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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사막과 메이드복 사이에서, 신입 기자가 본 지스타

게임쇼의 주인공은 게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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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마루노래) 2019-11-16 14:42:56

지스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일반 관객이 크게 몰리는 주말이지만, 올해 처음 '업무'의 일환으로 지스타에 참여한 기자는 지스타 둘째날인 금요일에 이미 기본 일정이 마무리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부스의 내용, 신작 공개를 비롯해 전달할만한 주요 소식의 윤곽이 모두 드러났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 숙소에서 여러 기자들이 입을 모아 말한 것이 있다. "지스타 2019의 주인공은 펄어비스였다." 펄어비스는 11월 14일, 올해 지스타에 참가한 게임사중 유일하게 대대적인 신작 공개 행사, '펄어비스 커넥트 2019'를 진행했다. 수많은 행사가 동시에 진행돼 시끄럽고 번잡한 열린 공간에서, 이토록 깔끔하게 신작 공개 행사를 진행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도 놀라웠지만, 공개된 4종의 신작 역시 범상치 않았다.

 

<검은사막>의 후속작이자 프리퀄인 <붉은사막>, 같은 게임의 모드에서 출발해 스탠드얼론 게임으로 발전한 액션 배틀로얄 <섀도우 아레나>, 엑소수트 콘셉트의 MMO 슈터 <플랜 8>, 통통 튀는 비주얼의 <도깨비> 등은 하나하나가 모두 이른바 '블록버스터급' 신작이었다.

 

펄어비스 커넥트 2019 현장.

무엇보다 이날 펄어비스가 보여준 모습은 '게임쇼'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는 모습이었다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닌텐도나 구글이 사용하는 '커넥트'라는 행사명부터 시작해 행사의 진행 방식이나 연출 역시 AAA급 게임을 만드는 해외 대형 게임사가 남부럽지 않았다. 게임(신작)으로 시작해서 게임(시연)으로 끝나는, 그야말로 게이머들을 위한 이벤트 그 자체였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펄어비스를 칭찬하는 게임업계인들의 글이 심심찮게 보였고, "이런 회사를 다닌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며 공개적으로 자긍심을 표출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펄어비스만 잘한 것은 아니다. 넷마블의 경우에도 완벽하게 게임 체험 중심의 부스를 운영했다. 각종 이벤트나 행사가 없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중심은 단상에 설치된 게임 체험 존이었고, 하다못해 '굿즈 판매' 같은 활동도 진행하지 않고 오로지 플레이어들에게 게임을 체험하게 해주자는 의도가 돋보였다. 공개한 신작 중 스튜디오 지브리와 협업한 <제2의 나라> 같은 경우, 현장에서 특히 뜨거운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펍지는 솔직했다. "게임으로는 더 보여줄 게 없네요." 대신, 펍지는 자사의 부스를 팬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꾸며냈다. 섬세하게 디자인된 내러티브는 물론이고, 실내에 걸린 각종 작품은 작가들이 와서 직접 그렸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마치 하나의 현대 미술관을 보는 느낌이었다. 커버낫과 콜라보해 만든 각종 굿즈는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고, 부스 주위로 생긴 줄은 빙빙 돌다가 끊길 줄을 몰랐다.

 

마치 미술관처럼 꾸며진 지스타 2019 펍지 부스.

 

그러나 모든 회사가 위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어떤 부스는 명색이 "게임쇼"에 참가한 게임회사 부스인데도 게임이 주인공이라고 느낄 수 없었다. 펄어비스가 펄어비스 커넥트를 진행하던 바로 그 순간, 맞은편 부스에서는 메이드복을 입은 모델들이 댄스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트레일러의 웅장한 음악과 행사를 진행하는 MC의 목소리가 혼란스럽게 뒤섞였다. 노출이 심한 메이드복의 맨가슴에는 회사 로고의 헤나 타투가 선명했다.

 

살펴보니 그 회사의 부스는 구성부터 남달랐다. 그들은 부스 중앙에 무대를 설치하고, 그 앞을 넓게 비워놓은 뒤, 양쪽 측면에 몇 개의 시연대만을 설치했다. 게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은 5분 남짓이었고, 그 옆에선 솜사탕 기계가 돌아갔다. 일정 시간마다 중앙 무대에 다수의 모델들이 올라와 포즈를 취했고, 노골적인 '섹시 댄스'(실제 행사 파트의 명칭이었다)도 마다하지 않았다. 게임과 크게 상관 없는 소위 '눈요깃거리'로 사람을 모아보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다.

 

"이게 게임과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신참인 기자에게는 당혹스럽고 부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아이를 동반하고 찾아온 가족 관람객도 많았다. 그런데 선배 기자들에게는 새삼스러운 모양이었다. "일산 시절 지스타 보는 것 같다." 그것이 한 선배의 단적인 평가였다. 실제로 한때 지스타에는 '부스모델'(혹은 '부스걸')이라는 피쳐(?)가 존재했다. 어떤 면에서는 '레이싱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스타 2019 넷마블 부스.
 

복잡한(그리고 첨예한) 성상품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들이 도대체 '게임쇼'에서 수행해야만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과연 누구의 이득에 봉사하는지는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결국 몇 건의 사건사고를 겪고 수 차례 논란이 된 끝에 게임사들은 '부스모델' 활용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체험형 게임쇼'라는 화두가 도마에 올랐고, 그 사이 수많은 변화(모바일, 플랫폼, 스트리밍, 인플루언서…)를 거치며 '부스모델' 이벤트는 자취를 감추는 듯 했다.

 

그런데 이번 지스타 2019에서는 여기저기서 부스모델 이벤트를 볼 수 있었다.  한번 맥이 끊긴 '부스모델' 이벤트 문화는 도대체 어떻게 '부활'한 것일까. 한 기자는 "차이나조이 같다"는 의견을 냈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차이나조이가 전세계 게임업계의 중요 행사가 된 것은 근 수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 후발 주자가 성장하는 모습은 대체로 앞서 간 주자들이 거쳐온 길의 축소판이다. 마치 지스타에 한때 '부스모델'이 있었듯, 차이나조이도 그들의 '부스모델'을 겪었을 터다. 실제로 위와 같은 구성을 보인 여러 부스 중 2개가 중국 게임사의 부스였다.

 

그런데 이때 다른 기자가 말했다. "차이나조이에도 이런 부스는 없었어요." 차이나조이에는 여전히 '부스모델'이 많지만, 그래도 주인공은 게임이었으며, '메이드복' 무대처럼 노골적으로 게임을 '주변화'해버리는 경우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20대 젊은 기자인 그는 올해 처음 차이나조이를 겪었다. 실제로 중국 게임산업은 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일괄적인 기준으로 '평균'을 내리는 것은 어렵지만, 어쨌든 업계 전반의 '수준'이나 전세계 게임산업이라는 판에서 가지는 위상이 과거와 비할 수 없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형식은 '현지화'였던 걸까.

 

게임중독이 만연하다, 산업의 위기다, 최저임금 52시간 때문이다, 인해전술 쓰며 교대근무하는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전세계적으로 게임산업은 여전히 유망산업이고, 시장 역시 계속 커지고 있다. 5G 통신망의 보급과 더불어 많은 통신사들이 '킬러 콘텐츠'로 게임을 꼽는다. 우리의 위기는 과연 '규제' 때문인가, 아니면 2019년에 다시금 '부스모델'을 소환하려 하는 미성숙한 멘탈리티 때문인가.

 

퀴즈 이벤트가 진행중인 지스타 2019 펄어비스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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