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리버티>에 추가되는 새로운 지역은 퍼시피카 하단의 '도그타운'이라는 장소입니다.
도그타운은 나이트 시티에 위치해 있지만 많이 다른 지역입니다. 왜냐하면 나이트 시티와 격리된 채 전직 군인인 '핸슨 대령'이 이끄는 '바게스트'가 지역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죠. NCPD(경찰)는 도그타운에 없습니다. 도그타운은 나이트 시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험한 곳입니다. 바닥 밑의 바닥이라고 할까요.
가장 큰 특징은 밀도 있게 짜여진 장소라는 것입니다. 기존 <사이버펑크 2077>의 지역은 예쁘게만 꾸며져 있을 뿐, 그다지 의미나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장소가 많았지만 도그타운은 다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같은 모습 속에서 바게스트의 무장 로봇과 순찰대가 거리를 오가거나, 새롭게 추가된 차량 전투 시스템을 통해 정신 나간 갱단이 차를 지나가면서 총을 난사하는 등 정말로 '사이버펑크'스럽고 '막장'스러운 분위기가 잘 살아 있는 곳이죠. 특히 무너진 건물이 많고 길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더블 점프 사이버웨어는 거의 필수라고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맵 중앙에 핸슨 대령이 사업을 진행하는 거대한 클럽이 있다거나, 나이트 시티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장비를 살 수 있는 거대한 암시장이 존재한다거나, 갱단에게 점거당한 거대한 온실 등 재미롭고 흥미로운 장소로 가득합니다. 이와 얽힌 서브 퀘스트도 당연히 존재하죠.
DLC를 통해 '하나의 작은 지역'만 선보이는 만큼, 그 안에 CDPR이 가진 노하우를 최대한 녹여낸 느낌입니다. 덕분에 메인 퀘스트는 제쳐 두고 도그타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의뢰를 수행하는 것만 해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특히 메인 퀘스트 진행 중 인게임 상에서 일정 시간을 기다려야 뒷이야기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도 이런 '사이드 콘텐츠'를 즐기라는 의도가 느껴집니다.
확실히 도그타운은 탐험하는 맛이 있는 지역입니다. 오브젝트가 많은 탓에 본편보다 프레임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용인할 만한 수준입니다. <사이버펑크 2077> 본편에서도 일부 '사이버펑크'스러운 도시 환경 묘사는 호평받았는데 도그타운은 그 이상입니다. 이 정도면 프레임이 살짝 떨어지는 것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습니다.
서문에서 CDPR이 어떻게 하면 <사이버펑크 2077>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지 이해했다고 언급한 이유는 DLC의 다양한 퀘스트와 롤 플레잉 요소 강화 덕분입니다.
사실, <사이버펑크 2077> 본편에도 재미있는 퀘스트는 많았습니다. 페랄레즈 부부의 퀘스트나 조니 실버핸드와 함께 아라사카 본부에 쳐들어가는 미션 등이 있었죠. 이런 미션들의 공통점은 <사이버펑크 2077>의 흥미로운 세계관을 잘 살리면서 서사적으로 플레이어가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팬텀 리버티>를 위해 도그타운에 추가된 각종 퀘스트는 이처럼 '믿을 놈 없다'라는 세계관의 씁쓸한 면과 극한의 무법 지대인 도그타운의 특성을 살려 구성됐습니다. 서브 퀘스트 도중에도 계속해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어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하죠. 다양한 진행 방법과 등장인물의 재치 있는 대사는 덤입니다. 조니 실버핸드는 본편만큼 자주 등장해 훼방을 놓지는 않지만, 약방의 감초처럼 튀어나와 종종 웃음이 터지는 대사와 생각할 거리들, 그리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해줍니다.
'스파이 스릴러' 장르로 만들어진 메인 퀘스트는 개발진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한 그대로 나왔습니다. 가끔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이나 <007>같은 영화가 생각나고, 게임 <콜 오브 듀티> 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점은 서브 퀘스트처럼 메인 퀘스트도 <사이버펑크 2077>의 세계관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공이나 은퇴를 꿈꾸지만 믿을 놈이 없고, 배신이 만연한 근미래 세계관이라는 모습이 잘 녹아 있죠. 결국 등장인물 모두가 이 절망적인 세계관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한 개인일 뿐이니까요. 이 점은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에서 잘 묘사됐었고, 애니메이션이 호평을 받은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팬텀 리버티>의 스토리에서 명확한 선(善)은 없습니다. 누구를 믿을 것이냐, 주어진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온전히 플레이어의 판단에 달려 있기에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게임을 멈추고 담배를 피며 고민하게 됩니다.
<사이버펑크 2077>의 장르는 RPG입니다. RPG(롤 플레잉 게임)라는 단어를 풀어 보면 '역할 연기 게임'입니다. 플레이어가 RPG 장르에 재미와 흥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이 생각한 주인공에 몰입하고 연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초에 <사이버펑크 2077>의 원작 게임이 무엇보다 역할 연기가 중요한 TRPG기도 하고요.
<사이버펑크 2077> 본편에는 여러 비판이 있었지만, 이 점에서도 지적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등장인물의 개성에 휘둘려 V가 스토리에서 겉돈다거나, 성장 배경(라이프패스)이 인트로 말고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거나, V를 어떻게 육성하건 대사에서 별다른 개별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꼽히기도 했죠.
그렇기에 <팬텀 리버티>에서는 최대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모양새입니다. 자신의 출신에 따른 선택지가 많고, V의 능력치에 따라 나오는 대사가 늘어났습니다.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 도중에도 능력치 육성에 따라 최대한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노력한 느낌입니다. 덕분에 자신이 생각한 V의 모습에 맞춰 역할극을 즐길 수 있죠. "내 V는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다"라면서요. 이는 아래 설명할 2.0 업데이트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팬텀 리버티>는 26일 출시되지만, 그 전인 21일에는 <사이버펑크 2077>의 대형 업데이트가 있습니다. '2.0'으로 불리는 이 업데이트의 핵심은 주인공을 강화시켜 주는 특성 전반이 변경된다는 점에 있습니다.리뷰에서 변경점을 하나하나 짚지는 않겠지만, 핵심은 '만능'보단 '특화'를 의도했다는 점입니다. 넷러너면 넷러너답게, 힘이 강한 솔로가 콘셉트라면 솔로답게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도록 집중한 느낌입니다.
또한,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 각종 능력이 강화되기도 합니다. 가령 적의 머리를 공격하거나 은신으로 처치할 수록 '헤드헌터' 레벨이 올라가 다양한 효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스타일에 맞춰 V도 계속해서 강해지는 셈입니다.
앞서 언급한 능력치에 따른 퀘스트 대사를 통해 역할극을 즐기는 것을 넘어, 전투에서도 자신이 생각한 캐릭터의 모습에 맞출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2.0 업데이트와 지금까지의 개선점이 합쳐져 만들어낸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이버펑크 2077>은 RPG입니다.
정리하자면 <팬텀 리버티>는 과욕으로 인해 본편에서 발생한 문제점과 피드백을 받아들인 DLC입니다. 게임이 정말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편에서 호평받은 '사이버펑크' 적인 분위기는 더욱 녹여내고, 기존에 CDPR이 호평받았던 다양하고 깊은 퀘스트 연출과 선택에 따른 영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티가 역력합니다.
- DLC 하나만 더 내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