 게임들을 제치고 '최고의 서비스(Best Ongoing)상'을 수상했다. 

한 때 과대광고의 대표주자였던 게임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노 맨즈 스카이>는 게이머들에게 '올바른 사후지원'을 상징하는 게임이 되었다. 정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겠지만, 헬로 게임즈는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을 성취했다.

 

더 게임 어워드에서 최고의 서비스상을 수상한 <노 맨즈 스카이> (출처 : 더 게임 어워드)

물론, 출시 초기에 벌였던 여러 행각들을 고려하면 발매 3~4년 이후에야 제대로 된 게임을 완성했다는 비판을 완전 피하기는 힘들다. 주변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무리한 욕심으로 인해 구현되지 않은 요소가 실제로 게임에 적용된 것 마냥 홍보한 것은 분명 헬로 게임즈의 실책이었다. 처음부터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출시 초기의 저평가와 대량 환불 사태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앞서 해보기' 단계라는 핑계로 제대로 된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수많은 게임들을 생각해 보면, <노 맨즈 스카이>가 보여준 남다른 책임감은 분명 귀감이 될 만하다. <노 맨즈 스카이>는 무리한 개발 일정과 과대광고가 만든 악례이자, 유저들과의 무너진 신뢰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는지에 대한 선례를 보여준 게임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용서하되, 잊지 않는다(Forgive, But don't forget)"- <노 맨즈 스카이>에 대한 유튜브 댓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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