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의 리뉴얼은 양날의 검입니다. 달라진 게임의 모습을 보여주고 유저들의 기대를 다시 한 번 불러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하면 ‘전면 개조가 필요할 만큼 이미 실패한 게임’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죠. 결국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느냐가 리뉴얼의 반응을 좌우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위메이드의 <천룡기>는 일종의 도전이었습니다. 2차 클로즈 베타테스트까지 진행하고 한창 개발 중이던 <창천 2>를 게임엔진부터 그래픽, 콘텐츠까지 싹 갈아엎었으니까요. 개발 막바지에 이른 게임을 오픈도 하지 않고 리뉴얼하는 건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천룡기>를 개발팀에서는 이를 두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습니다. 게임엔진의 구조적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2012년에 어울리지 않는 그래픽과 게임성을 갖고 있던 걸 스스로 알았던 만큼 큰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새롭게 게임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죠.
지스타 2011에서 공개된 <천룡기>를 즐겨봤을 때 그 선택은 옳았던 것 같습니다. 원색을 배제하고 수묵화 느낌을 살린 그래픽은 환골탈태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달라졌고 연속기와 상태이상 위주의 전투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스타 2011에서 ‘새롭게 돌아온’ <천룡기>를 디스이즈게임에서 체험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수묵화 느낌을 살린 ‘한국적인 무협’ 그래픽
무협은 중국에서 시작된 장르입니다. 그래서 무협게임은 대부분 중국적인 ‘원색 위주의 색채’를 띄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화려하고 나쁘게 말하면 유치한 색감이죠. 심할 경우에는 이런 원색 위주의 색감이 무협게임을 싫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천룡기>는 이런 무협게임 특유의 색감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단 게임 그래픽에서 원색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과 이펙트도 피했습니다. 약간은 어두운 금색이나 흰색, 갈색 등처럼 굉장히 수수하면서도 현실적인 색상의 복장들이 등장하죠.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이펙트입니다. <천룡기>는 수묵화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이펙트 곳곳에 ‘먹물 효과’를 넣었습니다. 커다란 검기가 날리는 이펙트 곳곳에 검은 먹선을 섞거나 공격이 적중했을 때 사방으로 먹물이 튀는 식입니다.
덕분에 <천룡기>의 그래픽은 매우 ‘한국적’입니다. 중국무협 특유의 위화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죠.
화려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동작에도 어색함이 없습니다. 구르고 뛰고 적을 넘어다니는 모션 하나하나에 많은 신경을 쓴 흔적들이 보입니다. 스크린샷으로 봐도 어색함이 없는 수준이죠. 강력한 공격으로 땅이 울리거나 시야가 흐려지는 등 잡다한 효과도 인상적입니다.
그래픽의 변화 하나만 봐도 게임엔진까지 바꾼 리뉴얼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끊임없는 공격 상태이상 위주의 전투
<천룡기>의 전투는 <창천 2> 시절의 전투를 조금 더 발전시켰습니다. 적을 띄우고 넘어진 적에게 추가타를 넣는 등 적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거나 적의 상태에 따라 추가 대미지를 주는 스킬들이 많죠.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스킬 순서를 고민하고 연속기를 짜게 됩니다.
개발사에서 ‘만들어둔 연속기’인 연합무공도 있습니다. 연합무공은 직업마다 4개씩 준비돼있고 사용하면 첫 스킬이 발동된 후 5초간의 재입력 시간을 줍니다. 해당시간 동안 같은 버튼을 누르면 연속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스킬이 발동되는 식이죠.
연합무공 사이의 입력시간이 5초나 되기 때문에 연합무공 사이에 일반 스킬을 섞어서 자신만의 연속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천룡기>의 모든 스킬은 범위공격입니다. 적을 타겟팅하고 스킬을 사용하지만 공격 범위에 닿는 모든 적에게 동일한 대미지를 입히죠. 반대로 타겟팅 후 발동한 스킬이라도 적에게 닿지 못하면 허사입니다. 사정거리 밖에 있는 적은 이동 후 공격하지만 범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적은 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덕분에 <천룡기>는 타겟팅 게임이면서도 콘트롤이 많이 활용됩니다. 1:1에서는 다음에 이어서 사용할 스킬에 맞춰 꾸준히 거리를 조절해야 하고 다수끼리 싸울 때는 한 번에 최대한 많은 적에게 대미지를 입히기 위해 위치를 옮기게 됩니다. 기본조작은 쉽지만 숙련된 조작은 어려운 게임인 셈이죠.
하지만 <천룡기>에서 내세웠던 연합무공은 8분이나 되는 긴 쿨타임 때문에 생각만큼 활용하기가 어렵더군요. 연속기를 내세운 게임치고는 MP의 양도 조금 적어 아쉬웠습니다. 시원시원한 전투를 내세우고 싶다면 약간의 보완이 필요할 듯하네요.
■ 업적, 도감, 위업, 기연.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콘텐츠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도 <천룡기>가 내세우는 재미입니다. 의외성을 재미라고나 할까요? <천룡기>는 최근 온라인게임에 빼먹지 않고 등장하는 업적을 비롯해 도감, 세력 등 다양한 시스템을 담았습니다.
특히 업적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는데요. 처음으로 해당 몬스터를 처치했을 때, 같은 몬스터를 100마리 처치했을 때, 처음으로 죽었을 때 등 게임 내에서 쉴 새 없이 업적이 달성됩니다. 약 2시간의 플레이에서도 수 십 개의 업적을 경험했을 정도입니다.
특정 맵에서는 경고메시지가 나온 후 강력한 몬스터 무리가 연이어 등장하거나, 지역 곳곳에 중간 보스급 몬스터들이 널려있고, 죽은 몬스터가 강력한 힘을 갖고 되살아나는 등 질릴 만 하면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하더군요. 이후 테스트에서는 본격적인 기연도 등장할 예정입니다.
삼국지의 세계관을 버린 것도 의외의 재미에 한 몫을 거드는데요. 언데드부터 거대 거미. 합체 몬스터와 거대 마신까지 다양한 몬스터를 마음껏 만들 수 있다 보니 언제 어디서 어떤 이야기가 튀어나올 지 모르겠더군요.
심지어 ‘하백의 신검’처럼 삼국지와는 관련 없지만 어디서 본 듯한 소재들도 연이어 등장합니다. 소재를 보고 각색된 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도 있죠.
그래픽부터 시스템, 한층 강화된 전투까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천룡기>는 이전의 <창천 2>와는 전혀 다른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창천 2>가 단순히 삼국지와 무협의 시스템을 적당히 섞어놓았다면 <천룡기>는 무협게임의 장점과 단점을 확실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고 할까요? 최소한 지스타 2011 버전에서 <천룡기>는 리뉴얼이 아깝지 않은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다만 지스타 버전의 던전이나 콘텐츠를 따로 구성하지 않은 탓에 플레이어가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달라진 시스템이나 전투의 재미 등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