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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오늘] 3월 30일 - 에버퀘스트 2의 퀘스트 포기

임상훈(시몬) 2014-03-30 10:54:20
이제는 상식이다. 외산 MMORPG의 국내 시장 안착은 확률이 낮다. 반복적인 역사적 실패를 통해 확인됐다. 2006년 3월 30일 한국에서 철수한 <에버퀘스트 2>도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게임의 정식명칭은 <에버퀘스트 2: 이스트>다. 미국에서 서비스했던 버전과 달랐다. 한국, 중국, 대만 유저에게 어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손질됐다. 원작의 개발사 SOE(소니온라인엔터테인먼트)와 대만의 퍼블리셔 감마니아는 SOGA라는 합작법인을 만들었다. 원작의 틀은 유지하되, 게임을 뜯어고쳤다. 그림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프로젝트였다.


SOE는 <에버퀘스트>로 미국과 유럽 MMORPG 시장을 장악하며 명망이 높았다. 아시아에는 달랐다. <에버퀘스트>는 한국의 MMORPG 명가 엔씨소프트가 서비스했다. 실패했다. 게임에 대한 SOE의 자부심이 문제였다. 지난해 말 SOE의 부사장 루이스 피게로아는 밝혔다. "당시 게이머들과 파트너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우리 게임에 대한 자부심이 커 오만했던 것 같다." 초창기 중국 시장에서 실패한 한국 MMORPG의 후회와 놀랍게 닮았다.

한국, 중국, 대만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놓치기 아까웠다. SOE는 아시아 유저에 맞춰 게임을 현지화하고 싶었다. 직접 할 역량이 없었다. 파트너가 필요했다. 대만의 감마니아가 맡았다. <리니지>를 통해 대만의 일류 게임 퍼블리셔로 자리잡은 회사였다.

감마니아도 사정이 있었다. 패키지게임을 개발, 유통하던 이 회사는 2000년 7월 <리니지>의 대만 서비스로 우뚝 일어섰다. <리니지>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대만 국가 인터넷망이 두 차례 다운됐다. 당시 감마니아 알버트 류 사장은 대만의 빌 게이츠로 불렸다.

이후 한동안 대만시장은 한국 MMORPG 개발사들에게 두둑한 보너스를 줬다. 엔씨소프트는 직접 들어가기로 했다. 2003년 감마니아와 함께 엔씨 타이완을 설립했다. 엔씨에서 해외사업을 책임지고 있었던 김정환이 CEO를 맡았다. 감마니아로서는 애매한 상황이 됐다. <리니지 2>는 감마니아가 아닌 엔씨 타이완이 서비스하게 했다. 이후 엔씨 타이틀들도 감마니아로 가지는 않게 됐다. 

설상가상이었다. 대만의 경쟁사 소프트월드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가져갔다. <WOW>의 대만 서비스만을 전담할 별도의 계열사를 만들었다. 감마니아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에버퀘스트 2>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타이틀이었다. <에버퀘스트 2> 아시아 버전 개발만을 위한 합작회사 SOGA를 만들었다.


2005년 3월, 디스이즈게임이 문을 열기 직전이었다. 감마니아가 <에버퀘스트 2>를 홍보하기 위해 한국의 기자들을 대규모로 초청했다. 당시 한 기자가 "단군 이래 한국 기자들이 가장 많이 왔다"고 말할 정도. <에버퀘스트 2>에 거는 감마니아의 기대가 그만큼 컸다. 나도 그 곳에 있었다. 그 사이, 국서방 주도로 한국에서는 디스이즈게임이 문을 열었다.


2005년 초중반, 몇몇 국내 회사가 <에버퀘스트 2>의 퍼블리싱을 검토했다. MMORPG의 붐은 여전했다. 2005년 1월 국내 론칭한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에버퀘스트'의 지명도는 <WOW>에 밀리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WOW> VS <EQ 2>가 회자됐다. 북미 유수의 매체 IGN은 9점(10점 만점)을 줬다. 아시아 시장을 목표로 한 전략적인 현지화도 매력적이었다. 게임시장 진입을 원하는 돈 많은 외부 회사들도 있었다... 가격이 비싸다, 게임이 무겁다 같은 이야기가 흘러다녔다. 2005년 7월 결국 감마니아 코리아가 직접 오픈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에버퀘스트 2>는 화제와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힘 한번 못 쓰고 실패했다. 일본에서도 그랬고, 대만에서도 그랬다. <에버퀘스트 2>의 아시아 시장 공략 퀘스트는 실패했다.

 

실패 원인으로 ▲엉성한 한글화 이질적인 캐릭터 높은 사양 부실한 운영 등이 꼽혔다. <에버퀘스트 2>의 방대한 스케일은 오히려 한글화에 독이었다. SOGA 스타일 캐릭터는 어설픈 변종의 느낌을 줬다. CD 10장 또는 DVD 2장의 용량은 너무 무거웠다. 풀옵션의 그래픽은 멋졌지만, 풀옵션을 할 만한 컴퓨터는 적었다. 감마니아 코리아는 MMORPG 운영 경험이 일천했다.


감마니아 코리아는 1년도 안 돼 손을 들었다. 이후에도 많은 해외 MMORPG가 국내 시장을 노렸다. <에버퀘스트 2>의 실패는 반면교사가 됐다. 다양한 현지화가 이뤄졌다. 점점 나아졌다. 하지만 <WOW>를 빼고, 크게 성공한 게임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전히 해외 MMORPG의 국내 시장 안착은 '에버 퀘스트'다. simon :)

- 2006년 3월 30일 <에버퀘스트 2: 이스트> 한국 서비스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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