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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접칼럼] 차이나조이와 쇼걸

CJ의 SG에 대한 쓸데없고 편향적인 잡설

임상훈(시몬) 2011-08-10 17:27:47

“CJ SG 한번 만나 보실래요?”

 

차이나조이에 가기 전이었습니다. 중국의 한 지인이 이런 물음을 해왔습니다. 이게 무슨 소릴까?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CJ인터넷의 스마일게이트? 이건 아닐 테고, 무슨 암호지? 조금 뒤 해석이 됐습니다. CJChina Joy, SG Show Girl의 약자였죠. 덕분에 이번 차이나조이에서는 쇼걸과 인터뷰를 하는 기회도 얻었죠 그러면서 머릿속에 , , 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혹독히 비판 또는 비난하는 쇼걸을 차이나조이는 왜 이렇게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허접한 망상은 그렇게 해서 시작됐습니다.

 

CJ SG에 대한 쓸데없고 편향적인 잡설 한번 들어보실래요?


 

# 중국은 원래 그랬다

 

만약 어떤 게임의 첫 페이지에서 미모의 여자 유저 사진들을 올려 놓고, 그 유저와 친구를 맺으려면 회원에 가입해서 어떤 게임을 플레이해야 한다는 식으로 마케팅을 한다면?

 

만약 디스이즈게임이 차이나조이가 시작하기 전부터 쇼걸의 프로필 사진을 다 모아 놓은 페이지를 만들고, 메인 그린존을 장악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있을까요?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눈살 찌푸리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일방적이든, 아니면 옹호 대 비판이든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게임 포털은 그렇게 마케팅하고, 게임 매체는 그렇게 트래픽을 올립니다.

 

중국 대형 게임업체의 포털 사이트.

 

중국 메이저 매체의 차이나조이 쇼걸 페이지.

 

중국의 한 게임업체는 PC방에 미모의 도우미를 보내 게임을 추천하고, 게임에서 어려운 게 있으면 물어보라며 본인의 연락처를 주는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소주 판촉 도우미가 술집을 돌며 소주 한 병씩 나눠주는 것에서 많이 나간 거죠.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2000년대 초 국내에서도 PC방에 도우미를 보내 게임을 홍보하던 업체가 있었습니다.) 아쉽게 못 갔지만, 차이나조이 때 한 중국 업체는 수영장에서 행사를 갖기도 했고요.

 

차이나조이의 넘치는 쇼걸은 이런 일상적인 게임 마케팅의 맥락과 궤를 같이 합니다.

 

 

# 중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명백한 여성 외모의 상품화입니다. (성의 상품화와 외모의 상품화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넓게 보면, 중국만의 일은 아니죠. 우리 사회에서도 너무나 흔하니까요. 제 대학시절, 당구장의 흥행은 서비스 음료수나 당구 큐의 질보다 아르바이트생의 매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긴 생머리에 하얀 티셔츠를 입은 청순한 아르바이트생이 있던 당구장이 제일 인기가 높았죠. 이 당구장 마케팅의 다른 버전은 TV나 웹, 거리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중국이 차이 나는 건 우리보다 훨씬 노골적이라는 거겠죠. 우리는 은근히 하지만, 중국은 솔직하게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혹자는 중국 업체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적인 탓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여성의 외모를 한껏 이용한다는 거죠. 맞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포인트가 조금 다릅니다. 소비자(관람객)의 태도가 더 핵심적인 차이라고 보거든요. 큰 논란 없이 받아들여지니까, 그렇게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니 고개가 갸우뚱해졌습니다. [중국 VS 다른 세상]의 대조보다는 [한국 VS 다른 세상]이 더 적절한 것 아닌가 하고요. 차이나조이 전에 참가했던 두 번의 해외 게임쇼의 경험이 이런 생각에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죠.

 

지난해 게임스컴이 끝난 뒤 독일 공항에서 만난 항공사 홍보 광고.

 

올해 E3 전시장을 가는 이른 아침, 대로변에서 봤던 한 이동통신사의 홍보 행사.

 

 

# 우리는 왜 안 그럴까

 

두 광경은 저에게는 무척 쇼킹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자랐고, 제가 자란 땅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었으니까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이 저럴 리 없고, SKT나 KT가 저랬다면 여론의 호된 뭇매를 맞았겠죠. 한국이라는 환경, 그리고 그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의 가치관에서는 저런 장면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때 문득 성리학이 떠올랐습니다. 중국에 가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정작 중국보다 우리가 더 교조주의적으로 받아들여 오래오래 간직해온 가치체계. 그런 영향 탓에 여성 외모의 상품화에 대해 훨씬 민감하게 여기는 것 아닌가 하고요. (물론 그 밖에도 다른 이유가 꽤 있을 겁니다.)

 

조선 성종 때부터 지배계급은 물론 일반인들의 규범적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성리학은 예를 중시했죠. 여전히 남녀유별이라거나, ‘남녀칠세부동석같은 문구는 우리 귀에 익숙합니다.

 

1975년 겨울, 서울 시내의 한 풍경.

 

게다가 권위적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며 기존 가치체계에 대한 일탈은 매우 엄격히 제한됐습니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사회 질서를 해치는 경거망동한 행위로 즉결 처벌됐으니까요. 금지곡과 사전검열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 우리 가치관의 폭은 확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쇼걸 같은 문제를 속으로는 문제없다고 여기더라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꺼리게 되고요.

 

반면 성리학 따위는 집어치운 지 오래인 중국은 외모의 상품화에 대해 오히려 우리보다 개방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자본주의에 훨씬 더 빠르게 적응하는 중국 업체들은 이런 가치관의 폭 안에서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렇다고, 제가 여성 외모의 적극적인 활용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게이머의 주류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적당한 수준은 수긍하지만, 너무 과한 것은, 굳이 성차별 논란까지 가지 않더라도, 게임쇼 자체의 의미를 희석시키니까요. 그런 면에서 차이나조이가 쇼걸의 경연장처럼 비치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또 다른 사정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쇼걸, 부스모델, booth babe

 


먼저 쇼걸이라는 용어.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제 머릿속의 쇼걸은 95년 개봉했던 동명의 영화(오른쪽 포스터)를 연상시켰으니까요. 자극적인 느낌이 꽤 셌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 또는 제가 속한 세대의 매우 주관적인 느낌일 뿐입니다. 언어 조합상, ‘game show’에 나오는 ‘girl’을 ‘쇼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저 같이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쇼걸이라는 용어는 별로 안 쓰입니다. 대신 부스모델이나 부스걸이라고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죠. 궁금해서 영어 표현을 한번 찾아봤습니다. 점잖은 표현은 ‘trade show model’이더군요. 이 모델의 첫 번째 목적은 여러 경쟁 부스들을 제치고 관람객들의 관심을 먼저 끌어오는 것이라고 나오고요. 그런데 저는 해외 행사를 다니면서 이 표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E3나 오토쇼에서는 ‘booth babe’라고 부르는 게 일상적이죠. ‘show girl’이라는 표현도 가끔 나오고요.

 

호칭을 가지고 망상을 하다 보니, 중국에서 쇼걸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게임쇼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스타나 독일의 게임스컴 같은 게임쇼가 체험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차이나조이는 보여주기, 즉 진짜 ‘쇼’가 중심인 게임전시회가 아닐까 하는요. 오토쇼의 형제랄까요. 차이나조이는 체험보다는 쇼걸, 코스튬플레이, 경품이 부각되는 행사는 확실하니까요.

 

 

# 차이나조이는 특히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중국인들은 게임쇼를 왜 그렇게 받아들일까요? 우리의 생각이 우리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게임쇼에 대한 생각도 그들이 처한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차이나조이의 몹시 불편한 입장권 체계가 떠올랐죠. 차이나조이 일반 입장권은 한 번 밖으로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참가업체 직원이나 기자의 패스도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 밖에 못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참 불편하고 언뜻 이해도 안 됐습니다.

 

 

하지만, 인산인해의 주말 B2C관이 그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 40도에 육박하는 뙤약볕 아래 몇 시간 줄을 서야 하고, 에어컨이 고장 나서 찜통처럼 덥고, 땀냄새가 스멀대고, 귀가 멍멍해지는 그 곳에,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듭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쇼를 경험하게 하려고, 한 번 본 사람들은 다시 들어오지 말라는 것 같은데, 반대로 들어온 사람은 아예 나갈 생각을 안 해버리죠. 

 

이런 환경에서 PC 한 대에 한 명씩 게임을 즐기는 체험 위주로 부스를 만드는 것은 비현실적인 발상처럼 여겨집니다. 궁여지책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쇼를 펼치고, 경품을 나눠주고, 사진 한 방 찍고 나가게 하는 구조로 콘셉트를 짜는 게 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태도로 보이고요. 플레이 화면과 동떨어진 컴퓨터그래픽(CG) 동영상으로 낚는 것보다 유저를 배려하고, 경제적인 게 아닌가, 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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