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콩(1981)] 영웅본색(英雄本色)

지난 11월에 열린 한국게임컨퍼런스(KGC)에서는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전시회인 '픽셀 온 캔버스'(Pixel on Canvas)가 열렸습니다.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이 전시회는 젊은 회화작가들이 모여 게임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 30종을 선보였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게임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매체간의 접목에 의의를 두고 이번 전시 작품들을 연재물로 제작해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에는 '픽셀 온 캔버스'의 행사 기획을 맡은 게임평론가 이상우 씨(중앙대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과정)가 작품 설명을 맡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가족들도 이러한 예술 작품 관람을 통해 심신의 안정에서 되찾고 짐승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영혼의 인간으로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작품은 <동키콩>입니다. 닌텐도의 고전게임으로 꽤 유명한작품입니다. 여기에 주인공인 고릴라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그 이유는 무얼까요?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주

  “The thinker", Acrylic on canvas, 72.7x72.7cm, 2011 [원문보기]

영웅에게는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는 악당을 물리치고 위기에 빠진 국가, 조직, 인물 등을 구해야 한다. 역사를 살펴봐도 영웅은 언제나 난세에 등장하는 법.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약할 수 있는 배경이 필수다. 임무에 실패한 영웅 또한 용납되지 않는다.

영웅은 성공한다는 전제하에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내색하지는 않지만 모든 영웅은 늘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것이 ‘영웅본색’이다. 그의 임무는 다양하다. 미녀 구출은 그 중에서도 단골 소재였다. 예전에는 그것 자체가 목적인 경우도 많았지만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다른 미션에 끼워 넣는 형태로 활용한다. 물론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 마지막 키스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다.

<동키콩>의 주인공 ‘마리오’에게도 미녀 구출의 임무가 부여된다. 고릴라는 빌딩 공사 현장의 최상층으로 그의 여자 친구를 납치해간다. 쿵, 쿵, 쿵! 몇 번의 점프로 철골 구조는 지그재그로 휘어지고 명랑한 음악과 함께 첫 번째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마리오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화려한 무대가 갖춰진 셈이다.

그런데 화면에 나타난 이 영웅의 생김새가 범상치 않다. 작업용 바지를 아무렇게나 입고 얼굴에는 콧수염을 잔뜩 기른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점프를 하거나 망치를 휘두르는 것뿐. 멋진 총격전이나 격투기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아마도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게이머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나무통을 뛰어넘는 것이 마냥 재미있다. 비록 외모는 볼품없을지라도 그는 플레이어를 신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동키콩>을 플레이 하는 사람에게 마리오는 적어도 영웅적인 인물이다.

재이박 작가의 <The thinker>는 <동키콩> 게임의 핵심적인 세 인물을 역동적인 구도로 보여준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화면 앵글과 사다리는 이 공간이 물리적으로 높은 곳임을 암시한다. 묘사된 상황으로 짐작컨대, 우리의 영웅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고릴라가 기다리는 최상층에 도착했다.

점프만 할 줄 아는 마리오는 쌍권총을 든 <영웅본색>의 주인공으로 바뀌었다. 벽에 박힌 총탄 자국이 치열했던 격전의 현장을 말해준다. 쌍권총의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총구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고릴라 바로 위에도 한 줄기 연기가 솟아오른다.

아마도 폭발물이 터진 흔적이리라. 하지만 이 연기의 절묘한 위치는 고릴라의 복잡한 심정을 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근육질의 고릴라는 자신이 굴리던 나무통 위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The thinker, 즉 ‘생각하는 고릴라’다.

단단한 근육과 다부진 몸매를 자랑하는 이 고릴라는 마초적 남성미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외적으로는 무척 강해보이지만 사실 내적으로는 유약하다. 결전을 앞두고 고민하는 표정과 축 늘어진 쌍절곤이 그 증거다. 쌍절곤은 고릴라의 남근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아무리 휘둘러도 결국 힘없이 바닥을 향할 수밖에 없는 쌍절곤. 그것은 결투에서 결국 패배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암시한다.

이 고릴라를 훔쳐보는 여자 캐릭터의 웃음은 어떤 의미일까? 인질로 잡혀 있음에도 두려운 기색은 전혀 없다. 이 웃음이 자신을 구하러 온 주인공에게 짓는 안도의 웃음인지 고릴라에게 짓는 유혹의 웃음인지는 최종 결투가 끝나야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나저나 이 소심한 고릴라는 왜 여자를 잡아간 걸까? 영웅이 활약할 무대를 제공해주기 위해서? 그림 속 고릴라의 고민은 결투에 대한 고민에 앞서, 자신의 행위와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아닐까? 

동키콩 (Donkey Kong)

- 발매시기: 1981년

- 플랫폼: 아케이드

- 제작: 닌텐도

닌텐도의 유명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의 데뷔작. 당시 인기를 모았던 영화 <킹콩>을 모티프로 활용했다. 고릴라에게 잡혀간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한 점프맨(마리오)의 모험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만화풍의 캐릭터는 오늘날 캐릭터 중심의 일본 게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마리오 캐릭터의 다채로운 움직임과 효과음이 게임의 재미를 더한다. 아울러 이 게임은 마리오가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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