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 레인>,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등으로 유명한 퀀틱 드림이 프랑스 인디 개발사 패러렐 스튜디오와 협업해 <언더 더 웨이브>라는 해양 어드벤처 게임을 선보였다. 퀀틱 드림은 <언더 더 웨이브>의 퍼블리싱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애니메이션, 모션 캡처, 더빙 등의 제작 과정에도 참여했다. 퀀틱 드림에 내러티브 어드벤처라니 믿고 보는 조합 아닌가.
그러나 8월 29일 출시된 <언더 더 웨이브>는 스팀 리뷰 250개 중 78%가 긍정적인 '대체로 긍정적' 평가에 머무르고 있다. "훌륭한 음악", "좋은 연기" 등의 칭찬도 있었지만 "<서브노티카> 느림보 버전", "답답한 조작감", "지루할 수 있는 빌드업", "각종 버그" 등의 단점들이 지적됐다. 환경보호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나 내러티브의 전달에 있어서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언더 더 웨이브>는 어떤 게임이었을까?
# 딸의 죽음과 바다의 죽음
주인공 '스탠'은 해저 기지와 원유 시추 시설 등이 있는 심해에서 일하는 전문 다이버다. 소형 잠수함을 조종하며 임무 수행 및 탐사를 진행하고 플라스틱 쓰레기, 금속 조각, 석탄 등 해양 쓰레기를 모아와 생존에 필요한 도구로 재가공한다. 미래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1979년이라는 대체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지상에서 무전을 통해 업무를 공유하는 친구 '팀'의 지시에 맞춰 해저 생활을 이어간다.
스탠이 지상에서의 삶을 떠나 심해로 들어온 것은 3년 전 죽은 딸 '펄'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 때문이다. 트라우마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스탠은 심해의 괴물에 잠식당하는 악몽과 바다에서 딸을 다시 만나는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 그리고 시설을 정비하고 해저 곳곳을 오가는 과정에서 스탠은 죽은 딸을 마주하게 된다.
딸의 죽음에 힘든 것은 엠마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스탠은 자신의 감정과 과거를 마주하겠다는 이유로 엠마와의 관계에 다소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엠마는 딸 펄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스탠을 걱정하고, 스탠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한다. 폭풍과 화재로 지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스탠의 고립은 길어져만 가고, 후회와 집착이 만든 환각은 그를 위험하게 만든다.
죽은 딸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정리하기 위해 심해로 온 스탠
그러나 과거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고 계속 악몽에 시달린다.
결국 그는 꿈이 아닌 현실에서도 죽은 딸 '펄'을 만나게 된다.
딸 '펄'은 푸른 빛으로 빛나는 모습으로 항상 등장하는데, 이런 환영으로 주인공 스탠을 이끄는 존재는 파란 해파리들이다. 인공적인 조명 외에는 빛이 있을 리 없는 심해에서, 스탠은 죽은 딸의 온기를 느낀다. 마치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지상에서 버린 각종 쓰레기, 난파한 배와 가라앉은 컨테이너, 유출된 원유, 시설의 화재 등으로 인해 해저 생태계는 많은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스탠은 물개, 고래, 상어 등 각종 해양 생물과 해저 환경을 지키는 행위를 못다 한 사랑과 죄책감에 대한 출구로 삼는다. 그러나 스탠 한 사람의 노력으로 바다를 구하기엔 역부족이다. 서서히 죽어가는 바다와 함께 그의 심리는 더 요동치게 된다.
녹조를 채취해 산소를 생산하는 데 활용하기도 하고
해양 생물들과 교감하며 바다에 감정을 쏟는다.
그러나 바다는 지상에서 버려진 쓰레기와 석유 유출 등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 환경보호라는 소재... 그런데 이게 맞나?
<언더 더 웨이브>에서는 재활용이 매우 중요하게 등장한다.
스탠이 움직일 때마다 소모되는 산소는 '산소 스틱'으로 채워야 하는데, 심해에서 구해 온 녹조와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아 제작하게 된다. 스탠은 산소 스틱을 사용한 후 남은 플라스틱 케이스까지도 다시 재활용한다. 게임 전체에 걸쳐 이런 자원 수집, 제작, 재활용의 과정이 이어지며 점차 제작할 수 있는 도구 및 기술이 늘어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유출된 원유가 굳거나 엉겨 붙어 드론이나 시설이 망가지기도 하고,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거나, 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장면들도 등장한다. 스탠은 소형 잠수함에 레이저를 달아 이런 원유를 태워 없애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환경을 보호하고, 심해에서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모든 자원을 재활용하고 제작한다.
기름에 오염된 곳을 레이저로 태우는 모습
<언더 더 웨이브>가 게임의 시스템과 서사를 통해 전달한 '바다를 지키자'는 메시지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너무나도 피상적이었다.
가령 게임에 등장하는 가상의 석유 회사 '유니트렌치'는 언론을 조작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심해에서 환경 뿐만 아니라 인력과 시설까지도 쓰고 버리는 도구처럼 다루는 '악'으로 묘사되는데, 쉽게 납득하긴 어렵다. 게임에선 석유보다 효율적인 대체 자원이 없는 상태이고, 대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석유 및 플라스틱 사용이 해양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논리만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메신저인 주인공 스탠에게도 문제가 있다. 바다의 죽음을 목도하며 비판하는 대상도 석유 회사지만, 그가 시설을 정비하고 잠수정을 활용해 일을 하는 회사 또한 동일한 석유 회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딸의 환영을 보고 그릇된 판단을 이어갈 정도로 온전하지 못한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데, 이런 상태의 스탠이 석유 회사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웠다.
심해에 고립된 스탠의 몇 안 되는 말동무인 TV조차, 대형 자본에 장악되어 거짓 정보를 전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스탠의 정신 상태도 온전하지 못할 뿐더러, 대안도 없는 음모론에 가까운 주장이 건강한 비판이 될 수 있을까?
픽션이라고는 하지만 "해당 업계의 실제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스팀 리뷰도 있었다.
서핑하는 사람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고 설립했다는 '서프라이더'는 실존하는 해양 환경 단체다.
메시지 자체는 좋지만, 게임이 이를 전달하는 방식은 편향적인 동시에 세련되지 못했다.
# 의도된 답답함?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
<언더 더 웨이브>는 다른 게임에 비해 이동 및 상호작용의 조작감, 서사의 진행 속도 등이 느린 편이다. 여기에 일부 버그와 일부 구간의 불친절한 경로 디자인까지 더해지면서 게임플레이가 그리 쾌적하진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게임의 소재와 맞아 떨어지면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주제 의식을 남기게 됐다.
스탠이 석유 잔해를 없애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워 재활용하고, 동물들을 보호하는 노력은 대단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생각하기에 평범하고 건강한 바다의 현상 유지에 그치는 것이다. 딸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다.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가 볼 때는 그 과정이 더디게 보일 수밖에 없다.
<언더 더 웨이브>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로서 겪는 상실의 아픔, 한 인간이 자연의 앞에서 겪는 나약함 등 기본적인 주제 의식의 전달에는 성공했다. 특히 꿈과 환상 속에서 스탠이 겪는 일들은 시각적 연출이 뛰어났고, 중요한 사건 전후로 나온 배경 음악 또한 높은 퀄리티를 보여줬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같은 퀀틱 드림의 다른 게임들, <서브노티카> 같은 디테일을 가진 해양 생존 게임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지만, 하나의 긴 드라마를 감상한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즐긴다면 스탠의 환상 속에서 당신도 애틋한 그리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죽음과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다. 답답함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게 했던 것은 연출의 힘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