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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현직 쿠팡맨이 말한다... "택배 배송 게임, 달갑지 않아"

한진 모바일게임 택배왕 아일랜드, 게임은 괜찮지만...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재석(우티) 2021-05-26 14:10:12
기자에겐 쿠팡맨 친구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쿠팡친구입니다. 이제 쿠팡맨이라는 명칭은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 있습니다)

굴지의 물류기업 한진이 택배 소재 게임 <택배왕 아일랜드>​를 낸다고 했을 때, 기자는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쿠팡친구는 매일 새벽 트럭을 몰고 비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생수통을 들고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를 오르내립니다. 2021년 판데믹 시대를 사는 우리가 누리는 편의는 이들의 노고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침 기자의 친구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집에서 잠자는 시간 아니면 컨트롤러를 붙잡고 있는 그에게 리뷰를 권했습니다. 군대에서 "너 미대 다니니까 벽화나 그려 보라"고 하듯이 "너 쿠팡에서 일하고 게임 좋아하니까 리뷰나 해보라"고 권유한 것입니다. 현직자로서 이 게임이 얼마나 택배 과정을 잘 구현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새벽 배송에서 돌아온 친구는 요청에 응했습니다. 아래부터는 퇴근 뒤에도 친구를 잘못 둔 탓에 택배 게임을 해야만 했던 어느 택배원의 글입니다. /작성= 최승원(쿠팡친구, <갓 오브 워> 플레이 중),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쿠팡 유니폼을 배경으로 PS5 플레이 모습을 뽐내는 최승원 쿠팡친구

 


 

 

# 나는 쿠팡맨이다

나는 쿠팡맨이다. 쿠팡에서 배송 업무를 담당한다. 사실 회사에서는 더이상 쿠팡맨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쿠팡 배송직의 새로운 명칭은 여러분의 친구, 쿠팡친구다. 쿠팡의 로켓배송을 사용하지 않는 가구가 드문 요즘, 여러분은 친구보다 문 앞의 택배 박스를 더 많이 볼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 쿠팡친구들이 배달한 것으로, 오늘도 우리는 여러분의 집 앞에 다녀간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쇼핑몰과 택배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배송비는 사라지고 있고, 주문에서 도착까지 만 24시간이 넘지 않는 배달이 늘고 있다. 굳이 매장에 오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으니 어쩌면 판데믹 이전보다 이후가 더 편리해진 것 같다. 아무렴 배송의 수고스러움을 아는 나조차도 로켓배송을 애용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쿠팡맨이 아니라 쿠팡친구다. (출처: 쿠팡)

글 쓰는 게 익숙하지 않지만, 이 글을 빌어 배송 기사의 어려움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배송 기사의 노동환경은 택배 물량과 시장의 성장세와 반비례하고 있다. 규모가 늘었는데, 대우는 그대로이니 당연한 결과다. 지난겨울, 택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여럿 과로사로 죽었다.

쿠팡은 직고용을 채택했지만, 택배기사 대다수는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다. 이들 택배기사는 배송에 분류 작업까지 떠맡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택배 업체와 택배 분류 작업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배송 수수료는 하락하는 추세다. 배달 물량을 줄이는 것이 쉽지 않아 일반 택배기사들은 강도 높은 노동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택배왕 아일랜드>, 생각보다 괜찮은 미니게임 모음집

 

<택배왕 아일랜드>는 한진이 택배를 테마로 출시한 모바일게임이다. 실제 택배의 가장 큰 세 작업인 분류 - 상하차 - 배송을 미니게임 형식으로 만들었다. 택배가 전달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담은 첫 모바일게임이라고 할 만하다.​ ​한진은 택배노동을 테마로 한 모바일게임을 출시하면서 "게임 내 광고유치를 통해 얻는 수익금을 택배기사의 근로 환경 개선에 사용하여 택배 종사자와 상생"한다고 한다"고 발표했다.​


한진이 게임 개발사는 아니다 보니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게임만 놓고 봤을 때, 택배라는 테마를 잘 살린, 제법 괜찮은 미니게임이었다. 간단한 방식이지만 점점 복잡해지고 어려워져서 나름 도전을 자극한다. 

퇴근 뒤 짬짬이 시간을 들여 해봤더니 아주 간단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지루해지지는 않는 게임이다. 미니게임 곳곳에 난이도를 끌어올리는 장치를 추가했기 때문에 도전 욕구를 자극한다. 튜토리얼과 게임 설명이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은 아쉬웠지만, 애초에 목표 스코어 달성 수준의 미니게임이어서 큰 장벽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택배왕 아일랜드>의 메인 화면

'분류 게임'은 택배 상품이 컨베이어 벨트에 오르면 박스 색상을 확인한 후 색상과 일치하는 지역으로 보내야 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화살표를 바꿔가며 상품의 진행 방향을 통제한다. 각 스테이지의 미션을 두 개 클리어하면 다음 스테이지가 해금된다. 스테이지가 올라갈수록 화살표와 지역이 늘어나고 파손 상품을 걸러내야 하는 등 난이도가 올라간다.

'상차 게임'은 게임 캐릭터로 날아오는 택배 박스의 속도에 맞춰 터치하면 캐릭터가 점프하여 상자 위로 올라타는 방식. 이것을 3번 이상 성공하면 상차 버튼을 눌러 뒤편에 있는 탑차에 상차할 수 있다. 타이밍이 늦거나 빠르면 캐릭터는 박스에 맞고 날아가며 하트가 깎인다. 파손 상품에 올라타도 하트가 깎이므로 걸러내야 한다. 올라타고 상차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미션을 해결해야 스테이지를 넘어갈 수 있고 여러 변수들이 있어서 단순하고 반복적인 경험으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것을 보완해준다.

 

분류 게임
상차 게임

모든 택배사에서 광역 단위의 분류작업은 대부분 자동화되어있지만, 소분류는 상하차 과정에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물류 노동자나 배송 노동자가 하고 있다. 최근 좋은 평가를 받은 한국 만화 <까대기>는 택배를 내리고 재분류해서 쌓는 일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고 한다. 여러분도 상하차가 3D 중의 3D라는 것은 잘 알지 않은가?


나도 비슷한 일을 해봐서 아는데, 트럭 안에 물건을 적재하고 빼는 일은 감동의 연속이다.

 

 

# 주 업무 분야는 배송... 실제로 해봤더니

 

나의 주요 업무는 상품을 안전하고 빠르게 목적지로 싣고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배송이 주 업무다. 그러니 제일 궁금했던 것도 '배송 게임'이다.

좌우 조작을 통해 장애물을 피하는 간단한 레이싱게임이다. 거리의 자동차와 곳곳의 공사현장을 피해서 도로에 떨어진 택배 박스와 연료를 줍는 게 콘셉트다. <남극탐험>의 택배 버전이랄까? 도대체 왜 길바닥에 택배 박스가 떨어져있는 건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중간중간 배송지에 멈춰 서는 기믹도 들어있다.

레이싱에 집중하느라 전방을 주시하다가 큰 교통사고가 나거나, 배송을 제대로 못 하거나, 연료가 모두 떨어지면 게임 오버.

 

배송 게임

 

교통 사고로 게임 오버

당사자 입장에서, <택배왕 아일랜드>에서 가장 잘 구현된 지점이 바로 이 '게임오버'라고 생각한다. 혹여나 배송 중에 교통사고가 나고 거기에 12대 중과실이라도 범했다면 몸이 다치는 것은 물론, 밥벌이인 배송과도 영영 작별해야 한다. 게임이야 수백 번이고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배송 중 사고는 치명적인 결과가 되어 돌아온다.

주어진 물량은 너무 많고, 시간은 한정적이다. 게임은 배송 중 교통사고는 절대 있어서 안 된다는 듯 기획됐지만, 신호와 규정속도를 100% 지키고는 물량을 소화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편집자 주: 쿠팡 노동조합에 따르면, 2020년 3월 쿠팡 배송 물량은 전년 8월보다 22% 증가했다. 2020년 3월이면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장기화·본격화되기 전이다.)

게임으로는 미처 표현할 수 없는 치열함이 매일 새벽 도로에서 벌어진다. 지금은 그만 둔 한 택배 기사는 새벽에 신호 위반으로 경찰에게 걸린 적 있다. 경찰은 그때 "택배 힘든 거 알고 있다"며 원래 끊어야 할 벌금보다 낮은 금액의 고지서를 끊어줬다고 한다. 그 사례 생각을 하니 '점수결과'와 '포인트', '이동거리' 따위로 계산된 게임이 썩 유쾌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 게임은 재밌지만, 의도는 안 재밌다


서울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통행을 금지했다. 택배를 받고는 싶은데, 눈에 보기는 싫으니까 치워버리겠다는 발상이 미웠다. 노동조합은 파업을 하겠다고 했고, 언론에서는 '택배대란'을 이야기했다. 그 아파트 단지가 원하는대로, 저상 트럭을 타고 지하로 택배를 배송하면 허리를 잔뜩 숙이고 물건을 꺼내야 한다. 무릎이 쑤시고 허리가 남아나지 않는 일이다.

 

내가 일하는 쿠팡은 직접 고용 형태지만, 다른 회사 택배 기사들은 개인 사업자로 분류가 되어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라고 부른다) 자기 돈을 들여 차를 저상 트럭으로 바꿔야 한다. 또 시간과 물량의 싸움에서는 큰 차를 굴리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다. 한진택배라고 쓰여진 트럭을 몰고 밤낮으로 다니지만, 한진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다시 모바일게임 <택배왕 아일랜드> 기사를 본다. "게임 내 광고유치를 통해 얻는 수익금을 택배기사의 근로 환경 개선에 사용하여 택배 종사자와 상생"한다고 한다. 아무리 할 만한 게임을 만들어서 내놨다고 해도 '택배기사 근로 환경 개선'은 한진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지,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광고를 봐서 챙겨야 할 일인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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