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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가마수트라] 게임 개발 - 신념을 타협해야 할 때

신념을 지킬까, 프로젝트를 위해 타협할까

밝은해 2013-07-11 12:23:06
안녕하세요! 디자인과 플레이 번역소를 운영하는 밝은해라고 합니다.

저는 몇 년 동안 디플 번역소를 운영하면서 해외 게임 개발자, 연구자, 비평가들이 쓴 좋은 글을 번역해서 소개해왔는데요. 오늘부터 이 '가마수트라 골라보기' 연재로 가마수트라의 좋은 글을 TIG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가마수트라는 1997년에 설립되어 게임 개발/사업 뉴스와 칼럼, 오피니언, 대담을 전달하는 북미의 유명 게임 미디어입니다. 국내에서는 TIG와 제휴 관계죠. 16년 역사 속에서 다양한 경험과 관점으로 여러 세대의 필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노하우를 담은 글을 가마수트라에 기고해왔습니다.

이 연재의 첫 꼭지에는 가마수트라 기고 편집자 브랜든 셰필드가 지난 9일에 기고한 칼럼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셰필드 자신이 게임 개발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변경을 요구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이 연재는 가마수트라와 디스이즈게임의 기사 제휴에 의해 제공되는 것입니다. /편집자 주



내 본업은 네크로소프트 게임즈의 굶주리는 인디 개발자지만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부업을 자주 한다. (이 칼럼도 부업 중 하나다.) 그런 연유로 나는 아시아에 있는 한 개발사를 위해 프리랜서로서 내러티브 디자인 일을 했었다.

한동안은 일이 제법 잘 진행되었다. 이야기 구조에 내재된 문제를 고쳤고, 굉장히 어려운 과제를 해결했으며, 이야기 전체를 제법 잘 엮어냈다. 텅 빈 상태에서 많은 설계와 고민이 필요했지만 그 정도까지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실제 글쓰기를 시작했다. 좋은 내러티브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알듯이 게임 디자인(기획)의 구조가 먼저 자리 잡지 않으면 글쓰기는 시작도 할 수 없다. 대사 전반에 더해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열리는 부가적인 이야기도 몇 개 만들었다. 대부분 플레이어는 못 보겠지만 게임을 더 파고드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보너스가 될 것이었다.

이 이야기들은 신기하고 별난 분위기를 의도해 동화 같은 스타일로 쓰였다. 그리고 그 별난 이야기 중 하나가 프로젝트 전체에 큰 지장을 초래했다.

그 동화 중 하나는 여자아이를 원했던 어머니에게서 남자로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였다. 남자아이는 자신이 남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어머니가 사주는 여자아이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를 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마법 같은 사건으로 아이는 소원을 하나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놀리지 않도록 ‘평범’해지기를 원했다. 소원이 이루어져 아이는 여자아이가 되었다. 여자아이는 행복했고 다른 아이들도 원래 그래야 할 모습이 되었다며 받아들였다.
 
내가 볼 때 별로 극단적인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두 번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팀의 한 사람, 구체적으로 말해 아트 디렉터가 문제를 제기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자신은 성별이 바뀌는 부도덕한 이야기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것으로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다.
 
 
대치

내 글 솜씨를 비판했거나 별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라고 했다면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부도덕하다니? 난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이 알맞은 성별로 바꾸는 것은 윤리가 아닌 필요의 문제이며, 원칙이 아닌 자기가 자신의 정체성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다.
 
하지만 아트 디렉터는 이런 부도덕함이 허용된다면 이 게임에는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 친구인 게임 디렉터는 내게 이야기를 바꿔 달라고 간청했다. 다른 한편으로, 나의 친구인 이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아트 디렉터에게 간청했다.
 
게임 디렉터는 그저 게임이 완성되길 바랐다. 이 문제가 어떤 쪽으로 풀리든 상관이 없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이 이야기에 ‘도덕’의 문제를 끌고 온 아트 디렉터의 발언에 나만큼이나 심기가 거슬렸다.
 
그렇게 나는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나는 이 게임의 이 부분을 책임지라고 고용된 사람이었고, 아트 디렉터는 내가 담당하는 부분에 참견하기로 결정했다. 아마 자기 스태프가 이 작은 이야기의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는 회사 전체의 아트 디렉터인 반면, 나는 계약자에 불과했기에 설 자리가 없었다.
 
내가 돈이 넘치는 사람이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안 됩니다!” 하고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첫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굶주리는” 인디 게임 개발자였다. 돈을 써야 할 곳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봤다. 어떤 친구는 내가 프로젝트에서 빠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친구는 내가 변경을 고려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중해주었지만, 크게 볼 때 내 주장은 천천히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꾹 참고 내 이야기의 그 작은 부분을 바꿔 나중에 더 중요한 싸움을 위해 힘을 아껴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내 자존심은 물러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를 바꾼다면 아트 디렉터의 ‘승리’였다. 내가 물러섰기에 그는 자신의 윤리적 입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돈은 언제라도 더 벌 수 있지만 윤리 기반이 한 번 무너지면 평생 간다. 나는 용인하는 사람이 된다. 한 번 용인한다면 앞으로 다시 용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트 디렉터도 마찬가지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 입장에 반대하는 만큼이나 그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점은 존중했다. 그렇게 나는 게임에서 내 작업물을 전부 빼버려야 했다. 모두 들어가거나, 모두 빼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편향된 종교 교리가 게임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게임에 참여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일정이 (한 달 이상) 지연된 결과를 아트 디렉터의 잘못으로 보았지만, 분명 나는 스스로 죄책감을 느꼈다. 그냥 꾹 참고 팀을 위해 넘어가야 했을까? 개인의 명예와 체면의 값이 얼마나 한 단 말인가?
 
 
존엄이 치른 대가
 
그런데 사실상 내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게임의 많은 부분에 나 자신을 쏟아 넣었고, 그것을 실력이 아니라 그런 이유로 바꾼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없어 보였다. 게다가 나는 게임 주인공의 이름을 작년에 세상을 떠난 가까운 친구에서 따와 그 친구라고 생각하고 인물을 만들었으니, 그쪽에선 결국 이름도 바꾸어야 했다.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계약해서 하는 일에 그렇게 자기를 너무 쏟으면 안 되지!” 그 친구 말이 맞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면 자기를 쏟아붓고 자신의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러서는 기분은 묘했지만 아마 그게 최선이었으리라.
 
그래서 나는 여러분께 이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어쩌면 여러분은 이런 싸움을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이런 딜레마와 맞서게 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퍼블리셔가 “주류에 맞추게” 흑인 캐릭터를 백인으로, 여성 캐릭터를 남성으로 바꾸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이런 싸움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이 이 잡지에 싣는 내 마지막 칼럼(주 1)이긴 하지만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리가 만드는 가상 세계를 누가 놀아도 좋은 곳으로 만들어보자. 놈들이 우리 의지를 꺾게 두지 말자.
 
 

저자/ 브랜든 셰필드

 

가마수트라의 수석 기고 편집자, 인디 게임 개발자. 얼마 전 폐간된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의 편집장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와이어드와 게임스TM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주 1: 이 칼럼은 원래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의 폐간호인 6/7월호에 실렸습니다.

마침 ‘가마수트라 골라보기’의 다음 꼭지에는 또다른 번역자인 이후 님이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의 오랜 역사를 돌아보는 글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묘하게도 첫 번째 글과 두 번째 글 연속으로 브랜든 셰필드가 쓴 글이 되지만, 그 뒤로도 재미있는 글부터 유익한 글, 흥미로운 글,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글까지 읽고 생각할 만한 글을 많이 전달할 생각입니다.
 
지켜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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