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에 열린 한국게임컨퍼런스(KGC)에서는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전시회인 '픽셀 온 캔버스'(Pixel on Canvas)가 열렸습니다.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이 전시회는 젊은 회화작가들이 모여 게임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 30종을 선보였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게임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매체간의 접목에 의의를 두고 이번 전시 작품들을 연재물로 제작해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에는 '픽셀 온 캔버스'의 행사 기획을 맡은 게임평론가 이상우 씨(중앙대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과정)가 작품 설명을 맡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가족들도 이러한 예술 작품 관람을 통해 심신의 안정에서 되찾고 짐승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영혼의 인간으로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번째 작품은 텍스트 게임 <어드벤처>입니다. 글자로 된 게임을 이 작품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볼까요?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주
성경을 보면 신은 이 세상을 ‘언어’로 창조했다. 언어는 어떤 것이든 가능하게 만든다. ‘문학’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언어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다.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은 그런 점에서 문학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다. 제작자는 언어로 세계를 구성하고, 플레이어는 언어로 그 세계의 수수께끼를 해결해야 한다. 흑백 화면에 온통 텍스트만 채워진 이 게임(?)을 게임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이미지로 모든 것이 표현되는 요즘 게임을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드벤처>가 만들어졌던 70년대의 컴퓨터 사용 환경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개발자는 컴퓨터의 그래픽 기술이라는 것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에 복잡한 모험 이야기를 묘사하고자 했다.
신이 아닌 이상, 언어는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도구였을 것이다. 물론 그런 아이디어 자체는 당시 유행했던 TRPG <던전&드래곤>(언어와 주사위로 노는 역할 게임으로 RPG 게임의 원형 같은 게임이다)이라는 게임의 영향이 컸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언어로 구성된 이 게임이 화가의 손에서 이미지로 재탄생한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박제경 작가는 캔버스 위에 일종의 손뜨개를 구사하는 작가다. 실처럼 가는 선으로 촘촘하게 짠 이미지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짜 실로 짠 것을 그대로 콜라주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작가의 전체 작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 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뜨개질의 대상이 ‘언어’ 그 자체라는 점이다. 언어는 기표(형태)와 기의(의미)로 구성된 자의적인 기호다. 언어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그 형태를 받아들이는 사회적인 약속, 즉 의미의 차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언어의 의미는 휘발되고 오직 형태적인 아름다움만 남는다. 물론 묘사된 글씨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모두 <어드벤처> 게임의 초반 진행 시 등장하는 대사(?)라는 걸 알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치 않다.
작가는 언어의 형태 자체를 반죽하면서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모든 글씨는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며 다양한 곡선이 언어와 언어 사이를 이으며 그 형태를 파괴한다. 얼핏 타이포그래피가 떠오르지만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통적인 타이포그래피는 가독성, 즉 읽는 행위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표현된 언어 이미지들은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그림 속 언어는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의 의미는 언어 이외의 요소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물결치는 무늬의 배경과 겹겹이 포개진 레이스는 마치 <어드벤처> 게임의 배경이 된 동굴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즉, 작가는 언어에서 형태적인 아름다움만을 취하고 그것의 의미는 모두 이미지에게 돌려준 셈이다.
화면 우측 하단에는 어떤 그림에나 흔히 들어가는 작가의 이니셜이 위치해 있다. 이 이니셜마저도 언어가 이미지로 환치되는 과정 속에 위치한다. 그렇게 언어는 자신의 의미도 잊은 채 순수한 이미지로 돌아간다. 형상에서 최초로 상형문자가 만들어지던 그 시절로……. 화폭에 표현된 동굴은 아마도 그 과거로 들어서는 터널이 아닐까?
어드벤처 (Adventure)
- 발매시기: 1976년
- 플랫폼: PDP-10
- 제작: 윌리엄 크라우더
이미지 없이, 오직 문자와 플레이어의 상상력으로만 진행하는 게임. 흔히 '텍스트 어드벤처'라고 불리는 이 장르는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아무 것도 없었지만, 역설적으로 언어를 통해 무엇이든 묘사하고 표현할 수 있었다.
게임은 상황에 대한 묘사와 질문 그리고 플레이어의 답변으로 진행된다. 유저는 조이스틱 대신 키보드로 문장을 입력하면서 게임에 참여한다. 초기 PC 게임의 전형을 보여주며, 향후 그래픽 기술이 접목되면서 어드벤처와 롤플레잉 장르로 분화된다.
[작가] 박제경 Park, Je-kyoung [email protected]
개인전
2011 교하아트센터 기획전 SK벤티움 기획전
2010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기획전
2009 율 갤러리
단체전
2011 한·네델란드 국제 초대전 (시티홀 퀄큼 전시장) 개관 기획전 (경민현대미술관) 우수작가 초대전 (송스 갤러리) 정예작가 초대전 (영 아트 갤러리)
2010 박제경·김소연2인전 (SK벤티움) 코리아 아트 페스티발 (프라임 갤러리) "작은그림 꿈을꾸다" (서울 미술관)
2009 옌타이 중·한 국제 미술 교류전 (중국 산동 문경화랑) "젊은 정신" (한전 프라자 갤러리) "그림, 내게로 오다" (아이 갤러리)
[필자] 이상우
게임평론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게임문화연구회에서 활동 중이며, 2011년 ‘Pixel on Canvas -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 전시회를 총괄 기획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