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종 문화회관에서 열린
칸노요코의 라그나로크 2 콘서트에 다녀왔다.
칸노 요코!!!!!!
애니메이션을 좀 본다 하는 사람들에겐
절대로 낯선 이름이 아닐 것이다.
일본이 낳은 천재 여자 음악 감독.
숱한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의 히트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또 그녀와 더불어서 원래 유명한 성우인
사카모토 마야를 모르는 사람 또한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2>의 음악을 맡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한국에서 콘서트까지 연다고 하니...
더불어 사카모토 마야도 같이 온다잖아!!!!!!!!!
천사의 목소리. 그녀가 온다고!
게임 음악에 관심이 많은 나도 안 갈 수가 없더라.
그래서 린이를 다시 시터 아주머니와 엄마에게 맡기고-_-;
(미안하다 린아... ;ㅁ; 엄마는 놀고싶어~ ㅠ0ㅠ)
룰라룰라 세종 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좌석은 B열 중간에 가깝다. 그리고 앞에서 네번 째.
이 좌석 또한 치열한 예매 전쟁 끝에 얻어낸 것.
얼마나 사람들이 몰렸는지;; 정말 예매하기 힘들었다고 Y군이 그러더군...
미안해 린아 흑 ㅠ0ㅠ
엄마 아빠 데이트 좀 할께.
<아푸~하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는 우리 딸>
뭐 사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다.
그냥 칸노 요코의 음악을 라이브로 듣고 사카모토 마야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것만으로도 본전은 뽑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콘서트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만화나 게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왠지 오덕 관객 중심이 되어 오덕파티가 되는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으음...
나는 빼고 생각해줘...ㅠ0ㅠ
더불어 Y군도 자긴 아니라고 했지만...
아니긴 뭐가 아냐...
하지만 상황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관객들의 관람 수준 역시 좋았고 호응 역시 대단했다.
(촬영을 원천적으로 금지했는데도 계속 강행한 몇 분을 제외하면;;)
다들 촬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규...
하지만 원칙적으로 관람 분위기를 위해 금지했다면 따라야 하지 않았나...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결과는 기대 이상. 정말이지 콘서트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ㅠ0ㅠ
근래에 갔던 콘서트들 중에서 가장 즐거웠다.
특이하고 장난기 가득한 옷차림을 하고 펑키한 머리로 나타났던 그녀.
콘서트 구성 하나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했고
<모두가 함께 즐겁게 노는 모드>가 되어
정말이지 콘서트 내내 흥겨웠다.
일본에서도 콘서트를 거의 안 한다고 유명했던 그녀의 콘서트에는
일본에서 그녀의 팬들도 관람하러 꽤 왔더라.
기대 속에 시작해 기립박수로 끝났던 칸노 요코의 콘서트...
<라그나로크2>의 음악뿐만이 아니라
<공각 기동대> <카우보이 비밥> <에스카플로네> 등등 그녀의 히트곡들로
콘서트를 손꼽아 기다린 팬들의 마음을 충족시켜줬다.
각각 특징있는 3명의 보컬들 야마네 마이, 오리가, 그리고 사카모토 마야.
음악가들, 그리고 오케스트라단까지...
정말이 최고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휴식 시간 없이 2시간 20분이라는 말에!
린이 때문에 밤잠을 며칠동안 설쳤던 나로서는;;
관람 중 졸게 되버리는게 아닐까~ -_-;; 하고 걱정했었건만..
2시간 20분은 왠걸~
거뜬히 넘어 거의 3시간에 이르는 롱타임 콘서트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시간이 3분으로 느껴질만큼 너무너무 즐겁게 관람했던 것 같다.
한가지 에피소드가 있자면..
그녀의 가장 히트했던 곡,
사카모토 마야의 목소리를 극으로 끌어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에스카플로네>의 노래를 사카모토 마야가 한국어 버젼으로 불렀을 때.
그녀의 그 무대가 최고 관심사였기도 했던지라
준비 또한 많이 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가 관객들에게 후렴구를 같이 부르자고 권했는데...
의외로 관객들 모두가 잘 따라하질 못했다...
다들 한국어 버젼을 몰랐거든... -_-
<에스카플로네>가 한참 유행한 시절은...
내가 고등학교 때.
케이블 TV가 지금처럼 많이 퍼져있지도 않았고,
다들 용산에서 복사 CD를 구입해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던 때였다.
그래서 주제가도 일본어로 다들 알고 있었던 것.
정말 다들 따라 부르고 싶었을거에요...
하지만 한국어 버젼의 가사를 몰라...
미안. ㅠ0ㅠ
그래서 -_- 관객들은 애써서
한국어 가사를 빠르게 외워 불러야 했다.
아무튼... 콘서트 후기를 이렇게 간략하게 남기게 된건.
칸노요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에스카플로네>에 얽혔던 나의 고교 생활의 추억이.
정말이지 무럭무럭 피어올랐기 때문...
뭔가를 기점으로 가지고 있던 추억을 회상할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어제의 콘서트 때였던 것이다.
왜 어른들이 7080 콘서트에 열광하고
간혹 가다가 노래 들으며 눈물 흘리는지 이제야 알겠더라.
말하자면 나의 7080 콘서트였던 거다.
나도 모르게 유비와를 들으면서 고교 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괜시리 눈물이 글썽하더군.
칸노 요코와 사카모토 마야를 좋아하게 된 건.
고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 J가 좋아하던 뮤지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 때 <에스카플로네>가 가장 유행하고 있었는데.
J의 권유로 나 또한 <에스카플로네>를 보고 열광하게 되었고
열심히 주제가를 외워서 같이 노래 부르기도 했다.
마침 코스프레에 한창 빠져 있었던 나는
다음 코스프레 할 작품으로 주저없이 <에스카플로네>를 골랐고
친구 J와 함께 열심히 의상을 준비해서 코스프레 했다.
그녀는 히로인 히토미.
그리고 나는 고양이 아가씨인 메르르를 했는데.
내가 처음으로 내 손으로 만든 코스츔이었다.
열심히 귀와 꼬리를 만들어 흐뭇해 하기도 하고.
만든 의상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졸작에 가깝지만;
그 당시 나의 눈으로는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옷보다 더 멋져 보였거든.
롯데 호텔에서 열렸던 코스프레 행사에 팀 코스프레로 나가기도 했는데
정말 그 때만큼 모두가 코스프레에 순수했고 열정적인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게 주가 아니었던 그 때.
지금처럼 사진사와 코스프레어가 나뉘어져 있던 게 아니라
모두가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코스프레를 하고
같은 취미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그 순수한 시절.
잘 만들고 못 만들고가 중요했던 게 아니라
함께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만들어 나간다는 것 하나에 보람을 느꼈던 그 때.
순간. 너무나도 그리워져버렸다.
코스프레어들에게는 저마다 <각인>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이전에 나를 포함한 9명의 코스프레어의 이야기를 가지고
코스프레 책을 냈던 프로스트님이 책 속에서 했던 말인데
어떤 코스프레에 관련된 중요한 추억을 기점으로 삼아
코스프레를 중요한 취미로 인식하고 계속 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고 한다는 것.
뭐, 코스프레뿐만이 아니라
인간들이라면 누구나 그럴테지만...
뭔가를 계속할 수 있다는 건 그 걸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어떤 <기점>이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 때의 롯데 호텔에서 했던 <에스카플로네>의 팀 코스프레가
말하자면 그 각인된 기억이었던 것.
마침 그 콘서트에는 친구 J도 왔었는데
사카모토 마야의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의 고등학교 때의 추억을
나도 모르게 생각하며 눈물이 글썽하더라... 라고 말했더니.
J도 공감하며 우리 둘은 때아닌 추억의 강물에 퐁당 빠졌다.
언제 다시 그런 기억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어렸던 그 때. 순수했던 그 때.
좋아하는 뮤지션의 콘서트를 관람하며.
예기치 못했던 소중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