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연재

[테트리스(1985)] 물질에서 생명으로

미술로 보는 게임 역사 ‘픽셀 온 캔버스’ (10)

디스이즈게임(디스이즈게임) 2012-03-23 08:28:16

지난 2011년 11월에 열린 한국게임컨퍼런스(KGC)에서는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전시회인 ‘픽셀 온 캔버스(Pixel on Canvas)’가 열렸습니다.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이 전시회는 젊은 회화작가들이 모여 게임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 30종을 선보였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게임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매체간의 접목에 의의를 두고 이번 전시 작품들을 연재물로 제작해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에는 '픽셀 온 캔버스'의 행사 기획을 맡은 게임평론가 이상우 씨(중앙대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과정)가 작품 설명을 맡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주


  

“回 - Tetris”, 한지배접장지・식물성 안료・수묵・채색, 60×90cm, 2011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이라는 책을 보면 <테트리스>에 관한 흥미로운 삽화가 있다.

 

라프 코스터가 소개하는 이 가상의 게임은 <테트리스>와 동일한 로직을 가졌지만 블록 대신 사람이 떨어지는 방식이다. 사각형 구덩이에 다양한 포즈(테트리스의 7가지 블록과 동일한 형태)의 죄수들이 떨어진다. 병사들은 일렬로 대기하고 있는 죄수들을 한 명씩 발로 차서 떨어뜨린다.

 

블록 모양의 죄수들이 차곡차곡 쌓여 한 라인이 완성되는 순간, 좌우에서 창이 튀어나와 한 줄 전체를 찔러서 없애버린다. 물론 그럴 때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뜯겨나가는 연출도 곁들인다.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이 삽화는 동일한 규칙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게임이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꼭 그래픽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추상적인 도형과 규칙만으로도 게임은 다양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테트리스> 역시 그렇다. 블록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떨어진다. 한 번 끼워 맞춘 블록은 다시 번복할 수 없다. 그리고 다음 블록은 언제나 랜덤이다.

 

이런 규칙은 일상의 풍경과 어느 정도 닿아 있다. 인간은 시간과 기억이라는 블록을 쌓는다. 사건은 늘 무작위이며, 한 번 선택한 것은 번복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테트리스>는 무작위 생성과 소멸을 러시아풍 리듬에 맞춰 제시한다. 이 익숙한 러시아 민요는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 구슬픈 가락이 있다. 결국 민요란 삶의 멜로디이기 때문이다.

가장 극단적인 것은 오히려 서로 통한다고 한다. 이호억 작가의 <回 - Tetris>는 게임이라는 디지털 소재를 탁본, 사군자 등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기법으로 완성시켰다. 하지만 게임과 동양화 기법은 <테트리스>라는 소재를 공유하면서 서로 자연스럽게 만난다.

 

우선 이 그림은 중층적이다. 가장 밑바닥에는 탁본된 이미지가 있다. 탁본이란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글씨, 그림, 문양 등을 종이를 대고 찍어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탁본된 이미지보다 더 깊은 곳에는 이 탁본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돌’의 물성이 깔려 있다.

 

탁본 이미지는 정사각형 형태로 타일처럼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이 탁본 이미지 위에 다시 정육면체의 이미지가 위치한다. 작가는 탁본을 뜰 때 육면체의 형상만 드러나도록 작업하여 면에서 입체로 이어지는 느낌을 이끌어냈다.

 

‘돌 - 사각형 - 육면체’ 이렇게 3단계로 쌓이는 이미지 위에 최종적으로 난초 이미지가 그려진다. 사군자는 일필휘지, 즉 한 번의 획으로 완성된다. 덧칠이나 수정은 불가능하다. 이미 떨어진 블록을 바꿀 수 없는 <테트리스>와 마찬가지다.

 

또한 이렇게 하나씩 이미지가 쌓여가는 과정 자체가 블록이 쌓여가는 과정과 중첩된다. 겹쳐지는 과정 속에서 원본 역할을 했던 ‘돌’의 물성은 탁본된 흔적을 거치며 육면체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식물 이미지로 전이된다.

 

 즉, 종이 위에 표현된 육면체들은 단단한 돌과 부드러운 식물 이미지 사이에 위치한다. 무거운 블록은 바닥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떨어진다. 이는 중력의 힘 때문이다. 하지만 난초는 그 중력을 이겨내고 조금씩 성장한다.

 

이는 생명의 힘이다. 하강과 상승, 돌과 식물, 물질과 생명. 두 이미지의 충돌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의 근원일 것이다. 

 


테트리스 (Tetris)

 

- 발매시기: 1985

- 플랫폼: PC

- 제작: 알렉세이 파지노프

 

구소련 시절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제작한 퍼즐 게임. <테트리스>는 일반적인 퍼즐 게임처럼 정답이 존재하고 단순하게 문제를 푸는 방식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일곱 가지의 조각을 빈틈없이 차곡차곡 쌓아 블록을 없애나가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낙하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순간적인 판단력이 중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업무 시간에도 PC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때문에 소련에서 미국 산업을 마비시키기 위해 개발했다는 음모론이 떠돌기도 했다. 

 


 

 

[작가] 이호억 Lee, Ho-uk [email protected]

 

중앙대학교 한국화학과 대학원 재학 중

중앙대학교 한국화학과 졸업

 

단체전

 

2011

기획전시: 오십(중앙대 서울대 성신여대 연합)전 (서울대학교 599 갤러리)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교류전 (중앙대아트센터, 서울)
중앙대학교한국화학과대학원전 - 중 원 전 (부남미술관, 서울)

2010

인사미술제 미래의 작가전 (우림화랑, 서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학과 제62회 졸업전시회 (중앙대아트센터, 서울)

2009

ASYAAF_Asia Students and Artists Art Festival (구 기무사건물, 서울)

2008

Before the blooming season (강남구청 복도 안 미술관, 서울)
ASYAAF_Asia Students and Artists Art Festival (구 서울역사, 서울) 

 


[필자] 이상우 [email protected]

게임평론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게임문화연구회에서 활동 중이며, 2011년 ‘Pixel on Canvas -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 전시회를 총괄 기획하였다.

  • [동키콩(1981)] 영웅본색(英雄本色)

  • [킹스 퀘스트(1984)] 바느질로 이어붙인 게임공간

  • [테트리스(1985)] 물질에서 생명으로

  • [슈퍼마리오(1985)] 게임기의 무덤 위를 달리다

  • [드래곤퀘스트(1986)]슬라임의 구심력과 원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