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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게임의 친절함과 과잉보호

금강선 2006-07-12 03:22:54

두 곳의 헬스클럽이 있다. A헬스클럽의 매니저는 불친절하다.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준비운동을 하든, 유산소 운동을 하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든 수수방관한다. 운동법을 제대로 모르고 불쑥 헬스클럽 회원이 된 사람은 운동법이 막막하기만 하고 성취욕이 떨어진다.

 

B라는 헬스클럽은 매니저가 친절하다. 몸무게부터 체지방, 근육 등을 수시로 점검해주고 목표량을 잡아준다. 올바른 운동법을 통해서 목표점을 향해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조금씩 자신이 목표한 수치에 도달되는 것을 느끼면서 회원은 더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된다. 사람에 따라 물론 다르겠지만 A헬스클럽보다는 B헬스클럽의 회원이 훨씬 운동효율이 좋고 회원연장확율도 높을 것이다.

 

엉뚱한 얘기로 잠깐 했지만 마찬가지로 게임에서도 친절함이 게이머를 오래 붙잡아둘 수 있는 요소이다. 여러분들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엔딩을 봤던 타이틀이 얼마나 여러분들에게 친절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갑자기 고마움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임상에서 친절함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게이머가 모르고 있는 특정 시스템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고, 게이머가 게임오버를 당했을 때 어떻게 다시 게임을 도전하게 할 것인가라는 밸런스적 요소일 수도 있다. 또 단순한 조작체계의 편리함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나친 친절함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갑자기 게임의 '친절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최근 해본 몇 가지 게임 때문이다. 오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 세 가지 게임에 대해서 사설을 풀어볼까 한다.

 

 

마 더 3

 

GBA로 등장한 RPG <마더 3>는 과거의 유산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RPG이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를 시도한 작품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게임은 충분히 나에겐 친절했다. 최근 게임들은 첨단산업화된 현 시장을 대변하듯 시나리오상 중요한 부분의 연출을 각별히 신경쓴다. 그로 인해서 게이머들은 과거와 비교해볼 때 개발자가 생각하고 있는 영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때로는 개발자의 욕심이 과한 탓에 연출이 길어지다보면 게임은 언제하는지 기다리거나 불필요한 부분까지 비주얼을 강조하여 게임의 진행템포를 흐려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마더 3>를 해보니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엔딩을 보고나서 세계관이나 시나리오적으로나 탄탄했기 때문에 감동을 받았지만 시대 흐름에 뒤쳐졌다고 생각했던 이 게임으로부터 한 수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받은 감동의 원인 중 하나는 아마도 '잃어버린 텍스트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 RPG에서는 연출적인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텍스트로서 최대한 개발자가 의도한 상황을 알리려했다. 그러다보니 게이머는 각자 그 상황을 상상하며 게임을 즐겼다. 이 게임은 마치 비주얼에 집착하는 현 시대의 RPG들에게 "텍스트가 주는 상상력은 위대하다"라는 주장을 하고 싶어 등장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텍스트를 해석하거나 집중하다보면 디테일한 비주얼을 가진 게임 이상으로 캐릭터나 세계관에 몰입하고 애정을 갖게 된다.

 

수천개의 폴리곤을 사용한 실감나는 캐릭터보다 도트로만 구성되어 있는 캐릭터에 더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대사 하나하나에서 진실된 캐릭터의 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템포도 좋아서 스킵이 불가능하여 디테일한 연출과 성우들의 음성이 포함된 환상적인 비주얼을 가진 게임들보다 훨씬 친절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도트 캐릭터지만 정감이 간다 .

 

 

 

 

발키리 프로파일 2

 

전작의 속편으로 <발키리>의 세계관과 매끄러운 시나리오의 흐름을 보여준 RPG다. 3D로 재탄생했지만 전작의 느낌을 그대로 계승하여 살려내고 있다. 이야기도 억지스럽지 않고 호소력 있어 게이머가 시나리오 상에 착착 달라붙게 하는 전개력, 몰입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시스템도 혁신적이지는 않지만 게임을 심오하게 파고들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해 게이머들의 전략, 게임패턴을 좀 더 연구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개발자들이 실수를 해버린 것일까?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 불충분하다. 개발자들이 상식적인 것이겠지라고 무모하게 생각한 것이든, 발키리 프로파일 2를 구입할 타깃층의 능력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당황스러울만큼 설명이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RPG에서 메인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을 이해시키기 위해 다양한 튜토리얼이나 실전연습, 독특한 방법의 유저접근을 만들어 놓는 노력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발키리 2>의 시스템 접근방식은 테러수준이다. '친절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나, 오기로 시스템을 이해해버려서 할말은 없지만 분명 '불친절함' 때문에 커트라인을 넘어서지 못한 게이머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우리에게 친절해줄 수는 없었는가?

                   

좀 더 시스템들에 대한 친절함이 있었더라면...

 

 

 

 

Prey

 

마침 감사하게도 친절함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게임이다. 시나리오가 명료하고 목표도 명료한 세계관에서 수준높은 그래픽(엔진에 점수를 주고 싶다. 실제 그래픽은 엔진의 힘이 크다)과 포탈이동이나 중력, 영혼 등을 사용한 신선한 레벨디자인으로 꽤나 새로운 재미를 가져다주는 FPS게임이다. 같은 레벨디자인의 반복으로 인한 지루함과 뻔한 퍼즐, 똑똑함과 다양성을 찾아볼 수 없는 인공지능 몬스터들도 문제지만 정작 이 게임의 절대적인 문제점은 '게이머 과잉보호'에 있다.

 

<Prey>는 라스트보스를 클리어할 때까지 게임오버를 당하지 않아도 된다. 체크포인트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도 없다. 단지 영혼상태로 이공간에서 돌아다니는 생명체들을 화살로 쏘아 에너지를 채워 현실세계로 돌아와 재도전할 수 있는 구조다. 어떤 전투를 벌이든 "죽으면 다시 덤비면 돼"라는 인식을 가지게 될 정도로 게이머는 안이해진다. 정상적으로 진행중인 게임이 마치 '치트'를 써가면서 게임을 하는 기분마저 들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진행상에서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게이머들에게 너무 친절했기 때문에 게임은 김이 빠져버린 콜라처럼 맹맹하게 진행돼버리고 말았다. 게이머가 죽었을 때의 처리여부는 게임에서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만약 <바이오 하자드>에서 탄알개수가 무한이었다면 공포요소가 사라짐은 물론이고, 마치 건슈팅 게임처럼 학살을 즐기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게임이 돼버렸을 것이다. <Prey>는 이 점을 놓쳐버린 비운의 게임이다. 게이머들을 조금은 더 괴롭혀도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중력, 영혼, 포탈, 세계관 등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으나...

 

 

게임마다 친절함을 가지고 있어야할 정도, 기준선은 다르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친절함이 게이머들의 몰입도나 중독성, 배틀, 게임의 흐름까지 바꿔버릴 만큼 파괴력이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많은 게임들은 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친절함'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친절함'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개발자의 권리이자 게임의 방향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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