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개발비화] 우리가 즐기는 게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숱한 사연이 있게 마련입니다. 상상도 못할 이유로 개발이 시작됐다거나, 개발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가 나오게 되죠.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 준비한 새로운 연재물입니다.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여러 게임들의 개발 ‘비화’, 말 그대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 보시죠.
첫 번째 주인공은 모바일 TCG의 홍수 속에서 ‘가챠(뽑기)는 없다’는 돌직구 승부수로 화제를 모은 <언리쉬드>의 개발사 유스티스의 정회민 대표입니다. 이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부터 소규모 개발사로서 개발 중에 부딪힌 난관, 원래 SRPG로 기획됐던 이미지와 영상, 출시 후의 뒷이야기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언리쉬드>의 개발비화를 들어 보시죠. /정리: 디스이즈게임 주재상 기자
■ <언리쉬드>에 관심주지 않았던 사람들
게임을 당장에라도 개발하고 싶었지만, 이전에 엎어진 기획안(1화 참조)처럼 내부에서 개발할 수 있는 수준의 자금이 없었다. 일단 개발비를 구하러 직접 다녔는데, 잘 안됐다. 정말 아픈 2개월이었다. 대형 퍼블리셔부터 시에서 지원해주는 창업 대출까지 찾아봤지만, 문전박대도 많이 당해봤다.
특히 시에서 주관하는 창업 대출을 알아보러 가서는 나이 좀 드신 담당자분에게 “생산직은 한 달에 몇억씩 버는데, 게임 갖고 돈이나 벌겠어?”라는 말까지 들었다. 정말 멘탈은 산산이 조각났다. 그만큼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2개월여의 시간을 헛되이 보낸 다음에는 내가 콩팥이라도 팔아서 게임을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가진 것을 잠잘 때 필요한 간이침대를 제외하고 모두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모아왔던 콘솔 게임들은 도저히 못 팔겠더라. (웃음)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저것들뿐이다.
사실 나는 의외로 폰맹이다. 스마트폰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심지어 <카카오톡>마저 PC 버전이 등장하기 전까진 사용하지도 않았다.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어떻게 촬영하는지도 몰라서 따로 블루스택 버전으로 <언리쉬드>를 만들어서 <곰 플레이어>로 녹화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플랫폼으로 모바일을 선택했던 이유는 딱히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콘솔로 만들었다면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가 우리처럼 작은 회사를 봐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온라인으로 만들려고 해도 마케팅비와 개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PV를 공개할 때에도 구석에 몰려 있었다. 게임을 오픈하기 3일 전에는 통장 잔액이 마이너스여서 서버 비용을 충당할 돈이 없었다. 서버를 마련한 게 게임 오픈 하루 전. 그러다 보니 게임 오픈 후엔 ‘이제 슬슬 돈 냄새 맡고 몰려 오겠지?’ 하는 생각에 사무실을 옮기게 되더라. 다 그런 거지 뭐.
처음 공개됐을 당시 파격적인 뿌잉뿌잉(?)으로 화제를 모았던 <언리쉬드> PV.
그렇게 해서 내놓은 것이 알파 버전이다. 사실 그전까지는 모바일 게임을 어떻게 만드는 건지도 몰라서 막무가내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버그가 많다. (웃음) 이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당나귀 농장이나 차리고 싶다. 나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게임과 개발을 좋아하는 오타쿠일 뿐이다.
사실 환멸을 느끼고 있다. 필요할 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다가 게임이 잘되고 나니 이제와서 일반 게이머가 아닌 돈 많은 사람들이 친한척 하는 것이 싫었다. 오픈 후 2주 동안엔 사람을 만나기도 싫었을 정도다. 사무실을 옮겼는데도 어떻게 또 연락처를 알았는지 궁금하다.
그분들은 게임 자체를 보지 않고 실적을 먼저 본다. 물론 당연하다고는 생각한다. <언리쉬드>같은 게임은 사례도 없고, 이런 코어 게이머가 좋아할 만한 게임을 보고 누가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겠나? 더군다나 ‘가챠(뽑기)’를 빼겠다고 기획서에 당당하게 적혀 있는데 말이다. 나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친한 척은 하지 마시죠?”라고 전하고 싶다.
■ 일러스트는 대부분 일러스트레이터의 역량에 맡겼다
게임 자체의 재미를 강조하고 싶었지만, 정작 이슈가 된 것은 뿌잉뿌잉(?)이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저렇게 큰 데(?) 안 흔들리면 이상하잖아. (웃음) PV 나가고 나면 다른 회사들이 다 따라 하겠구나 싶었는데, 아무도 안 따라 하더라.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소스를 공개하면 모두 허탈해할 거라고 본다.
초반에 선정성을 부각시킨 이유는 간단하다. 마케팅 비용이 없으니까. 선정성 논란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흔들리는 것을 보고 뭐라 할 사람은 끝까지 말이 많을 것이다. 당시에는 게임을 알리는 데 주력했을 뿐. 다른 TCG와 비슷하다고 오해했지만, 나중엔 게임성에 감탄하는 반전의 매력을 추구했다.
알파 버전을 공개할 당시에도 일러스트는 많이 확보해둔 상태였다. 지금도 업데이트 속도보다 일러스트가 쌓이는 속도가 빠를 정도다. 처음에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구하느라 발품을 많이 팔았다. 픽시브나 방사(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에서 내가 보기에 괜찮은 사람들을 물색했다.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메일 회신을 받는 데도 한두 달 걸렸다.
현재는 같이 작업하는 분들의 수가 70명 가까이 되지만, 그땐 정말 일러스트레이터를 모시기 어려워서 공개 모집도 해봤다. 그럼에도 실제로 계약이 성사된 분은 10% 미만이었다. PV가 공개된 다음 자원한 분들께도 한 통 한 통 답신을 드렸으니까 지금까지 썼던 메일만 천 통이 넘을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들과 작업할 때는 1 대 1로 대화하며 확인하고 있다. 나는 나의 ‘덕력’을 믿거든. 그림 하나하나 직접 보고 “이건 팔릴만하구나, 이건 잘 안 팔리겠다”며 대놓고 얘기한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그린 그림이 가급적 인기 캐럭터가 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입장이다.
작업 자체도 캐릭터의 성격이나 배경 스토리 등 설정을 건네주고 외모에 대해서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해석에 맡긴다. 가끔 일러스트레이터 성향에 따라 모든 것을 알아서 해달라고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게임에 어울리는 그림을 만들려 하기보다는 그림에 게임을 맞춰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PV를 공개하고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수익도 배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매체 인터뷰가 나간 다음에는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 지역별 업데이트를 분기로 삼아서 총 수익의 일정 부분을 돌려드리는 방식이다. (※ 이 부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화에서 다루겠다)
■ 밸런스는 시뮬레이터 툴을 이용해 잡아나가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모바일 게임 제작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서 알파테스트는 게임 밸런스보다는 핸드폰에서 잘 돌아가는가, 튕기지는 않나 등 서버 통신 위주로 테스트했다. 실제로 피드백을 받은 것도 동작 여부에 관한 것이 많았다. 소수 몇몇 카드를 제외하면 밸런스 피드백은 많지 않았다.
스킬 아이디어는 고전게임이나 <매직더개더링>, <리그오브레전드> 등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한다. 처음 2~3주 동안은 일일이 밸런스를 테스트했다. 그러다가 결국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서 시뮬레이터 툴을 만들어 테스트한다. 실제로 내가 직접 플레이해보는 것보다 프로그램으로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것이 정확도가 높았다.
물론 시뮬레이터 툴은 게임에 적용된 AI(인공지능)으로 , 일점사도 잘 안 하고, 디버프도 잘 풀지 않고, 힐도 최대 체력에서 하는 초보가 아니라 어느 정도 사람과 비슷한 수준이다. 게임에 적용된 AI는 게임 난이도를 고려해 최소 수준으로 설정해서 서버에 적용한 것이다.
밸런스 관련해서 욕도 많이 먹었다. 대표적인 거라면 하은이 있다. 하은을 처음 만들었을 때 시뮬레이터 툴에 넣고 돌렸을 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출시하고 보니 치명타가 터지지 않는 버그가 있어서 이를 수정했더니 혼자서 ‘무쌍난무’를 펼치고 다니더라. 버그가 있었을 때는 밸런스에 아무 문제 없었는데 말이다.
시뮬레이터 툴을 통해 도출한 수치를 신뢰하고 있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아직 출시되지 않은 카드들도 막상 출시해 봐야 알 것 같다는 판단이다. 솔직히 물리적으로 모든 카드를 직접 조합해서 테스트해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개발 인원이 많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밸런스 점검을 마친 후에 능력치를 결정해서 출시하고 최종 조정에 들어간다. 어느 게임이나 그렇듯 게임을 만드는 사람보다 플레이하는 사람이 게임을 더 잘하기 마련 아닌가? 개발자가 생각하지도 못한 시스템의 허점이나 조합을 생각해내는 유저들을 보면 나도 즐겁다.
유일한 남자 슈퍼 레어 카드, 하은. 남자 주제에 그림의 떡이라니.
■ 건전한 언리쉬드 모드가 탄생하게 된 배경
처음엔 다들 뿌잉뿌잉(?)에 관심이 많다가 정작 알파테스트를 시작하니 뿌잉뿌잉보다는 다들 카드의 성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더라.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터치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선정성이 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겉으로는 발칙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알찬 게임이라는 점에 유저들이 만족하고 있어서 굉장히 기쁘다. 바스트 모핑을 제작하는 데엔 3일 걸렸다. 금요일 시작해서 일요일에 끝났다. 이렇게라도 PV에서 파격적인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관심을 둬 주지 않았을 거로 생각한다.
그 어떤 점을 부각했더라고 흔한 TCG 중 하나로 여겨졌을 것이다. 평범한 PV 영상이었다면, 이를 보고 기사를 써달라고 해도 누가 써줬겠는가? 그땐 최대한 게임을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였다. PV도 유투브와 R 커뮤니티에 올렸던 것이 홍보 전부다. 그런데 디스이즈게임에서 기사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매우 감사하고 있다. 보답하려고 디스이즈게임 특전 카드를 제작했다.
알파테스트가 끝나고 제일 많이 받은 피드백이 “지하철에서 못하겠다”여서 엄청 고민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유저들이 지하철에서 <언리쉬드>를 즐길 수 있을까에 관해 정말 많이 고민했다. 기술적으로도 이제 와서 게임을 갈아엎을 수도 없었다.
일주일 걸려서 모자이크를 개발해서 적용해봤는데 아…. 이건 더 안될 것 같더라. 캐릭터를 작게도 만들어 보고, 알파 값도 먹여 봤다. 이렇게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다가 시커멓게 만들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어 만든 것이 ‘건전한 언리쉬드’ 옵션이다. 이보다 더 완벽하게 건전할 수는 없다.
이렇듯 1인 개발 체제여서 생각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좋다. 물론 의논 상대가 없다는 점은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 류세린 작가가 <언리쉬드>에 합류하게 된 계기
원래 류세린 작가가 쓴 책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PV 영상을 공개한 뒤 류세린 작가가 “이 회사 주식 사고 싶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주식 갖고 싶으면 그냥 합류하시죠?”라고 했더니 바로 직원으로 합류했다.
일은 같이 재미있게 잘하고 있다. 늦게 합류해서 시간도 촉박했지만 정말 열심히 일해 줬다. 시나리오 관련은 전부 다 몰아서 자기에게 맡겨 달라는 식이다. 이제 몇 달 뒤면 같이 돈 잔치할 수 있지 않을까? (웃음)
물론 의견 충돌도 있었다. 리바이어선이 먹은 사람을 소환한다거나 하는 매우 기초적인 설정 부분에서다. 내가 짜놓은 설정은 혼자 게임을 만들 때엔 그냥 머릿속에서 꺼내 쓰면 되니까 문서로 정리한 것이 없다 보니 생긴 일이다. 내가 말로 설명을 잘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막상 류세린 작가가 써놓은 것을 보니 내 머릿속에 있었던 설정과 다소 틀린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써야 할 것 같은데”라고 하면 “이걸 언제 다시 써!”하는 식이다. 다만, 세일즈를 총괄하는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다. 잘 팔리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는 식으로 이견을 조율해서 잘 진행하고 있다.
‘덕심 충돌’은 딱히 없다. 사실 취향은 좀 다르기도(대표적으로 정회민 대표가 좋아하는 여동생은 류세린 작가의 관심 밖) 하고 말이다. 설정 충돌에서는 내가 이기고 들어가고, ‘덕심’ 충돌에서는 내가 100% 지고 들어간다. 사실 나보다 더 막 나가는 분이라서. (웃음)
다만, “이대로 나오면 우린 심의에서 19금 못 피할 것 같은데?”라고 내가 태클을 걸 때도 있지만, 여기서 뭐라고 하느니 차라리 마음껏 ‘덕심’을 발산하라고 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메인 화면에서 캐릭터를 터치했을 때 나오는 대사들이 대부분 류세린 작가의 작품이다.
그의 악독한 DLC 스토리는 쓰지도 않는 이 캐릭터의 스킨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