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오늘 미국에서 영화 하나가 개봉했다. 이후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였다. 이 작품을 봤거나, 이름을 외었거나. 나는 외는 쪽이었다. J.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
필름 역사에 불멸의 이름을 새긴 영화였다. 당시 영화는 연극을 촬영해 보여주는 수준이었다. <국가의 탄생>은 갑자기 툭 튀어나와 클로즈업, 플래시백, 평행편집, 교차편집 등 영화 문법을 제대로 보여줬다. 오케스트라 음악이 최초로 사용된, 3시간 짜리 대하 서사극.
그리피스가 ‘미국 영화의 아버지’나 ‘예술로서 영화를 꽃 피운 천재 감독’으로 존경 받는 이유다. 삐딱한 프랑스 감독 장 뤼 고다르조차 이 영화를 기준으로 현대영화와 그 전 영화가 나뉜다고 했다. 쉽게 말해, 무성에서 유성으로의 전환,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에 비견되는 엄청난 혁신이 영화사에 일어난 것이다.
영화는 이후 비평적 관심의 대상으로 격상됐다. 일간지와 잡지에 정기적인 영화 리뷰가 실린 것도 <국가의 탄생> 이후다. 비약적인 성취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혐오하는 사람이 많다. <국가의 탄생>은 토마스 딕슨의 희곡 <클랜스맨 : KKK단의 역사적 로망스>를 원본으로 삼았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노골적인 인종주의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흑인은 게으르고 무지하며 백인 여성을 탐하는 속물로 그려진다. KKK단은 그들로부터 미국을 지켜내는 순수한 영웅으로 묘사된다.
대학 시절, 나도 영화를 공부했다. 책에서 이 영화를 읽었다. 불편하고, 거북했다. 그래서 안 봤다.
게임 쪽에서 이야기해보면 이렇다. 엄청난 기술적 혁신을 이룬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서 일제 시대 순사들이 영웅으로 등장한다. 식민지 조선인은 게으르고, 더럽고, 시기심만 가득하다. 그들의 횡포로 조선은 지저분한 나라가 되어간다. 게이머는 순사가 되어 멋진 무술을 통해 독립 운동가들을 무찌르고, 평화로운 식민국가를 이뤄낸다는 내용이다.
이런 게임을 게이머에게 권할 생각은 없다. 개발자는 기술적, 예술적 혁신을 벤치마크하기 위해 이 게임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공부가 끝나고, 혹은 그런 공부를 통해 비슷한 수준의 게임이 나오면, 이런 빌어먹을 게임은 어딘가 처박혀도 된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욕되게 하는 사례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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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아직도 일부에게 <국가의 탄생>이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존경'받는 게 몹시 불쾌하다. 우리나라 역사를 해석하는 일부 시각과 닮아있어서 더욱 그런 모양이다. <국가의 탄생>은 현대 영화의 시초이자, '나쁜 영화' 목록의 맨 꼭대기에 올려 놓아야 할 영화다. sim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