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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오늘] 3월 24일 - 택티컬 커맨더스, 미국 개발자들을 놀라게 하다

임상훈(시몬) 2014-03-24 01:33:12

“I love MJ!”

 

한국에서 온 청년이 외쳤다. 시상식장이 웅성거렸다. 마이클 잭슨인가, 마이클 조던인가? 얼마나 좋아하면 게임시상식에서 저렇게 외칠까?

 

2001년 3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컨벤션센터였다. 15회 GDC(게임개발자 콘퍼런스)의 마지막 날이었다. MJ를 외친 주인공은 넥슨의 개발자 박종흠. 그가 개발에 참여한 <Shattered Galaxy>(택티컬 커맨더스)는 이날 한국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대형사고를 쳤다.

 

GDC 주최측은 1999년부터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를 시작했다. 인디 개발자와 개발팀들을 위한 최초이자, 가장 큰 대회였다. 미국 게임 개발자들에게 관심을 끄는 행사가 됐다. 2001년 초 넥슨 미국 법인 직원들은 <택티컬 커맨더스>를 IGF에 출품했다.

 


 

한국의 개발팀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미국 개발자들을 위한 행사였다. 개발팀은 현장에 가서 다른 출품작들을 봤다. 생각이 바뀌었다. ‘가능성이 있겠구나.’

 

“현장에서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다른 게임들에 비해 우리 게임의 독특한 기획적 요소도 컸고, 기술적인 난관들도 많이 뚫었거든요. 시상식 전부터 사람들이 게임을 많이 해보고, 분위기도 무척 좋았습니다. 웅성웅성한 분위기여서 감을 조금 잡았죠.”

 

실제 성과는 기대를 완전히 벗어났다. <택티컬 커맨더스>는 그랑프리를 탔다. 6개 수상 부문 중 4개(Gand Prize, Best Game Design, Technical Excellence, Audience Choice)를 휩쓸었다.

 

한국 게임이 국제적인 시상식에서 상을 탄 첫 사례였다. IGF의 본상이 이후 8~9개 부문으로 늘어났음에도, 16년 동안 4개 이상의 상을 가져간 게임은 <택티컬 커맨더스>가 유일하다. 같은 해 <택티컬 커맨더스>는 게임스팟으로부터 ‘최고의 혁신게임’, ‘최고 멀티플레이 전략게임’으로 선정됐다.

 

<택티컬 커맨더스> 개발은 1998년에 시작됐다. 초창기에는 서민, 이승찬 등도 참여했다. 1998년 중반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정상원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박종흠이 프로그램, 허두범이 그래픽을 잡고, 함께 기획하며 게임을 만들었다.

 


넥슨 미국 지사장인 Scott Lee(이상백)가 한국에 왔다가 게임을 봤다. 미국 시장에서 더 잘되겠다고 말했다. 이후 <택티컬 커맨더스>는 전략적으로 미국 시장을 노리는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미국 유저들의 취향에 맞는 기획이 필요했다. 미국 지사의 Kevin Saunders가 합류했다. 정상원, 박종흠, 허두범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일했다. 4개월 서울 강남, 2개월 산호세 서니베일 식이었다. 4차례 미국을 다녀 왔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2001년 8월 미국 출시를 앞두고 게임은 GDC의 IGF를 통해 공개됐다. 게임을 만든 네 사람 외에도 Scott Lee 등 미국 임직원들도 시상식에 참석했다. 박종흠은 시상식 연단에 올라설 군번(?)은 아니었다. 상을 4개나 탄 덕분에 기술 부문에서 수상소감을 할 기회가 왔다.

 

수상소감을 준비한 게 하나도 없었다. 영어도 능숙하지 않았다. 기술적인 이야기를 또박또박 했다. TV에서 봤던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누구누구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소감을 끝맺음하며 크게 외쳤다.

 

“I love MJ!”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였다. 다음해 IGF 홈페이지에 그 장면이 타이틀 배너로 쓰였다.

 


수상소감은 빠졌지만, 수상소식은 두세 매체를 통해 국내에도 전해졌다. 나도 기사를 썼다. 게임도, IGF도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다. 별 반향은 없었다.

 

반향은 넥슨에서 컸다. 박종흠의 수상소감은 정상원을 통해 사내에 전해졌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MJ는 박종흠과 사귀고 있던 넥슨 직원이었다. 모두 알게 됐다.

 

산호세에서 “아이 러브 엠제이”를 외친 지 3년 9개월 후, 박종흠과 MJ는 결혼했다. 2004년 12월이었다.

 

그들이 결혼하기 전, 박종흠은 2호선 낙성대역 부근 원룸에 살았다. 나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디스이즈게임을 하기 전이었다. 원룸에서 박종흠, MJ와 함께 레드 와인을 한 병 열었다. MJ는 넥슨 홍보팀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한때 기자들 사이에 나랑 사귄다는 황당한 소문이 났었다. 홀짝홀짝, 그런 에피소드는 와인 안주로 제격이었다. simon :)

 

- 2001년 3월 24일, <택티컬 커맨더스> IGF 그랑프리 등 4개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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