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오늘, <A3>와 <마구마구>로 유명한 애니파크가 태어났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던 김홍규가 대학원 동기와 후배 등 6명과 함께 서울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작은 회사를 차렸다.
지금은 엘리트 게임회사로 자리 잡았지만, 원래 애니파크는 게임회사가 아니었다. 회사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했다. 90년대 후반은 스티브 잡스가 만든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핫'한 시절이었다. <토이스토리>(1995년)와 <벅스라이프>(1997년) 같은 3D 애니메이션이 빵빵 터졌다. 김홍규 대표는 픽사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김 대표 등 2명이 회사에 상주했고, 다른 멤버들은 대학원에서 또는 방과 후 회사로 와서 일했다. 프로그래머로 구성된 회사여서 출중한 3D 애니메이션 기술력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수요가 없었다.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헤어스타일이 나오고, 바람에 펄럭이기도 하는 등 당시 마야툴에서도 구현이 안된 '모션 리타깃팅'을 바탕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했죠. 기술력은 있었는데 문제는 제작사들이 돈이 없는 거예요. 1년쯤 되니까 자본금 다 날아가고 거지 됐었죠." (김 대표가 한 매체와 나눈 인터뷰 중)
회사가 어려워졌다. 임원들은 한 달에 10만 원만 가져가는 지경이 됐다. 김 대표와 멤버들은 업종전환을 고민했다. 게임으로 결정했다. 바야흐로 온라인게임 뜨고 있었고, 김 대표는 대학교 졸업 무렵 1년 가까이 게임 벤처에서 미친 듯 일했던 경험도 있었다.
프로그래머밖에 없던 회사는 무작정 게임 엔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회사 설립 때부터 도와주던 김 대표의 외삼촌이 액토즈소프트 임원을 소개시켜 줬다.
“그 분이 <천년>인가 <마지막 왕국>의 2D 도트 외주작업을 주셨죠. 몇 주씩 찍어서 가져다 주면 500만 원을 벌 수 있었습니다. 2~3개쯤 받았던 것 같아요.”
비슷한 시기 모션캡처 회사를 하는 선배를 만났다. 그 회사는 모션캡처와 연동되는 엔진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그 외주를 통해 5~6개월을 버틸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홈페이지 제작과 사내 전산망 구축으로 월급과 게임 제작비를 벌었던 넥슨이나 엔씨처럼, 2000년대 초반 애니파크는 2D 도트작업과 프로그래밍 외주를 통해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다.
2D 도트작업을 진행한 지 6개월쯤 됐을 때 액토즈로부터 연락이 왔다. 액토즈 사장은 “3D 온라인게임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당시 액토즈는 2D MMO 쪽의 역량은 갖추고 있었지만, 3D에는 노하우가 없었다.
애니파크는 따지고 말고 할 게재가 아니었다. 워낙 배가 고팠다. 서버를 제외한 기획, 클라이언트, 그래픽은 애니파크가 맡았다. IP는 반반씩 나눠 가졌다. <A3>는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뮤> 등 초창기 3D MMO가 시장을 강타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리니지 2>가 곧 나올 예정이었다. 속도를 낼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10월부터 2002년 12월 오픈베타 때까지, 미친 듯이 만든 게임은 1년 2개월 만에 론칭했다.
<A3>의 성공으로 어느 정도 먹고살게 됐다. 후속작의 성패가 중요했다. 2004년 8월 보드 라이딩게임 <호버보드 ASDF>를 출시했다. 실패였다. <카트라이더>의 벽이 높았다. 회사 살림살이도 다시 어려워졌다. <A3>를 시작하기 전의 쪼달리는 상황이 됐다.
“시장 조사를 할 상태도 아니었어요.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야 그 상황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야구 게임을 만들기로 했죠.”
<마구마구>는 그런 절박함 속에서 잉태됐다. 캐릭터만 나와 있는 기획서를 들고 CJ인터넷을 찾아갔다. 미팅은 5분도 안돼 끝났다. 검토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연락이 없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나서, 퍼블리셔를 구하기 위해 여러 업체를 찾아다녔다. CJ인터넷에서 연락이 왔다. 방준혁 사장이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방 사장과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방 사장은 퍼블리싱 뿐만 아니라 끝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 김 대표도 그 자리에서 오케이 했다.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셨죠. 게임을 원 없이 만들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투자 규모를 양보를 하면, CJ인터넷에서 충분한 투자를 해줘서 원하는 게임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넷마블은 퍼블리셔로서의 역량을 키워가고 있는 시기였다. 엔씨나 넥슨 같은 개발력이 출중한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역량 있는 개발사를 확보해야 했다. 애니파크는 안정적인 개발환경이 절실했다. 성장과정이 너무 험난했다. 2005년 7월 애니파크는 넷마블의 빅텐트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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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파크는 2006년 3월 <마구마구>를 론칭했다. 성공했다. simon :)
- 2000년 3월 4일 애니파크 창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