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연재

[좌충우돌 오늘] 3월 1일 - 한게임과 첨밀밀

임상훈(시몬) 2014-02-28 15:34:26

2000년 나는 종로에서 일했다. 신문사는 그 전해 나에게 게임을 맡겼다. 수습 시절 선배들 PC의 바이러스를 몇 개 잡은 전력 때문이었다. 몽키 바이러스와 V3 디스켓 여파로, 지금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다.


종로로 출근했지만, 나는 여전히 신림동에 살았다. 신문사를 계속 다닐 지 확신하지 못했다. 주로 신림동 고시촌에서 놀았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아직 고시생이던 석호, 재롱디푸와 비쥬에서 J&B Jet를 마시며 농을 주고 받았다.


당시 신림동은 PC방이 속속 늘어나고 있었다. 규모도 커져갔다. 녹두거리를 쭉 올라오면 나오는 사거리에 크고 깔끔한 PC방이 있었다. 퇴근길 자주 그 곳을 들렀다. PC방 사장 아저씨와 친하게 지내며 정보도 많이 얻었다. 거기서 나는 초창기 몇몇 온라인게임이 팡팡 터지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처음엔 한 줄 정도에서 앉아하던 게임이 이튿날 두 줄, 세 줄로 늘어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바로 게임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기사를 썼다. 게임은 다시 화제가 됐다. 신림동 PC방은 당대 게임판의 표본이었다. 나의 은밀한 출입처였다.


2000년 봄 그곳에서 쑥쑥 불어나던 게임이 하나 있었다. ‘한게임’이었다. 2000년 3월 1일, 한게임은 동시접속자 수가 1만 명이 넘었다. 굉장한 숫자였다.


한게임은 지금은 카카오톡 의장으로 유명한 김범수 대표가 만든 회사다. 삼성 SDS를 그만 둔 그는 한양대 근처에서 ‘미션넘버원’이라는 PC방을 하며 게임 개발을 준비했다. PC방에서 5,000만원의 종잣돈을 마련한 뒤, 1999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스톱, 테트리스, 포커, 바둑 등을 담은 한게임은 1999년 12월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선발주자는 아니었다. 고스톱닷넷 등 유사 사이트가 건재했다. 한게임은 PC방과 '딜'을 했다. PC방 관리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한게임 아이콘을 초기화면에 띄우는 방식이었다. '신의 한 수'였다. 현재 마음골프 대표인 문태식이 관리프로그램을 개발했고, 게임인재단 이사장인 남궁훈이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그 결과 한게임은 초기 웹보드게임 시장에서 굳건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한게임이 1만 동접을 기록하기 3년 전, <첨밀밀>이 국내에서 개봉했다.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비디오 테이프로 봤다. 앞서가는 장만옥과 뒤쫓는 여명이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던 영화. 엔딩 장면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 두 사람, 장만옥의 미소가 예뻤다. 공교롭게도, 영화 속에서 주인공 두 사람이 (서로 모르는) 인연을 처음 맺은 날도 1986년 3월 1일이다.

 

서극의 초기 영화 <상하이 블루스>만큼 좋아했다. 비디오 테이프도 샀다.

 

 

영화를 세 번 봤는데, 주인공 둘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다. 암흑가 보스 표형 역할로 나온 증지위다. 그와 장만옥의 사랑이 더 묵직하고 넉넉했다.


2005년 TIG 오픈 직전, 대만에 갔다가, 등려군 CD를 샀고, <월량대표아적심>을 가끔 듣곤 했다. simon :)

 


- 2000년 3월 1일 한게임 동시접속자 1만 명 돌파

- 1997년 3월 1일 <첨밀밀> 국내 개봉

  • [좌충우돌 오늘] 3월 1일 - 한게임과 첨밀밀

  • [좌충우돌 오늘] 3월 2일 - NBA 체임벌린의 100득점 경기

  • [좌충우돌 오늘] 3월 3일 - 부끄러운 현대 영화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